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심(생명)9701
162.2x130.3cm(100호)
Acrylic on Canvas
환쟁이 남학호 선배님께
돌은 변하지 않는데 나는 늙어간다.
그래봤자 결국 슬픔은 환한 그리움으로...
요 며칠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수천 개의 조약돌이 잠기고 드러나며 부딪히는 소리와 풍경. 근데 낯설지가 않더군요. 선배님도 아시려나. 고래불 백사장에 발자국을 새기고 끄트머리로 돌아서 가면 병곡2리에서 백석 해변까지 온통 조약돌 지천이었다는 거. 그 바다에서 갈매기 눈처럼 어여쁜 내 친구 정임이와 놀던 꿈이 사나흘로 이어집디다.
정임이한테는 긴 머리를 한 이모와 도회에서 기타를 배우고 돌아온 삼촌이 있었죠. 아마 제 나이 열다섯 살 가을 어느 저녁일 겁니다. 평상에 앉아 삼촌은 기타를 치고 이모는 노래를 부르는데 때마침 달빛이 순식간에 차오르더군요. 동시에 돌무더기들이 내는 자갈돌 이는 소리에 사춘기 소녀의 숨이 막히더라고요. 낯선 것들이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 내던 아름다움을 처음 봤죠. 그냥 친구랑 무작정 용왕바위를 지나 자갈밭으로 뛰었죠 뭐. 그 후로 어쩌다 보니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윤슬에 빛나던 조약돌은 아직도 잊히지 않더군요.
그리고 40여 년은 흘렀나. 선배님의 화실에서 그림을 보는 순간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화인. 고향 바다에서 뒹굴던 조약돌을 도시의 작업실에서 만났으니 오죽이나 반가웠겠어요. 선배님이 그리는 세상을 한참 생각했더랬지요. 사진인 듯 실물인 듯 구분되지 않는 실경의 돌을 보면서 화폭에서 끄집어내서 만져보고 싶었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선배의 고향이 고래불 명사십리 병곡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스레 돌이라는 매개체에 천착했겠다 싶더군요. 숙명 같은 게 아닐까요. 둥긋한 조약돌의 붓 터치를 형상화한 듯 돌의 렌즈로 돌의 세계를 만났지요. 물결과 돌무더기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능선. 계절마다 돌의 색빛이 달라진다는 것도 익숙했을 테니. 사람들은 가끔 돌의 색채가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채이고 무너지고 깎이다 조약돌로 환생한 그림에서 풍부한 색채의 향연을 봤습니다.
대도시 그리고 사거리에 우후죽순으로 솟은 빌딩들, 약국과 산부인과와 대형병원의 장례식장들이 화실 창밖으로 놓였던 풍경.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존재하는 바깥과 무생물의 돌에 생명성을 그려 넣는 안의 풍경을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생로병사가 떠오르더군요. 억지 앞에 붙들어 두는 부자연스러움과 그냥 고향의 돌들을 살렸을 뿐인데 생명은 외려 담장 안에 있더라는 사실. 어느 순간이었을까요. 나비와 돌이 나누는 대화가 수런수런 들렸고 그 수런거림에는 영덕의 발음 억센 대화까지도 묻어 있었다고나 할까요. 풍어제와 멸치떼 후리소리까지 들리더군요. 그러다가 나는 간곡해 보이는 돌탑의 그림을 만났습니다. 기도탑이 아닐는지요.
내가 작품을 바라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언제인지 아세요? 혼자일 때 위로가 되는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에요. 그것은 단순 재미를 넘어선 애틋함과 스산함일 수도 있지만요. 고향의 온갖 고난을 몸으로 겪어 냈을 돌의 몸에 심장을 넣는다는 거. 문드러지게 아름답습니다.
비릿한 돌, 억척스러운 돌. 마늘각시 같은 돌, 노란 나비, 얼룩 나비, 흰 나비와 눈을 맞춥니다. 그리움일까요. 위로일까요. 그들이 내게 건네는 전언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뜨끔합디다.
