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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點仙島 남해 유배수필의 생성과 확장
- 김정애의 유배수필 2편을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전 판서 김만중이 남해 적소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가 쉰 여섯이었다. 만중의 자는 중숙이니 만기의 아우이다. 사람됨이 결백 온화하였고 효성과 우애가 매우 도타웠다. 조정에 벼슬을 하여서는 논의가 강직하였으니 영고성쇠의 갈림길에서 더욱 곧음을 드러내었다. 청렴결백함은 아무도 따를 수 없었으니, 지위가 높은 벼슬에 이르러서도 청빈함이 유생과 같았다. 왕비의 가까운 친척이 되어서는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조심하였다. 권세 있는 요직을 피하고 멀리하여 이조 및 병조의 판서와 대제학을 굳이 사양하고 제수받지 아니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문사文詞가 뛰어났으며 시가 더욱 고아하여 근세의 조속한 말을 쓰지 아니하였으나, 또한 감추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천품天稟이 도道에 가까운데도 능히 학문에 힘쓰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귀양 가 있을 적에 어머니의 상喪당하여 분상奔喪하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병이 되어 세상을 떠나니 당시의 사람들이 슬퍼하지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
- 사후 평가『숙종대왕실록』권지 24 14장 乙면, 숙종 18년 4월 己酉일
I.
현대문학사가 2024년 지금까지 100년을 웃돌아 왔지만 한국문학사에 현대수필에 대하여서는 단 한 줄도 취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학 초창기에 있어서도 수필을 제외한 여타 장르는 그 장르에 대한 개념 의식이 선명했다. 그런데 수필만은 그 장르명조차 감상, 상화, 수감, 단상, 만상, 기행 등 여러 명칭으로 혼동되어 사용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수필은 그러다가 1930년대 들어서야 수필이란 명칭이 문학 양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수필에 대한 개념부터 창작이론까지 ‘이것이다’하고 내어놓을 이론이 없었다는 데서, 한국문학사에서 수필에 대한 언급이 왜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수필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이다. 여기에 수필을 다른 장르로부터 분리해 주변장르화하려는 문학귀족주의자 비평가 국문학자 등의 수필폄훼 행위가 일상화되면서 수필은 문학사의 변방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어야만 했다.
미래문학으로 각광받고 있는 수필이 당당히 문학의 자리에 서려면, 수필의 역사적 맥락을 찾아 수필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작업의 첫 번째 과제가 수필에 대한 개념을 바로 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수필이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재정립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수필현대문학사는 정주환의 <한국근대수필문학사>와 한상렬의 <통시적으로 본 한국수필문학사> 등이 책으로 나왔다. 부산수필문학사의 경우, 1990년대 와서 지역문학의 활성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부산문인협회 주관으로 <부산문학사>를 발간한 바 있다. 그 가운데 유병근이 <부산수필문학사>를 기술했고, 수필가 김상희가 2007년 <부산수필문학약사>를, 2009년 김상희, 박양근이 부산현대수필문학사를 공동 집필하였으나, 왜곡성 시비가 있어, 이후 권대근이 예총50년사에 <부산수필문학사>를 대표집필한 바 있다. 지역 수필문학사의 정리는 한국현대수필문학사의 본격적 정립에 도움이 될 것임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유배수필문학사는 연구도 연구서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유배객이 남긴 시, 가사나 견문록, 소설을 연구한 글이 있지만, 형식이 논문이거나, 시나 소설 장르 연구에 치중되어 있다. 유배객이나 유배객이 남긴 시나 소설 그리고 수필을 논문이나 스토리텔링으로 펴낸 책이 다소 보이는 편이다. 이 땅의 시인들 중에 억울하게 귀향살이를 했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쓴 경우가 종종 있다. 중앙대 이승하 교수는 2011년 발행된 <유배연구논총1> ‘한국현대시에 나타난 옛 선비들의 유배생활’에서, 그 첫 번째 작품은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 오태환의 <최익현>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유배객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90년대 신춘문예 당선작에도 이어지는데, 남해 출신 시인이 고두현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시첩 –남해 가는 길>로 당선된다. 이 시는 김만중이 마지막 유배생활을 한 남해의 노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1. 유배수필의 범위와 한계
유배문학이란 개념적으로 볼 때, 원칙적으로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했던 역사적 인물이 유배생활 중 남긴 수필 또는 그 인물이나 글을 소재로 삼아서 쓴 수필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남해유배수필은 남해로 유배를 와서 쓴 가사나 견문록 등 수필류의 글이나 그 글을 남긴 사람에 대해 쓴 수필을 남해유배수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신지에 관계없이 남해도에 유배를 와서 지냈거나 돌아간 유배객들의 흔적을 소재로 쓴 유배수필을 연구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남해유배수필의 시발점은 남해 유배문학의 산실 노도 출신인 최옥연의 수필집을 들 수 있다. 어떤 다른 수필가보다 먼저 남해유배수필을 써왔고, 지금도 남해 유배수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남해 미조 출신인 문학평론가 권대근은 남해유배문학을 대상으로 유배문학 평론을 집필해서 에세이문예에 연재해 오고 있다.
