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문]
"이인손 李仁孫, 1395(태조 4년)∼1463(세조 9년)" <세종대왕> 시절 지금의 <서울시장>급의 <한성부윤>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에 참여한 쿠데타 세력으로
<2등 원종공신>이 되어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한명회><신숙주>등이 <1등공신>이고 <이인손>은
그 뒤를 잇습니다. 하지만 <이인손>은 <수양대군-세조>로 부터 결국엔 토사구팽 당하며 씁쓸하게 퇴장했습니다.
[이인손 재실']
<이인손의 묘>가 유명하게 된 이유가 단연 토픽감입니다.
1.
<이인손의 묘>는 원래 잠시후 들릴 <세종대왕릉=英陵>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조>가 죽고 뒤이어 오른 <예종>
때에 <세종대왕릉=英陵>을 천장해야 한다는 이슈가 강력하게 떠오릅니다. <세종대왕릉>은 현재 <서울 내곡동
대모산> 기슭에 있는 자기 아버지 <태종릉=헌릉> 옆에 있었는데, <세종>이 죽고 왕실이 <계유정란>등으로 풍지
박살이 나자 <세종대왕 왕릉>을 잘못써서 그런거라는 루머가 돌며 천장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새로운
왕릉 물색에 나섯던 것입니다.
2.
<이인손>은 <경기광주 이씨>로 엄청 화려한 조상과 자손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서울 둔촌동>의 지명을 만
들어준 <둔촌 이집>이 그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인손>은 아들을 다섯 두었는데 모두 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관
직까지 올랐습니다. <이극배-영의정>, <이극감-형조판서>, <이극증-병조판서>, <이극돈-우의정>, <이극균-좌
의정> 이 당시 <조선>은 <전주이씨 왕조>가 아니라 <경기광주이씨 왕조>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3.
<이인손의 묘>가 있던 현재의 <세종대왕릉=영릉>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길 때 유명한 일화가 있죠. <예종>의
어명으로 묫자릴 찾아 나선 <지관 안효래>가 찾아 낸 곳이 바로 현재의 <여주 영릉>인데 <이인손의 묘>를 파
내자 유해 아래에 비단에 쓰여진 글이 있었답니다. "이 자리의 주인이 새로 나타나면 이곳에서 연을 날려 하늘
높이 떠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연이 떨어지는 곳에 나의 묘를 옮겨라"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글대로
연을 날리자 연은 바람에 날려 서쪽으로 약 10리 밖에 떨어졌고 그곳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연이 떨어졌다'고
<연당> 혹은 <연주리>라고 부르며 현재의 <세종대왕면 신지리>가 되었답니다
첫댓글 수고해주신
좋은곳
영상
감사해요....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