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석가, 그리스도와 같이 세계인에게 '성인' 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의 일대기를
영화, 만화, 다큐멘터리 등등의 매체로 제작할 경우에 있어서 '특정한 종교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청자 누구나 친근하게 볼 수 있도록' 하게 만들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일까요 ? 그것은 아마도 첫째로 누가 보더라도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유교면 유교,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 하나의
종교 또는 사상 안에 권위적으로 존재하는 '교조' 로서의 이미지를 배제하고, 최대한
우리들과 같이 '하나의 인간' 에 가까운 이미지를 쌓아가는 시도이고, 둘째로 특정한
시대와 지역을 살았던 '한정된 존재의 이미지' 위에다 덧칠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도록
시공간적 배경에 맞게 무대를 설정하고, 저마다의 '종교 또는 사상' 에서 받들어지는
경전들에 기록된 성인의 언행을 그 무대 위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비로소 '성인' 에
걸맞는 옷을 입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인이 지닌 '인간' 으로서의 이미지는 종종
성인의 언행에 보이는 가치들과 상충하고 모순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까지와 같은 논의들에서부터 확인된 바와 같이, 이 만화에서 나타난 바
공자의 이미지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던 공자상과 다릅니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당대의
현실에 맞게 밝혀낸 공자상이라고 보입니다. 옛 사람에게 있어서 세상을 보는 눈, 즉
말하자면 '세계관' 으로 존재하던 공자상을 가리켜서 '선입견' 이니 '고정관념' 이니
하면서 함부로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과연 그것에 반영된
경전에 기록된 '성인의 언행' 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어떨까요 ? 다시
말하자면 성인의 언행, 또는 성인이 강조하였던 덕목들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 이러한 질문을 하면, 성인은 한 사람이고, 그 성인이 남긴 언행에도 물론
자료가 한정되어 있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일괄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았던 성인의 이미지' 를 새로 재구축하는 것에 비하여, 성인이 남긴 언행을
바탕으로 사상적 체계를 재구축하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을 요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공자 당대 춘추시대의 배경에 맞게 인간상을 설정하더라도, 그 속에서 나타난 유교적
가치는 '한국인들이 해석한 논어' 또는 '일본인들이 해석한 논어' 에 따라 크게 좌우
될 수 있습니다.
유교사상에는 수많은 덕목들이 존재합니다만, 오늘날 한국에서 주류로 (인문학에는
주자학 일변도 시대같은 기준이 없는 이상, 어떠한 이론이 주류라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읽힌다는 말은 됩니다) 존재하는 해석으로는 '인 (仁)' 을 첫째로 칩니다. 예를 들어
김학주 교수, 이기동 교수, 성백효 교수, 등등 한국의 저명한 한학자들이 저술하였던
현대의『논어』주석서들에 있어서는 대부분 그 첫째 덕목으로 '인 (仁)' 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송대 주자학의 영향이며, 오늘날까지 그러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래 공자의 어록에서 가장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 덕목이 바로 '仁' 으로서, 사실
공자도 '仁'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처하여 있는 상황에 따라, 아니면 '仁' 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하는 문하생들의
학문적 수준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답을 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유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본인이 '仁' 이란 이것이라고 딱 잘라 정의를
내릴 능력이 있을 리 없지만, 이것은 요컨대 '자기 내면의 수양' 과 관련된 것으로써
방에서 책을 열심히 읽고 명상에 잠김으로써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닦으면 남들의 마음도 자기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라고
한다면 꾸준히 자기 정신수양의 과정을 따라간 다음에서야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끌 만큼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성리학에서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그런데『공자전』에서는 '인 (仁)' 을 그다지 중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공자전』에서는 '예 (禮)' 를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공자의 이상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예 (禮) 라는 형태로 현실 사회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일개 만화작품에서 우리의 (또는 성리학의) '고정관념' 에 따라 꼭 '仁' 만을 중요한
덕목으로 반드시 강조할 필요 없다, 라고 말하려는 사람도 있을 지 모릅니다. 한국에
유교를 해석할 기준이 성리학 뿐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禮' 를 (유교의 수많은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해석하여
왔고, 그것을 전통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일본인들입니다.
유교에서는 '禮' 를 '정치제도와 사회규범의 일종' 으로서 '예의범절' 보다는 좀더
큰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항상 '정해진 형태를 지니고
외면으로 나타나야 한다'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람들이 보통
윗사람 또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를 공경한다는 마음을 표시하는 방법은
머리를 숙여 보이는 것입니다만,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 안에서는 얼굴에 침뱉는 것이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사회구성원들 서로에게
약속된 방법을 통하여 표현하지 않으면 자기 속마음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람을 만날 때에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는
뜻에서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아프리카에서라면 침을 뱉는다' 라는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면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논어에서 '충서 (忠恕)' 라는 것이 '仁' 을 향하는 길이라 하는데, 이때 '忠' 이란
군주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충실, 즉 '充' 과 통하는 말이며
또한 '恕' 란 자신에게 미루어 남이 바라지 않는 일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자신에게 비추어도 타인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일본 유학계의 전통은 '禮' 같은 '형식' 을 중시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전국시대 내란이 끝나고 에도막부가 수립되어 일본에서도 학문에 전념할 만한 환경이
갖추어지면서부터, 아직 무식한 칼잡이 티를 벗지 못하였던 사무라이들이 자기수양에
힘쓸 여력이 없었으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회와 사회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에
착안하여 '형식을 갖춘 사회윤리를 통하여 남들과의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을 중시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반대로 송나라 주자학의 주장처럼 '자신의 마음을
닦아서 남들의 마음을 미루어본다' 라는 것에 반박하여 '마음은 아무리 수양하더라도
남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에게 정해진 형식을 가지고' 사회를 원만히
이끌어가려는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禮' 를 중시하는
시각은 일본 유학계에 있어서 끊임없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노 테츠토 (宇野哲人) 교수, 모로하시 테츠지 (諸橋轍次) 교수, 그리고
요시카와 코지로 (吉川幸次郞) 교수, 등등 일본의 주류 한학자들은 예외없이 '禮' 에
대한 해석들을『논어』주석에 특필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노 교수와 모로하시 교수가
그래도 송나라 성리학의 이론을 인정하여 '仁' 을 별로 경시하지는 않는 것에 대하여
문헌고증학적 방법에 따라 한나라 이전의 고서적에 의거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추구한
요시카와 코지로 교수는 철저히 '禮' 를 '仁' 보다 우위에 놓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 한국과 일본의 유교사상 해석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차이가 보이게 되었나에 대한
이유는 글 하나에 전부 써도 모자라므로 간단히만 언급하였는데, 시라카와 교수 등의
일본 학계에서도 찬반 양론이 비등한 학설처럼 지금까지의 상식을 깨는 이론들조차도
만화에 반영되었는데, 수백년간 계속 일본 유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있는 '禮'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공자의 언행을 설명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단순히 '시대가 성리학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 만큼 다른 덕목을 중심으로 유교사상을 설명해도 된다' 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일본인들의 존재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지금까지의 글들에서 제기된 문제들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말하자면
결국 '이것은 우리가 만든 만화가 아니었다' 뿐입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도대체
과연 '이 만화영화 제작에 한국인들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였길래 이만큼이나
우리들 자신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았는가' 입니다.
