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拾遺(도불습유)
나라가 태평하고 풍습이 아름다워, 백성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아니함.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 않는다는 말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풍속이 아름답게 되었다는 뜻.
路不拾遺(노불습유).
夜不閉戶(야불폐호)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는 뜻으로, 밤에 문을 닫지 않아도 도둑이 들 염려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夜不閉門(야불폐문). 門不夜關(문불야관).
孔子(공자)가 말하길, 나라가 태평하고 풍습이 아름다우면, 모든 백성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은 주워 가지 아니한다(道不拾遺 : 도불습유).
史記(사기) 商君列傳(상군열전)에 보면 전국 시대 秦(진)의 孝公(효공) 때, 商軮(상앙)이 만든 新法(신법)의 경우와 같이 법이 너무 엄해서 겁을 먹고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못하는 예도 있었으나(道不拾遺 : 도불습유), 민심이 순박한 것은 아니다.
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에 이야기로, 孔子(공자)가 魯(노)나라 정승으로 석 달 동안 정치를 하게 되자, 송아지나 돼지를 팔러 가는 사람이 아침에 물을 먹여 근수를 높이려는 일이 없고, 길에 떨어진 것을 줍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道不拾遺 : 도불습유).
鄭(정)나라 재상 子産(자산)은 공자가 형처럼 대한 정치가였다.
그는 정승이 되자 급변하는 정세를 잘 파악하여 낡은 제도는 개혁하고, 농지 분배를 실시하고, 지배층의 특권의식을 불식시켰으며, 계급의 구별 없이 인재를 뽑고, 신상필벌의 원칙을 따랐다.
위아래가 모두 호응토록 하여 나라의 태평을 이루게 되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풍속이 아름답게 되었다(道不拾遺 : 도불습유).
모든 백성이 마음이 순하고 유함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평화로움이 있음을 말함이다.
정나라 昭君(소군)이 자산을 재상으로 삼아 정치를 하고 1년이 지나자, 소인
배와 경박한 놀이가 없어지고, 반백의 늙은이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고, 어린아이들은 밭을 갈지 않게 되었다.
2년이 지나자, 시장에서는 값을 에누리 하지 않았고, 3년이 되자, 밤에 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夜不閉戶 : 야불폐호).
나라에는 도적이 없고(國無盜賊 : 국무도적), 길에는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으며(道不拾遺 : 도불습유), 복숭아와 대추가 거리를 덮고 있어도 이를 따 가는 사람이 없었으며, 송곳이나 칼을 길에 떨어뜨렸을 때도, 사흘 후에 가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3년을 凶年(흉년)이 들어도 백성이 굶주리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韓非子(한비자) 外儲說左上篇(외저설좌상편)에 보면 자산의 정치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나라 임금 簡公(간공)은 자기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한편, 새로 세상에 임명된 자산에게 모든 정치를 바로잡는 책임을 지고 과감한 시책을 단행할 것을 당부 했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못 산다.
그런데 밤에 길 가던 사람이 물과 불을 청하면 안 줄 사람이 없는 것은 너무도 흔하기 때문이다.
만일 먹을 것이 흔한 것이 물과 불처럼 흔하다면 어느 누가 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완용/ 법고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