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학원이 끝나면 돌아와서 대충 저녁을 먹고는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한손으로는 컴퓨터를 켜고 다른 한손으로는 아이패드에 있는 카카오톡을 연결한다. 컴퓨터에는 몇 개의 앱이 떠 있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왔으니 피곤할 것 같아서 “좀 쉬지 그러니?”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이게 쉬는 거야”라는 여섯 글자짜리 대답이 돌아왔다. 썩 예의바른 대답은 아니지만 중2이기에 너그럽게 이해했다. 대신 마음속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여러 개의 화면을 보면서 수많은 친구들과 바쁘게 연락하고, 정신없이 정보를 보고 듣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에게 쉬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내 딸의 행동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앞서 말했듯이 1998년의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가 떠오르는가?
인터넷상의 글들을 보면, 이제는 ‘얼굴에 팩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폰으로는 트위터를 한다’와 같이 3~4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장면이 휴식으로 설명된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다가 ‘그만 자야지’ 하고는 컴퓨터의 파일을 휴대폰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본다. 그게 쉬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행태를 이해 못한다는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 일요일에 모처럼 쉴 때는 TV 프로그램 중 마음에 드는 걸 태블릿PC에 다운로드받아서 본다. 아니, 듣는다. 프로그램 동영상을 틀어놓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 심지어 휴대폰으로 웹서핑과 메신저를 번갈아 확인한다. 나도 3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 바쁜 손놀림과 수많은 네트워킹, 이 모든 것이 오늘날의 ‘휴식’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의 가장 내밀한 경험인 휴식마저 변화하는 지금, 당신의 비즈니스는 이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있는가?
―1장 허상 : 당신의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
〈마녀사냥〉프로그램을 기획할 단계에 담당 PD가 내게 자문을 구한 적 있다. 과감한 포맷이니 될 것 같은지 아닌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난 무조건 된다고 했다. 왜 되냐고? 그 프로그램이 현재 20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케팅이 무엇인가 하면, 이미 있는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 없는 것을 억지로 상상해서 만들려다가 실패하는데, 이미 있는 것을 건드려주면 실패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 사람들이 암암리에 실천도 다 하고 있는데 차마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금기를 깨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20대 청춘들의 머릿속은 온통 사랑과 연애로 가득하고 열심히 실행에 옮기는데, 그런 이들에게 순결을 강요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괜찮아, 다 해~’ 하며 유쾌하게 풀어내니 20대들이 기뻐하며 앞 다퉈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아닌가. 더욱이 기성세대들의 눈에도 맑고 성실하고 건강해 보이는 세칭 유명 대학의 학생들이 나와서 본인의 연애담을 간증하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나 한다는 ‘까진 애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불식시키며 당당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마녀사냥〉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그들이 주류가 아니다. 어제까지 우리의 상식이었던 것이 오늘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닌 숨 가쁜 세상이다. 우리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탈의 지점을 찾아내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1장 허상 : 당신의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상대방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얼른 가서 팔라고 임원은 팀장을, 팀장은 팀원들을 닦달한다. 당장 달성해야 할 분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기 목표는 기업 사정이고, 소비자는 그 물건이 필요 없으니 기업을 문전박대한다. 그러니 문전박대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팔고 싶을 때 파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부터 관찰해야 한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지름신’이 강림하는 시간대는 오전 11시, 오후 2시, 밤 9시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 시간대에 유독 ‘지르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일과 시간에는 일하는 틈틈이 딴 짓을 하며 지르는 것이라면, 퇴근해서 씻고 하루를 정리하는 9시부터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는 으레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서 돈을 버는지 회의가 들면서 내 인생이 억울해진다. 그래서 날 위해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지른다. 두 번째 위기는 술 마시고 들어온 새벽 1시에 온다. 이때는 밤의 감성과 알코올의 합동공격이 절정에 이르므로 아무도 신의 강림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면, 할인쿠폰은 밤 9시와 새벽 1시에 주어야 할 것이다. 너무 일찍 주면 잊어버리고, 매일 주면 버리니 주의할 것. 이처럼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물론 그 ‘때’란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다. 그들의 행동을 잘 관찰했다가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면 된다.
― 2장 관찰 : 상상하지 말고 관찰하라
샤오미의 스마트폰은 아이폰의 절반 가격도 안 된다. 아이폰6의 64기가 모델이 749달러일 때 샤오미Mi4는 399달러였다. 샤오미의 보급형 모델인 홍미노트는 그것보다도 더 싸서 130달러에 책정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제품들이 모두 팍스콘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파는데 가격이 6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하나다. 아이폰이 쿨해서다. 스펙이 충분히 훌륭한 제품들과 경쟁하면서 4배 넘게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애플이 쿨하기 때문이다.
