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眞正)한 웅변은 진리(眞理)를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 밀턴
영국 시인 밀턴의 이 말을 나는 웅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다.
민주정치시대는 웅변을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서로 간에 대화(對話)가 필요한 시대이다. 현대는 옛날처럼 웅변이나 웅변가를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웅변이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도 웅변이 필요한 때가 있다.
웅변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유창하다고 웅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웅변은 사람의 표현(表現)이다. 웅변의 배후(背後)에는 인물이 있다. 웅변은 인간의 가슴속 싶은 데서 나오는 힘찬 말이다. 진실의 원천에서 솟구치는 감동적인 말이다. 웅변의 흉내는 얼마든지 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웅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인격(人格)에서 위대한 웅변이 나온다. 작은 물고기는 얕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서 산다.
웅변도 마찬가지다.
깊은 마음에서 깊은 말이 나올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만이 진리의 말씀을 토할 수 있다.
웅변을 하고 싶거든 위대한 인격이 되어라. 특히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는 왜 웅변이 없을까. 웅변을 할 만한 대인격(大人格)이 없기 때문이다. 웅변의 원천인 진리애(眞理愛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사람을 표현한다.
언은 인이다. 웅변을 원하거든 인품을 길러야 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대인격을 양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