마침 이 만화의 감독이 데자키 오사무 선생이었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사실
한국 일본 대만 삼국합작이라고는 하였지만, 이름이 있을 만큼의 한국인 스탭 이름은
너무 부실하던 것으로 기억이 나서, 우선 집에 보관하고 있는 2000 년대 재방 녹화본
스탭롤을 베이스로 하여 정보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가 크레디트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았는데, 어디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설마 '주 스탭진은 일본측이 맡고, 한국측은 하청만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 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었기를 바라,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인터넷을 검색하였습니다만
민영문 PD 님 외의 한국인 참여자 인명이라고는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방영일자가 다른 버전에는 다른 스탭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내의
중고 비디오 판매상을 수소문하여 품절된지 오래였던 시중 판매용 (SKC 판) 테이프를
구입하기도 하였고, 1995 년도 초방 당시의 녹화 테이프가 소장된 성균관대 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국내판 크레디트를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이하에서 한국 스탭님들께 한하여
본인의 현재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님' 자를 붙여 존경을 표하기로 하겠습니다)
< 오프닝 스탭롤 >
― 책임프로듀서
이중환 님
― 원안
鄭問 "萬世師表 孔子"
― 題字
孔德成
― 애니메이션 감독
出崎 統
― 감수
이남영 님
최근덕 님
홍찬유 님
侯孝賢
― 애니메이션 제작
(주) 한신코퍼레이션 (한국)
이미지 K (일본)
― 프로듀서
민영문 님
大路幹生
쑹옌잉
― 공동제작
KBS (한국)
NHK (일본)
PTS (대만)
감독을 맡은 데자키 오사무 (出崎統) 선생과 NHK / PTS 측 PD 들은 물론이고, 일견
한국인과 비슷한 이름을 쓰는 鄭問 과 孔德成 은 한국인이 아닙니다. 일단 이 작품의
원작은 대만 만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므로 넘어가겠습니다만, 이것이 한국 작품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각본가도 없었고, 연출가도 없었고, 음악감독도 미술감독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작진들 중에 유명한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이름이 있는데
일본인 스탭은 있어도 한국인 스탭님들의 성함이 없다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여기에서 이중환 PD 님과 민영문 PD 님을 제외하면 한국인 스탭으로 보이는 이름은
사실 '감수자' 명단에서밖에 확인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그분들의 성함을 집어넣어서
오프닝 크레디트의 한국인 비중을 늘렸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책임프로듀서 이중환 PD 님의 비중은 얼마만큼일까요 ? 최근 투니버스 만화 스탭롤의
상위에 책임프로듀서이신 신동식 PD 님과 온미디어 투니버스 본부장이신 장진원 님의
성함이 자주 오르지만, 이분들께서 세세한 더빙 지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제작과정에는 큰 역할을 하지 않으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감수자' 명단을 보겠습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1. 이남영 선생은 서울대 동양철학 전공 명예교수,
2. 최근덕 선생은 성균관대 유학 전공 명예교수,
3. 홍찬유 선생은 재야 유림계 대학 명예교수,
일단 세 분의 이력으로 보면 이상과 같으며, 한학계의 거장들로 볼 수 있습니다.
(侯孝賢 이라는 학자는 찾지 못하였으므로, 동명의 유명 영화감독으로 보아야겠지요)
여기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감수' 라는 단어인데, 일반적으로 '감수' 라는 말을
어떠한 때에 사용하는지 용례를 따져보면, 보통 학계의 경우 실력과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명망이 부족한 소장 / 중견 학자가 학술서적을 지었다고 하였을 때, 출판시장의
지명도를 높이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자신에게는 지도교수 내지 선배교수 정도에
해당하는 학계 권위자인 원로학자의 이름을 수식어로 올려서, 그와 함께 '감수' 라는
단어를 부가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즉 이것은 사실상 '선생이 읽어는 보았다, 일단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또는 '이대로 출판해도 별 무리 없겠다' 라는 것과 동의어로
판단하는 것이 옳으며, 원로교수가 저술에 직접 참여하였다고 파악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상당수 무능한 학자들이 강사, 조교, 대학원생 등에게 책을 대필하게 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비도덕적인 행태와는 물론 차별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적어도 '편저' 처럼 본인이 직접 관여하였다는 것과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분들이 만화제작기획 당시에 각본 / 연출 작업에 참여하셨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짜여져 있는 스토리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아마 상상컨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품을 보고 '한국에서 방영해도 문제없겠다' 정도의 코멘트만을
던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왜 만화와는 크게 상관없는 학계 원로들에게 감수를 부탁하였는가 ?
(잠시 후에 확인하시겠지만, 일본판 스탭롤에는 세 분의 성함이 없습니다)
첫째, 만화란 결국 결국은 '아이들이나 보는 장르' 인 까닭에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빌려서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
둘째, 이 만화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재구성된 공자상과 유교의 해석' 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학계 권위자' 의 이름으로 재야 유림계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하여 ?
