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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나 글을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분간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 의도를 문맥 가운데서 분명하게 케치해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도 혼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신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떤 부자가 재산 관리인(청지기) 하나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청지기가 재산을 관리하기를 자기 마음대로 낭비하였습니다. 부자가 청지기를 불러서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재산을 맡길 수 없으니 장부를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내가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느니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고 ….” 자신의 처지를 냉철하게 드러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는 꾀를 내어서 자기와 거래를 했던 채무자들을 만났습니다. “자 당신이 밀 100섬을 빌러 갔는데, 이 증서에 80이라 정정하시오. 내가 탕감해 주겠오” 또 어떤 사람에게 “감람 기름 100말이네, 50이라 쓰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채무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자신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부자 주인은 청지기가 하고 다니는 형태를 보니 가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인이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자기가 쫓겨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빚 정리를 해 놓은 것을 보니 어떤 의미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똑똑하다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8)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를 책망하지를 않고 칭찬하였습니다. 책망이 아니라 칭찬을 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그가 행하는 일들은 불법입니다. 의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주인이 칭찬한 것은 옳지 않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다만 그의 지혜를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쫓겨나게 되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준비한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이어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의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빛의 자녀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렇습니다.
“봐라, 이 세상에 소위 똑똑한 사람들이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지혜롭게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영원한 가치가 없는 내일을 위해서 저들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준비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희들은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 비록 옳지 않은 청지기가 옳지 않는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했지만 준비했다는 그 사실만은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저 불의한 청지기에게서 지혜를 배우라?”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불의한 방법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준비를 잘 하고 있는데 하나님에게 속한 빛의 자녀들인 너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도전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지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이 부자 주인의 재물을 유용하다가 이제는 해고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일자리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3)
그래서 꾀를 내었습니다. 주인에게 빚 진 사람들을 다 불러 다가 빚을 절반씩 뚝뚝 탕감해 주고,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이 다음에 나를 돌보아 달라고 선심을 썼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분명히 불의한 행위입니다. 오늘날에는 사기요, 부정청탁에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 미래에 대해서, 다가올 장래 일을 대해서 준비를 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해여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중앙일보에 토요일마다 가수 조영남씨의 ‘예스터 데이’라는 글이 연제하고 있습니다. 조영남씨가 조수를 고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위법인지 아닌지 시비가 붙어서 대법원에 계류되었습니다. 그때에 그는 ‘자신의 작품을 반품하면 다 환불하겠다’라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반품을 해왔습니다. 그가 평생 모운 재산이 바닥이 드러나고 거의 거들났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현대 미술은 조수를 통해서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창조적인 끝마무리를 하면 위법이 아니다.”는 판결이 나와서 그는 무죄가 되었습니다. 그가 요즘 인터뷰에 방정 맞게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재판 후에’라는 말만 했어도 ….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앞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앞으로 일을 위해 현재의 일을 철처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가 불분명하게 된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1.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주인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여기고 무시하면서 주인의 재물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주인이 비로소 허물을 지적하며 해고하겠다고 경고하자,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나에게는 주인이 있다. 나는 주인이 아니다’라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라는 가르칩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결정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조차도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딛 1:16) 형태로 살아갑니다. 기도할 때나, 종교적인 예식에서나 하나님을 말하지만 날마다의 삶에서는 전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말합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미래의 어느 때에, 세상의 끝날 날이 오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에 ‘아하 내게 주인이 있었구나’라고 깨달으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내게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2.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는 자신이 청지기라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내게는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나는 바로 주인의 청지기 임을 고백하며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야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잠깐 맡겨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생명, 나의 가정, 나의 가족, 나의 달란트 등등도 ….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착각하며 자기 자신에게 올인하려던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어리석은 부자가 그 인생의 마지막에 소스라치며 놀라며 깨달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하,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구나. 내가 소유한 모든 것, 내가 가져 갈 수 없구나”
헬라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네 자신을 알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에 사람은 지혜로와 집니다. 나는 하나님도, 주인도 아니고,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청지기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 후에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9-10)
현대인의 성경에서 “너희는 자신을 위해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집으로 맞아들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유하게 되는 재물이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유한 재물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기쁨 만을 위해 사용할 때에 세상의 재물은 ‘불의의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 때 주님께서 사람들을 불러 놓고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느냐? 내가 나그네되었을 때 나를 영접하였느냐? 내가 벗을 때에 옷 입혔느냐? 내가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나를 돌아보았느냐?”(마 25:42-43)
“선생님, 선생님이 언제 옥에 갇혔고, 언제 헐벗고, 언제 배고파하셨습니까?”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45)
작년에 우리는 바누아투에 있는 12명의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바로 주님께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었습니다. 주님께 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사용한 재물은 하늘에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재물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제가 알고 지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 사람이 언제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흥청망청 사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황이 보면 바로 경제 절벽이 되어서 허덕이고,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빌렸던 돈을 제때 갚지를 못해서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하고, 다음에 갚겠다고 하고서는 안되니깐 떼어먹기도 하는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본입니다.
“너희가 세상 재물을 취급하는 데 성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하늘의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성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 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1-13)
여러분, 부자 되십시오. 그러나 그 재물로 인해서 교만하거나 사람답지 않는 삶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너무 가난하여 하루 하루 밥벌이가 힘들어서 열등감에 빠져서 인생을 한탄하는 자리에 서지 마십시오.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풍부에도, 가난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국에 가면 이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 외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가면 연락하는 사람이 한 분이 있습니다. 함께 사역했던 여도전사님입니다. 평소에 한국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고 만나자고 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대접하고 헤어질 때에는 봉투를 찔러 줍니다.
그분은 이제 은퇴를 했습니다. 넉넉하지를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담은 물질을 주십니다. 저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합니다. 그분은 저에게 말하기를 “제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전달하는 것입니다”라고 … 그래서 저는 황송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도하면서 보답하며 섬기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재물(맘몬)에 사로잡혀서 허덕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청지기로 지혜롭게 관리하며 쓰임 받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