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념의 구현체로서의 주인공
영화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수퍼맨처럼 느껴진다. 분명 보통 사람인데도 어느 새 수퍼맨이 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수퍼맨이란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물론 수퍼는 월등하다는 뜻이다. 인간이 지닌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뜻으로 그 능력이 체력이거나 어느 한 가지 재능이거나 지적 능력이거나를 가리지 않는다. 수퍼맨에게서 분명한 사실은 그가 평균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뚫고 나갈 강철같은 의지가 있다.
보통 사람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보통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인공과 다르다. 우선 그들이 뚫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감정에 흔들린다. 감정의 흔들림뿐 아니다. 보통 사람의 길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그의 목적도 때에 따라서 변한다. 그의 삶은 일상으로 구성되고 그의 일상에는 커다랗거나 고상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소한 일로 구성된 일상을 살아가고 그의 생애 대부분은 그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즉 보통 사람에게는 일상이 수퍼맨에게는 고상하거나 커다란 목적이 놓여 있는 것이고 이 차이가 이 두 종류의 삶을 가른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과 수퍼맨은 과연 다른가. 보통 사람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앞에서 보통 사람과 수퍼맨의 차이를 논했다. 이제 무엇이 수퍼맨을 만드는가를 논할 차례다. 일단 일상을 말해보자. 일상은 보통 사람의 것이므로 일상의 속성을 논해야 일상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일상이라고 부르는 일들은 커다란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단지 습관만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의지를 필요로 하더라도 난관을 넘어서는 단계가 여러 번 필요하다. 한 가지 일을 처리해내기까지는 무수한 단련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아주 간단해 보이는 빨래를 생각해보자. 빨래는 우선 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세탁기로 돌릴 것인지 아니면 손빨래를 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 방법은 옷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타킹이라면 손빨래를 해야 할 것이요 모직이나 값비싼 실크 옷감이라면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할 것이요 수건이나 행주라면 삶아야 한다. 세탁기에 돌리더라도 흰빨래 검은 빨래 구분해야 할 것이요 서로 섞여 옷감이 물드는 일이 없도록 신경써야 한다. 한편 어떤 비누를 써야 할지 그도 문제가 된다. 고체 비누를 쓸 것인가 액체 비누를 써야 할 것인가. 가루비누를 쓸 것인가. 이런 일의 마지막 단계에는 섬유 린스를 쓸 것인가 안 쓸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빨래가 끝난 다음에는 말려야 한다. 말린다는 것 역시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또 분석해보자. 그냥 빨랫줄에 널 것인가, 아니면 빨래 집게로 집어 빨랫줄에 널 것인가. 옷걸이에 걸어 말릴 것인가. 탁탁 털어 넓게 펼쳐 말릴 것인가. 한편 빨랫감의 사이가 너무 좁지 않도록 신경써주어야 바람이 잘 통해 빨랫감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햇볕에 널 것인가 그늘에 널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강렬한 햇볕이라면 옷의 색이 바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마른 빨래는 또 다른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종류별로 달리 개어야 하고 혹은 다림질 해야 하고...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빨래 하나에도 이렇게 복잡한 단계가 있고 이런 복잡다단한 단계에 익숙해지까지는 세월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찮은 빨래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 하찮음으로 규정지어지는 빨래에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빨래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한다 해도 그 사람이 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배경에 그칠 따름이다. 빨래 뿐인가. 앞서 언급했듯 일상은 수없이 자잘한 일로 구성된다. 밥 짓기, 청소, 정돈, 책 읽기, 직장에 가기, 티브이 보기 등등 우리의 하루는 꼽아보면 수도 없이 많은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에 하는 일이 이런데 평생은 어떤가. 인간의 일생은 어느 한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장에서 성숙 그리고 노화의 단계를 거친다. 아기에서부터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 청년, 성년, 장년, 노년..... 당연히 소속 단계마다 일상은 달라지고 소속 집단마다 해내야 하는 일의 종류도 달라지며 따라서 일상도 달라진다.
그 수많은 나날에 포함된 그 수많은 일상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한편 일상은 느슨하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일상은 항상 새로 시작되는 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되풀이 되는 일이 있고 새로운 일이 있고. 그 새로운 일에서 보통 사람이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라는 말은 그 일을 되풀이해 숙련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전문가 역시 처음에는 보통 사람인 것으로 우리 일상에는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일들이 목숨을 걸거나 하는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상은 없어도 되거나 미루어도 되는 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처럼 느슨한 일상을 고도로 압축해서 하나의 줄거리로 구성해낸다.