저는 일단 이러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은 하였습니다만, 진실은 아무래도
알기 힘들기 마련이니, 이쯤에서 억측은 그만두고 다시 크레디트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도 우리 만화계에서 금자탑을 쌓으셨던 민영문 PD 님께서 일본 / 대만 PD 들의
이름과 함께 올라 있다는 사실을 뒤로 하고, 엔딩 크레디트를 점검하였습니다만...
...여전히 각본가, 연출가, 음악감독, 미술감독, 등 주요 스탭이 누락되었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처음에 '번역' 이라는 스탭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한 분이라도 직접 대본 작업에 참여하였다면 '번역자' 라는 스탭님들이 계실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본이 일본이나 대만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한국은 이에 대하여
원본 집필에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외에 확인되는 스탭님들의 성함은 대부분 실제 동화제작 실무작업에 참여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성우님들의 성함은 등재되어 있지만, 정작 제작 지휘에 있어서 중요한
각본, 연출, 음악, 미술, 등등의 스탭은 크레디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조해진 나머지 외국 인터넷을 찾았습니다. 대만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고, 그래도
일본측 웹사이트에서 상대적으로 정확하여 보이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기재 도중
문자코드에 없는 일본 한자폰트에 한하여 편의상 일부를 한국 한자폰트로 수정하였고
인명은 일본 인명일 경우 현지음으로 대만 인명일 경우 한국음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단, 일본 인명에서 u 단의 장음 표기는 생략합니다)
― 감독
出崎統 (데자키 오사무)
― 원작
鄭問 (정문) : 대만 출신 만화가, 일본 잡지에『東周英雄傳 (동주영웅전)』연재
― 감수
侯孝賢 (후효현) : 유명 영화감독 ? (동명의 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음)
― 각본
阿城 (아성) : 한국 이름이 아니므로, 소설가 겸 극작가 '아청' 감독으로 추측 중
福田善之 (후쿠다 요시유키) : 요주의 인물
― 작화감독
高瀨登 (후루세 노보루)
― 미술감독
河野次郞 (코노 지로)
龜崎經史 (카메자키 케이시)
上久保義博 (카미쿠보 요시히로)
― 제호
孔德成 (공덕성) : 공자 직계 77 대손, 대만 유학계와 한학계의 상징적 존재
― 음악
川村榮二 (카와무라 에이지)
鈴木淸司 (스즈키 세이지)
― 촬영감독
高橋宏固 (타카하시 히로카타)
野口肇 (노구치 하지메)
― 편집
森田淸次 (모리타 세이지)
― 음향감독
山田悅司 (야마다 에츠지 / 에츠시 ?)
―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片山哲生 (카타야마 테츠오)
― 프로듀서
宋穎鶯 (송영앵) : 대만측 PD
閔泳文 (민영문) : 한국측 PD
大路幹生 (오지 미키오) : 일본측 PD
― 제작총괄
십篤男 (츠지 아츠오) : '십' 은 일본한자, 책받침에 十 자 (통칭 네거리 십)
吉田圭一郞 (요시다 케이이치로)
― 목소리 출연 (일본판)
공자 : 風間杜夫 (카자마 모리오)
자공 : 玄田哲章 (겐다 텟쇼)
증삼 : 江原正士 (에하라 마사시)
자로 : 大塚明夫 (오츠카 아키오)
남자 : 池田昌子 (이케다 마사코)
絲博 (이토 히로시)
小島敏彦 (코지마 토시히코)
丸山詠二 (마루야마 에이지)
澤木郁也 (사와키 이쿠야)
小室正幸 (오모로 마사유키)
大友龍三郞 (오토모 류자부로)
中村秀利 (나카무라 히데토시)
おぼ たけし (오보 타케시)
鈴木琢磨 (스즈키 타쿠마)
永野廣一 (나가노 히로카즈)
山口由里子 (야마구치 유리코)
三木眞一郞 (미키 신이치로)
나레이션 : 鈴木瑞穗 (스즈키 미즈호)
― 연출
早乙女有作 (사오토메 유사쿠)
― 원화
山本泰一郞 (야마모토 야스이치로)
佐藤雄三 (사토 유조)
原田俊介 (하라다 슌스케)
― 동화 / 채색 / 배경
한신 코퍼레이션
서울 키즈
― 색채설정
小針裕子 (코바리 유코)
淸水千世子 (키요미즈 치요코)
― 촬영
타카하시 프로덕션
― 음향제작
하프 H·P 스튜디오
동경 텔레비센터
秦昌二 (하타 쇼지 ?)
― 음향효과
絲川幸良 (이토가와 유키요시)
― 애니메이션 제작
이미지 케이
C & D 土屋貴彦 (츠치야 타카히코)
木川田淸一 (키다카와 세이이치)
― 국제공동제작
PTS
KBS
― 공동제작
NHK 엔터프라이즈 21
― 제작·저작
NHK
이상과 같았습니다.
제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그것도 잔인할 만큼, 가장 최악의 형태로.
...참담합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본인들로 도배될 수가 있는지 ?
그나마 유일한 예외라고, 그래도 오랫동안 한국 만화계를 묵묵히 떠메고 와 주셨던
민영문 PD 님을 제외하면 다른 한국 인명이라고는 단 한 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동화제작회사의 이름으로 귀에 익은 '한신 코퍼레이션' 과 '서울 키즈' 가 눈에 뜨일
뿐입니다. 그래도 데이터베이스 제작이라는 면에서는 빠짐없이 꼼꼼히 세심히 하기로
이름난 일본인들인데, 민영문 PD 님의 성함과 대만 스탭들의 이름을 넣어 주었으면서
다른 한국 스탭님들의 성함을 넣는 것을 사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이 만화에 한국 인명이 확인되지 않는 이유는 '일본판 스탭롤에서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밖에 추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대만 인명이라 하여도
정문 작가, 아성 감독, 후효현 감독, 송영앵 프로듀서를 제외하면 나머지 참여스탭은
제목에 붓글씨로 휘호를 맡았다는 대만 동양철학의 종장 공덕성 옹 뿐입니다. 하지만
대만측은 적어도 작품의 '핵심적' 기획에 참여하였습니다. 원작자는 비록 일본인들의
저술을 읽고 일본인들이 재구성한 공자의 이미지상을 가지고 일본 주간잡지에 만화를
연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만화영화도 없고, 아성 감독은 일본인과 함께
각본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공덕성 옹은 타이틀 글씨라도 멋지게 적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사실상 '하청' 밖에 받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 만화 자료를 찾으면 KBS 가 마치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측 자료에는 NHK 의 주도에 KBS 가 협조한 것으로 나오므로, 진실은 모릅니다.
