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1회 응씨배 이야기 첫날이니 한편 더 올릴게여.
재미있는지 궁금하군요.. 1988년 당시 바둑계엔 한국바둑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한국대표로 조훈현이 단신으로 참가했습니다. 비록 조치훈이
있긴하지만 조치훈은 일본기원 소속이져.
자.. 조 훈 현 그가 일궈낸 수확이 어떤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으셧으면해여. 조훈현이
사실 이때 응씨배를 제패하지 못했다면 현재 바둑최강국의 자리는 아마 벌써 다른
국가에서 차지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 즐겁게 읽길 바라면서.... start..
출처 : 바둑tv의 박치문 논설위원 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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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대개 평범하다. 흔한 우연의 한 조각처럼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운명이 그 순간 뒤바뀐 것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잉창치배 '8강전'이 그랬다. 이 시합에서 조훈현 9단은 절벽에서 추락했으나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기막힌 운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한 조각의 행운이 조훈현이란 잠룡에게 기회를 주었다. 머지않아 세계를 휩쓸어 버리게 될 '한국바둑'의 대서사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8강전에서 曺 9단의 상대는 고바야시 9단이었다. 중반 무렵 형세는 고바야시의 대우세.
모두 끝났다고 말하고 있을 때 曺 9단이 들소처럼 저돌하기 시작했다. 기세에 질려 고바야시는 한발 한발 후퇴했고, 조훈현은 신들린 듯 계속 밀고 들어갔다. 대군 속을 필마단기로 휘젓는 모습에 장내는 경탄했다. "승부는 어차피 지겠지만 대단한 투혼"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어어' 하는 사이에 승부가 넘어갔다. 덤 8집의 應씨룰로 계가하니 曺 9단이 1과 6분의 5집을 이기고 있었다.
曺 9단(조훈현)은 후지쓰배에서의 패배를 이렇게 설욕했다. 이겼지만 간담이 서늘한 승리였다.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고, 우승컵은 구름다리 너머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듯 느껴졌다. 조치훈 9단은 1회전에서 호주 대표 우쑹성 9단을 1집 차로 젖혔으나 8강전에선 중국의 별 녜 웨이핑 9단에게 완패했다. 후지쓰배 우승자 다케미야 9단은 중국의 복병 장주주(江鑄久) 9단에게 져 1회전에서 탈락했고, 江 9단은 林 9단에게 꺾였다. 60대의 노장 후지사와 9단이 무섭게 분전, 중국의 2인자 마사오춘 9단, 일본의 '킬러' 가토 9단을 잇따라 제압했다.
절대강자는 없었다. 0.01초로 승부를 내는 서부극의 총잡이들처럼 승패는 예측불허였다. 그래도 우승후보는 항시 녜 웨이핑 9단, 趙 9단(조치훈), 고바야시 9단이 꼽혔다. 부조의 늪을 헤매고 있지만 조치훈은 승부사들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을 각인한 신화적 존재였다. 고바야시는 일본의 기성, 명인을 움켜쥔 현실의 1인자고, 껄껄 웃는 녜 웨이핑은 잠재력이 무궁해 보였다. 오직 조훈현의 실전스승 후지사와만이 "조훈현이 최강이다. 그가 우승한다"고 말했다. 그 우승후보 네 명이 2회전에서 격돌, 두 명이 떨어져 나갔다. 승자나 패자나 실력차는 없었다. 단지 그 날의 승부였다. 대국 후의 만찬에서 조치훈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내가 바보야. 내 바둑은 끝났어." 충격에 넞어 패배를 한탄하던 趙 9단(조치훈)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이 투혼의 승부사도 세계대회 2연패라는 충격 앞에 허물어졌다. 그는 조훈현을 붙들고 "외로워요"하며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저승문턱까지 갔다가 되살아온 조훈현은 새벽까지 趙 9단을 달래야 했다. 준결승의 대진은 '曺-林' '藤澤-녜웨이핑'. 장소는 타이베이 아니면 한성(중국은 서울을 꼭 한성이라 부른다), 3번기로 석달 안에 치른다고 주최측은 발표했다.
