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제시하신 길(마28:20, 사41:10)
2025.3.2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산다(live)“는 것이 힘든 일인가가, 쉬운 일인가? 언뜻보면 숨을 쉬고 있으니까 사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산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살기위해 내 뜻과는 상관없이 온갖 고통스러운 일들을 감내해 내야 한다. 요즘같은 총체적인 불안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타임(Time)지 분석에 의하면, 현대인의 10명 중 9명은 거절과 실패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만큼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긴 줄로 나비의 발과 돌멩이가 서로 묶여있는 그림이 있다(좌측). 이 그림을 보면 마치 현 시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이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
그렇다면 왜 힘든가? 그것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태어났고, 왜 사는지를 모른다. 어떤 사람은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산다”고 말하고, 심지어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반대로 길을 찾은 사람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고생을 보람으로 여기면서, 거름더미 속에서도 태양을 바라본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신앙이란 나의 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전도(전할 傳, 길 道)란, 예수님이 제시하는 길을 찾도록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은 어떤 길일까? 그 길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또 알 수도 없었던 ‘영원한 본향(하나님 아버지의 집, 천국)에 가는 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시고, 친히 길이 되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 소개하고 연결시켜 주신다. 교회 종탑 위에 높이 걸린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뜻하는 천국 이정표이다.
다같이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함께 읽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이 제시하신 신앙의 길은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집에 가는 과정과도 같다. 톨게이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집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톨게이트 통과했어도 집에 가는 동안에는 여전히 각종 위험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정신줄을 놓지 말고 방어운전을 해야한다. 졸아서도 안되고, 음주운전을 해서도 안된다. 전방주시를 태만히 하거나, 이정표를 잘 보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의 길도 이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만 있기를 원하고, 온화한 햇볕 아래에서 꽃길로만 걷고 싶어 한다. 아마 이런 마음은 본 설교자를 비롯해서 누구나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만 계속 내리 쬐이면 꽃은 죽고, 땅은 사막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라 할지라도 때로 어느 정도의 비바람을 허용하시기도 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 때로는 각종 형태의 빨강 신호등에 켜졌을 때는 인내심을 갖고 불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급커브길이나 좁은 길에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서두르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향이 올바르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늘 우리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속도가 보다 방향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오늘 이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오늘 설교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가는 그 길이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를 데리고 직접 함께 가신다는 것이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격려할 때, 늘 빠짐없이 강조하신 말씀이 바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28:15, 창39:2, 출3:12, 수1;5, 삼하5:10, 그 외 수많은 말씀들). 예수님은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부터, 마지막 지상명령에 이르기까지 늘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모두가 함께 데리고 가시겠다는 약속들이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
(승천하시기 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지금도 여전히 성경 최대의 약속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임마누엘)’는 약속이다. 예수님은 한번도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는 길을 제시하신 후에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혼자 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이나 지식이나 각종 노력이나 선행으로 하나님께 이르지 못한다. 불완전한 것에서는 완전한 것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할 수 있다해도 작은 감기 바이러스에도 콜록거리고, 뼈마디가 아파서 앉고 일어설 때, ‘아구구’소리를 반복하고, 먹고 살기고 힘든 세상에서, 길어야 백년을 살기도 힘든 인간이 어느 세월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있겠는가?
.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하늘로부터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바로 그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께 가는 길이 되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동행(同行)하면서 데려다 주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이며, 백문일답(백 가지질문, 한 가지 대답)이며, 복음(Good News, 기쁜소식)이 되신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Faith)뿐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길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성도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때 흔히 ‘어떡하면 좋데요?’라고 말한다. 그 해답은 주님을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길을 잃었다”는 것은 곧 “예수를 잃었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다시 찾고, 만나는 것이 곧 길을 찾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예배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서 주님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나)와 함께 가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우리 모두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글을 읽고 계신 지역 주민들 그리고 과거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 잃은 양이 되어 방황하는 분들이여, 예수님은 우리들이 걸어야할 참된 길이다. 예수님은 참된 길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 데려다 주신다. 예수님이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으면(=다시 깊이 만나면) 내가 가야할 길도 찾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당신의 심장이 터지도록 흘려주신 피뭍은 손을 내밀고 계신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 안에 굳게 머물러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된다면(영적인 무지, 영적침체, 인생의 방향감각 상실, 잃은 양 등), 지금 그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마귀의 각종 불화살들을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고, 용기를 내서 주님 앞에서 서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깨닫는 길이며, 나의 영혼이 사는 길이며, 인생이 행복하고 더 풍성해 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