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1.목요일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0. 세월은 꿈처럼 흐르고
기억하실 분들이 계실런가 모르겠는데, 나는 2002년 당시 히로시마에 유학생신분으로 체류하면서 월드컵 관전기를 쓴 인연으로 잠시 딴지 외부필진 중 한명으로 활동을 했었다. 물론 내공부족으로 얼마뒤 한동안 절필을 하긴 했지만.
8년이 흘러 다시 월드컵이 열리고, 나는 또다시 일본(요번엔 도쿄)에 있었지만, 이번 월드컵땐 기사를 쓰지 않았다. 리폿 쓰다 쓰러질 뻔 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건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8년전엔 나처럼 축구는 국대시합밖에 보지 않던 뜨내기도 일본 방송의 동향을 전해주고 일본 현지의 열기나 응원현장 현지반응을 이너넷을 통해 소개하는 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그런식의 정보는 더 이상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이너넷는 정말 많이 발전했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요즘은 2ch(일본의 디시같은 곳)폐인들 삽소리도 무려 번역씩이나 되어서 포탈사이트 메인뉴스에 떡하니 올라온다. 내 입장에선 반쯤 정신을 놓은 악플러의 글을 뭣하러 번역 씩이나 하는가 싶지만, 뭐 남의 장사이니 감 세팅 배 세팅 여부에 대해선 함구하겠다. 일본 방송이 어떤식으로 중계를 하는지 현지 응원열기가 어떤지, 이젠 클릭 몇 번이면 알 수 있다. 나보다 일본 이너넷 속어에 정통한 친구들도 넘치더군.
세월이 흐른거다. 사람들은 그때보다 더 똑똑해졌고, 더 많은 정보를 더 간단히 손에 넣고 있다.
하지만, 물론 모든 법칙엔 예외가 존해자는 법이다. 이렇게…
1. 귀찮은 자들
일단 기사 링크 읽고 오시라.
李대통령 파나마운하 방문 "운하가 이 나라 경제에…"(링크 클릭)
진정하셔야 한다. 물론 어이가 성층권 밖으로 날아가고 분노게이지가 상승하며 갑자기 옆에서 책보던 친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본다. 그래도 진정하시라.
책 좀 읽는 고등학생도 알 내용이지만, 요즘은 중학생도 딴지에 들어오는 시절이니 간단하게 설명해 주겠다. 이런 귀찮은 일까지 하게만드신 고마운 분들, 살림살이 좀 나아 지셨을까? 휴우…
2. 파나마 <운하>인가 <파나마> 운하인가
세계지도를 펼치던 지구본을 돌리던 구글어스를 켜던 해서 파나마 공화국을 찾아보자. 좀 찾기 힘들지? 검색해라.
신기한 곳에 위치한 나라라는걸 금방 알아차리실 것이다. 중학생 독자제위, 외워두면 언젠가 써 먹을 때가 있다. 파나마는 간단히 말해 북미와 남미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한 공화국이다. 여기에 운하라는 물길이 뚫려있고, 그 운하 자체가 나라의 상징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세계지도를 보며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파나마가 막혀서 해상수송을 할 수 없으면, 미국의 서해안에서 출항한 배들은 남미를 빙 돌아서 동쪽의 유럽으로 향해야 한다. 대륙 하나를 돌아나가야 한다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동해안에 짐을 다 부리면 모를까, 서해안으로 갈려면 이 파나마 운하가 없으면 모든 배들이 남미를 빙글 돌아야만 미국에 도착할 수 있는거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이 허비될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해상무역을 통해 옮겨지는 물류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하물이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수송될려면, 파나마 운하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도 뭐도 아니지만 이것 만큼은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건드리거나 지배하려 하는 나라가 튀어나오면 2분안에 전쟁을 결의할 것이다. 아마 본보기로 아주 콩가루를 만들려고 할걸?
