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넉 달째 기침이 멎지 않고 쏟아진다. 감기가 계속되다가 느닷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 달 두 달 겨울이 다 가고 봄이 되어도 콜록거린다. 나올 땐 숨쉬기도 어렵게 이어져서 저러다 아내가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이다. 무슨 기침이 한번 나기 시작하면 재채기와 함께 연달아 퍼부어서 등을 두드리고 쓸어주면서 진정되길 바란다.
이러니 폐가 안 상하겠나 사진을 찍어도 봤다. 가래 검사도 하고 했지만 아직 별 이상은 없다. 마을 이비인후과며 용하다는 내과에서 주사 맞고 알약과 붉은 물약을 먹었다. 조금 괜찮은 것 같더구만 소용없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열이 없어서 다행이다. 신열까지 벌벌 나면 밤중이라도 싣고 병원을 찾아야 할 텐데 말이다.
음성이 변해서 감기로 인한 것이겠지 했지만 여러 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는데 이상이 없단다. 여러 가지 정밀검사를 했는데 원인과 이상을 찾기 힘들고 고치기도 어렵단다. 그러다가 낫는 것 같기도 해서 지났는데 이번 감기로 그만 기침이 오래 간다. 나을 생각이 없다. 혼쭐 좀 나봐라 하는 것 같다.
지난 늦가을에 걸려 조금씩 나더니 겨울 찬바람에 점점 심해져 간다. 낮에 바깥바람을 쐬면 그날 저녁은 기침이 한꺼번에 나와 잠을 못 이룬다. 반듯이 누우면 콧물이 목에 걸려 또 나온다. 기침으로 다 뱉어내야 멎는다. 머리가 울려 어지럽다고 한다. 왜 이리 오래 갈까. 조금 하다가 사라져야지 온 겨우내 달라붙어 아내를 못 살게 한다.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 낫게 해 주옵소서 했지만 점점 더해져서 음식 맛도 없고 힘도 자꾸만 빠져 세상일이 시들해 진다. 주일날 종일 예배드리고 화요일 전도회에 나가 봉사한다. 수요예배를 가까운 교회에서 드리며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지만 병마는 떠날 줄 모른다. 하나님이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오랜 기침은 폐암일 수 있다 하여 컴퓨터단층촬영을 해 봐도 별 이상이 없다. 엉뚱하게 갑상선결절이 보여 초음파검사를 한 뒤 물혹으로 밝혀졌다. 한 때 얼굴에 백반증도 있었고 척추 검사에서 목디스크도 있다 하여 수술 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 다행히 잠잠해서 여러 해 그냥 지났는데 감기 기침이 이리 오래 가니 그것들이 또 나타날까 걱정이다.
이 약 저 약과 목에 흡입하고 코에 뿌리는 것, 한방의사의 지시와 친지들의 조약 등 온갖 약을 다 써도 멎지 않았다. 멀리 서울의 종합병원 의사가 한 주 처방약을 해도 안 되면 이약을 써 보라고 했다. 자그만 하얀 알약 다섯 알을 하루 한번 아침에 먹고 기다렸다. 눈에 띄게 멎어갔다.
하도 신기해서 놀랐다. 씻은 듯이 가라앉으니 말이다. 간질간질하다간 그만 참을 수 없이 터지는데 이젠 그 낌새가 없었다.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랑과 가난 그리고 기침이라 한다. 참으라고 그때마다 말하며 걱정을 했다. 목이 붓고 머리가 흔들리며 가슴이 울렁이는데 폐가 탈날까봐서다.
