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생생하다.
1984년 8월16일 저녁 구덕야구장.(사직야구장은 85년 10월5일에 개장했다)
후기리그 1위를 달리던 MBC청룡에 승차없이 2위로 바짝 다가섰다가 전날 류두열의 홈런으로 1위자리를 처음으로 빼앗은 롯데 자이언츠가 서로 맞붙는 경기에 최근의 4연승의 상승세에 나도 덩달아 신이나서 연승하는 현장을 즐기러 당시 방송대 출석수업도 빼먹고 와이프를 구덕야구장으로 불렀더랬다.
82년 프로야구 출범이후 내내 하위권에서 맴돌다가 올해 들어서야 후반기에 갑작스레 승승장구하던 참인지라 부산의 야구 팬들은 그야말로 흥분되고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고,(삼성은 전기리그 1위를 하고서는 6팀중 4위로 페이스 조절중? 이었다)
그 날도 홈구장인 관계로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롯데삼강에서 입장객들에게 선착순으로 마구마구 나누어 주던 "찰떡아이스"와 "망고"주스를 받아들고 들어가는 즐거움 또한 신나는 덤이었다.
지금처럼 야구장은 그렇게 조직적이거나 IT기술이 융합된 즐거움을 선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늘씬한 치어리더는 커녕 응원단장도 없이 관중들 스스로가 악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즐기던 지극히 원초적인 관람석의 응원문화였지만 늘 그랬듯이 야구경기관람은 내게 너무도 즐거운 장소였다.
딱 하는 파열음을 관중석 우리들의 가슴속을 청량하게 울리면서 그라운드에 내동댕이 치고는 저만큼 창공으로 쏜살처럼 뻗어나가는 백구의 짜릿한 궤적은 요즘 겨우 너댓이서 바라보는 골프공보다 몇 배나 큰 희열을 그 많은 관중들에게 안겨주었고.... 복잡한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고함지르고 환호할 때마다 옆에서 덩달아 신나는 게 결혼 6개월차 신혼의 아내였었다.
스코어는 1대1. 8회말 롯데의 공격.
나에게 야구관전에 있어서 데쟈뷰는 항상 8회이다.
82년도 9월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대화가 3점 역전홈런을 날린 것도 8회말이고,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유두열이 역전 홈런을 날린 것도 8회초였고,
일본과의 숱한 경기에서도 늘 8회에 우리 편이 역전을 시키는 드라마를 참 많이도 보아왔었다.
투아웃에 주자는 1,3루. 상대 투수는 유종겸(기억들 날란가? 표정없이 땅딸막했던 친구)
그런데!!
동점 상황에서 뜻 밖에도 타석에 투수인 최동원이 들어섰다.
82년 출범시 부터 지명타자제를 적용했던 우리나라 프로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관중들은 환호하기 보다는 조마조마한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동점상황에서 득점찬스에 그것도 다른 대타도 아닌 투수가 타석에.....
최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우리나라 최고의 강속구 투수였고,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로 인해 당시의 걸출한 국가대표선수들은 그 대회 때문에 프로로 전향하지 못하고 대거 83년도에 데뷔를 했었고, 최동원도 그 중의 한 명일 수 밖에 없었다.
첫 해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년차인 84년도에 들어서는 전매특허인 특유의 제대로 된 강속구를 선보이면서 롯데 연승가도의 돌풍의 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고, 그 때까지 37게임에선가 무려 19승을 거두고 있었다. 후반기 롯데의 18승 중에 혼자서 9승을 올리고 있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아마추어 시절의 전설은 이미 인구에 회자되어 있었던 것이고.....이틀 전에도 연장전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던 철완중의 철완이었다.
그 날도 4회부터 나와 특유의 그 강속구를 뿌리면서 1대1 접전상황에서 8회초까지 실점없이 잘도 던지긴 했었는 데...타석에 그것도 4번타자 순서에 들어선 그 모습은 관중들에게는 다소 낯이 선 엉거주춤한 모습!(정말 기억에 새롭다!!)
