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는 자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충청남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 땅거미가 가시기 전 이른 새벽입니다.
늘 호롱불 앞에서 기도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의 등 뒤에서 그림자 속에 묻혀 있는 갓 네 살 된 아이의 눈앞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아버지의 발바닥만 보입니다.
때로는 작은 손을 뻗어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발을 만지작하면,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으시면서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그 아버지는 부인과 네 자녀를 남겨두고 일찍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도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딸에게 깊고 소중한 신앙의 유산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이 성가정은 네 자녀 중에 두 딸을 기도하는 수도자로 봉헌하셨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 성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성가정은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 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무엇이나 주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며, 주님 안에서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며,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면 주님의 마음에 들게 될 것’(콜로 3,17 21 참조)이라고 합니다.
순종은 자발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강요나 복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성당에 잘 다닐 수 있을지,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지,
부부간에 사랑의 순종을 하고 있는지,
내 자녀들이 과연 내가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성가정은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순종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성조들의 신앙, 거룩한 성인 성녀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1베드 2,22 참조) 살 듯이
자녀들은 신앙의 첫걸음을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해 갑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서 요셉과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바로 당신들의 뒷모습입니다.
천사를 통하여 처녀가 예수님을 잉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숨죽이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소년 예수를 사흘 뒤에 성전에서 찾으셨을 때, 12살의 소년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참조)라고 말합니다.
비록 성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묵묵히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소년 예수는 이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뒤로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는 서른 살까지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살았다고 전합니다.
성서 안에서 요셉과 마리아에 대한 행적은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는 두 성인을 기억하고, 공경하고, 그분 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탄생 후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가정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첫 번째 신앙의 스승입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부모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자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기도할 때 때로는 뒤돌아보면서 자녀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부모를 통하여 사랑의 신비가 드러나고,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을 만나는 성사가 됩니다.
이들에게 성가정의 축복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성가정 축일에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히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신동민 스테파노 신부 공소사목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