하나의 줄거리라는 것은 다른 일을 다 잘라낸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그 길고 복잡다단한 인간의 삶에서 단 한 가지 주제를 취해야 한다. 그 한가지 주제를 택해야 영화는 강렬해진다. 한가지 주제를 취해야 영화는 밀도가 높아진다. 밀도가 높아지면 관객은 몰입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즐기기 쉽다.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은 한가지만을 표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에는 한계가 있다. 길어야 두 시간짜리에서 얼마나 많이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주변 이야기가 많으면 영화는 처진다. 그러므로 영화는 한 가지 주제로 압축해서 말할 수 밖에 없다. 즉 단순화이다.
영화가 단순해야 한다는 이유로 걸러내고 압축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 반대다. 걸러내고 압축한 주제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주제를 일관성 있게 말해야 한다. 주제가 인간의 시련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고난을 이겨내거나 시련을 겪거나 혹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영상화한다) 그 시련이 어느 종류의 시련인지 설정하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다루게 된다.
이제부터 중요하다. 우리가 늘 경험하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무심한 사실이다. 영화는 인간의 삶에서 주제를 취한다고 했다. 그 주제는 '반지의 제왕'이나 '수퍼맨'처럼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건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처럼 일상을 다룬 것이나 상관없이 동일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인데 그 사건은 큰 것이건 자잘한 것이건 상관없다. 주인공은 그 시련이나 사건을 헤쳐나가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들어 수퍼맨은 초능력을 지니고 사람들을 곤경에서 구해낸다. 어디 수퍼맨 뿐일까. 인크레더블 헐크도 그렇고 스파이더맨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음으로 이들의 곤경도 역시 초능력과 관련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대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이들은 다른 이들을 시련에서 구해주지만 스스로도 시련을 안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시련, 자신의 시련, 소위 안팎의 시련이다. 시련이 안팎으로 있음으로 인해 재미는 배가한다. 이들의 시련은 초능력자의 시련과 보통 사람의 시련을 모두 안고 있다. 초능력자로서의 시련은 엄밀히 말하면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한다. 물론 공감을 얻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공감은 부분에 그친다. 이와 달리 초능력자 개개인들이 겪는 문제는 보통사람과 동일하다. 이들도 사랑에 괴로워하고 다른 이들의 중상모략에 걸려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시련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으로서는 감정 이입,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지금 우리는 왜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수퍼맨인가 하는 의문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 의문을 풀려면 초능력자에게 왜 우리가 공감을 느끼는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늘을 날던가 힘이 세던가 그도 아니면 머리가 유달리 뛰어나던가 하는 초능력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데도 왜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가를 풀어야 한다. 그에게 정말로 괴로움을 주는 문제는 초능력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정말로 괴로워하는 문제는 보통사람이 겪는 문제와 다름없다. 그는 사랑에 괴로워하고(수퍼맨, 스파이더 맨, 인크레더블 헐크) 자신이 겪은 과거 때문에(배트맨) 괴로워한다. 몸이 안 보이는 인비지블 맨 투명인간은 자신의 열등의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즉 이들은 모두 보통 사람이 겪는 고통으로 인해 가장 큰 시련을 겪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하고 열등의식으로 괴로워하며 자라면서 겪은 문제로 힘들어한다. 아버지의 죽음, 혹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인....이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고통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수퍼맨이라 해도 우리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공감을 하는 것이다. 즉 시련의 속성은 동일한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인간이거나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시련의 속성은 동일하다는 것은 영화 주인공과 우리를비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제 시련을 이겨나가는 영화를 살펴보자. 보통 사람인 듯 보이는 사람이 어떤 사건에 휘말려 시련의 주인공이 되었다.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앤디 듀프레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앤디 듀프레인은 부인의 불륜을 보고 격노해 그녀와 애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온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감옥에서 그는 거의 수퍼맨이 된다. 감옥 벽을 파내어 탈출하는 그 과정에서 그는 거의 변신을 하는 것이다. 그가 왜 변신한다고 느껴질까. 그가 다른 이보다 영리해서? 그가 다른 이보다 훨씬 머리가 좋아서 소장의 비서가 되었고 절대로 소장이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다. 그는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서 다른 이보다 조금 더 편하게 살았을 뿐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벽을 파내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소망의 화신이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그렇다면 그가 탈출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앞서의 빨래를 기억할 것이다. 지극히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빨래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검은 옷, 흰 옷, 청바지, 실크 블라우스, 모직 양복, 스타킹, 수건이 섞인 빨랫감을 내놓으면서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빨래를 해서 다림질까지 해놓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완벽하게 해내느냐 못해내느냐에 그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까지 극화해보자.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는 긴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빨래를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연구를 해야 한다. 섣불리 하면 목숨이 날아가니까. 이 가정에 의하면 빨래도 시련이 된다.