삼국 국립방송 관계자들이 공자의 일대기를 밝힌 만화를 만들기로 결정하고서 정작
유교적인 문화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는 한국에서 '우리의 시각' 을 반영하는
것에는 한 일이 없이 그저 일본과 대만이 시키는 대로 일만 하였다는 현실, 이래서야
사무라이 칼부림 만화 하청을 받아서 일해도 '이것도 우리 만화다' 라고 자랑해도 될
지경이 아닐까 싶어서, 참담한 기분에 마음 속이 갈수록 비참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를 한층 비참하게 만든 것은,
...일본측 각본가 '후쿠다 요시유키' 라는 사람의 이력이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동경대 불문과 출신 극작가, 연출가, 배우' 로 나옵니다만, 이
사람이 집필한 소설과 사극 시나리오의 이름을 보니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사나다 풍운록 (眞田風雲錄)』
『타카스기 신사쿠 유신풍운록 (高杉晋作 維新風雲錄)』
『신극 '충신장' (しんげき 忠臣藏)』
등 '가장 전형적인 사무라이 시대극' 들의 이름이 붙은 작품 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로 치면 '전설의 고향' 류의 괴담 드라마도 자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이해는 갑니다. 그러니까 원작은 보지 않아서 몰라도, 그러니 이미 그와
같은 시각이 원작에 반영되어 있었는지 지금으로써는 알 방법이 없어도, 수없이 많은
공자의 전기 중에서 '무당의 아들' 설을 선택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지금껏
귀신 이야기를 많이 썼으니까 그에 걸맞게 '삶과 죽음의 고뇌' 를 투영하고 싶어져서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서 젊어서는
장의사에서 일하며 죽음과 고투하였다' 라는 시라카와 선생 설을 채택했겠지요. 사실
일본 사극 쪽에는 별 관심도 없지만 척 봐도 알겠더군요. 이 사람은 칼부림 시대극을
만드는 데에는 도가 텄을 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성인 공자의 일생' 같은 것을 각색
하기 위하여 동양의 전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사극을 만들어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젠가 그것을 시도하기 위한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대학에서 동양철학이나 한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만화를 예로 들어서 '애들의 본능이나 자극하는 사무라이 칼부림 나부랭이
그만 봐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라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시겠습니까 ?
그 사람은 "사무라이들이 칼부림하던 시대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변형된 유교사상
이해를 전통으로 하는 일본의 한학자들이 저술한 책을 가지고, 게다가 그러한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사무라이 칼부림하는 사극 제작을 업으로
하고 있을 뿐이지 유교에 대한 소양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극작가 양반이
유교의 시조인 공자에게 '사무라이들이 칼부림하는 분위기' 를 투영하여 만든 물건을
내세워, 그것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우리 것' 이라고 믿고서
사무라이 칼부림 나부랭이를 그만 보자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증거물로
들고나왔다" 라는 말이 됩니다.
그 속에 담겨진 유교사상의 이해가 우리 자신의 전통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만한
배경지식 따위는 갖추지도 않은 채로, 삼국합작만화라는 말에만 속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작자가 작품에 반영하였다고 생각되는 시라카와 교수, 요시카와 교수, 또한
우노 교수 등이 지은『논어』주석을 한번 찾아보았지만, 그 속에는 공자가 칼을 뽑아
휘두르는 장면 따위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당연히 그것은 각본가 후쿠다 씨 (또는 아성 작가일 수도 있지만) 에 의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스러운' 공자의 이미지를 위하여 추가한 장면이라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칼 따위 소품은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 그런 '고정관념' 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전통의 이해를 방해할 뿐이다... 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은 한국의 비극이며, 한국에서 만화를 보는 우리들 모두의 비극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삼국시대에는 불교를 전해주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전해주었다'
라는 사실을 언제나처럼 자랑삼으면서, 그렇게 항상 '무식한 칼잡이 나라' 에 대하여
우리의 문화적 우월감을 고취시키면서, 정작 삼국합작으로 만화영화를 제작할 때에는
기껏해야 제작 기획서에 싸인만 하였다뿐이지, 그 속에 (한국이 일본에 자랑삼을만한
사실상 오늘날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유교' 에 대하여
일본측 스탭들에 대해서도 대만측 스탭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닌 공자의 이미지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 하나 반영하지 못하고, 무식한 칼잡이 후손들이 공부를 해서 새로
만들어낸 공자상을 가지고 대만 출신 작가가 그림을 그려서,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무식한 칼잡이 사극 제작자가 각본을 맡아서는 사무라이 칼잡이 이미지를 투영시켜서
칼부림 액션장면을 잔뜩 집어넣는 연출을 시도했는데, 한국인 스탭들은 합작만화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하청밖에 받지 못했다는, 그리고 그러한 공자의 이미지에 대하여
일언반구 반박조차 내지 못하였다는 이 처참한 현실, 느껴지십니까 ?
그걸 가지고 '우리들의 전통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로도 되살릴 수 있는데
어디서 사무라이 칼부림 만화나 보고 있느냐' 며 큰소리치는 그 무지함, 우리 조상이
전통에 대하여 어떻게 보아 왔으며, 그것이 우리들 세대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색을 거듭하지 않으면서, 정작 다른 사람이
이 만화를 보고 '여기에 등장하는 공자상은 어딘가 우리가 생각하는 공자의 이미지와
어딘가 좀 다른 듯 하다 ?' 라는 의문을 제기하자, 이러한 공자상을 자기가 주워들은
전통에 어떻게든 끼워맞추며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우리들의 문화전통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그것을 이해 못하는 인간이 잘못이라고 우기고 싶어하는 그 우월감.
