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3 PM10 시경 방송된 OBS 특별기획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 에서 강의하신 분의 말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 때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키우던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숭이 연적같은 것도 만들어 진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원숭이와 관련된 미술품들이 적지 않다.
의문점.
1. 왜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많이 키웠는가?
2. 어떤 경로로 원숭이를 조달했는가?
의문을 풀어줄 만한 자료를 찾았다..
참고 URL - http://gilsang.culturecontent.com/category/cate_view.asp?page_no=1&sword=&page=1&cate1=3&cate2=2&cate3=16&pcd=cp0311222110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로 예전부터 많은 지역에서 특별하게 여겨졌다. 우리나라에는 본래 서식하지 않았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롯해 미술품, 탈춤에까지 원숭이가 등장하고 비교적 원숭이의 생태와 모습이 정확하게 묘사되어있다. 이로 보아 중국, 일본 등에서 유입된 원숭이를 오래 전부터 애완용으로 키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술품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벼슬 또는 관직을 상징한다. 이는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어 후(㺅)가 제후를 뜻하는 후(侯)와 동음이고, 원숭이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총명함을 지녔다는 옛사람들의 믿음에서 기인한다. 원숭이를 소재로 한 옛 유품으로 고려시대 인장과 연적, 조선시대 회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새끼 원숭이를 안고 있는 어미 원숭이를 묘사한 것은 대대손손 관직에 봉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를 알고 계신분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딴 얘기입니다만 원숭이는 의외로 전투력(?)이 높아서 길들이기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제가 한반도의 야생 원숭이에 대해 화두를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이야기들을 종합하고 제 나름으로 기후와 동물 분포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올렸는데 여기 까페에서 유용한 댓글도 많이 달아 주셨죠. 대표적인 것이 이차돈 순교 시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고대를 비롯해 중세 초기까지는 한반도의 기온이 지금보다도 높아서 원숭이가 충분히 살았을 수 있는데, 고려말 경 기온이 내려가고 원숭이 털을 이용하기 위한 대규모 포획으로 멸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외부에서 도입되었다기 보다는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정철이 쓴 <장진주사>에 보면 잔나비(원숭이)가 나옵니다. 이 잔나비가 진짜 원숭이인가 싶어서 알아보니까 이건 한시에서 쓰는 정운미 기법(비슷한 시구를 응용해 쓰는 방법)을 사용해 인생의 덧없음을 잔나비(원숭이)로 보통 쓴 것일뿐 당시 한국에 정말 원숭이가 쓴 건 아니라고 하네요. 참고로 신(申)씨도 12간지 중 원숭이를 딴 성씨이지요. 원숭이의 순우리말은 잔나비고요. ㅡ잔나비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정말 아주 옛날엔 한반도에 원숭이가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상이 없으면 이런 말을 만들었을리가 없을테니 말이지요.
12간지의 최초는 중국 아닙니까? 십이지가 동물로 상징된 때는 2세기경 후한때 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고로 원숭이가 예전 우리나라에 살았다라는 증거로는 인용될 수 없을듯 싶습니다. 또 원숭이의 우리말이 잔나비란 것도 호랑이, 늑대 등 다른 동물들도 순우리말(옛말)이 있기에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범(호랑이는 고유어라 보기 어려움), 늑대 등 다른 동물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이 있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순우리말 명칭이 있다는 건 범과 늑대가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왔다는 증거가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