빨래를 예로 든 이유는 간단하다. 감옥을 탈출하는 일이나 빨래하는 일이나 시련으로 가정하고 본다면 그 속성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시련의 속성이 같다는 점에서 본다면 영화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상을 과장 확대 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영화는 일상을 걸러내어 단순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그 일상 중의 하나를 택해 집중해서 다루었다는 뜻이다.
시련의 속성은 큰일이거나 하잘 것 없는 일이거나 전제 조건 혹은 맥락에 따라 다를 뿐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제 시련을 대하는 우리, 혹은 주인공의 태도를 볼 차례다. 시련을 겪어내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의 정신력이 그 시련을 이겨내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 빨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목숨이라는 전제조건이 놓인다면 아니 목숨이 너무 지나치다고 여겨진다면 그 빨랫감들이 모두 지극히 비싸다는 전제조건으로 대치해도 좋다. 그건 가능한 이야기다. 비싼 옷이라면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옷을 망칠 경우 물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면 더욱 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빨래하는 동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다. 살얼음 걷듯이 준비하고 연구하고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 간다. 그렇게 해서 온갖 정신력을 동원한 빨래가 드디어 끝난다. 성공적으로.
앤디 듀프레인의 태도를 보자. 그가 어떻게 해서 수퍼맨으로 화했는가. 그는 계획을 세웠고 주변을 살폈다. 준비를 했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만반을 기했다. 그에게 실수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감옥은 그만큼 절박한 장소다. 그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그의 정신력이다. 정신력이란 인간의 감정과는 상관없다. 그에게는 감정을 고려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의 희망은 감정에 빠진다면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지의 화신이 된다. 소망을 향해 가는 의지의 화신이 된다. 그 일 이외 모든 일은 그의 삶에서 잘라내어야 했다. 빨래를 제대로 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일을 젖혀두어야 하는 저 전제속의 주인공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시련을 겪는다. 그는 한 가지 시련을 겪는다. 시련의 갯수는 많더라도 그 종류는 한 가지다. 주제에 걸맞는 종류의 시련인 것이다. 따라서 그 시련외 혹은 그 주제 외에 다른 일이나 다른 주제는 제외된다. 즉 그/그녀는 한가지 주제에 따라 시련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자질구레한 모든 일은 제외된다. 그는 흔들리는 일이 없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 흔들림은 주제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보통의 우리가 겪는 정신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한 가지 시련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 관념의 구현체라는 뜻은 바로 정신력을 하나의 인간, 주인공에 투사했다는 말이다. 어느 사건 하나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영화속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하고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는 우리 삶에서 어느 한 주제만을 취해서 만들었고 그 주제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우리 삶은 그 주제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영화의 소재인 어느 한 시련을 거쳐나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지만 모든 것을 제외하고 그 정신력에만 집중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력을 집중한다. 그 정신력은 감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용납한다 하더라도 감정에 휘둘리면 그 시련은 이겨낼 수 없게 된다. 우리 삶에서 고난이 닥치면 우리는 감정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한다 해도 그 길에서도 여전히 고난은 존재한다. 어떻게 살아도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속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속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속 주인공이 수퍼맨이라고 느낀다. 그 수퍼맨은 우리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
첫댓글 나 안 읽을래. 나중에 심심함 읽을래요.^^
넹. 브레인스톰이에요. 다시 정리해야지요.
저두요,,천천히 조금씩 읽을래요 ㅎㅎ
ㅎㅎ. 좀 더 논리적으로 정리한 다음에...숙제라서 마구 써내려갔어요. (조 아래 '쇼생크 탈출'에서 단비님 답글을 보면 제가 왜 숙제라고 하는지 아실 거예요.)
'희야'님이 수퍼맨이다. 아니 수퍼우먼이다...이렇게 긴글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논리정연하게...저는 이렇게 긴 글은 뒤죽박죽이 돼서 못써요. 읽는 것도 중간쯤 왔다가 처음하고 연결이 안돼서 다시 가고... 빨래랑 집안정리는 마음만 먹으면 무지하게 잘하는데...나도 수퍼우먼이다^^
앗, 별로 안 길어요. 참고 서적 하나 안 보고 그저 혼자 정리했는 걸요. 여기에 영화 몇 개 종류별로 정리해서 집어넣고 심리 상태 언급하고 나면 좀 더 읽기 쉬워지고 길어질 거예요.
수퍼맨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수퍼맨이라는 것이죠? 길다고 했지만 단숨에 읽었습니다. 희야님은 수퍼 수퍼 우먼입니다.
희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군요. 제가 저번에 수퍼맨 말씀을 올렸는데, 그때 약속하시고선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쓰시다뉘... 고맙습니다. 전 복사해서 한글 문서로 바꾸어 글자 크게 인쇄 해서 읽겠습니다. 열차 타고 가면서 1시간 5분간 정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