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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시대는 세대주의자들의 역사(歷史)적 구원에 대한 세대라는 시대 인식이어서
하나님의 구원은 역사(歷史)가 아니라 역사(役事)입니다.
성서지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 그 구원의 흔적으로 가득하며
그것은 오늘날 성령의 역사(役事)로 잇대며
성서시대라는 고고학적인 이해는 영원히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과거적 시선이요,
오늘날 구원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과거적 구원이라는
역사의 유령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과거적 구원이라는 역사의 유령이 아니기에
성서지대에 충만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영원한 은혜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성서 저자의 다양한 복선에 대한 영감적 조명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서지대의 "오늘날"이라는 관점은
예켄데 모세 시대를 말하면서 신명기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명기적 사관이 녹아있습니다.
모세시대 레위인 제사장 제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명기는 레위인 제사장에 대한 오늘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를 세대별로 이해하는 것은
성서저자의 영감적 성찰의 조명을 받지 못한 인본주의적 학문의 고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속사(史)에 대한 이해도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적 역사(役事)가 아닌 역사(歷史)적 이해여서
구속사적 신학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구속사적 성경이해는 올바른 성경이해의 마스타 키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성서에 대한 편협한 이해일 뿐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 나라의 머릿돌로 이해하지 않고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편협한 이해에 치우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왕인 것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영혼의 구원에만 급급하며 이기적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자기 이해와 오늘날 소위 구원받은 성도의 자기 이해는 천양지차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구원이 아닌 영혼의 구원에 대한 결과론적인 영생에 함몰되었습니다.
자기 영혼의 구원은 오직 주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요,
그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은 이미 과거지사요,
이제는 그 신앙심으로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으로 타락하는 광신의 늪에 빠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로 충만하여 인본주의적 영성, 그 광신의 늪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고 주 예수의 복음을 천하만민에게 온전히 전파하였습니다.
믿음의 역사(役事)는 곧 사역이요, 전도며 선교라는 이해는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로 충만한 복음에 깨어 있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성도의 구원을 인치는 성령의 역사, 그 통치에 순응하는 믿음은 온실안의 모종이 아니라
온 천하에 전파 되어 생명이 향기로 넘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를 바라 볼 때
이단과 사이비의 온상이라는 종말론적인 이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역사(歷史)의 유령으로 만들어 놓고
교조적 신앙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채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고 소위 영성 신앙으로 자위(自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서지대 인물의 역사(歷史의식이라는 주제로
성서지대를 산책하며 트래킹할려고 합니다.
성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서의 다양한 복선 구조에 대한 성서저자의 영감적 성찰의 조명이 절대 필요할 것입니다.
성서 인물의 역사의식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에서 추방되었으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 노아는 생육하고 번성하였으며
샘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언약의 젖줄, 그 발원지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의식의 시작이요, 그 중심이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은 첫 사람 아담을 만든 완전한 하나님의 동산이지만
그 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그 후손은 에덴 동산에 대한 역사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언약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중심무대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전능의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으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우거하였습니다.
개역개정은 우거대신 거류라고 번역하였는데
우거와 거류는 같은 뜻으로 어떤 곳에 임시로 머물러 사는 나그네의 삶입니다.
언약의 땅 가나안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기 이해는 창세기의 저자가 말해주듯 나그네요,
히브리서 기자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다고 믿음의 이해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이해는
아브라함의 역사(歷史)의식을 믿음의 역사(役事)로 이해하였으며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주 예수의 영원한 대제사장의 반차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주로 보았으며
주의 우편에 계신 주를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창세기의 멜기세덱과 다윗의 시에 나타난 멜기세덱과 히브리서 기자가 이해하는 멜기세덱은
시공을 초월하여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를 향하고 있습니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8-16)
☞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18-20)
☞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 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시110:4-5)
☞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6:19-20)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7:25-28)
아브라함의 역사(歷史)의식은 곧 믿음의 역사(役事)요,
약속의 땅을 시온성으로 만든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로서 구원 역사(役事)를 시온의 모퉁이 돌로 삼았으며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메시야의 통치를 영원한 다윗의 나라인 것을
그 말씀의 신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사16:5)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55:3-5)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렘21:12)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33:15)
☞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4:23-24)
☞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영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24-28)
그러므로 다윗은 역사의식을 가진 실존적 인물이었으나
다윗이 담은 인생은 아브라함과 메시야를 연결하는 하나님의 통치, 그 구원 역사의 비전을
종말론적인 시온으로 이루었습니다.