유배문학은 특정 문학 장르를 이르는 말은 아니다. 조선시대 사림이 조정에 진출한 이후 당파가 형성되고, 정권을 잡는 당파가 바뀔 때마다 조정의 주요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15~16세기는 관직에 있던 사람들 4명 가운데에 1명꼴로 유배를 갔을 정도로 빈번했다. 유배는 형벌이긴 했지만, 골치 아픈 당쟁에서 벗어나 학문에 정진하거나, 위대한 작품과 저서를 남긴 선비들이 많았다. 한양에서 거리가 멀고 산골과 섬이 많아 유배지로서 최적의 장소였던 남해에는 유배라는 백척간두에 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문학과 예술이라는 꽃을 피운 선조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유산들이 남아있다. 에세이문예사는 유배문학을 남해지역의 역사콘텐츠로 재정립하고 유배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발전·계승하기 위한 일환으로 24년 9월에 남해에서 유배문학북토크콘서트를 기획했다. 나는 역사적 인물들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유산에 대해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만중은 노도에서 산 3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문소설인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다. 이 두 소설의 남해 저작설은 논란있기도 하다.「사씨남정기」는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켜 내친 일을 풍자한 내용이고, 귀양지에서 어머니 윤씨의 부음을 들은 김만중은「정경부인 윤씨행장」을 쓴 뒤 숙종 18년(1692) 56세의 나이로 노도에서 생을 마쳤다. 노도 선착장에는 서포 김만중 선생 유배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나, 정작 김만중이 거처했던 집이나 무덤 등 유허지는 잡초만 우거진 폐허 상태이다. 김만중 외에도 남해로 유배와 주목할 만한 문학작품을 남긴 이로는 자암 김구(1488~1534)와 후송 유의양(1718~?)이 있다. 안평대군, 한호, 양사언과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자암 김구(自菴 金絿)는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10여 년 동안 남해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지어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따뜻한 인심을 널리 알렸다. 남해를 일점선도(一點仙島: 신선의 섬)라 표현한 것도 「화전별곡」에서다. 화전은 남해도의 옛 이름이다. 조선 영조 때 예조참판을 지내다가 유배온 유의양도 남해에서 1년 남짓 지내면서 당시 남해 풍물을 상세히 묘사한 풍물지 남해견문록을 남겼다. 남해견문록은 한글작품이다.
남해읍에 위치한 남해유배문학관은 국내 최대 유배문학관으로 유배문학을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10년 11월 1일 개관되었다. 남해유배수필은 그 시발점이 최옥연을 비롯한 남해 출신 수필가들에 의해 쓰여지고, 오늘날 송명화 김정애 수필가 등의 수필에서 남해 유배객의 흔적이 수필화된 것을 목도할 수가 있다. 부산 출신 수필가인 김정애는 김만중과 김구 그리고 남구만이 남해 유배 중 쓴 작품 감상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유배생활과 그 애환을 눈에 보일 듯이 유려한 문체로 수필로 그려놓고 있다. 김정애 남해유배수필의 출현은 남해를 유배문학의 중심에 세우는 역할을 하는 많은 행위소들 중 하나로써 남해를 유배문학의 섬으로 각인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에 와서 남해유배수필이 출현한 것이 2024년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에세이문예사 주관 남해유배문학 북토크콘서트는 한국유배문학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남해 출신 평론가 권대근이 발제를 하고, 남해 출신 송명화 수필가가 좌장을 맡는 유배문학북토크콘서트는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성과 함께 유배지를 돌아보고 쓴 유배수필로써 크게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60년대를 기점으로 시작한 한국 수필가들의 숫자는 2024년 현재 한국수필문학사 사상 어느 때보다 압도적이다. 수필가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계속 양적 평창을 가져왔다. 유배문학의 출발점에 시가 있다면, 수필은 후발 주자로서 남해유배수필을 통해서 수많은 수필가들이 남해 유배객들의 삶과 그 흔적으로 찾아 남해 방문을 촉진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에 일단 현대라는 한 시대의 구획에 속한 에세이문예 출신 수필가들의 유배문학의 문학적 성과를 남해 바람흔적미술관 북토크콘서트 자리에서 살펴봄으로써 어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작업은 앞으로의 유배수필에 대한 생성과 확장을 돕고, 바른 평가의 계기를 낳고, 한편으로 남해유배수필의 발전을 꾀하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두지만, 한정된 시간이 아쉽게도 연구에 한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유배수필은 남해의 문학사인 만큼 집필자는 사초를 쓰던 사관의 입장에서 ‘수경사무’의 공정성으로 집필하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둔다.
2. 유배수필의 문학성 진단
유배수필미학의 논리 개발이 더딘 현실에서 그리고 ‘유배객’의 아닌 김정애의 남해유배 소재로 쓴 수필을 가지고 문학성을 진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수필의 평가는 어떤 경우든 엄정해야 한다. 김정애 수필의 가장 강한 특징은 재제의 현대성이다. 철학박사로서의 인문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그녀는 문학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축한다. 그녀의 유배수필은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성이 짙다. 그녀는 참신한 발상과 비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수필 <이어도와 메타버스>에서 볼 수 있듯이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 등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서양이 보는 것을 중시하는 시각문화라면, 우리 동양은 듣는 것을 중시하는 청각문화라 할 수 있다. 이 수필은 시각성을 중시하는 서양의 과학문명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작가의 인문지식은 수필 감상의 흥미를 더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애 수필을 읽는 매력은 날카로운 관찰을 통한 깊은 지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가상공간의 장점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제시하는 바. 가상현실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를 현실의 삶에 투사시켜 내는 작가의 저력으로 그녀는 현대적 의미의 지성적 향기를 풍기는 수필을 많이 발표했다.