알고보니 앞선 공격에서 4번타자이던 지명타자 김용철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지명타자는 대타를 기용할 수 없는 룰에 의해서 투수가 대타로 나서게 된 상황이었다. 거 참~~~!
청룡 투수 유종겸은 암만해도 같잖았던 모양이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찬스에 롯데에서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다니...하기야 다른 선수를 대타로 기용할 수도 있었다면 그건 투수를 교체했어야 하는 상황이니 어쩔 도리는 없었다는 것은 알았을 테고....
그래서 헬멧을 쓴 낯선 모습으로 엉거주춤하게 꿩잡는 포수처럼 타석에서 방망이를 꼬나 든 최동원에게 좀 만만하게 던졌던 모양이다. 내가 봐도 구속이 좀 떨어져 보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최동원이 엉성한 폼으로 배트를 휘두른 것(아니 그냥 툭 갖다 대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 일 것이다)과 동시에 그다지 힘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얀 궤적을 공중에 포물선으로 그리면서 볼은 뜻 밖에도 우익수의 키를 넘겨 오른 쪽 담장을 다이렉트로 때리면서 튕겨나왔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삼진 먹을까 노심초사하던 관중들은 오매불망 바라던 득점타가 그것도 대형 2루타가 나왔으니 그야말로 환희의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자지러지던 내 귓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3루주자에 이어 1루 주자까지 홈으로 쇄도하는 장쾌한 2루타!
8회까지 팽팽하던 스코어는 순식간에 3대1로 2점차로 벌어졌고, 할 말을 잊고 알 수 없는 괴성만 질러대면서 온 몸을 전율하던 우리의 눈 앞에는 2루 베이스 위에서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 흔들면서 환호작약하던 최동원의 헬멧아래에서 라이트에 번쩍인 금빛 안경테의 반사광이 너무도 선명하게 구덕벌의 광기어린 열기를 밤 하늘로 뿜어 올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리는 최동원이 고교시절에 4번타자였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 과묵하게 타자를 비웃듯이 압도하던 그 차가운 표정의 최동원이 2루 베이스위에서 그토록 까불스럽게 환호하던 모습도 모두에게는 의외의 낯선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82년 9월 한대화의 홈런만큼이나 장쾌한 2루타를 그것도 지명타자를 대신한 투수가 때려낸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 전날 1위로 처음 올라섰던 롯데는 그날 경기를 발판으로 후반기 내내 1위 자리를 고수했고, MBC청룡은 나락의 길을 걸어 한국시리즈는 커녕 OB베어즈에 2위자리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 해 최동원의 타격 기록은 경이적인 타율 10할, 장타율 20할을 기록했다. 1타수 1안타 2루타!! + 2타점 ㅋ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은 아닐까?ㅎㅎㅎ
물론 1시즌 최다탈삼진 228개도 그 해에 기록하는 등 84년은 최동원이 전설로 된 해 였다.
결국 롯데는 그 해 후기시리즈에서 삼성의 막판 져주기에 힘입어 결국 1위로 마감하고는 그토록 고마운 삼성과의 그 유명한 한국시리즈 7차전 8회말의 대 역전 드라마를 우리 롯데 팬들에게 영원한 환희의 추억으로 남겨주게 된것이다.
여기에서 펼쳐진 또 한번의 장쾌한 최동원의 활약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 날의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수 있을것 같다.
그렇게 짜릿하던 그해의 여름과 가을을 뒤로하고 27년이 지난 어제, 우리의 영원한 아이돌이었던 최동원이 세인들의 곁을 떠났다.
롯데 팬이라면 그 누구도 삼성이나 한화 출신으로 기억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자부하고 싶은 우리의 롯데 맨 최동원은 내게는 늘 시원한 활력소였었다.
고인의 생애 말 수척했던 모습들을 접하니 너무도 안타깝다. 저런 모습의 친구가 아니었는 데....
그래도 난 그의 열성 팬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장효조에 이어 최동원도 암으로 급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건강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기에 이제껏 각박했던 세심을 다잡아 편안하고 행복하게 향기있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만이 지금 내게 절실한 것 같다.
건강하자~~! 오늘 저녁 나는 낙동강 둑으로 마라톤 하러 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