이러한 만화를 보고서 젊은이들이 '이 만화에 나타난 공자 이미지는 우리가 지금껏
생각하던 공자와는 많이 다르다' 라는 느낌을 가지지 못하였다면, 한국에서 이제부터
일본에 대하여 '우리의 전통' 으로 '유교' 를 드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
한국의 대표적 문화전통을 '유교' 라고 말한다면, 결국『공자전』이라는 만화는 비록
작지만, 동시에 한국 문화계의 현주소를 말해 줍니다. 항상 '武' 스러운 일본을 보고
우리는 '文' 스러운 나라라고 그렇게 자랑삼았건만, 우리가 스스로의 문화전통이라고
자부하는 유교, 그것도 동아시아권에서 벗어나면 보편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어차피
일본 또는 대륙공산정권을 겨냥하여 한국이 문화국임을 주장하는 것에 이용되기 쉬운
유교적 문화전통, 그것 하나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조차 공동제작 만화 안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을 '우리의 문화전통을 잘 살린 명작' 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 진실을 모를 뿐더러, 알고자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제가 말한 고정관념이 어떤 고정관념을 말하는지 아직 파악을 못한 듯 하군요... 세세한 정보 잘 봤습니다. 결론의 단정적인 논지야 공감되지는 않지만, 문화가 있고 소재는 있지만 그걸 구현할 기술력과 마인드도, 자본도, 시장성과 인지성도 갖춰지지 못한 우리나라는 애초에 일본과는 애니계에서 동급 비교가 불가일 정도; 그 정도의 요지는 맞아떨어지는 듯 하군요.. 하지만, 굳이 일본과의 비교로 그런 열등감까지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을 못한다 하여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애니만을 통한 잣대를 적용해선 안 되지요.. 단지 우리나라는 만화가 많이 관심이 없고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열등감 표출 ? 그 전에 인간으로서 '수치' 를 좀 알도록 하세요. 이 작품, 한국에 넘쳐나는 '하청 받아서 그린 작품' 하고 다를 게 없어요. 처음에 기획할 때 이중환 PD 님이 '이런 작품 만들자' 는 것에 참여했다는 것 말고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자랑스러운 우리 작품' 이라고 그렇게 자랑했던 것, 기억 안 나세요 ?
며칠 전까지는 '볼 게 없어서 쪽바리 칼부림 만화를 보느냐 ? 공자전처럼 삼국 합작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훌륭하게 표현해낸 만화도 있다 !' 라고 자랑을 삼았는데, 이 만화 원작, 각본, 연출에 한국 사람이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글을 써 줬더니, "공자전 = 사무라이 인상의 공자가 칼부림하던 작품" 은 "우리 작품이 아니라는 것" 을 가르쳐 줬더니, 아주 인간으로 태어나서 뻔뻔하기가 그지없군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먼저 고쳐야 하고, 잘못 아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부터 깨달아야 하는 법 아니겠어요 ?
네, 열등감 표출이 맞군요.. 왜 그렇게 흥분합니까? 일요스페셜 한중일 합작이라고만 조용히 소개된 걸 본 제 기억으로는 왜 자꾸 그런 과잉반응을 펼치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제가 그때 공자전을 언급했던 이유는 소재의 문제였지 굳이 ' 우리나라 ' 가 만든 고유작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데요? 분명 한국 만화계가 저 정도도 표현 못할 정도고 실질적으로 일본 애니 제작 측에 많이 반종속 되 있다는 현실도 압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마지막 문단의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보세요?
그러니까 그 '소재' 에 있어서도 한국 사람들은 자기한테 있는 소재를 살리려는 시도를 '못' 했다니까요. 그래놓고 삼국합작이라고 이름만 걸어놨고 말입니다. 게다가 그 '소재' 라고 꺼내쓴 공자라는 것조차도 '일본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칼부림 잘 하는 인물로 묘사한' 공자였다는 말이예요. 칼부림 사극 작가가 자기 장기인 칼부림에 맞춰서 공자를 해석해놓은 것을 보고, 그걸 저능스럽게도 '이정도 연출은 있을 수 있다' 라고 우기는 걸 보니까 너무 웃긴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아직까지 그 때 제 반박의 요지를 이해 못하신 모양인데, ' 볼 게 없어 쪽바리 칼부림이나 보느냐 ' 는 다른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일본 애니 중, 사무라이 쪽 내용도 그렇지만 폭력과 결투, 승리, 정복으로 이어지는 승패와 약육강식 지향 일변도 자체를 중심 가치관 축으로 삼는 일본 애니들의 경향성에 대해 경계하는 뜻으로 한 반박이었죠~ 글 잘 봤구요~
네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제 댓글에 대해 해석이 그 뿐이라시니 뭐... 전 결투나 폭력 소재 자체를 부정한 대목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흥분할 문제도 아닌 듯 하군요... ' 구현 ' 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고... 만화는 역시, 문화/역사 보다는 현실 소재 / 미래 소재 에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 그나저나 식객이 애니쪽으로 발전 안된 건 참 아쉽군요..
하여간 내가 이 작품에서 본 것은 '공자 / 유교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논어나 사료에 나오는 것처럼 근엄하게 말만 해도 되는데 꼭 거기다가 칼부림을 집어넣어서 연출을 하는 현실' 이고, 그걸 가지고 "칼부림 만화의 대안책으로 내세우는" 무서우리만큼의 저능스러움이었다, 그겁니다.