욕망과 현실의 좁혀지지 않는 갭은 대체제를 통해 대리만족이나 구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제주 해녀가 부르는 이어도타령에서 상상의 섬, 이어도를 발견하고 이 이어도를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와 연결시켜 팬데믹의 시대 상상의 산물이 우리 주변을 위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수많은 유토피아들이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준다고 그녀는 말한다. 문학은 빠르고 정확한 의미 전달만이 아니라 그 전달의 효율성을 따진다. 얼마만큼 감동적이냐가 성패를 가르며 그래서 수사적 장치가 필요하다. 만일 감동이 없다면 문학이 아니다. 그런데 김정애의 글은 지적인데도 감동을 준다. 왜 그럴까. 소재가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철학박사 과정에 들어간 김정애는 만학의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등단하면서 스승에게 ‘눈먼 봉사처럼 잘 따르겠다’는 어록으로 제자의 예를 다하였으며, 평생 ‘인문학’를 부르짖었고, 지금도 그 정신을 좇아 무거운 서양 고전 단테의 신곡에 도전하고 있다. 그녀는 다스림부산 동인회의 회장으로 선임되어, 맏언니의 리드쉽으로 큰 울림을 주며 우리 곁에 서있다.
그녀가 한 권도 아닌 두 권의 수필집을 펴낸 지금이야말로 김정애 수필의 가치를 평가할 최적기라는 데 평자도 동의한다. 물론 『에세이문예』도 이런 차원에서 북토크콘서트라는 특집을 마련하고, 김정애의 문학성과 문학정신을 평가하고자 했다. 평론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수필가였다는 점에서 다운 수필의 가치 체계를 정립하는 것은 좋은 수필을 써나가야 할 후배 수필가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따라서 유배객의 생활과 역사적 아픔, 그 심정을 쓴 유배수필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수필의 문학성이란 수필이란 문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어야 한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문학적 접근 즉 수필이 일상의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문학적 장치를 예술적 장치로 승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리란 관점에서다. 수필의 예술적 접근만이 수필의 '잡문성'을 해소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폄하되어온 수필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전제해 둔다. 유배수필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누구나'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씌여지는 글이라는 인식이 세상의 저변에 깔리지 않는 한 수필의 운명은 서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 쓰기의 출발점은 문학적인 취미에서가 아니라 심미적 취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김정애의 유배수필은 이런 기준을 만족하고 있는가.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김정애의 유배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감성과 지성의 균형 있는 조화를 통해 당대 사회현상의 실재와 작가 스스로의 인생관을 동시에 얼마나 많이 노출했는가와 미적 취향을 가진 수필가인가 하는 관점도 중요하다. 유배수필이 기행문학 단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업그래이드된 상위 개념으로 나아간 ‘예술’에서 정의될 수 있는가도 평가 척도에 넣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수필이 내용을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주제와 제재 중심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라는 점을 김정애 유배수필이 만족시키느냐는 것도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그럼 지금부터 평론가로서 김정애가 아니라 김정애 수필가로서 유배수필의 문학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3. 유배수필의 지형
우리 문학 전체의 지형 안에서 김정애 ‘유배수필'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녀가 박사학위를 가진 평론가이면서 많은 수필 작품을 발표했고, 수필집은 부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수혜로 발간되었다는 점이다. 다수의 박사 수필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필도 잘 쓰는 수필가가 김정애다. 수필평론에 종사하는 인적 구성의 폭이 매우 넓어진 데 비해서 박사 수필평론가의 참여가 저조했다는 것은 수필의 철학성 확보 차원에서 크다란 손실이었다. 이와 같이 현단계에서 김정애 수필문학이 가지고 있는 위상은 수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장르적 성격을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정립해가야 할 유배수필정신에 대해 매우 암시적인 지표를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김정애의 유배수필의 위상을 면밀하게 해석하여, 유배수필이 유배문학 전체 영역에서 풍요로운 역할과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김정애가 수필을 매우 활발하게 창작해왔고, 유수한 수필지에 의해 우수 수필가로 뽑혀 왔고, 그녀의 문학적 성취도는 높지만 수필문학계 인지도 면에서는 약하다는 점이다. 인기 작가가 아닌 수필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일종의 신변잡기 혐의를 씌우면서 본격적인 공론의 장으로 편입시키지 않는 게 우리 문학적 풍토이고 보면,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김정애 수필작품을 접하지 못한 데 따르는 평가였다면, 수필문학의 발전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순수수필집에 대해서는 접근조차도 인색한 우리 현실을 개선하고, 우리 수필가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물론 수필이라는 것이 쓰기 전에 어떤 계획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 기분, 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라고 이해되고 있고, 나아가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오해의 중심에는 교과서에서 수필을 여기로 여기고, 국어사전에서 수필을 잡문화한 데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수필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이 수필가의 문학적 평가를 다소 늦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유배수필 안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세계 이해방식과 표현방식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같은 ‘순수수필가’의 수필을 옥석 가리지 않고 주변 장르로 인식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4. 수필평단의 과제
유배수필의 지형을 통해서 수필평단이 떠안은 과제는 첫째, 김정애 수필의 정확한 분석을 통해 유배수필을 문학의 본류에 편입시키는 일이다. 둘째, 기행수필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유배수필은 생소한 용어라, 수필계 내에서 유배수필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바로 김정애의 수필미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수필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수필언어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장르적인 언어를 빌린다는 점에서 종합문학이다. 따라서 수필미학은 다양한 관점을 포괄해야만 된다. '미'란 미학에서 다루는 문제다. 수필이 예술에 속하는 한, 우리는 수필의 예술성, 즉 수필미학에 대해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의 대립항을 찾아 대조하면서 서술하는 것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의 '미'와 다르다. 이런 차원에서 김정애 유배수필의 미학적인 조명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김정애의 유배수필 <세월의 구름 너머-김만중 모자의 인연의 향->, <신선도神仙島의 자력磁力>은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높은 품격을 지닌 수필이다.
