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불탑 스투파 난간의 역할과 상징 / 이희봉 교수
진리의 씨앗 깨우는 예배를 보호하다
불성 깨우는 기도 탑돌이
탑 주위 난간이 수호역할
한국불교는 의미 잊은 듯
▲1. 산치 스투파의 아래 지면, 가운데 상층, 꼭대기의 3줄 난간.
지난 호 예고한 탑원굴 발전 과정을 보기위해서는
우선 인도 불탑 스투파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를 알아야겠고,
따라서 예배에 중요한 구조물 난간을 보아야겠다.
여태껏 본대로 둥그런 인도 스투파는 석가모니 유골,
즉 알을 속에 묻은 큰 바깥 항아리로서 ‘알’,
필자 작명 ‘불란(佛卵)’이라고 했다.
기존 불교 오욕의 명칭, 엎어놓은 밥그릇, 복발(覆鉢)이 결코 아니다.
탑파(塔婆)로 한자 음역된 스투파(stupa)는, 인도 싱할리어 ‘다고바(dagoba)’로
스리랑카를 비롯해 남방불교 지역에서 통용된다.
‘다투(dhatu)-가르바(garba)’, 즉 ‘자궁 속 유골’이란 뜻이다.
모두에게 부처 성품이 들어있다고 하는 ‘여래장(如來藏, thathagata-garba)’의 원 뜻은
역시 ‘자궁 속 여래의 수정란’이고 의역하면 ‘진리의 씨앗’이다.
▲2. 지면 탑돌이 유도 난간과 계단 올라가서 윗층의 난간. 산치 스투파(왼쪽).
3. 신성한 나무를 지키는 울난간(오른쪽).
스투파의 주 예배는 자궁 속 부처님 알이 새 생명으로 깨어나 만방에 퍼져나가도록
스투파 주위를 도는 것이었다. 중국 한자 ‘우요(右繞)’라고 난해하게 번역되는
‘프라닥쉬나(pradakshina)’, 쉽게 말해 ‘탑돌이’는 문명의 오랜 태양 숭배 전통에서 비롯된,
해가 동에서 떴다가 서로 지는 궤적의 회전이다.
탑돌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구조물이 바로 난간이다.
지난 3편에서 본 산치 스투파를 잘 보면 아래서부터 위까지 3줄의 돌난간이 둘러싸고 있다(그림1).
난간은 원래 높은 데서 아래로 떨어지지 말라고 보호하는 구조물이다.
가운데 줄 상층 난간이 그렇다. 제일 아래 지면에 붙은 난간은 떨어짐 방지와는 무관하다.
안에서 보면 탑돌이 유도 난간이 되고(그림2) 밖에서 보면 신성한 스투파를 보호하는 울타리 난간이다.
신성한 보리수를 지키는 스투파 부조의 난간과 같은 의미다(그림3).
우리 문화에서 범접하지 말라는 신성 영역 표시 금줄에 해당한다.
▲4. 평두라 오역된 꼭대기 보호 울난간. 산치 스투파.
스투파 제일 꼭대기에 고귀함의 상징인 양산을 보호하는 사각 난간은(그림4)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곳이므로 더더욱 상징적 보호 울난간이다.
이 난간을 100여년 전 근대 학문 발생기에 어떤 일본인 학자가 얼토당토않게
‘평평한 머리’ 뜻의 ‘평두(平頭)’라 번역해 한국인 미술사 시조 고유섭 선생도 그대로 따랐다.
문제는 현재에도 학계에서 그 오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물러 간 지 70년이 되어가지만 학문의 식민잔재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연관해 덧붙이면, 현대 쉬운 언어 ‘난간’을 식민시대 일본학자들이 비록 경전에서 받아오긴 했으나
죽은 언어 ‘난순(欄楯)’이라 지칭하여 우리 학자들이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일반인이 잘 모르게 어려운 용어를 써야 권위가 선다는 아카데미에 횡행하는 현학적 태도다.
불교계에서 좀 말려야 할 것이다.
▲5. 난간기둥과 볼록렌즈 형 수평난간대 끼움 구멍. 아마르바티 유적.
스투파 돌난간의 구조를 보면 수직 난간기둥에다 수평 난간대를 세 줄 걸친다.
수평부재는 부러지기 쉬우므로 원형 단면이 아니라
세로로 길쭉하게 볼록렌즈형으로 깎아 기둥에 끼웠다(그림5).
우리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난간은 수평돌을 그냥 원형 단면으로 깎아 끼웠기 때문에
오랜 세월 지나며 죄다 부러져버려서, 1970년대 복원하면서 신라 돌을 모두 버려버리고
현대 새 돌로 교체하였다. 복원 철학이 없는 엉터리 복원이다.
튼튼한 인도 난간 돌 공법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스투파 난간 기둥에는 다양한 문양 조각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6. 퇴화한 철제 보호난간. 경주 감은사 탑.
탑돌이 예배는 ‘삼국유사’에 여러 차례 나온다.
그런데 탑돌이를 유도하고 보호하는 ‘울난간’ 개념은 언제부터인가
한국 석탑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국 석탑에는 현재 탑마다 제각각 볼품없는
철제 보호 난간을 만들어 넣고 있다(그림6).
▲7. 인도 스투파 난간기둥 개념이 살아있는 김제 금산사 방등계단 돌난간 기둥.
그래도 탑돌이 개념이 그대로 살아남는 난간은
인도 스투파 모양인 금산사 방등계단이다.
현재 수평 난간대 끼움돌은 없어졌지만
석상처럼 생긴 난간기둥은 거의 그대로 둘러싸고 서있다(그림7).
▲8. 석가탑 탑돌이길.
▲9. 스투파 상징 장식으로 정착된 3줄의 난간 부조. 베드사 석굴.
또 하나의 큰 명칭 오류는 일제 때 고유섭 선생이 감은사 탑을 언급하면서
탑 주위 바닥에 깐 판석을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어서
그저 ‘탑이 있는 구역’이란 뜻의 ‘탑구(塔區)’라고 부른 것이다.
불국사 석가탑 주위 바닥에는 연꽃 돌을 여덟 개 깔아놓았다(그림8).
별 뜻 없이 가볍게 부른 호칭을 후학들이 금쪽 같이 여겨 학술용어로 격상시켜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막연한 ‘탑구’라는 오류 용어는 이제 그만 폐기하고
인도 불교의 원 뜻이 살아 숨 쉬는 쉬운 현대어 ‘탑돌이길’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일제 식민잔재 용어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선학의 이론을 후학이 검증하여야 할 터인데 스승이라면 무조건 답습하기만 하는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에서
발전이란 끊임없이 틀린 이론이나 용어는 폐기하고 고쳐나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탑의 원조 인도 스투파 예배는 속에 묻은 알이 깨어나도록 탑돌이를 하는 것이고
난간은 탑돌이를 보호하고 유도하는 중요 장치이다.
한국 석탑에서는 오늘날 사라졌지만 과거 삼국시대 유적에서는 탑돌이길이 많이 살아있다.
탑원굴 차이탸는 10편에서 본 석굴암 원조 군투팔리 석굴처럼
가운데 원형 스투파와 외곽에 탑돌이길이 있는 원형굴로 시작된다.
원형 굴벽으로 인하여 외곽 보호 난간이 필요 없어진 스투파 난간은
이후 인도 석굴에서 스투파를 대표하는 상징 장식으로 정착된다(그림9).
다음 편에서는 탑원굴이 탑돌이와 더불어 스투파 앞 예배가 성행하여
전실 공간이 말굽형 평면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도록 한다.
2012. 07. 02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