저능스러움이 아니라 오해일 뿐... ' 소재 ' 가 ' 줄기 핵심 ' 의 전부일 수는 없지요... 또 공자라는 소재 자체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딱히 ' 칼부림 안티 ' 라는 명목의 취지를 지니는 것도 아니고...;; 더 말하긴 뭣하고, 너무 소재 자체에 대해서 문과 무에 대한 이분법은 하지 말길 바랍니다. 제가 지적한 건 무의 소재 자체보다 무를 통해 추구하는 핵심 코드.. 암튼 어떤 걸 지적하시는지는 알겠어요... 뭐 그래도 ' 공자 ' 라는 포커스와 작품 속에서 비춘 유가 사상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임에는 틀림없더군요... 사실; 삼국지도 만화나 게임 쪽은 거의 일본 작품 허허허;;;;
좋습니다 문무이분법 얘기는 그만 하죠. 핵심 코드부터가 그래요. 여기 나오는 공자상은 '결국 교육으로 돌아선 공자' 인데, 시골에 가보면 왕처럼, 그것도 무슨 忠孝仁義 의 가치를 체현하는 그리스도처럼 보는 할아버지들 아직 많다 이겁니다. 국민학교도 못 나오고 서당에서 글읽던 할아버지들 세대에서는 그게 종교와 과학의 구실을 함께 더한 '세계관' 이었으니까. 그분들 앞에서 "현실에 절망하고 불행한 노인으로 돌아온 공자상" 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으세요 ?
이 물건, 처음 나왔을 때 시골 할아버지들한테 욕 제법 많이 먹었어요. 칼질하고, 권력자한테 무릎꿇고, 자기합리화하고, 뭐 그런 모습 보여줘서 성인을 비하한다고. 지금 40 대 이하 세대는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공자상을 보여줘도 그렇겠거니 하지만 말입니다. 옛날식 꽉막힌 공자상이 좋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인간적인 공자상이 무조건 나쁘다는 소리도 아닙니다 - 하지만 할아버지들 생각하고 젊은 세대들 생각에는 '단절' 이라는 게 있다, 이겁니다. 전통의 단절. 난 그게 더 슬픕니다.
??? 해피엔딩과 승리/성공 종결의 필연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시는 건지? 글쎄요, 그거야 역사적 사실이고... 그 속에 무슨 의도라도 있습니까? 충효인의를 신처럼 숭상하는 할아버지들...? 그분들이 그런 엔딩과 역사에 대해 뭘 부정할 자격이 있을까요? 기독교/천주교 신자들이 예수가 십자가 짊어진 예수의 수난기에 대해 부정하거나 하던가요? 다만, 조선 중기 이후의 유교, 그리고 슈바르츠님이 말했던 ' 우리의 전통 ' 이라 칭했던 그 유교 자체가 전 많이 왜곡된 유교라 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이 작품은 누차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본식 논어 해석을 가지고 만든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유교에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노인들이나 청년들이나 이 만화의 주제를 느낄 수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은 ? 노인들은 이런 식으로 해석을 안 하고, 청년들은 보고 있으면 그냥 덤덤합니다. 그냥 '이런 것도 있었구나' 싶어서. 그래서 슬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소재라는 유교를 가지고 만든 작품에서, 이렇게까지 시청자들 사이에 '세대에 따른 전통과 현대의 단절' 을 느껴야 하다니 말입니다.
조선후기의 유교, 공자와 맹자의 신격화로 모자라 주자까지 신격화된 유교, 왜곡된 것 맞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사무라이들이 칼부림 그만 하게 되니까 일부가 유교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원판이 원래 칼질하던 사무라이들이다 보니까) 왜곡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변질이 좀 됐습니다. 하지만 왜곡이 되든 변질이 되든, 그것이 전통이든 인습이든, 노인들 세대까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본에서는 그게 요즘 애들 세대의 유교 인식에까지 그대로 내려왔는데,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의 유교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접어두고) 그게 맥이 끊겼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후기의 유교든 에도시대의 유교든 정상적인 건 아닙니다. 문제는 좋건 나쁘건 "자기가 지닌 소재를 끌어내서 20 세기말 21 세기초 현대에 계승시킬 수 있는 능력" 입니다. 그게 없어서 유교마저도 일본인들의 해석에 따라가야 하는 현실, 그게 한국의 비극이죠. (그래서 옛날식 유교 이해를 고집하는 이기동 교수가 일본식 유교사상 해석을 표절한 김용옥 교수의 TV 논어강의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김용옥 교수 책에 짜깁기된 일본 논어주석 보면 만화 공자전에서 인용된 내용이 그대로 나오죠)
일본은 성리학을 사무라이 사회에 있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일본색으로 각색된 면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 당대 공자와 그가 제시한 유학의 요결 ' 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린 핵심은 볼만했지요... 비애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결국 ' 우리나라가 바라보고 대하는 만화 ' 자체의 시각과 한계점, 전 오히려 비애의 초점이 이쪽이군요.. 만약 이런 장르나 소재로 한일 합작 드라마나 영화를 했더라도, 우리나라 학계, 여론, 언론, 제작진의 관심과 충실도, 반영도가 그 정도였을지....
막부 직영 학교에서 성리학 강의를 세습으로 하던 하야시 집안의 명성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성리학적 명분주의는 땅에 떨어집니다. 그 이후에 바톤을 이어받은 '고학파' 쪽 사람들 앞에서 성리학 얘기 하면 치를 떱니다. (교조주의 되어버린 조선에서 이쪽 사람들 학설을 인정해준 인물은 사실상 정약용 뿐이지만) 성리학을 가지고 유교를 해석하면, 禮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자는 소리는 죽어도 못 나옵니다.
문화가 있든, 소재가 있든, 그건 상관없어요. 일본이 그걸 잘 구현하는지 구현을 못하는지, 사실 그것도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지금껏 '일본 출신의, 사무라이 칼부림 영화 전문가' 가 자기가 작품에 잘 나오는 '칼부림 잘 하는 사무라이' 이미지에 맞춰서 그린 공자를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만들 수도 있다' 라고 우겨댔다는 겁니다. 이해가 가세요 ?
이 물건, 원작자는 대만 사람, 원작자가 공자상을 그린다고 참고한 책은 죄다 일본 책, 그리고 각본가는 대만 사람과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하청 받아다가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 전통문화를 가지고 훌륭하게 만들어낸 작품' 이라고 우긴 셈이라는 말입니다. 이해되세요 ?