결국 예술의 '미'는 조형미다. 그러면 이 조형성을 구성하는 인자는 무엇이며, 그 경계를 이루는 핵심 요소는 뭘까. 전통적으로 진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과학이고, 현실적인 선의 원칙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고, 미래적 생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 적어도 한마디로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때, 수필미학은 존재의 토대를 얻게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유배수필도 그 특유의 일상성, 무형식성, 평이성 등을 특색으로 하면서 비판적 문제제기보다는 공감의 영역을 지향하는 성과를 우리 문학에서 만만치 않게 거둘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애 유배수필의 탁월성은 인문적 사고를 통해 얻은 지성적 이해와 세계를 자아화하는 서정적 인식으로 변용되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두 수필은 유배 사건과 관계된 사람과 그 작품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유배수필의 생소함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던지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유배수필의 정립과 김정애 유배수필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II.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성과 예술성
지금까지 훌륭한 수필가가 존재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유배수필은 별 다루어지지 못했다. 아마도 유배수필을 유배객이 쓴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유배수필은 그 개념 정의부터 달라져야 한다. 오늘의 독자들은 유배자들의 올곧은 정신과 신념을 통해서 이 혼돈스럽고 험하고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양식이나 정신적 양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독자들은 이같이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요구하고 있다. 소신을 펼치다 불의에 항거하다 비록 유배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의로운 삶도 현대인들에게는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데 대한 확인을 가지게 해달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유배수필은 이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필은 문학이요,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해도 예술성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요, 문학성이 없으면 유배문학의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수필이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수필의 형식을 갖춘 글 가운데 예술성 즉 문학성이 제고된 수필다운 수필만을 수필로 인정해야 한다. 유배객의 수필도, 비유배객인 수필가의 유배 소재로 쓴 수필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수필의 문학성이란, 한 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들어가는 구조적인,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내심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 방식에 의해 표현된 것이다. 호반에 떠 있는 달빛의 요요한 자태를 그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 달빛을 내 방에 끌어들여 나와 대화를 하고, 거기에서 어떤 정신을 형상화시켜내야 한다. 이것이 ‘창조적 사상’이다. ‘서포가 귀양 왔던 삿갓 모양의 섬 노도가 손에 잡힐 듯 앉아있다. 곧 비바람이 거세진다는 일기예보로 배가 뜨지 못한대서, 나는 벽련포구에서 발이 묶여 멀거니 바라보고만 섰다.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여 그의 심중을 대신해봤다.그가 유배 온 첫해,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쓴 사친시思親詩가 안개처럼 스미어 가슴에 엿으로 달라붙는다.’배를 못 타 아쉬운 바깥풍경만을 그려서는 안 된다. 거기에서 김정애는 서포가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쓴 사친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빙의를 해서 서포의 심정이 되어본다. 체험의 변용이다. 이것이 문학으로서 수필이요, 예술로서 수필이다. 위의 측면에서 김정애의 유배수필은 상당히 문학성의 요구에 부응하는 편이다. 이는 지식인으로서 그녀의 철학 즉 지성이 유배수필 창작과정에서 정서화된 결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체 작품으로 유배수필의 문학성을 논할 수는 없다는 점도 밝혀 두어야겠다. 그의 대표적 유배수필인 김정애 수필 두 편의 문학성을 논의해 볼 차례다. 먼저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성은 ‘우회성’적인 기법에서 그 가치를 발한다. 김정애는 ‘주제의식의 간접화’라는 수필 창작의 비밀에 정통하기 때문에 문학성의 고지에 올라서는 통로를 잘 배웠음직하다. ‘한 거인의 삶과 문학이 궁금해 노도 앞에 선 내게 330여 년의 시간이 안개 자욱한 바다 위를 달려와 안긴다. 애틋함, 그리움, 억울함, 아쉬움, 근심걱정, 보고픔, 미안함. 초탈함 등이 마구 뒤섞인 기억이 곧 바다를 뒤집을 듯 파도로 술렁인다. 서포와 그의 모친 사이의 오래된 기억을 내가 지금 불러낸 까닭인가, 바다가 저리 수상해지는 걸 보니. 바다도 가끔 울고 싶어지고, 하늘도 그러하고, 멀쩡히 살아가는 듯한 우리 역시 그러하지 않던가. 실컷 울도록 자리를 비켜줘야지.’라는 표현에서 간접화는 초절정을 이룬다. 문학이 주는 맛이 절묘한 우회성에서 나온다면, 김정애의 인식을 형상화하는 수법은 탁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려내는 풍경은 절경에 가까운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정신을 어느 누가 이토록 아름답게 문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유배수필은 최고의 손맛을 자랑한다.