가래도 많지 않은데 그걸 내려고 억지로 기침을 하는 것 같아 말했다. 약도 떨어지고 또 서울 가려니 멀다. 아는 약사에게 얘기했더니 그건 감기약이 아니고 호르몬 약이라 한다. 허벅지의 부신이 부족해서 먹는 것이라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감기나 기관지, 위 괄약근 등에서 나는 기침이라 했는데 어디 허벅지에서 나올까.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지만 우선은 멎었으니 되게 고맙다. 고기를 잡았다가 적은 양이어서 그냥 물에 넣어주면 한참 멍하니 갈 줄 몰라 헤매듯이 내가 나았는지 얼떨떨한 아내다. 영양 부족에서 온다는 말에 그만 맞다며 그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이라 시인한다. 정신이 번쩍 드는지 고기를 굽고 치즈를 꺼내며 달걀을 부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늘 함께 다녔는데 행사도 있고 해서 아내 혼자 서울 아들 집에 갔다. 같이 가면 차비도 많아서 이제 거뜬하니 가겠다며 나섰다. 웬걸 전화가 왔는데 이상하단다. 한쪽 다리에 통증이 생겨 심하게 아프다고 호소한다.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내려가며 쑤신다니 이 또 무슨 일인가. 편할 날이 없다. 무엇이 터질지 내내 안심이 안 된다. 물가에 아이같이 위태위태하다.
신경과 의사가 허리디스크일 거라고 말하며 MRI를 찍었는데 별 이상이 없단다. 어디가 잘못 되어 자꾸만 툭툭 불거져 나오나. 그 알약을 조금씩 줄여 나가야지 탁 끊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내는 갑자기 먹지 않았다 한다 그것 때문일까. 전화 하다가도 아야아야 하며 삐삐 끊긴다.
이틀간 혼쭐이 났는가 대상포진 같다며 이래가지고는 여행도 못 갈 것 같단다. 큰일이다. 며칠 뒤 잡은 날짜가 다가오는데 이 일을 어쩌나. 목 척추에 이상이 있다더구만 그게 나빠졌나 오른쪽 다리만 저리고 쿡쿡 쑤실까. 거기는 어깨와 팔 쪽이 주로 아프고 다리는 허리디스크라 한다. 어디 물으니 요추협착이 아닌가 봐 준다고 해서 며칠 뒤 가려는데...
자고나니 허벅지에 붉은 반점이 두드러기처럼 띠를 이루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파서 쩔쩔 매는 게 이상해서 피부과를 찾았다. 대상포진이라 한다. 급히 큰 병원으로 가라 해서 대학병원엘 갔다. 신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서둘러 치료를 해서 주사맞고 약을 들었다. 조금 덜한지 반점이 숙지근해졌다.
통증도 좀 가시고 살만해졌는지 또 밭으로 경로당으로 다닌다. 지긋이 몸조리하며 조용히 있질 못하는 성미다. 뒤따라 다니며 눈을 박고 살아야 할 어린 아이 같다. 그래도 일찍 자려하고 이것저것 찾아 먹으려 애쓰는 게 보인다 조금 혼이 난 것 같다. 한번 식겁을 하니 고치는 것도 있는데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다.
어제는 안 먹겠다는 보신탕을 들고 오늘은 김해 서남다리에 가서 장어탕을 만들어 먹게 해야겠다. 먹는 게 부실하다. 되나마나 한술 뜨고 일만 하며 잠 안자고 밤늦게까지 꾸물거린다. 길거리에 뭘 사주면 통 먹질 않는다. 미원이 들고 깨끗지 못하다 하면서 그러니 영양이 부실해서 생기는 병인 것 같다. 오래 입은 옷이 여기저기 줄줄 터지듯이 자꾸 나간다.
목에 걸린다며 약을 좀처럼 먹지 않으려 한다. 억지로 먹으라 하면 보는 데서는 먹는 척 하다가 그만 팽개친다. 며칠 전에는 수북이 쌓인 약들을 모두 갖다버렸다. 이젠 감기 기침도 낮고 축농증도 없다며 괄약근 약까지 버렸다. 저래 가지고 어찌 병을 고치겠나 걱정이다. 기도하면 다 낫는다기에 그런게 어디 있나 하면 눈을 크게 뜨고 부정탄다나 가관이다.
작년에 아들이 아파 겨우 살아났다. 수술을 여러 번 하면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 올 해는 아내도 저리 아파 고생을 하고 있다. 왜 이리 옆에 사람들이 모질게 아플까. 내가 잘못한 게 많은가 지은 죄가 있어서인가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하나님 저들이 없으면 못 삽니다. 함께 오래오래 같이 살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