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우리나라에는 "중세 시대는 교회의 억압 때문에 모든 것이 퇴보한 암흑기였다!" 라는 이야기가 맞는 사실처럼 퍼져 있습니다. 신자분들조차 당연히 가톨릭 교회가 잘못한 거 아니냐고 셀프 디스를 하시는데 왠지 우리나라는 그런 오해와 가짜 상식이 잘 안 고쳐지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로 계시는 박승찬 교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교수님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독일에서 중세 철학을 공부하시고 귀국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비민주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일들이 벌어질 때, '마치 중세 암흑기와 같다' 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에 크게 놀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 중세 철학 전공자로서 중세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 포털에서 "암흑기"를 검색해보면 "중세기 암흑기? 사실 다채로운 빛의 시대였다!" 라는 정정된 기사들이 대다수 검색이 됩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세의 역사와 사상에 관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와서, 가짜 상식에 잡혀 있던 언론 보도와 사진 자료들이 많이 정정된 상황입니다.
중세가 1000년이 넘는데, 1000년 동안 암흑기라고요???
기본적으로 중세는 로마 제국의 몰락이 시작되는 5세기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인 16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시기입니다. 그 긴 기간이 다 '암흑기' 하는 게 말이라도 되는 일일까요? 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중세 시대가 가톨릭 교회의 억압으로 인해 광신과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문화적이고 물질적으로 쇠퇴한 시대였다는, 즉 괴롭고 힘들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릅니다. 중세야말로 도시 전체가 참여하는 다양한 축제를 만들고 발전시켰던 시기였고, 다양한 음악과 연극, 미슬이 발전했으며, 수많은 문학 작품이 집필되었고, 대학이 발달했고, 요즘도 유럽 여행에서 보게 되는 대성당들이 다 지어졌던 시기였습니다. 로마나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수천 마을을 여행도 했던 시기엿습니다. 단테, 토마스 아퀴나스, 레오나르도 다빈지, 미켈란젤로 등등 문학과 예술로 유명한 인물들 역시 열심히 활동했던 시기였습니다.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문명이 퇴보한 300년 정도 기간이 '암흑시대'
기본적으로 암흑기 또는 암흑시대라는 말은, 476년 서로마 멸망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시작되어 카를 대제의 문예 부흥(800년)으로 회복되는, 300년 정도의 시기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봤던 바로 그 시기에는, 프랑크 왕국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동로마 제국은 유럽과 이탈리아를 수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등, 정말로 유럽의 문화유산이 이어지지 못하고 파과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요즘은 그런 극단적인 말 대신 '중세 초기' 라고 부릅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비평이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정착
처음 중세를 암흑시대로 지칭한 기록은 14세기 초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저작에 나오고, 당신 '흑사병'(1346-1353)이 터져서 흑사병 관련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대인들은 그때를 암흑시대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중세 전반을 암흑시대라고 지칭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18세기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비평 때문입니다. 귿르은 근대적 편견에 사로잡혀, 중세를 찬란했던 로마 시대와 문명이 발전한 '근대' 시기 중간에 있는 '암흑의 시대' 라고 깎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세 사상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자신들을 고대 사상의 직접적인 계승자로 자처했다고 합니다. 그런 독일 역사가들의 견해가 일본의 역사가들에게 수용되었고, 일제 정점기의 영향으로 '암흑의 시대' 라는 표현이 우리나라의 교과서에 까지 실리면서 중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만 암흑기라는 오해가 남아 있고, 유럽에서는 중세에 대해 그 명암을 다 볼 수 있도록 상세하게 공부한다고 합니다. 결국 다시 살펴보면 중세는 근대 문명을 꽃 피울 수 있게 해 주는 토대가 되는 다채로운 시기였던 것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중세만큼이나 잘못 이해되고 저평가된 기간은 없다!
2024. 08. 18일 주보 사제단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