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가끔 지혜와좋은글에 참여합니다
잘나서도아니요 그러타고못난것도 아닌것같아요
저는 시골에서농삿 군이고 키도적어 70년도에 보충역 대기병이였어요
71년 8월 갑작스런 군 영장을받고보니 정말로 반갑더라고요
친구들은 다군에가는데 난 시골구석에서 농사을 짓는다는것이
9월1일 논산훈련소에 가기위해 목포에나와 집결하여 훈련소로가는데
지금군대는 정말 아름답고 가족과 추억도많이 담지만 그땐 단체로 집결하여
열차에몸을싫어야하니
시골에서 농삿일하느라 배만 키워놓고 그배을줄일려고 굼는배에서 꼬루룩하는데
그걸 참는 그때
논산훈련소 대기병으로 신체검사 끝내고 9일 훈련소로팔려가는 저에게제일쎈곳 30연대로
1차교육마치고 2차교육28연대로 후방기교육이 끝나고나니 9월에입대하여 12월에
자대배치 되었는데 정말멋있는 서방사에 군동기3명이 한곳에 근무하게되어 힘들어도
서로가힘이되고위로가 되는 군생할이 4개월에 접어 산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머물려는데
그것을 추억에담으려는데 생각지도않은 나에게 이런일이 그건
월남 차출명령 빽없고 힘없어 모든것 아쉬움으로 강원도 오움리 그지겨운 훈련이
훈련에서 훈련으로 군복무가 끝이인가
서해안에는 따스하더니 강원도 전방에오니 산에 그때까지 눈들이 안녹고 있으니
교육이끝나고 춘천에서 열차타려는데 나에게 마즈막길일지도 알수없지만
천한나인가 다들막즈막얼굴보려고 이리저리 자식찾는 형제들 있는데 난
누구하나 찾는이없고 외롭고 쓸쓸한 순간 어데선가 이사람을 찾으니 그분
영원히 잊을수없는분 우리4촌형네 이모부가 이사람을 그분은 춘천에서 크게유리점을
경영하신분인데 저을찾아 준다는것 정말 그땐 나에게 건강한모슾으로 다음에보자며 그때
이손잡고 쥐어준 돈 5천원 지금은 그것이지만 그땐 나에게는 말할수없이 큰 거액이여지요
이제울고 불고 몸부림치지만 운명은 열차에의지하며 환송을 받지만 운명은 어데인는지 알수없지만
덜거덕거리는 열차에서 밤에 그추억 얼마나 상상할수는 상황에서 다음날 부산항에 도착하여
이제또 배에 몸을싫고 있는이몸 이제 부산에 환송식이 나의인생을 마즈막일지 언제이고국 다시
일주일간 기나긴 시간속에 향해하는데 그땐 모든것 다내려놓고 나의운명은 저하늘에 마끼고
이제 월남에 가까우니 몸에서부터 시작된것같이 나의곁에 따스하다기보다 그무더위가
월남땅에 도착하자마자 사단으로 가는 그순간들 이제 우리는이 아니고 내가 죽느냐사느냐
정신없는속에서도 목이타 마시고마시고 얼마나 먹어던 물 나에게 이상이 그건 배탈
사단에서 화장실을 오고가는데 들여오는소리는 환영의 반수소리가아니고 연속극처럼오는 총소리속에
자대로가다 헬기에서 죽어다네 도로에서 포탄에 이제 네가전선에왔나 실감이
그래도난 물을얼마나 먹어는지 화장실을 그첫낢밤 나을환영은 오직 모기밖에 판초우의 덥어는 온몸은
땀으로 그러는속에 모기까지 왜날 어떠한밤인가 지루한밤인지 낮인지 뜬눈으로
다음날 헬기에 몸을 의지하고 나의모든것 마낄곳 그곳으로 가지만 그땐추억만
중대로바로와서 신고와동시 소대에배치대어서 다음날부터 즉시작전에 참가
키도적은나에게 또 선임하사 전령까지
월남에가따오신분은 제가세삼 이야기하지않아도 모든것 아시지요
그런 우리들이 지금에 그대우받는지요 우리는 생명을 아낌없이 국가을위해 명대로 주었건만
지금우리는 수급자보다고 못한 대우을받으니 누가 이국가을위해 ...............
어렵고 힘든 60-70년대을 우리파월자들이 이국가 이만큼까지
시대는 변하여도 국가을위한분들을.....................
젊은이는 몰라도 그시에 우리는 기억하는 이가됨시다
지나간 추억이 생각나서 두서없이 엮어읍니다
첫댓글 그래요. 정말고생 많으셨지요. 조국에서 들을땐 용맹스런 대한민국 국군이었지만 . 현장에선 목숨걸고 싸웠던 우리장병들이었지요. 모든것이 다이해가갑니다.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도 만이 발전되었지요. 현재 2만불시대. 그러나 용맹스런 우리장병들에겐 돌아오는건. 고작....................? 힘내세요. 선배님
마음이해하여주셨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