간단히 말해 파나마 운하는 미국의 몇 안되는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이 운하 자체를 미국이 건설했고 오랜 세월 지배하다 파나마에 반환했지만 아직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만약 정말 신속하게 그리고 장대한 규모로 자살을 하고 싶다면 파나마 운하에 폭탄 설치하고 펜타곤에 전화를 걸어보라. 헐리우드 영화가 부럽지 않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젠 상식이다. 포털에서 클릭질 몇 번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란 거지. 파나마 운하가 운하여서 중요한게 아니라 파마나에 있어서 중요한 거라는 정도의 상식은 이제 별 자랑거리도 될 수 없다.
3. 그리고 그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행정부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반도 대운하가 만약 정말 최상의 상태로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한국의 운하는 파나마 운하와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중국과 일본의 무역이 거의 전적으로 한반도 운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내 짧은 머리로는 그런 상황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황해와 남해가 막혀있거나, 아니면 한반도가 거의 칠레만큼 길거나 해서 인천 부산을 내륙뱃길로 연결하지 않으면 상해와 도쿄가 뱃길로 연결이 안되는 상황이어야 하니까. 상상이 가시나들? 한마디로 헛소리다.
MB형 대운하
내가 진짜 황당한건, 이게 대국민 언론플레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참모진들의 발상이다.
한반도 대운하 - 운하
파마나 운하 - 운하
파나마는 운하로 잘 먹고 잘 사는데 한국은 야당과 여론 반대로 운하 못함.
결론: 나라 경제 망치는 야당과 여론
국민 전체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지 않는 이상 내 놓기 힘든 발상이다. 브라질 커피농장을 시찰하고 커피가 브라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행정부 수반이 부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 제주도에 커피농장을 대규모로 조성해야 하는 시절은 이제 지나지 않았나? 자일리톨 껌이 부러우면 설악산에 대규모로 자작나무라도 심을까?
대구에 콜로세움이랑 똑같은 건물 지어놓으면 사람들이 이탈리아 안 가고 한국으로 올까?
우린 언제까지 이런 '너무 당연하고 너무 황당해서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은'꼴을 보고 살아야 하는 걸까.
4.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요즘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정치관련 뉴스를 혈압 안 오르고 볼 수 있는 것은 평소에 투표 잘하는 자들의 특권'이다.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이 너무 황당해서 중학생도 코웃음칠 짓거리를 무려 '언론플레이'랍시고 내어놓는 무신경함. 오만함. 저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간단하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나마가 어디 붙어있는 줄도 모를거야. 왜 중요하고 왜 돈벌이가 되는 줄도 모르고. 그냥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덕에 돈 버는데 한국은 한반도 운하 좌절됐다는 식으로 나가면 그럭저럭 괜찮은 그림 하나 나오겠네'. 간단히 말해서 국민을 '공부도 안하고 스스로 생각도 하지 않는 무지한 자들'로 보지 않았다면 이런 발상은 나오기 힘들다.
귀찮으시지? 나도 귀찮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대선과 그 뒤의 총선을 통해 '혈압 안오르고 뉴스 볼 권리'와 '전공을 제외한 일반상식 분야에 대해 공부안하고 살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뭐, 남탓할 상황은 아니지. '이렇게까지 개판을 쳤는데 또 뽑아주는 걸 보면 쟤들도 우리가 개판쳐주길 원하고 있었을 거야'라고 저들이 생각했다 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오히려 어찌보면 예리한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남은 세월 여전히 공부하고 귀찮더라고 자료 찾아보고 저 말이 진짠지 협잡인지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을 권리, 물론 맹신은 절대로 피해야 하지만 '그래도 정부가 하는 말이니 어느정도 믿어주고 시작할' 권리는 이미 우리가 폐기처분했으니까.
씁쓸하지?
투표하자.
첫댓글 흥미로운데 지금 국선도 하러 갈 시간.. 으ㅡㅡㅡㅡㅡㅡ으~~~~~ 늦기전에 다녀와서 다시 차근 차근 읽어야징~
위에 먼저 읽어야 할 링크기사가 사라졌네요.Oops! This link appears to be broken. 뭔지는 모르지만 짐작컨데 삭제된듯 합니다. 한반도 대운하를 성공 시키지 못했을때 그들은 그랬죠. "야당과 여론 탓에 망쪼들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었습니다.4대강 사업은 결국 진행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