문득 선배님과 저와의 중학교 선후배라는 십여 년의 간극을 가늠해봅니다. 선배가 2층 교실에서 보았던 동해의 물빛, 파도, 돌무더기, 측백나무 울타리 숲, 고목이 된 향나무, 정물화로 굳은 교사(校舍), 신작로의 백양나무들, 눈밭에 푸릇하게 돋아난 보리밭을 저도 보며 자랐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거슬러 왔을 생각을 하니 물리적인 시간이 심리적인 시간 안에 함의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까까머리 선배님도 단발머리 후배도 한세월을 거슬러 오는 동안 고향의 돌들은 대처로 나왔더라고요. 공간이동이자 예술의 확장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도회의 세련미를 담아 재탄생한 거죠. 자연 순환의 원리겠죠. 그러기에 복사꽃 향기를 머금었거나 칠보산 골바람까지 품고 있었던 게지요. 색채 심리를 통해 감정을 치유할 수 있다면 이런 작품이 아닐까요.
잃어버린 나를 찾아 오십천의 은어가 회귀하듯 선배님이 이번 고향 영덕에서의 전시 소식이 무릉도원을 만난 듯 기뻤습니다. 그동안 각종 매스컴이나 신문엔 '석심(石心'생명'이라는 명제로 일관된 연작을 그리는 돌 화가, ‘시각적 리얼리티의 정감적(情感的) 변용’의 화가라고 소개될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거든요. 전시장을 찾을 때마다 반겨주던 선배님의 웃음도 괜스레 영덕인들의 웃음 같았고요.
이제야 말하지만, 선배님의 조약돌이 안겨준 유토피아에 위무 받는 날은 종일 행복했다는 거 아시려나. 그리고 환쟁이라는 말, 화가를 낮잡아 보는 말이 아닌 우리 곁에 영덕인의 숨구멍을 뚫어주는 사람이라는 거. 그런 걸 보면 예술이 어떻게 사회와 관계하는지가 중요한가 봐요. 그래서일까요. 얼핏 봐도 선배가 추구하는 미학의 뿌리는 결국 고향의 그리움과 일상의 팍팍한 현실을 매개체로 풀어 냈다는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그 과정에 조약돌이 징검돌 역할을 했으니 이보다 큰 보시가 있으려나. 도처에 널린 게 벼랑입디다. 한 치 앞에 외로움이 첩첩산중으로 쌓입디다. 자주 황폐와 사막을 경험하곤 하지요. 이 모든 불안으로부터 구원해 줄 작가의 목소리가 그림에 담기지 않았나 싶네요. 어떤 주술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돌 안의 슬픔이 오롯이 보일 때도 있더군요. 돌은 변하지 않는데 나는 늙어간다는 느낌. 그래봤자 결국 슬픔은 환한 그리움으로 번져오더라고요.
첩첩산중 칠보산 자락 아래 깃든 사람들. 망망대해 바다에서 처절하게 산 사람들. 고립과 척박의 상징이었던 영덕, 그럼에도 바다와 산과 평야를 가져 황금 지형을 가진 영덕. 그 땅에 돌을 사랑한 작가가 나의 선배인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영덕의 속살을 만지는 현재진행형일 것이라 믿습니다.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나비. 나는 저 조약돌 위에 사뿐사뿐 나앉은 나비가 날아갈 곳이 어디메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비의 뒤를 따라 자꾸 나풀거리고 싶습니다. 장육사 절 마당 맨드라미에 앉았다가 병곡 바닷가 어느 양철 대문 앞에 새들하게 고개 숙인 봉숭아 꽃잎에도 앉겠지요. 그러다가 간절한 돌탑의 이마에 앉아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하나가 되는 나비. 뜨겁게 뜨겁게.
-후배 윤영 수필가의 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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