다윗은 성서지대의 인물 가운데 가장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시온으로 이루었으며
메시야 나라의 예표가 되어 다윗이 왕인 영원한 메시야의 통치를 실현하였습니다.
마치 멜기세덱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제사장이 투영되었듯이
다윗의 통치, 그 시온은 영원한 메시야 나라에 투영되었습니다.
성서지대의 지형, 그 장대한 구원의 산맥은
다윗을 정점으로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스가랴 등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서의 문제는 역사의식의 고고학적 유물과 흔적, 그 실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그려가는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는 장엄한 언약의 젖줄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스도의 세계는천혜의 비경,
그 언약의 맥인 성서지대의 영원히 아름다운 샹그릴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이사야와 에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의 신탁은
메시야를 통하여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세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성서지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과 그 언약을 시온성으로 완성한 다윗의 나라를 장대한 산맥으로 가졌으며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아브라함과 다윗을 역사의 유령으로 보지 않고 메시야 대망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모스와 호세아와 스가랴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며 아울러 다윗의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3:5)
☞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9:11-12)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슥12:8)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슥13:1-2)
성서지대의 인물과 선지자들의 역사의식은 고고학적인 역사의 유물과 실존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계를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이해는
산 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부활의 메세지가 되었습니다.
☞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12:26-27)
모세는 역사의식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곧 그 구원의 역사로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모세의 책을 거론하신 예수님은
출애굽의 역사가 종교적인 설정된 역사歷史)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役事)요,
그 역사(歷史)는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구원의 역사(役事)인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성서지대 믿음의 인물은
역사(歷史)의 실존의식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영원히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성서지대를 성서시대로 이해하여
고고학적인 역사(歷史)적 유물로 탐구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역사(歷史)의 유령으로 만드는 것은
인본주의 학문의 오류요, 성서에 대한 모독입니다.
성서에 대한 믿음은 고고학적인 역사적 유물, 그 사실에 대한 역사 인식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적 구원 역사를 이룬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그 나라에 대한 이해입니다.
요셉은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였으며
모세는 명을 받들어 요셉의 유골을 출애굽의 역사로 기록하였습니다.
☞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13:19)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았던 요셉은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고 유언하였습니다.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50:24-25)
요셉은 애굽 땅에 거류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였으며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대망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영웅인 모세는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고
여호와의 이름을 계시받아 출애굽의 역사(役事)를 말세 성도의 거울이 되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역사(役事)로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모세는 출애굽의 여정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었으며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 그 본질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로 보았고
호렙산 반석의 물을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로 이해하였으며
스데반은 출애굽의 역사를 광야 교회로 이해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역사의식은
아브라함에서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구속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강변(強辯)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할례 언약과 모세의 증거 장막과 다윗의 하나님 처소로 지은 솔로몬의 성전과
이사야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과 마음과 귀의 할례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주 예수를 설파하였습니다.
☞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2-4)
☞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7:38)
☞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야 함과 같으니라(행7:48-50)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7:51-53)
☞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5-56)
참으로 스데반은 성령의 충만으로 구속사가 아닌 장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설파하였으며
순교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그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성서지대 서지대 인물의 역사(歷史의식은 역사 의식의 실존으로 역사의 유령,
그 고고학적 유물이 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종말론적인 구원 역사(役事)의 실상을 이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서지대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완전한 이해로 충만하였습니다.
☞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4-8)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9)
☞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사3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