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섬 순교자의 땅, 일본 고토
침묵의 그림자 속에서 간직해온 신앙, 500년 이어와
- 300년 가까운 박해로 인해 오랜 잠복 시기를 견뎌낸 고토 신자들이 금교령이 풀리자 1873년 12월 24일 오쿠우라 도자치 해변에서 첫 성탄 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은 그 자리에 고토 열도에서 첫 번째 성당을 1880년 지어 봉헌했고, 1908년 붉은 벽돌로 개축했다. 사진은 고토에서 첫 번째로 봉헌된 도자키성당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 초청으로 최근 3박 4일 일정으로 고토 열도를 찾았다. 일본에서도 가장 복음화율이 높은 기도의 섬, 순교자의 땅인 고토(五島)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곳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두 나라의 역사 인식을 바로 하고, 소통을 통해 신앙 안에서 한 형제임을 인식하기 위해 두 나라 주교들이 앞장서 교류의 장을 펼친 지 올해로 20년이 된다. 새해에는 두 교회 간 협력이 본보기가 돼 한일 두 나라 간 새 틀을 마련하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하며 고토를 소개한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비바람을 몰고 왔던 궂은 날씨가 바다를 깨웠다. 나가사키 항에서 탄 육중한 페리는 바닷속을 뒤집듯 널뛰는 파도에 속절없이 상하좌우로 요동친다. 조금이나마 뱃멀미를 견디어볼 요량으로 다다미 바닥에 밀착한 둥근 몸뚱이가 속절없이 구르고 공중 부양을 했다 가라앉는다. 3시간째 요동치는 여객선에서 몸과 정신이 녹녹해질 대로 녹녹해지자 섬은 이방인을 품었다.
- 고토 성당들은 소박하다. 십자가를 형상화한 네잎 동백이 고토 성당의 상징이다. 사진은 일본 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석조성당인 가시라가지마성당 내부 모습으로 흐트러짐없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 서쪽 바다에 떠 있는 140개 섬. 그들 중 제법 큰 다섯 섬이 줄지어 서 있어 고토(五島) 열도라 부른다. 제주도의 3분의 1 크기에 인구 6만 3000여 명밖에 안되는 이 섬들에 성당이 50개나 있다. 시모고토(下五島)에 20개, 카미고토(上五島)에 30개 성당이 있다. 복음화율은 25%. 일본교회 복음화율 0.4%와 비교하면 믿기 어려운 수치다.
침묵의 섬 순교자의 땅
밤에 온천욕을 한 덕분인지 아침에 기운이 솟았다. 창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따스한 바람이 화창한 하루를 기대하게 했다. 섬 특산물인 고토우동으로 허기를 채우고 서둘러 거리를 나섰다. 온통 동백꽃 천지다. 바닷바람에 실려온 소금기로 산화된 함석지붕과 벽 사이로 붉게 핀 동백꽃이 이국적이다.
후쿠에지마 섬. 고토 열도에서 제일 먼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섬이다. 1566년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 신부가 이 섬에 처음 복음을 전했다.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일본 땅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지 17년이 흐른 뒤였고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리스도교 금교령을 내리기 11년 전이었다.
- 고토는 박해시대 신자들의 은신처였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아 많은 순교자가 탄생했다. 사진은 42명이 굶어 죽거나 고문으로 병들어 죽은 로우야노사코 순교터이다.
시모고토의 주도인 후쿠에지마 섬의 2000여 가톨릭 신자도 1587년부터 1873년까지 286년간 지속된 박해시대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사무라이 낭인 4명이 새 칼을 시험한다며 다이노우라 다카스의 신자 집에 들이닥쳐 임산부를 비롯한 가족 6명을 참살했다. 또 히사카지마 섬에선 50명이 넘는 신자가 고문으로 순교했다. 로우야노사코 지역에선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신자 200여 명이 20㎡도 안 되는 비좁은 감옥에 8개월간 갇혀 지내다 42명이 굶주림과 고문, 병 등으로 숨을 거뒀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신자들은 신분을 감추고 숨어들었다. 섬의 신자들은 외딴 무인도로 숨거나 불교도로 위장했고, 육지의 신자들은 살길을 찾아 쪽배를 타고 이곳 고토로 몰려왔다. 이때부터 고토는 '카쿠레 키리시탄'(陰れ切支丹-잠복 그리스도인, 숨은 그리스도인)들의 은신처 '침묵의 섬'이 됐다. 하지만 신자들의 침묵은 '조용한 소모'가 아니라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침묵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웃어도 소리 내지 않고, 대화해도 말이 새어나오지 않는다. 도심 한가운데 서 있어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만 감돌 뿐이다. 신카미고토초 관광청에서 나온 야마타 준(바오로)씨는 "누구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오늘에도 고토 사람은 자신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이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도의 섬
- 와카마쓰섬 남단에 있는 키리시탄 동굴이다. 사토노우라 마을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살던 바위섬으로 신자들은 신앙 선조를 기리기 위해 동굴 입구에 그리스도상을 세워놓았다.
고토는 나가사키대교구 관할이다. 나가사키대교구 내 130개 성당 가운데 고토에만 50개소가 있다. 도심을 제외한 마을 성당마다 대략 150여 명의 신자가 본당을 꾸려가고 있다. 18명의 사제가 각각 다소 규모가 큰 거점본당에 상주하면서 성당 3~4개씩을 맡아 사목하고 있다. 마을 대부분은 바다가 만든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좁은 해안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옥빛 바다와 어울린 금빛 모래밭이 더없이 평화롭다.
300여 년 가까운 박해시대를 거친 일본 신자 대부분은 가난했다. 섬으로 피난온 고토의 신자들은 더욱 고단했다. 신자들이 봉헌할 것이라고는 성한 몸뚱이뿐이었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자 신자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돌을 나르고 조개무지를 빻아 회반죽해 성당을 지었다. 바다 건너편 고향을 그리워해서인지 성당들은 대부분 바닷가나 먼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다. 장미를 본 적 없었던 신자들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동백꽃으로 로사리오를 대신해 성당 유리창을 장식했다. 동백잎은 다섯 장이지만 고토 성당의 동백은 십자가 모양으로 잎이 네 장이다.고토 신자들은 이렇게 기도와 몸으로 50개 성당을 지어 봉헌했다. 이들 성당 중 가시라가지마ㆍ 아오사가우라ㆍ 도자키ㆍ 구 고린 성당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지금도 토요일마다 본당 모든 신자가 모여 주일 미사를 위해 성당 청소를 한다. 그래서인지 성당은 티끌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하다. 마룻바닥에 제대와 십자가만 있는 소박한 성당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 삐뚤어짐 없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는 것이 신자들의 정성과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듯했다.
고토에선 터미널과 관광안내소 등에서 쉽게 한글로 된 성당 순례 및 관광 안내서와 지도를 구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피정하듯 고요한 여행을 원하는 이에게 고토로 떠날 것을 권해본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일, 글ㆍ사진=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