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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큰 스님
2003년 11월. 얼핏 뉴스를 보다가 큰스님의 열반소식을 들었을 때,
내 안에서 느껴지던 그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토록이나 청화스님께서 자리한 것이 큰 것이었을 줄을 몰랐었다.
나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새벽에도 허탈하고 허탈했다.
무슨 일을 하건 기쁘지가 않았고 마음은 항상 ‘스님, 저는 이제 어떡해요?’라고
묻고 있었다. 그 슬픔 속에서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슬펐다.
아무리 스님의 설법을 들어도, 늘 말씀하시는 本性을 찾을 수가 없어서,
십년 이상을 큰스님 따라가기를 그만둔 때였다. 우둔하고 어리석은 내가
싫었다. 청화스님은 거대하고 깊은 산이었다. 스물한 살 되던 1981년,
실상사의 백장암에서 처음 뵈온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인상을 주는
사람은 큰스님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입가엔 온화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니고
계셨다. 그러나 눈빛은 형형한 예리함으로 내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보는 듯했다.
함께 간 도반들과 내가 올리는 삼배를 맞절하며 받아주신 후 ‘ 보살님은
관음상을 구족했어요. 전생 선근이 깊으니 필히, 꼭, 이생에서 정각을 이루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 이후 나는 큰스님에게 반했다. 큰스님의 도포자락 끝만
보아도 치오르던 환희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면서 노력도 해보지 않고 포기부터 배워버린 나는, 다른
도반들이 공부해가는 모습조차도 시기심을 가지고 뜯어보면서 이리저리 도망칠
방법을 찾기 위해서 궁리했었다. ‘ 모든 법은 하나로 통한다. 그러면 그 하나의
법은 어디를 향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평생을 놓여날 수가 없었다. 보리 방편문을
볼라치면 비로자나불을 관하기 전에 ‘心은 虛空과 等할새’에서부터 콕 막혀버리는
내 약한 근기로는 彌佗의 一大行相까지 갈 것도 없었다. 그냥 암흑이었다.
나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서 배울 수가 없다고 투덜대는
못 된 학생이었다.
2007년에 여러 친구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가 본 금강카페는
고향에 돌아온 나그네 같은 기쁨을 내게 주었다. 큰스님을 떠나있던 십년이 넘는
세월을, 여러 도반들을 만나고 여러 단체에 가입했지만 큰스님만한 분이 없었다.
나는 스승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상 우울한 마음으로 방황했다.
큰스님을 안다고 하는 분들도 서울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던 차에, 대문에 커다랗게
걸어둔 큰스님 사진을 뵙는 것은 그 옛날의 백장암에서와 비슷한 기쁨을 갖게 했다.
당장 가입하고 홀린 듯이 하나 둘 글을 읽고 음성법문을 들으며 금강을 돌아다니다가,
강독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강의를 하는 내 일정으로는
무리여서 오전부터 수업을 하는 방학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십이월 강독회에 나갔다.
거기서 보았던 여러 거사님과 보살님들의 모습을 말로 하긴 힘이 든다. 든든한 후원군을
얻은 것 같았다. 드디어 평생을 같이 할 도반들을 만난 것이다!! 가기 전에 고민했던
것이 ‘ 아직도 낯갈이를 하는 내가 강독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싸늘한
분위기에서 경전만 읽고 끝내버리면 어떡하지? 글을 보며 느끼는 마음과는 달리
실제로 만났을 때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불가능하면 어떡하지?’ 등등이었다.
역시나, 걱정만 하기보다는 힘들어도 부딪쳐보는 것이 최고였다.
대학 때의 불교 동아리 분위기를, 그 공부의 치열함과 노력하는 자세를 다시 느끼면서
‘ 내가 별로 좋은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인연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이번에는 도반님들과 더불어 공부를 열심히 한 번 해 봐야지.’ 했었다.
강독회에 참가한 이후로는 정진회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토요일이면 항상 저녁 여덟시까지 강의를 하는 내겐 역시 무리인 소망이었다.