노도 김만중의 유허에서 서포와 모친 사이의 기억을 미적 정서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수필가적인 역량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 하겠다. 김정애는 유배수필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어느 봄날 남해 노도행을 택한다.유배수필을 쓰기 위해 유배지를 가는 것과 여행 삼아 가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한양에서 천사십오 리”(『신증동국여지승람』), 감히 한양을 넘볼 수 없을 만치 아득히 멀기만 한 땅에 불과했던 남해는 때를 잘못 만난 선비들에게는 눈물의 유배지였다. 고려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약 30명 정도가 남해군에 유배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인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은 남해섬에서도 1㎞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노도에서 적적하고 삭막한 유배생활을 했다. 1985년까지만 해도 노도는 등잔불을 켜고 살았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본디 삿갓처럼 생겨서 삿갓섬이라 불렸는데, 임진왜란 때 이 섬에서 노를 많이 만들었으므로 노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노도는 조선시대 국문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지은이로 널리 알려진 서포 김만중이 유배와 살다 죽은 섬이다. 김만중은 세도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한때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 높은 벼슬자리를 두루 거친 이다. 김만중은 함경도 선천에서 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고, 풀려났지만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난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그가 속했던 서인이 실각하자, 숙종 15년(1689) 관직을 박탈당하고 남해 노도 외딴섬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기사환국은 숙종이 많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숙원 장씨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삼은 데서 시작되었다. 온종일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한숨짓던 노인 김만중을 일컬어 마을사람들은 놀고먹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노자묵자할배’라 불렀다고 전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은 어머니 윤씨를 위해 구운몽을 썼다. <구운몽>은 홀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소설로 여덟 명의 선녀와 함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것은 결국은 덧없는 하룻밤 꿈임을 깨닫고 수도하여 마침내 극락으로 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표면적 웃음만이 아닌 울음의 연원, 속살부터 탐험해야 하리라. 노도 행은 무엇보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 처소가 궁금해서 결심했다. 절해고도로 유배 온 그의 복잡한 심정의 일면이나마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사씨남정기』와 한글소설 『구운몽』 등을 집필했던 공간, 창작의 씨앗이 된 노도 현장을 꼭 체험하고 싶다.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유람삼아, 여행 삼아 다니는 게 아닌, 서포가 된 마냥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해봐야지. 그래야 그의 심중을 조금이라도 깊이 헤아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원 13명인 작은 배를 타고 노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노도문학의 섬’이라고 새긴 커다란 기념비가 보인다. 서포가 팠다는 우물, 서포초옥, 김만중의 허묘墟墓,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작중 인물 모형들이 있는 야외전시장 등을 죽 돌아보았다. 우물은 버썩 말라 갈변한 나뭇잎으로 덮여있고, 초옥의 뜰에 서니 야산에 자란 나무 탓인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상상만큼 서포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건 초옥을 새로 지은 탓인가, 빈약한 내 감성 탓일까. 차라리 산길로 나섰다. 서포가 묻혔다가 고향으로 옮겨가서 지금은 허묘가 된 곳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멋있게 조성되어있었다. 막상 찾아본 허묘는 삐죽빼죽 작은 돌들로 둥그렇게 위치 표시만 해둔 채 그 안에는 낙엽만 쌓여 바람에 흩날린다.
서포가 거닐었을 산길에는 남해가 과객에게 내미는 배려의 방석인 양 두터운 마대가 깔려있었지만, 아직 덜 색칠한 그림처럼 강파른 곳은 비어있어 비온 뒤라 매우 미끄럽다. 거의 주저앉다시피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구세주처럼 뻗어있는 나무줄기를 잡았다. 서포가 의지했던 나뭇가지는 지금 저 우듬지 근처까지 자라있을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바위에 그도 앉아서 땀을 식혔겠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과 걱정으로 눈물이 핏물처럼 고였으리라.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저 구름을 보며 구운몽의 모티브를 얻었을까. 때론 서포의 마음으로 멀거니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외롭고 저린 마음, 빈 가슴을 채우듯 문학에의 창작 욕구 등이 내 가슴에 오버랩된다. 서포의 손길이 닿았고 그의 감정이 앉고 누웠을 따뜻한 바위에 윤씨 부인의 마음을 살포시 포개어 매만지니, 그녀의 아픔이 찌르르 감전되듯 전해온다. 비 온 뒤 깨끗이 씻어 정갈하게 다려진 마음이 다시 어제의 바다처럼 요동친다.