어떤가. 쿨한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환금(換金) 가치가 있는 속성이지 않은가. 쿨하면 비싸게 팔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샤넬은 쿨하다. 쿨하다는 것은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멋진 것이고, 결정적으로 비싼 것이다. 그런데 CEO가 쿨하지 않다면, 그것은 회사의 재앙이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길이 하나밖에 없다. 쿨해지거나 그만하거나. 그런데 한국의 상당수 기업은 제왕적 CEO가 결정을 다 한다. 제품개발부터 마케팅전략, 디자인, 포장, 심지어 로고까지 일일이 다 정한다. 특히 오너 경영자들은 설립자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 누구도 감히 오너의 의견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분의 감각이 쿨하지 않으니 기업 활동이 쿨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기업에 갈 때마다 오너 경영자들에게 말한다. 모르는 것은 하지 마시라고. 쿨한 게 뭔지 모르면서 쿨하게 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쿨함을 대입하지 말고 대중의 쿨함을 차용하면 된다. 섣불리 상상하지 말고 빌려오는 것이다. 특히 누구에게서? 젊은 사람들에게서. 언제나 젊은 사람이 그다음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욕망하고 감각하는 것을 끌어오면 비즈니스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3장 변주 : 지금의 상식을 차용하라
서울대 산업공학과의 조성준 교수는 내게 가르침을 주신 분이기도 한데,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1년 이내에 그만둘 직원 찾기’다. 기업들의 내부 데이터를 분석해 빨리 그만둔 직원들의 패턴을 파악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첫째, 멀리 사는 사람. 입사할 때 “집이 먼데 다닐 수 있나요?”라고 면접관이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네, 저는 얼리버드입니다”라고 대답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 한국의 신입사원들은 일찍 퇴근할 수가 없다.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다 퇴근한 다음에 그들이 내준 과제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오밤중인데, 신입사원이라고 출근은 또 일찍 해야 한다. 안 그래도 힘든데 출퇴근에 4시간을 쓰고 나면 잠을 못 자니 체력이 달려서 오래 못 다닌다. 둘째, 집은 가깝더라도 통근수단이 애매한 사람들은 빨리 그만둔다. 버스를 3번 갈아타야 하면 관둔다는 것이다. 셋째,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반대로 5개 이상의 소셜 네트워크에 가입한 사람은 위험하다. 넷째, 질문이 많은 직원들은 빨리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그만둘 확률이 높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후보자는 아예 뽑지 않겠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겠는가?
실제로 재미있는 점은, 이런 데이터를 인사과가 아니라 오너 경영자에게 보여주면 그는 기숙사를 짓거나 통근버스를 준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결정의 레벨이 다르다. 왜냐, 자기네 회사 근처에 사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면 좋은 직원이 몇 명 안 모인다. 이들만 뽑으면 그 회사는 망한다. 그러니 인재를 얻기 위해 좀 더 큰 지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면 쉽게 그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같은 결과를 두고도 판단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는 힌트만 줄 뿐 답을 주는 게 아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찰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4장 통찰 : 보고도 모르는 것을 보라
일명 ‘다방커피’의 레시피는 자고로 ‘둘둘둘’이다. 이때는 100g에 104원 하는 가루설탕이 들어간다. 반면 크림을 빼고 집에서 어머니가 우아하게 타 마시는 커피에는 각설탕이 쓰인다. 100g에 461원. 그런데 요즘에는 각설탕이 정육면체를 탈피해 하트 모양도 나오고 찻주전자 모양도 나온다. 이 설탕은 100g에 2600원이 넘는다. 이 정도 되면 같은 설탕이라 하기도 어렵다.
물론 성분과 공법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다 똑같은 설탕이며, 이것을 25배 가격을 주고 수입까지 해가며 먹는 이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팔리고 있지 않은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쓰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의미’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도 절반은커녕 25분의 1의 가치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애초에 사람들에게 제공한 가치가 그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5장 배려 : 이해하라, 그러면 배려하게 된다
왜 우리는 상대를 괴롭히는 말을 ‘관심’이라 부르며 주고받고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러나 나름의 애정은 있다고 믿기에 관심을 보이고 싶어 지극히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섣부른 애정이 앞의 이야기와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어림짐작하고 이제 사회에 나갈 시간이 되었으니 당연히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서툰 관심과 호의가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말이 되는 ‘선한 엇갈림’을 낳는다.
물론 상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을 해주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상대방은 죽을 맛인데?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한다 해도 듣는 사람이 잔소리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좋은 의도라 해도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의도였다고 변명할 수 없다.
그러니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얘기하지 말자. 그가 보고 있는 것에 나의 염려와 배려를 얹어야지, 그가 모를 것이라 가정하고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바로 당사자다. 주변의 많은 염려와 걱정은 실질적인 대안과 함께 제시된 게 아니라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처럼의 명절을 즐기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게 될 뿐.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한다면 한 발자국 뒤에서 조용히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다.
섣부른 상상과 섣부른 관찰과 섣부른 배려는 선한 엇갈림을 낳는다. 상대가 생각을 갖고 있고, 그 생각이 나보다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직급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이 결코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그가 지능과 지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리고 그의 진심이 우리의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를 응원하는 따뜻한 배려를 그의 입장에서 펼쳐주자.
―에필로그 : 위한답시고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