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0. 주일예배설교
로마서 12장 1~2절
계절의 변색과 신앙의 변색
■ 단풍이 가장 먼저 든다는 설악산입니다. 소식에 의하면, 설악산 위쪽부터 단풍이 들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머잖아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단풍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삼삼오오 단풍놀이 계획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단풍을 생각하게 되는 변색의 계절에, 문득 ‘신앙의 변색’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졌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의 색이 변화를 갖는 변색은 정상입니다. 자연의 법칙이니까요. 그렇다면 신앙의 변색도 자연의 법칙일까요? 대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두 개입니다. 신앙의 성장으로서의 변색 혹은 변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자연의 법칙이지만, 신앙의 성장/변색/변화는 자율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자율의 개념은 늘 상반(相反)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기대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이를 ‘순종의 신앙’ 또는 ‘신앙의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대하시는 것이니 자연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주체적이기에 자율적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앙의 성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 색깔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더불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 추구해야 할 신앙의 변색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은 복음증언서 중 최고의 책인 ‘로마서’의 끝부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은 치밀하고 정교한 복음의 증언을 길게 마치는 중에 제시한 복음적 삶의 권고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로마서의 농축된 권면 혹은 중심 권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긴 복음의 증언을 마친 뒤에 내놓은 권면은 무엇인가요?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 권면, 즉 로마서의 농축된 권면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날 것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몸을 산 채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날 것의 표현으로 보니 무시무시하군요. 더욱이 이것은 털끝 하나 남김없이 통째로 드리라는 의미이니 어마 무시합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산 채로, 통째로 드리는 것이 마땅치 않은가요? 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한 우리라면, 내 몸을 산채로, 통째로 드리라는 것은 어마 무시한 요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알아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표현이 너무 카니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좀 순화해볼까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자 일상의 삶인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내 모든 이상(理想)을 포함해 사소한 일상(日常)까지도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물”로 사는 삶입니다. 이 삶을 살라는 것이 로마서의 핵심 권면이자 중심 권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태도를 “예배”로 승격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신앙고백 행위입니다. 최고의 경배와 찬양 행위가 있는 신앙고백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일상의 삶을 낱낱이 통째로 드리고 맡기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최고의 신앙고백 행위입니다. 그러니 “영적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매일의 일상을 통째로 드리는 것, 전적으로 맡기는 것,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 바로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바로 이 행위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 오늘 본문은 친절하게도, 이러한 “영적 예배”의 삶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안내를 합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절은 “영적 예배”의 삶에 대해 세 가지를 안내합니다. 첫 번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입니다. 두 번째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안내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입니다. “이 세대”는 ‘이 시대의 풍조’입니다. 또는 ‘이 시대의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이 안내는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아무 생각 없이 동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신앙인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좋은 것이라면, 이런 스며듦이 반갑지만, 그렇지 않고, 특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문화가 아니라면, 반갑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의 모든 문화를 거룩한 긴장감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실지, 기뻐하실지, 그리고 온전하게 여기실지를 놓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문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순응하는 일은 당장 삼가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는 시대 분석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실지, 기뻐하실지, 그리고 온전하게 여기실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리고 배제와 포용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안내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 안내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은 ‘내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내가 이 시대의 문화에 생각 없이 순응하고자 했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나의 생각의 태도, 사고방식을 바꾸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시선 고정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변화입니다. 하나님께 시선 고정을 하면, 속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내적 변화는 외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가져올 것이고, 이 변화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에 결코 동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역으로 이 시대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안내의 의미입니다.
세 번째 안내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우선, 이 시대의 문화에 생각 없이 순응하지 않는 데서부터 이 작업은 시작됩니다. 과연 이 문화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인지, 마음에 드시는 것인지, 과연 하나님 나라에 맞는 것인지를 따져 묻고 깊이 고민하는 신앙적·신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영적 분별 작업, 신앙적 분간 작업이 주는 거룩한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문화를 통해 우리의 어떤 믿음의 성숙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고는 성화를 향한 우리의 ‘거룩한 한 수고’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한 수고를 통해 찾아낸 하나님의 뜻이라면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우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거기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더한층 불일 듯 일어날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변화는 주님께서 주도하십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분별의 작업을 마치고 그 판단에 따라 순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변화의 주도권은 성령의 불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늘 여러분을 미숙한 수준으로 끌어 낮추려 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멋진 성숙을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 참으로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에게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십니다. 이 시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 구하려는 여러분의 삶의 태도를 포함해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시대의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추호도 갖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적 예배자입니다.
우리를 기르는 것은 이 시대의 문화가 아닙니다. 우리를 기르는 분은 이 시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멋진 성숙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어떤 문화적·상황적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성숙성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늘 여러분을 미숙한 수준으로 끌어 낮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문화는 여러분을 문화의 종속자로 전락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2의 바벨탑을 쌓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기에 응하는 성숙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을 기꺼이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자 일상의 삶인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기꺼이 통째로 드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이상(理想)을 포함해 사소한 일상(日常)까지도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 영적 예배를 드려야 멋진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모든 삶을 기꺼이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시는 이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이 시대의 문화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삶을 통째로 맡기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시대의 분변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멋진 신앙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일상의 삶을 매일 통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의존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계절의 변화가, 상황의 변화가 여러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을 주도하는 삶이길 소망합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모든 시선이 늘 하나님께만 고정되어야 할 ‘영적 예배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