- <세월의 구름 너머> 중에서 -
또 하나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적 우수성은 그의 수필이 '구체성과 보편성'에 기대어 창작된다는 점이다. 구체성과 보편성은 문학 고유의 특성이다. 그것으로 문학은, 여타의 인간 정신활동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의 독자성을 옹호한 이래로, 문학작품들이 영속적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바로 감각적 구체성과 보편성 때문이었다. 구체성과 보편성에 입각하여,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배경을 가진 다양한 독자들이 텍스트의 객관성에 그들 나름의 주관성을 가미해서, 보충적으로 문학성을 구현시킬 수 없었다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유산으로서의 문학작품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그녀가 ‘유람삼아, 여행 삼아 다니는 게 아닌, 서포가 된 마냥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해봐야지. 그래야 그의 심중을 조금이라도 깊이 헤아려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목적의식으로 남해 유배지로 떠났던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배수필을 쓰려는 작가에게, 가장중요한 것이 대상에 대한 애정이다.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어떤 기술적인 장치나 기교만으로는 문학적 감동을 담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서포가 의지했던 나뭇가지는 지금 저 우듬지 근처까지 자라있을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바위에 그도 앉아서 땀을 식혔겠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과 걱정으로 눈물이 핏물처럼 고였으리라.’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저 구름을 보며 구운몽의 모티브를 얻었을까.’ 김정애는 서포의 마음으로 멀거니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외롭고 저린 마음, 빈 가슴을 채우듯 문학에의 창작 욕구 등이 김정애 가슴에 오버랩된다. 서포의 손길이 닿았고 그의 감정이 앉고 누웠을 따뜻한 바위에 윤씨 부인의 마음을 살포시 포개어 매만지니, 아픔이 찌르르 감전되듯 전해온다고 적고 있다. 그렇게 서포와 어머니 윤씨의 마음으로 노도에서 두 행위소간 이별의 아픔과 모정의 위대함을 추모하니, ‘비 온 뒤 깨끗이 씻어 정갈하게 다려진 마음이 다시 어제의 바다처럼 요동’쳤다고 적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귀양 가는 날 그의 어머니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그녀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이르며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문효공휘만중 행장’에 ‘영해로 유배되는 일은 선현으로서도 면치 못한 것이니, 그곳에 가거든 자신을 소중히 하고, 나를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왜 슬프지 않았으랴. 왜 억울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키워냈고, 얼마나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인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와 잠자리를 살펴주던 효성스런 아들이 아니던가. 절해고도로 귀양 가는 아들을 동네 어귀의 큰 나무처럼 의연히 보냈었지만, 그녀는 아들이 유배 떠난 지 1년 후 세상을 떠나셨다. 윤씨 부인의 큰 아들은 사화에 연루되어 이미 목숨을 잃었고, 유복자인 작은 아들마저 유배형을 받아 멀리 남해로 떠나, 홀로 남았으니 그녀는 강화도에서 남편 잃고 배 안에서 서포를 낳을 때보다 더 절망스러웠으리라. 윤씨 부인의 한은 하늘에 맺히고 바다에 스몄을 것이다. 아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생살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절망스러웠으리라. 그래도 심연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어미의 사려 깊은 심중이 헤아려진다.
윤씨 부인의 현명한 성품과 어진 심중을 잘 아는 김만중은 평소 글 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말 소설 『구운몽』을 썼다고 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녀는 과연 이 소설을 읽으셨을까. 아들이 유배 떠난 지 1년 만에 돌아가셨고, 부고는 임종 후 6개월 뒤에나 서포에게 전해졌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구운몽 소설이나마 읽고 가셨으면 좋으련만…. 구운몽은 어머니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치유가 되고 위로도 됐을 것 이다. 『구운몽』에 이런 구절, ‘세상의 모든 일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라는 말이 나온다. 유학자인 그가 가혹한 시련을 통해 불교 금강경 1구게, 상相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불선에 두루 통한 그가 크게 위로받지 않았을까.
- <세월의 구름 너머> 중에서 -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성 문제는 앞서 언급한 ‘우회성’과 더불어 나음의 두 가지를 구제하는 데에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가 ‘구체성’의 확보인데, 이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이나 사상을 어떻게 구체성으로 구제하느냐 하는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하면 사상이나 교훈은 추상인데, 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어떻게 형상미학으로 구체화해내느냐에 문학성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 확보인데, 이는 잡다한 이야깃거리 즉 정보나 소재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변용하는가의 문제다. 다양한 소재들이 문학적으로 구제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개성적이고 일관된 관점 아래 그것들이 내적 통일을 이루어야 하고, 그 통일성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어떤 해석을 드러내어야 하는데, 보편성은 그 해석이 온당할 때 얻어지는 기쁨인 것이다. 수필이란 반드시 필자의 목소리가 강하고 필력이 있어야 호소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지만 진실된 목소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때 힘을 지니는 것이다. 이 유배수필은 이러한 구체성을 특성으로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애의 위 수필은 역사의 아픔이란 주제와 어머니와의 이별에 초점을 두고 윤씨 부인의 심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관점으로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수필이 ‘구체성’과 ‘보편성’의 요소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 부인의 한은 하늘에 맺히고 바다에 스몄을 것이다. 