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옥
전의식* 외
막 깨어난 병아리를 밟은 적 있다 여섯 살 적 병아리를 따라 뛰다 일어난 사고였다 엄마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치셨고 증조할아버지 기다란 담뱃대는 엄마 어깨를 내리치셨다 병아리가 사람보다 중허냐, 호령하시며 눈꺼풀 파르르 떠는 어린 생명을 얼른 들고 뒤꼍으로 돌아나가셨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증조할아버지 뒷모습을 쫓으며 맞은 아픔보다 더 아릿한 아지랑이가 내 작은 몸 전신에 퍼지던 그 봄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싸리 비질 자국이 정갈한 마당에서 어미 닭을 쫓아 뽀르르 달려가던 노랑 솜털 뭉치가 여적지 꿈에 나타난다
*전의식(前意識) : 정신분석학에서, 비교적 쉽게 의식이나 기억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현재는 억압되어있는 잠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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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가 내릴 때
물빛 호수공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나른한 등짝 냅다 휘갈긴다
허리까지 휘도록 흠씬 팬다
오리 떼와 물닭
수초 사이로 재빠르게
숨어든다
훅 뱉어내는 물비린내
놀라 동그래진 물결
햇볕 속 깊어지던 졸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죽비
저 호수 속에
사는 것들
엄청 가슴 졸이겠다
❙이경옥
2020년 《시와소금》 신인상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혼자인데 왜, 가득하지』가 있다. 마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