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화암동굴 탐방기
“정선의 하늘은 세 뼘”이란 말이 있다. 첩첩산중 높은 산이 둘러싸 하늘 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하듯 정선에는 해발 1,000m 이상 명산이 22개나 있다. 충남에는 해발 1,000m 이상 명산이 전무 한 것과 비교해 보면 높은 산이 정선의 뼈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산에 만들어진 석회암동굴이 37개 관광 명소는 35개다. 곰비임비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두루 명승지다, 가지각색의 “뼝대”(석회암 절벽) 아래로 동강이 흘러들면 황홀한 비경이 탄생 된다.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오감을 오롯이 느끼는 풍류와 즐거움이 있는 곳. 이곳에선 누구나 낭만에 흠뻑 젖는 관광객이 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금(砂金)을 찾아 방방곡곡 헤매다니는 ‘금마니’들에게 정선은 금 도깨비 전설의 땅이다. 정선군 동면 몰운리 일대에 상당한 매장 금맥이 있었다. 세월의 풍화로 금이 동강으로 흘러들었다. 사람을 홀리며 정신을 훅 가게 하는 누런 금이 광산에서 강물에서 발견되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금광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자연 조선판 골드러시(Gold rush) 노다지 꿈은 애면글면 그렇게 출발했다. 그 중 화암면에 자리한 ‘화암동굴’은 정선의 황금빛 꿈이 전력 질주한 곳이다. 이곳엔 일제 강점기 전국 5대 금광에 꼽혔던 천포광산이 있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들렸다. 화암동굴 가는 모노레일이 도착하였으니 승차하라는 것이다. 우린 정말 궁금한 게 창세기 같았으나 귀를 쓱 문지르고 모노레일을 탔다. 그렇게 경황이 없는 사이 차는 화암동굴 입구에 우리를 쏟아 놓는다. 이제부터는 다른 길 없는 외길이다. 걸어서 옛 명칭 천포광산이라 적힌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금을 캐내던 천포광산은 이제 테마파크로 재정비됐다. 동굴은 조명도 다채롭고 서늘하고 짱짱해 기분이 한껏 부풀어졌다. 이를테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과거로 가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 ‘역사의 장’에 도착한다. 이때 끔 해설사의 음성이 동굴에 가득 찬다. 화암동굴 역사 이야기다.
그러니까 1920년대 미국 증시 폭락으로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졌다. 돈의 가치는 급락하고 금값은 치솟았다. 군수물자를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은 금을 찾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금광개발을 시작하였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금광으로 모여들었다. 황금에 미친 시대가 닥쳐왔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최고 가치로 판을 까는 동양에서 금은 1순위인 부(富)에 단번에 올라타는 그야말로 황금 사다리였다. 그 미친 바람을 제대로 탄 여성이 있었다. 평북사람 김정숙이었다. 그녀는 15살에 금광꾼에게 시집을 갔다. 금맥을 찾아 떠도는 남편을 따라 팔도강산을 두루 다니며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이리저리 유랑하다가 정선의 천포광산으로 흘러들었다. 이곳에 정착 금맥을 뚫다가 8년 만에 노다지가 터져 버렸다. 김정숙 부부는 대박 난 금광꾼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1932년에 있었던 전설 아닌 전설이다. 그 후 2년이 지나서 금광을 당시 돈 20만원 (현 약 240억 원)에 매각하고 금광의 무대에서 사라지며 무성한 설화만 남겼다. 천포광산은 소화광업에서 매수했다. 사주는 박춘금으로 소개되어 있다.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뼛속까지 친일파였다. 일제의 뒷심을 업고 1945년 해방 때까지 금광을 운영했다 한다. 이러했던 천포광산은 1980년 2월 26일 강원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으며 총 관람 거리는 1,863m이다. 금을 채굴하던 천포광산 상부 갱도 515m, 채광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천연 종유굴인 화암동굴 하부갱도 676m와 상, 하부갱도를 연결하는 365계단으로 되어있다. 상부 갱도에는 금맥 발견부터 광석 채취까지 금을 생산하는 전 과정을 전시해 놓았다. 갱도에는 채광 당시의 대장간 휴식처를 실물로 복원하고 생산된 금덩이에 환호하는 장면을 밀랍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중 매우 놀라운 현장이 있다. 수직으로 파 올라간 수직갱도다. 아래에서 위로 어떻게 발을 딛고 굴착 해 갔을까. 그리고 한복 입고 안전장치 없이 일하고 있는 선조들의 애환과 트라우마에 눈자위가 파르르 떨린다. ‘테마 동화’의 나라부터 화암동굴의 귀여운 캐릭터 금깨비 즉 인형 도깨비들이 굴진하여 채광한 광석을 컨베이어 선별기로 금광석과 폐석을 고르고 분쇄기로 잘게 부수어 제련한 금을 용광로에서 금괴로 만드는 보다 너끈한 공정이 전시되어 있다.