아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생살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절망스러웠으리라. 그래도 심연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어미의 사려 깊은 심중이 헤아려진다.’는 진술은 ‘왜 슬프지 않았으랴. 왜 억울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키워냈고, 얼마나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인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와 잠자리를 살펴주던 효성스런 아들이 아니던가.’에 슬픔의 근거가 다 놓여있다. ‘절해고도로 귀양 가는 아들을 동네 어귀의 큰 나무처럼 의연히 보냈었지만, 그녀는 아들이 유배 떠난 지 1년 후 세상을 떠나셨다. 윤씨 부인의 큰 아들은 사화에 연루되어 이미 목숨을 잃었고, 유복자인 작은 아들마저 유배형을 받아 멀리 남해로 떠나, 홀로 남았으니 그녀는 강화도에서 남편 잃고 배 안에서 서포를 낳을 때보다 더 절망스러웠으리라.’는 대목은 윤씨 어머니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실 아들이 둘이나 사화에 연루되어 변고를 당했으니,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윤씨 부인의 한은 하늘에 맺히고 바다에 스몄을 것이다. 아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생살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절망스러웠으리라.’이런 상황에서 ‘한은 하늘에 맺히고 바다에 스몄을 것’이라거나 ‘생살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절망’적이 었을 거라는 표현은 얼마나 설득적인가. 이런 표현은 쉽게 공감을 획득한다. 그것은 작가가 삶의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체험적인 구체성으로 제시하거나 그것을 보편성에 기댄 인식논리로써 우리에게 제시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배수필은 집을 벗어나야만 좋은 글감을 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게 유배수필이다. 김정애는 아내와 어미라는 자리를 홀가분하게 박차고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권력도 부귀영화도 모두 빼앗긴 채 '유배'라는 백척간두에 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을 꽃피웠던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불멸의 혼을 기리기 위해 또 잊혀져 가는 유배객들을 기리는 문학의 진한 향기가 피어나는 공간인 남해로 와서 2박 3일간의 여정을 소화한다. 유배객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해 본 끝에 탄생한 수필이 유배수필이다. 잊고 있던 기억 저편의 모습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서정어린 그림처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이 유배수필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유배수필의 근간은 깊은 인간관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과의 만남이고 당대의 역사와 문화의 상호 교류에 있다. 유배수필의 세계는 이동의 세계다. 유배객의 발자취를 따라 초점을 맞추고 서술하는 것이 유배수필이기 때문에 극히 역사적인 안목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작가는 여행을 통해서 유배객의 마음으로 제 나름의 아픔을 내뿜으며 존재를 밝히는 유배문학에 기대어 당대의 아픔을 보며 역사의 교훈을 얻거나 삶의 새로운 의미를 터득하게 된다.
남해에서 유배문학이 꽃핀 건 다만 유배객 덕분일까. 남해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외딴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유배객이 왔다는 건 틀림없다. 남해를 유배문학의 성지로 만든 것이 외부의 우수한 인재들 덕분이라는 치하에도 별 이의가 없다. 다만 이게 유배객 일방에 의한 결속에 불과하다할 수 있을까. 신선이 거할 것 같은 남해의 경景과 정치적 형벌을 받고 귀양 온 유배객의 마음 정情이 만났으니, 남해가 문학이 꽃 필 최상의 조건이 된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남해가, 그 빼어난 자연이, 정치적 유배객을 우수한 문학인이나 선비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오늘날에도 남해의 경景이 신선의 섬으로 손색없으니, 섬이 안고 키워낸 인재의 씨앗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용틀임하는 정情이 있다면, 그들도 필시 유배객들의 기운을 닮아, 훌륭한 문학인이나 학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로 미루어 남해 자연의 힘을 유추해볼 수 있으리라.
- <신선도神仙島의 자력磁力> 중에서 -
김정애의 <신선도神仙島의 자력磁力>은 작가가 유배의 섬 남해의 풍광을 보고, 남해가 문학이 꽃필 최상의 조건을 가진 섬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 잘 노정되어 있다. 또 작가는 남해가 키워낸 인재들이 유배객의 기운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어, 이 수필은 남해 또는 남해인 예찬의 성격을 띤다. 전개는 자암 김구와 약천 남구만의 유배작품을 토대로 남해를 일전선도, 화전으로 불린 연유를 말하고, 결말부는 남해 내산에 위치한바람흔적미술관으로 가서 내산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산에 가득 펼쳐진 안개를 보며, 남구만이 망운산 산정에 서서 고향땅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이 물안개처럼 자신의 가슴에 스며듦을 느끼며, 남해유배여행의 의미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달았다. 결말부로 가서도 김정애 수필가는 자암 김구의 시선으로 남해의 매력에 흠뻑 젖는다. ‘지식층인 유배객과 아름다운 남해 자연환경의 조화로 유배문학이 꽃필 수 있었던 건, 인간의 일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닌, 어쩌면 신선의 섬, 선비의 섬, 남해가 불러들인 운명의 끌어당김은 아닐까.’ 라는 표현에는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과 동화된 작가 자신의 남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녹아 있다.
남해 유배기행에서 마주친 남해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호의적이다. 남해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띤다. 인간의 가슴 속에는 누구에게나 순수에 대한 향수가 서려 있다. 순수를 등진 환경이 감동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부산을 떠나 남해를 돌아보면서 남해 사람의 체온과 향기를 만나고 이 글을 썼다. ‘오히려 남해가, 그 빼어난 자연이, 정치적 유배객을 우수한 문학인이나 선비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오늘날에도 남해의 경景이 신선의 섬으로 손색없으니, 섬이 안고 키워낸 인재의 씨앗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용틀임하는 정情이 있다면, 그들도 필시 유배객들의 기운을 닮아, 훌륭한 문학인이나 학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는 김정애 작가의 예언대로 자연과 사람의 만남으로 성립되는 소중한 관계가 정겨운 강물처럼 출렁이고 있어 일단 이 작품은 출향한 남해인에게는 너무나 큰 선물이 될 것이고, 큰 감동도 안겨준다.