7월 강독회에 참석했을 때 경주법사님은 다음 정진회는 장흥에서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터져나온 질문이 ‘전라도 장흥예요? 경기도 장흥예요?’였다. 경기도 장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7월 정진회엔 꼭 참석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수업을 조정해서
토요일 오후 여섯시에 끝내기로 한 후, 26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눈동자로 시곗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해서 학원에서 풀려난 후, 답십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구파발역에서 내려서
704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카페에서 읽기로는 거기서 육지장사의 셔틀버스를
기다리라고 했다. 이십분을 기다려도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다. 육지장사에 전화를 하니
오늘은 버스 기사님이 쉬는 날이라고 했다. 정진회에 참석 중인 도반님을 불러내기가
싫었다.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종점 옆에 있는 작은 가게에 물어본 다음, 콜택시를
불렀다. 로얄 호텔까지는 잘 갔는데, 그 뒤로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삼십분 이상을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비포장도로를 끝까지 간 곳에서 절의 불빛을 발견한
뒤로는 그 동안의 고생은 저만치 물러가 버렸다. 때맞춰 내리는 빗방울 까지도 반가웠다.
가지고 있던 돈을 거지반 다 줘서 택시를 보낸 후, 비 냄새와 숲 냄새를 음미하면서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지원스님께서 중생을 편히 해주는 다섯 가지의 말에 대해 설법하고
계셨다. 부처님께 삼배한 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설법 후, 드디어 참선과 정근 수행
시간이 되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시간인가? 스커트를 입은 채로 절에 갔기 때문에, 덕해
보살님이 공양주 보살님에게 부탁해서 빌려다 주신( 덕해보살님, 고맙습니다.) 회색 바지로
갈아입은 다음, 미친 듯이 절을 했다.
몇 년 동안을 홀로 공부해온 외로움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함께 아미타불을 외치는 도반님들이 아라한처럼 보였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북소리와
목탁소리와 어우러져 밤의 산사를 다 깨우는 듯했다. 너무너무 기뻤다!!!
마음이 절 안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듯했다. 이 마음 이대로 열심히 수행해 간다면,
십년 뒤엔 깨달음의 작은 果는 얻어낼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이 좋았다.
이런 인연을 지어주신 부처님과 큰스님과 여러 도반님들께 지극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열두시부터 두시까지는 다담시간이 있었다. 우리 금강카페를 국제화 시켜주신 보원
보살님.‘ 깨달음의 果를 얻기 위해서, 지금 네가 어떤 因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하는
말씀이 가슴에 남았다. 수행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진하시는 모습이
몹시도 아름다워 보였다. 보원 보살님은 밥 먹는 모습도 수행하는 모습과 같았다. 좋았다.
언젠가는 미국의 삼보사에서 우리가 정진회를 할 날이 오리라.
지금부터 계를 묻으면 어떨까?
여수에서, 진주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오셔서 우리 정진회를 전국화 시켜주신
여러 법우님들이 어찌 그리 꽃미남에 초절정 미녀들로 보이는지!!!
길이길이 번영해갈 금강 카페의 모습이 미리 보이는 듯했다.
두시 이후, 잠시 쉬기 위해 방에 왔을 때 무진당님과 청은님과 내가 함께 대화를
하게 되었다. 무진당님과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예리함은
사라지고 다사로움만 남는다. 영혼이 맑은 분이었다. 무진당님의 캄보디아 여행기를
읽어가며 더불어 대화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역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새벽 네시. 도량석을 돌고 아침예불을 올리는 시간이다. 그 전날은 설레임으로
잠을 설쳤고 정진회는 원래 철야니까, 이틀을 밤을 새운 셈인데도 힘이 넘친다.
지심귀명례를 하는데 가슴에서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5년 만에 올리는 예불이었다.
낮게 엎드리어 지심귀명례를 하면서 ‘ 울엄마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많이 준
은덕을 내가 받는구나!’ 그래진다. 다른 단체에서 온 도반님들까지도 아라한으로
보였다. 예불을 마치고 지장보살님 정근을 하는데 여러 사람이 소리를 모아 정근을
하니까 신이 난다. 나는 가만히 밖으로 나와 대웅전 밖에서 어둠을 깨치고, 날이
밝아지면서 산과 구름이 즐겁게 데이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선계였다. 육지장사는 터를 잘 잡아서 지어진 절집이다.
어떤 혜안이 그 심한 경사를 가진 산을 깎아 절을 짓게 만들었을까?
지극한 발심이 아니면 안 될 일이었다.
맛있는 아침 공양을 먹은 후 지원스님과의 다담시간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날 놀라게 했다. 선명한 동양화 속에서 노는 것 같았다.
스님께선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와인동호회를 열고 싶다고 하셨다.