도깨비는 우리 민족 정서에 뿌리를 둔 친근한 캐릭터다. 장난기 많고 순진하며 사람 골탕 먹이기를 즐긴다. 심술궂은 장난을 쳐도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또 순박하여 사람에게 잘 속아 넘어가며 약이 올라 보복을 한다는 것이 번번이 사람을 돕는 꼴이 된다. 어떻게 보면 나쁜 사람보다 훨씬 인간다운 도깨비. 다음은 ‘금의 세계’로 순 금괴의 노다지 모형이 있었는데 그 위와 둘레에 백 원 오백 원 동전과 천 원짜리 지폐가 너절하게 쌓여 있다. 저렇게 하면 부(富)가 굴러온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러다가 경사 가파른 365계단이 나타났다. 그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천연석회 동굴이 있다. 그러니까 1934년 어느 날 굴진하던 갱도가 무너졌다. 광부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공간을 만났다. 우두망찰하여 불을 밝혔다. 거기에는 대자연의 신비 우리나라 최대 종유굴이 꿈꾸듯이 몽환의 900평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가 실제 화암동굴이다, 화암(畵巖)은 말 그대로 바위 그림이다. 동굴 안 바위들은 입체 명작 예술품처럼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장관을 이룬 지하 궁전이 세상에 드러나자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엉뚱하게도 노다지 꿈은 관광의 금덩이로 반전되었다.
종유굴 안으로 들어간다. 누구라도 이 동굴에 발을 딛는 순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으로 탈바꿈된다. 높이 8m에 달하는 석순과 석주는 형형색색 조명으로 외피를 갈아입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귀를 당기며 신비를 속삭인다. 중앙의 석회석 광장 우로는 유석 폭포가 금빛을 뿌리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종유석 동굴 산호가 지하 판 갈라파고스를 이룬다. 고개를 들어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을 보면 거기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자라고 있었다. ‘저건 시간도 자라고 있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라고 누가 말했다. 화암동굴. 그림도 되고, 음악도 되는데, 시간까지 볼 수 있으니 이를 어쩌나. 지금은 마음에 환희를 일으키는 저 공간의 실루엣에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람의 이목을 빨아드린 종유굴은 현재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 제557호로 되어있다. 종유굴이 금광보다 더 비싸게 기록된 것이다. 금은 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지만 종유굴은 찾아오는 모든 여행객의 소유가 된다. 금이 개인 소유욕의 정점에서 광채를 발하는 왕관이라면, 종유굴은 모두가 소유할 수 있고 소유가 많을수록 더 좋은 신(神)의 사랑같이 그 정점에서 광채를 발하는 우리의 왕관이 아닐까. 이제 동굴 밖으로 나가는 길을 걷는다. 혼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동굴 여행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내리막길을 걷는다. 골 사이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원시의 숲 냄새가 빈혈을 일으킨다.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발목이 시큰거린다. 화암동굴은 각자 기억의 우물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끝)
글 = 김 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 유판도 여행사진작가
(1)문의 : 화암동굴 / 천연기념물 제557호 (033)560- 3410
(2)네비주소 :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화암동굴길 12-8
(3)트레킹 코스 : 주차장- 모노레일 – 천포광산- 365계단 – 종유굴 - 주차장
(4)인근의 볼거리 :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소금강, 물운대, 광대곡, 아리힐스, 정선레일바이크, 벅스랜드, 하이원 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