첫댓글 제가 말한 고정관념이 어떤 고정관념을 말하는지 아직 파악을 못한 듯 하군요... 세세한 정보 잘 봤습니다. 결론의 단정적인 논지야 공감되지는 않지만, 문화가 있고 소재는 있지만 그걸 구현할 기술력과 마인드도, 자본도, 시장성과 인지성도 갖춰지지 못한 우리나라는 애초에 일본과는 애니계에서 동급 비교가 불가일 정도; 그 정도의 요지는 맞아떨어지는 듯 하군요.. 하지만, 굳이 일본과의 비교로 그런 열등감까지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을 못한다 하여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애니만을 통한 잣대를 적용해선 안 되지요.. 단지 우리나라는 만화가 많이 관심이 없고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열등감 표출 ? 그 전에 인간으로서 '수치' 를 좀 알도록 하세요. 이 작품, 한국에 넘쳐나는 '하청 받아서 그린 작품' 하고 다를 게 없어요. 처음에 기획할 때 이중환 PD 님이 '이런 작품 만들자' 는 것에 참여했다는 것 말고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자랑스러운 우리 작품' 이라고 그렇게 자랑했던 것, 기억 안 나세요 ?
며칠 전까지는 '볼 게 없어서 쪽바리 칼부림 만화를 보느냐 ? 공자전처럼 삼국 합작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훌륭하게 표현해낸 만화도 있다 !' 라고 자랑을 삼았는데, 이 만화 원작, 각본, 연출에 한국 사람이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글을 써 줬더니, "공자전 = 사무라이 인상의 공자가 칼부림하던 작품" 은 "우리 작품이 아니라는 것" 을 가르쳐 줬더니, 아주 인간으로 태어나서 뻔뻔하기가 그지없군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먼저 고쳐야 하고, 잘못 아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부터 깨달아야 하는 법 아니겠어요 ?
네, 열등감 표출이 맞군요.. 왜 그렇게 흥분합니까? 일요스페셜 한중일 합작이라고만 조용히 소개된 걸 본 제 기억으로는 왜 자꾸 그런 과잉반응을 펼치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제가 그때 공자전을 언급했던 이유는 소재의 문제였지 굳이 ' 우리나라 ' 가 만든 고유작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데요? 분명 한국 만화계가 저 정도도 표현 못할 정도고 실질적으로 일본 애니 제작 측에 많이 반종속 되 있다는 현실도 압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마지막 문단의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보세요?
아 그러게, 그게 '한중일 합작이라고 조용히 소개되었던 것' 을 본 사람이라면, 이게 "우리 전통을 가지고 만든 만화" 라고, 그러니까 "바람의 검심" 같은 만화에 대한 대안책으로 소개해서는 안되었던 것 아니겠어요 ?
제가 바람의 검심의 대안으로 공자전을 제시했습니까? 이건 뭐, 너무 자의적인 추측에 당혹스럽군요...;; 공자전에 대한 제작진 정보쪽에 대해 해박히 풀어 놓은 건 잘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재' 에 있어서도 한국 사람들은 자기한테 있는 소재를 살리려는 시도를 '못' 했다니까요. 그래놓고 삼국합작이라고 이름만 걸어놨고 말입니다. 게다가 그 '소재' 라고 꺼내쓴 공자라는 것조차도 '일본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칼부림 잘 하는 인물로 묘사한' 공자였다는 말이예요. 칼부림 사극 작가가 자기 장기인 칼부림에 맞춰서 공자를 해석해놓은 것을 보고, 그걸 저능스럽게도 '이정도 연출은 있을 수 있다' 라고 우기는 걸 보니까 너무 웃긴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아직까지 그 때 제 반박의 요지를 이해 못하신 모양인데, ' 볼 게 없어 쪽바리 칼부림이나 보느냐 ' 는 다른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일본 애니 중, 사무라이 쪽 내용도 그렇지만 폭력과 결투, 승리, 정복으로 이어지는 승패와 약육강식 지향 일변도 자체를 중심 가치관 축으로 삼는 일본 애니들의 경향성에 대해 경계하는 뜻으로 한 반박이었죠~ 글 잘 봤구요~
대안으로 공자전을 제시한 게 아니었으면, 거기다가 공자전 언급은 왜 한 겁니까. 제일 '칼부림 대신 꺼내쓸 작품다워서' 언급한 것 아니었어요 ?
아 그럼 지금 한국에서 나오는 만화들 중에 "폭력 결투 승리" 내세우는 만화들은 다 죽어야겠군요. 태극천자문 보셨어요 ? 한자왕 주몽 보셨어요 ? 교육용 만화 하나 만드는 데도 싸움질을 동원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예요.
네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제 댓글에 대해 해석이 그 뿐이라시니 뭐... 전 결투나 폭력 소재 자체를 부정한 대목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흥분할 문제도 아닌 듯 하군요... ' 구현 ' 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고... 만화는 역시, 문화/역사 보다는 현실 소재 / 미래 소재 에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 그나저나 식객이 애니쪽으로 발전 안된 건 참 아쉽군요..
하여간 내가 이 작품에서 본 것은 '공자 / 유교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논어나 사료에 나오는 것처럼 근엄하게 말만 해도 되는데 꼭 거기다가 칼부림을 집어넣어서 연출을 하는 현실' 이고, 그걸 가지고 "칼부림 만화의 대안책으로 내세우는" 무서우리만큼의 저능스러움이었다, 그겁니다.
저능스러움이 아니라 오해일 뿐... ' 소재 ' 가 ' 줄기 핵심 ' 의 전부일 수는 없지요... 또 공자라는 소재 자체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딱히 ' 칼부림 안티 ' 라는 명목의 취지를 지니는 것도 아니고...;; 더 말하긴 뭣하고, 너무 소재 자체에 대해서 문과 무에 대한 이분법은 하지 말길 바랍니다. 제가 지적한 건 무의 소재 자체보다 무를 통해 추구하는 핵심 코드.. 암튼 어떤 걸 지적하시는지는 알겠어요... 뭐 그래도 ' 공자 ' 라는 포커스와 작품 속에서 비춘 유가 사상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임에는 틀림없더군요... 사실; 삼국지도 만화나 게임 쪽은 거의 일본 작품 허허허;;;;
좋습니다 문무이분법 얘기는 그만 하죠. 핵심 코드부터가 그래요. 여기 나오는 공자상은 '결국 교육으로 돌아선 공자' 인데, 시골에 가보면 왕처럼, 그것도 무슨 忠孝仁義 의 가치를 체현하는 그리스도처럼 보는 할아버지들 아직 많다 이겁니다. 국민학교도 못 나오고 서당에서 글읽던 할아버지들 세대에서는 그게 종교와 과학의 구실을 함께 더한 '세계관' 이었으니까. 그분들 앞에서 "현실에 절망하고 불행한 노인으로 돌아온 공자상" 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으세요 ?