미국에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노라고 하신다. 거 좋지. 스님과 함께 마시는 차에도
와인이나 위스키 한 방울이 떨구어져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지원스님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드는 젊음을 지닌 다재다능하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자작시조인 滿月을 읽어주시는데 카!! 그 목소리에 어조에..
민요를 한 자락 뽑으셨더라면 내가 북을 쳐드렸을 것이다.
스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광사에 들렀다. 천년 고찰답게 그윽한
향내가 나는 절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맡아지는 비오는 여름 숲의 향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요란한 물소리도 아이들 떠드는 소리처럼
즐겁게 들린다. 삼각산에 지어진 삼천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라
하여 초입부터 경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삼천사 마애석불 위의 바위는 아주 잘생긴,
역동성있는 바위였다. 산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 혹은 아슬아슬 떨어질 듯 보이는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놀랍다. 일요일이어서 인지 어느 절이나 사람으로
붐볐다. 삼천사에서 나오는 비좁은 길은 내려오는 차들과 올라오는 차들의
전쟁터였다. 세 분 거사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헤치고 나와 버섯전골로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전골이 입에 착 감겼다. 세 번이나 김치를 달라고 해서 먹었다.
역시나 먹는 것은 나의 즐거움. 내 밥 다 먹고 옆에 앉은 친구가 남긴 밥도 먹었다.
어제 밤 새워 절하는 것을 분명히 내 눈으로 보았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도반님들의 모습에 또 놀라고 밥을 그렇게 조금 먹는 여자 도반님 들의 모습에 다시 놀랐다.
식당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고기 굽는 연기에 속이 좀 상했다.
우리 인간들은 유정중생과 무정중생들의 아픔을 너무나 모른 척 한다.
무착거사님 덕분에 무진당님과 청은님과 내가 선능역까지 편히 왔다.
처음엔 날카롭고 예리한 인상으로 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편해지는 거사님이다.
선능역에서 지하철을 타러가면서 계단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난다. 백팔개도 넘는 듯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괜찮은데 내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수형보살님의 말씀을 들을 걸 잘 못했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정진회인데
너무 무식하게 절하기에 열중했었다. 그래도 좋았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다리의 아픔까지도 고맙다. 다시 도반들과 더불어 공부할 수 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정진회때 함께 해 준 도반님들.
몸은 못 오지만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여러 벗님들.
고맙습니다. 분발하여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함께 성불합시다.
소향 보살님. 가로안의 닉넴이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악착같이 살자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큰스님 발 뒤꿈치라도 따라가 보십니다.^^ 같이 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몸은 못 오지만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여러 벗님들..." 저 역시 그중에 한명입니다. 아름다운 수행일기 감사드립니다. _()_
보타전님. 저도 늘 정진후기를 읽으면서 언제 한번 참석해보나? 그랬었습니다. 그 마음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인연이 됩니다. 함께 발원하십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강독회때 두번 뵌것같애요. 신심이 대단하신 보살님께서 수행담을 후기로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합시다. 나무아미타불_()_
행복하고 행복하신 소낙비님, 그 신심에 부끄럽기만한 이 마음 살짝 숨깁니다. 그 기쁨의 반을 제가 갖습니다. 아미타불 _()_
항상 동참해보고싶은 마음뿐입니다...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_()_ 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소낙비님 님의 글을 찬찬히 잘읽었읍니다. 글과 글속에서 내재하는 마음의 갈등과 고뇌 속에서 마음 가는데로 마음을 놓아버리는 기술 배워갑니다. 놓고 멀리서 보고 관찰하는 것도 큰 공부라 생각됩니다. 저도 지금 헤메고 잇답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ㅏ. 아미타불 _()_
작은 아니님의 농장 옆에 있는 인월거사님과 승진행님의 농원에 씨감자를 주신 지덕님. 승친행님의 밭에서 감자를 캐면서-- 농사라는 것은 참으로 남는 장사구나.. 씨감자를 심고 잘 가꾸면 씨감자 하나에서 열개 스무개가 열려서 나오는구나.. 우리들 공부도 이같으면 얼마나 좋을꼬? 했었습니다. 제 글은 찬찬히 읽을 글이 못 됩니다. 아직 사람이 여물지 못해서 글도 여물지 못하죠. 지덕님의 씨감자 덕분에. 그리고 승진행님의 농원 덕분에 요즘 맛있는 감자를 포식하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 잘 계셔요. 나무아미타불.
큰 스님 친견의 복,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말씀 찬찬히 다시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환희의 소식을 전해주셔요. 함께 정진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