‘남해의 풍광’이라는 제재에 담아 남해 유배객의 풍격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서 휠씬 더 주제가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간적 감촉, 개인적 체취가 강하게 풍겨났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의 깨달음은 다시 사회와 역사로 시선을 확대하여 남해찬가의 성격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기행의 소산으로써, 이 수필은 사색적이며 담담한 필치가 전체 남해에 대한 인상과 남해 유배객의 사상을 일관되게 나타내고 있어 ‘보편성’을 띤다. ‘오늘날 남해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뛰어난 문인 예술가들이 스스로 출出해서 입신양명의 길을 걸어도, 약력에 늘 남해 출신이라 적는 자부심은 이 섬이 지닌 선비 기운의 끌어당김은 아닐까. 저 용오름처럼 신선의 섬, 선비의 섬 남해에는 지금도 수많은 학자와 문인 예술가들이 솟아날 것 같다.’는 데 이르러, 남해인의 애향심을 높게 평가되고 있다. 남해유배문학기행 속에서 남해의 인상을 잘 드러내 감동을 준다는 측면에서 김정애 수필은 남해유배수필로서 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고 하겠다. 유배수필은 신선한 충동만 가지고 써서는 수필이 되지 않는다. 시공간을 적절히 옮기면서 유배의 흔적을 적어 나가는 글이 유배수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신선한 충동이 되려면, 유배수필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김정애 유배수필처럼 문예적 감흥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II. 닫으며
지금까지 봄꽃처럼 소담하고 질항아리처럼 담박했던 그녀가 남긴 유배수필들이 주는 가치는 너무도 무겁다. 제한적으로 그녀의 대표적 유배수필 두 편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남해유배수필의 묘미를 더듬어 보았다. 분석해 본 바, 김정애 유배수필의 문학성은 ‘우회성’과 ‘구체성’ 그리고 ‘보편성’이라는 틀 속에서 나온다는 게 평자가 내린 결론이다. 수필의 문학성은 이 세 요소가 합해졌을 때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어떤 옷이 작품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 좋은 디자인, 좋은 옷감은 기본이다. 문제는 그 옷의 색깔과 문양이다. 좋은 옷감으로 잘 디자인된 옷에 어떤 색깔의 문양을 새길 것인가가 작품의 종합적인 품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정의해서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한다. 형상은 구체성과, 그리고 인식은 보편성과 연결된다. ‘구체성’의 결여는 미적 쾌락의 결여로 이어져, 심미성을 주지 못해 미적 구조로서의 문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보편성’의 결여는 교훈성의 결여, 즉 인식의 결여로 이어져, 수필을 소재 제시나 나열에 불과한 단편적 잡문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두 편의 수필은 우회성 그리고 구체성과 보편성의 문제에서 자유롭다. 이는 김정애가 수필작법을 제대로 터득하고 창작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김정애는 부산교육대 대학원 윤리교육학 석사,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12년《에세이문예》수필로 등단, 2013년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에세이문예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작품상, 부산수필문학작품상, 한국에세이작품상 등 각종 문학상 중에서도 작품상을 많이 수상하고, 현재는 부산수필문학 편집장, 에세이문예 편집1부장, 부산pen 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수필집으로 <내 마음의 엑스레이>와 <탈춤>이란주옥 같은 수필집을 남겼다. 그녀의 수필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적시고 있는 데에는 필시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문학인으로서의 치열한 노력과 미적 진보를 지향하는 그녀의 문학관은 이번 남해유배수필에 문학적 힘을 부여했다고 하겠다. 때문에 그의 수필은 큰 호소력을 지닌다. 평자는 김정애의 유배수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데 주저할 수 없다. 남해인이 아니지만 남해 사람 같은 마인드로 남해와 남해로 유배 온 유배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문학적 구성을 통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로 써서 남해유배문학 북토크에 올려진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북토크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평소 본격수필을 향한 열정과 문학적 재능 때문이라는 것을 부기해두고자 한다.
김정애의 <세월의 구름 너머>는 서표의 유배지 남해를 둘러보고 쓴 글이다. 작가는 한정된 시간을 살면서 권력을 잡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의 비정한 세계를 김만중의 유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을까, 역사 속에서 오욕의 표본으로 남아있는 사화로 인한 비극의 현장을 비통한 마음과 안타까운 시선으로 돌아보고 있다.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바른 말 하는 충신을 잔인한 죄로 절해 고도 섬에 가두는지, 한 세상 머물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일진데, 우리네 삶은 투쟁으로 얼룩져 소란스러운 건 예와 지금이나 마찬가지란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평범한 인간도 아닌 고관대작에서 쫓겨나 애를 태우며 유배지에서 비참하게 살았던 유배객 흔적이 한 조각 아픔으로, 세월에 마모되어 비애로 흐르고 있다. 자신을 그리며 눈물로 지새우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서포의 애절한 정을 일깨워주고 있는 듯하다. 유배의 역사를 간직한 남해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이곳을 스쳐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유배문학관을 들린다. 우리 역사가 후세 사람들에게 남기고 있는 것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다. 이러한 아픔의 역사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유배수필의 값어치는 크다고 하겠다. 이 땅의 수필가들이 치열한 사회의식을 가질 때, 그리고 역사의식을 드러낼 때, 명실상부한 문학의 본령에 값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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