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惡意)․고의(故意)․작위(作爲)
Ⅰ. 악의(惡意)라 함은 민법상의 용어로, 보통 어떤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인 「선의(善意)」에 대립된다.
첫째, 사법(私法)에서는 단순히 어떤 사정을 알고 있는 경우를 악의(惡意)라 한다. 도덕적 평가와는 관계없이 지(知)․부지(不知)에 의한 구별이다.
이와 같은 선의․악의의 개념은, 「상대방과 통정(通情)한 의사표시는 무효로 하며,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善意)의 제3자에게 대항(對抗)하지 못한다(민법 제108조제2항등)」는 규정에서 사용된 바와 같이,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요청에 부응하여 어떤 사정을 알지 못한 당사자나 제3자를 보호하고자 할 때 쓰인다.
둘째, 점유(占有)에 관하여 선의․악의를 구별할 때에는 단순히 어떤 사정을 몰랐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점유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 경우를 선의(善意)라고 한다. 따라서 점유할 권리가 없음을 몰랐더라도 의문을 가졌다면 악의(惡意)의 점유가 된다(제201조 등).
셋째, 문자 그대로 윤리적인 가치판단에 의하여 선의․악의를 구별하여, 「배우자(配偶者)가 악의(惡意)로 다른 일방(一方)을 유기(遺棄)한 때(제840조제2호)」처럼, 악의(惡意)는 남을 해치려는 부정한 의사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넷째, 악의(惡意)가「중대한 과실」과 더불어 사용되는 경우에는 고의(故意)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소지인이 악의(惡意) 또는 중대한 과실(過失)로 인하여 환어음을 취득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어음법 제10조)」, 「소지인이 악의(惡意) 또는 중대한 과실(過失)로 인하여 어음을 취득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어음법 제16조제2항)」, 「이사가 악의(惡意) 또는 중대한 과실(過失)로 인하여 그 임무를 해태(懈怠)한 때에는 그 이사는 제3자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401조제1항)」는 규정 등이 그 예이다.
Ⅱ. 고의(故意)라 함은 죄 또는 불법행위의 성립요소인 사실에 대한 인식(認識)을 말한다.
ⅰ) 형법상 고의 : 범의(犯意)라고도 한다.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단,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모든 범죄에는 고의(故意)가 있어야 처벌하고 고의가 없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하되, 다만 예외적으로 과실범(過失犯)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을 때에만 처벌할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죄의 성립 요소인 사실에 대한 인식(認識)」이란 형법 각 본조에 규정되어 있는 구성요건적(構成要件的)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데, 「인식(認識)」에 대하여는 해석상 학설의 대립이 있다.
즉, 인식(認識)만으로 족하다는 인식설, 인식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認容)하여야 한다는 인용설, 인식이나 인용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과발생을 의욕하는 의사(意思)가 있어야 한다는 의사설 등이 있는데,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되, 그렇다고 의욕하는 의사(意思)까지는 불필요하며, 인용하는 심리상태면 족하다는 인용설이 통설이다.
ⅱ) 민법상 고의 : 자기의 행위로부터 일정한 결과가 생길 것을 인식하면서 감히 그 행위를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인식 또는 예견한 결과를 감히 만들어 낸다는 심리적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인식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주의(不注意)로 인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과실(過失)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고의와 과실은 이론상으로는 구별되지만, 사법상(私法上)의 책임요건으로서는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또한 책임의 경중(輕重)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민법에서는 고의는 과실과 함께 불법행위의 요건이 되며, 손해배상에 있어서는 고의든 과실이든 불문하므로 고의와 과실을 구별할 필요가 없어서, 형법상에 있어서와 같이 고의의 요건에 대하여 엄격히 논하지 않는다.
ⅲ) 고의는 민사상 또는 형사상의 책임이 발생하는 조건으로서 사용되는 이외에, 특별한 의미내용을 갖는 것으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첫째, 「고의(故意) 또는 과실(過失)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0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故意) 또는 과실(過失)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국가배상법 제2조제1항)」.
둘째, 형법에서는 범의(犯意)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제13조).
셋째, 이 밖에 해의(害意)를 포함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의(害意)의 내용은 규정의 취지 여하에 의하게 된다.
「고의(故意)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민법 제1004조제1호)」등이 그 예이다.
Ⅲ. 작위(作爲)라 함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행위가 수반되는 경우이다.
「채무자의 일신(一身)에 전속하지 아니한 작위를 목적으로 한 때에는 채무자의 비용으로 제3자에게 이를 하게 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89조제2항)」고 하는 규정에서의 「작위(作爲)」는 적극적 행위를 의미한다.
ⅰ) 작위(作爲)라 함은 일정한 신체운동을 하는 적극적 태도를 말하고, 부작위(不作爲)라 함은 일정한 신체운동을 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말한다. 즉 작위와 부작위는 신체의 운동․정지 그 자체와 다르고 일정한 신체운동을 전제로 이에 부합하는 적극적 태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구별이다.
유아(乳兒)에 대한 수유(授乳)를 예로 들면 수유(授乳)한다는 신체운동을 표준으로 하면 직접 우유를 먹이는 태도는 작위(作爲)이고 이를 하지 않고 캬바레에서 춤추는 것은 수유(授乳)에 대해서 부작위(不作爲)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볼 때에는 작위(作爲)는 항상 신체운동으로 가능하지만 부작위(不作爲)는 신체운동 뿐만 아니라 신체정지(身體靜止)로서도 가능하다.
ⅱ) 작위범(作爲犯)이라 함은 신체의 적극적(積極的)인 동작(作爲)에 의하여 범하여지는 범죄 또는 그 범인을 말한다. 소극적(消極的)인 동작(不作爲)에 의하여 범하여지는 부작위범(不作爲犯)과 대립된다.
형법상의 범죄는 원칙적으로 작위범의 형태로 규정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몇 개의 진정부작위범(退去不應罪․多衆不解散罪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위범으로 규정되어 있는 구성요건을 부작위로써 범하는 경우, 즉 부진정부작위범(不眞正不作爲犯)도 있다.
작위범(作爲犯)은 진정작위범과 부진정작위범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칼로 찌르는 등의 적극적인 행위로써 살인죄를 범하는 경우가 진정작위범(眞正作爲犯)이고, 부작위를 구성요건으로 하는 부작위범을 적극적인 작위로써 범하는 경우는 부진정작위범(不眞正作爲犯)이다. 퇴거불응죄(退去不應罪)라는 진정부작위범(眞正不作爲犯)에 있어서 퇴거요구를 받고 소극적으로 가만히 불응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항거하거나 실내를 돌아다니는 등의 적극적인 작위로써 범하는 경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