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요한 14,23)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언뜻 듣기에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 먼 길을 걸어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7)
사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모형제들을 향한 이 말이 더욱 매정하게만 들립니다. 오늘 복음의 그 이전 상황을 살펴보면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지방을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두고 예수님의 고향 마을에서는 예수님이 먹보요 술꾼이 되었으며 악령에 들려 괴상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걱정이 된 가족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 그 소문이 진실인지 확인해보고자, 내 아들은 그럴 리 없다고 믿는 성모님께서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보고자 그 먼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의 상황 하에 그 먼 길을 걸어서 온 부모 형제에게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고생한 부모를 반갑게 맞아도 모자랄 판에 예수님은 부모와 형제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도 않고 다 들릴 곳에서 이 같은 말을 했던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7)
사실 복음서 안에서는 이 말을 들은 성모님과 형제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홀로 자신을 길러주신 어머니와 자신과 한 가족을 이루는 형제들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듯한 예수님의 충격적인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요?
오늘의 말씀은 바로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이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줍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미카 예언서에서 예언자 미카는 당신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그들을 마치 양떼를 돌보듯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피시는 너그럽고 자애로운 하느님을 다음의 말로 찬양합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미카 7,18ㄴ-19)
미카 예언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하느님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버리심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주시고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우리의 삶을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 그러면서 우리를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이 같은 사랑은 오늘 미사에서 바쳐진 본기도문의 내용에서도 드러나듯, 용서와 자비로 드러난 하느님의 전능이며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 끊임없는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라는 구원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오늘 화답송의 시편 말씀은 오늘 독서가 전하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는 사랑의 은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화답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시어, 야곱의 귀양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잘못을 덮어 주셨나이다. 당신의 격분을 말끔히 씻으시고, 분노의 열기를 거두셨나이다.”(시편 85(84),2-4)
“저희에게 생명을 돌려주시어, 당신 백성이 당신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시편 85(84),7-8)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하느님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버리시고,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은 오늘 독서와 화답송의 말씀 안에서 드러나듯, 용서와 자비로 드러난 하느님의 전능이며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라는 구원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듯 보이는 말씀은 바로 이 맥락, 곧 ‘하느님 사랑이라는 은총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으로 모든 죄를 용서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용서와 자비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죄로 점철된 옛 모습으로부터 벗어나 사랑과 은총의 새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느님 안에서의 다시 태어남의 과정을 통해 우리,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그 말씀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안에 한 가족’이 됩니다.
“하느님 안에 한 가족”(에페 2,19 참조)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이제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한 가족입니다. 그 분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그 말씀의 힘으로 삶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견뎌 내는 이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품 안에서 형제가 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것들에 매이지 않으며, 그것들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과거의 것, 곧 부모님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감싸 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언뜻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님의 자신의 어머니 형제를 향한 말씀의 의미는 바로 이 같은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곧,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육적 가족의 테두리에 묶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더욱 큰 영적인 가족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를 당신의 새로운 가족으로 초대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삶을 그 사랑에 온전히 봉헌함으로서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난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형제의 사랑 속에서 찾고,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형제의 사랑을 더 깊이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요한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