이 물건, 처음 나왔을 때 시골 할아버지들한테 욕 제법 많이 먹었어요. 칼질하고, 권력자한테 무릎꿇고, 자기합리화하고, 뭐 그런 모습 보여줘서 성인을 비하한다고. 지금 40 대 이하 세대는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공자상을 보여줘도 그렇겠거니 하지만 말입니다. 옛날식 꽉막힌 공자상이 좋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인간적인 공자상이 무조건 나쁘다는 소리도 아닙니다 - 하지만 할아버지들 생각하고 젊은 세대들 생각에는 '단절' 이라는 게 있다, 이겁니다. 전통의 단절. 난 그게 더 슬픕니다.
??? 해피엔딩과 승리/성공 종결의 필연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시는 건지? 글쎄요, 그거야 역사적 사실이고... 그 속에 무슨 의도라도 있습니까? 충효인의를 신처럼 숭상하는 할아버지들...? 그분들이 그런 엔딩과 역사에 대해 뭘 부정할 자격이 있을까요? 기독교/천주교 신자들이 예수가 십자가 짊어진 예수의 수난기에 대해 부정하거나 하던가요? 다만, 조선 중기 이후의 유교, 그리고 슈바르츠님이 말했던 ' 우리의 전통 ' 이라 칭했던 그 유교 자체가 전 많이 왜곡된 유교라 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이 작품은 누차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본식 논어 해석을 가지고 만든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유교에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노인들이나 청년들이나 이 만화의 주제를 느낄 수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은 ? 노인들은 이런 식으로 해석을 안 하고, 청년들은 보고 있으면 그냥 덤덤합니다. 그냥 '이런 것도 있었구나' 싶어서. 그래서 슬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소재라는 유교를 가지고 만든 작품에서, 이렇게까지 시청자들 사이에 '세대에 따른 전통과 현대의 단절' 을 느껴야 하다니 말입니다.
조선후기의 유교, 공자와 맹자의 신격화로 모자라 주자까지 신격화된 유교, 왜곡된 것 맞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사무라이들이 칼부림 그만 하게 되니까 일부가 유교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원판이 원래 칼질하던 사무라이들이다 보니까) 왜곡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변질이 좀 됐습니다. 하지만 왜곡이 되든 변질이 되든, 그것이 전통이든 인습이든, 노인들 세대까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본에서는 그게 요즘 애들 세대의 유교 인식에까지 그대로 내려왔는데,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의 유교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접어두고) 그게 맥이 끊겼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후기의 유교든 에도시대의 유교든 정상적인 건 아닙니다. 문제는 좋건 나쁘건 "자기가 지닌 소재를 끌어내서 20 세기말 21 세기초 현대에 계승시킬 수 있는 능력" 입니다. 그게 없어서 유교마저도 일본인들의 해석에 따라가야 하는 현실, 그게 한국의 비극이죠. (그래서 옛날식 유교 이해를 고집하는 이기동 교수가 일본식 유교사상 해석을 표절한 김용옥 교수의 TV 논어강의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김용옥 교수 책에 짜깁기된 일본 논어주석 보면 만화 공자전에서 인용된 내용이 그대로 나오죠)
일본은 성리학을 사무라이 사회에 있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일본색으로 각색된 면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 당대 공자와 그가 제시한 유학의 요결 ' 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린 핵심은 볼만했지요... 비애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결국 ' 우리나라가 바라보고 대하는 만화 ' 자체의 시각과 한계점, 전 오히려 비애의 초점이 이쪽이군요.. 만약 이런 장르나 소재로 한일 합작 드라마나 영화를 했더라도, 우리나라 학계, 여론, 언론, 제작진의 관심과 충실도, 반영도가 그 정도였을지....
일본의 성리학 수용은 1600 년대 말을 피크로 사라집니다. 1700 년대에 들어온 이후의 성리학은 막부에서 보호만 해줄 뿐, 오히려 '일본식 해석' 을 중시하는 학파의 발언력이 더 크죠.
막부 직영 학교에서 성리학 강의를 세습으로 하던 하야시 집안의 명성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성리학적 명분주의는 땅에 떨어집니다. 그 이후에 바톤을 이어받은 '고학파' 쪽 사람들 앞에서 성리학 얘기 하면 치를 떱니다. (교조주의 되어버린 조선에서 이쪽 사람들 학설을 인정해준 인물은 사실상 정약용 뿐이지만) 성리학을 가지고 유교를 해석하면, 禮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자는 소리는 죽어도 못 나옵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 그럼 밑에서 5 번째 문단을 정독하세요.
가능하다면 일본 웹에서 가져온 자료부터 읽고, 그 밑에 있는 진실 (특히, 이 만화 '각본가' 가 뭣하는 사람인지) 쭉 읽도록 하세요.
문화가 있든, 소재가 있든, 그건 상관없어요. 일본이 그걸 잘 구현하는지 구현을 못하는지, 사실 그것도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지금껏 '일본 출신의, 사무라이 칼부림 영화 전문가' 가 자기가 작품에 잘 나오는 '칼부림 잘 하는 사무라이' 이미지에 맞춰서 그린 공자를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만들 수도 있다' 라고 우겨댔다는 겁니다. 이해가 가세요 ?
이 물건, 원작자는 대만 사람, 원작자가 공자상을 그린다고 참고한 책은 죄다 일본 책, 그리고 각본가는 대만 사람과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하청 받아다가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 전통문화를 가지고 훌륭하게 만들어낸 작품' 이라고 우긴 셈이라는 말입니다. 이해되세요 ?
아무튼, 일전에 쓸데없이 감정 언쟁으로 번지게 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