조훈현은 한국의 얼굴이고 녜웨이핑은 중국의 얼굴이다. 그렇다면 후지사와와 린하이펑(林海峯)은 누구인가. 거금이 걸린 應씨배가 시작되었을 때 쾌재를 부른 사람은 후지사와였다. 일본의 제1기 명인. 60년대, 거의 10년에 걸쳐 당시 일본 최강 사카다와 밀고 밀리는 승부를 펼치다 끝내 패퇴했다. 술과 도박이 문제였다. 경륜과 경마에 깊이 빠져 빚에 몰이고 있었다. 대국날이면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모조리 이겨야 빚을 갚을 수 있었으나 술을 끊고는 살 수 없었다. 괴물 후지사와. 그는 괴물다운 목표를 설정했다. "1년에 40일은 술을 끊는다. 그 동안 네 판만 이긴다." 기량과 감각이 화려무쌍, 최고의 경지에 달해 있는 후지사와는 자신의 호언대로 1년에 네 판만 이겨 일본 최대타이틀인 기성을 6연패했다. 그 돈으로 빚을 조금씩 갚고 경륜과 술을 즐기며 유명한 '슈코연구회'를 꾸려 나갔다. 1983년 막강한 조치훈이 도전해 왔을 떄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치훈이 강하지만 그는 굴뚝에서 나온 연기를 두 가닥밖에 보지 못한다. 나는 세 가닥을 본다. 바둑에 기술 이외의 무엇이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대결은 후지사와의 3연승. 그러나 바로 이 고비에서 후지사와는 위암진단을 받는다. 노장의 정신은 지쳐버렸고, 이후 역전 4연패. 장난기 짙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예(藝)의 정신을 동시에 지닌 대승부사이면서 한편으로 술과 도박에 탐닉해 온 이 괴인의일대기도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서울에 나타난 63세의 후지사와는 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암수술로 몸은 장작개비처럼 마르고 얼굴엔 검버섯이 피었지만 안광만은 형형했다. 오직 눈만 살아 있는 듯 보였는데 그는 그 눈에 애정과 장난기를 듬뿍 담은 채 曺 9단에게 말했다. 너하고 나하고 결승에 오를텐데··· 양보할 수는 없고 열심히 해 봐야겠지.··· 12세 때부터 두 점으로 무수히 지도를 받았던 조훈현이다. 후지사와는 曺 9단의 실전스승으로 바둑이 뭔가를 가르쳐 온 사람이고, 曺 9단의 재능을 술보다 사랑했던 예인이다. 曺 9단은 선생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큰 것을 노리고 왔다. 우선 돈이 필요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전력을 다하면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천만송이의 꽃이 일시에 피어나듯 화려무쌍한 바둑, 철학과 인생이 담긴 후지사와의 바둑, 그것을 죽기 전에 보여주고 싶었다. 曺 9단은 훗날 말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렸을 때 기타니 도장에선 정예병들이 자라고 있었고, 나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떄 후지사와 선생이 나를 가르쳐 줬다. 바둑에 지면 나는 선생의 어깨를 3분간 주무르는 벌을 받았는데, 그 어깨는 이미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그러나 曺 9단에게도 반드시 우승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준결승에서 林 9단을 꺾을 자신은 없었다. 林은 사카다 시대를 끝장낸 강자. 曺는 알아주지 않는 변두리 한국바둑의 대표. 한국바둑이 살아나려면 꼭 이겨야 했으나 曺 9단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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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은 낼 올릴게영.. 좋은밤 되세여..
첫댓글 應씨룰이 뭔지...등등 문외한인 저에겐 생소한 단어들이 많습니다. 다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감동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더군요.
네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변방에서 중심으로 ! 그 상서로운 기운이 꿈틀대며 전설의 인물들 임해봉 오청원 후지사와 그 사이에서 조훈현을 감싸도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