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안 바꿔 줘!” 바꿀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엄숙하고 정숙을 요구하는 법정에서 울려퍼진건 한 판사의 ‘호통'이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이다 같이 시원한 호통에 ‘호통판사'라며 환호했다
판사는 왜 법정에서 ‘호통' 쳤던 것일까? 그것은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사이다 장면에 불과했을까?
호통판사로 유명하신 천종호 판사님의 책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에선
우리가 몰랐던 소년범이 되기 전 그들의 이야기와
소년범이 되고 난후 내려진 처벌과 그에 따른 시선, 그리고 그들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까지
내가 모르고있던 아니 관심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실들에 대해 알려준다.
그 중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건 상준이의 이야기였다.
공갈죄 등의 비행으로 소년재판을 받은 상준이는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신 뒤로 할머니 손에 길러졌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지낼곳이 없어 샬롬청소년회복센터에 맡겨지게 된다.
센터에 들어오고 낯선공간,낯선 사람들에 경계하며 마음을 잘 열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상준은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센터장 부인에게 대뜸 ‘엄마'라 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왜 자신을 엄마라 부르냐는 센터장 부인의 질문에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엄마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게 해 주세요"
상준이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던데에는 친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세 살일 때 이혼한 친엄마는 그 뒤로 연락이 끊기고 단 한번도 찾아오지않았다.
나중에 그가 센터에 있을 때 친엄마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벅찬마음으로 전화를 했지만
돌아온건 다신 전화하지 말라는 싸늘한 대답과 ‘결번입니다' 라는 차가운 기계음.
새로 가정을 꾸린 친엄마는 상준이 또 전화 할까봐 전화번호를 아예 해지한 것이었다.
그저 친엄마의 얼굴 한번 보고 싶었던 상준은 큰 상처에 울었고,
그런 그를 쓰다듬으며 “내가 니 엄마잖아. 넌 내가 가슴 아파 낳은 내 아들이 맞다" 라고 말한 센터장 부인이 그의 진짜 ‘엄마'가 되어주었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말로 묶인 인연 때문인지 센터장 부인은 상준의 거처를 센터가 아닌 센터장 부부의 집으로 옮기고, 기죽지 말라고 친아들에게도 안사준 10만원 패딩을 사주는 등 그를 따뜻하게 보살폈다.
그리고 이에 보답하듯이 일방적으로 떠들어대고 수선스럽게 행동하는 정서장애를 가지고 있던 상준이는 “그 말 많던 아이가 이 아이가 맞냐"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변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학교에도 복귀해 열심히 생활한다.
이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던 이유는 내가 평소 가지고있었던 소년범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였다.
범죄자들을 보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였다.
‘한번을 했는데 두번을 못하겠나'라는 것과 교도소에 가면 범죄기술을 더 배우고 나온다는게 그 근거였다.
이런 생각은 소년범도 동일했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대범하고 배우는게 빠를거기 때문에
나쁜물이 든 순간 그건 순식간에 커진다 생각했고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청소년의 90퍼센트가 1년안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와 재범률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근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안한게 있었다.
바로 그 원인. 왜 그들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까?라는 물음말이다.
‘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실수나 잘못도 용인하지 않고 일찌감치 사회적 낙인을 찍어버리면 더 잘못된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바뀌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태에서는 희망을 품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내가 가지고있던 ‘범죄자(소년범)들은 변하지 않아. 그들은 영원히 범죄자다’ 라는 낙인이 그들에겐 꼬리표가 되어 희망을 품지도 못한채 생존을 위해 다시 비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것이다.
그리고 그 꼬리표는 무책임한 어른들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려야 했던 소년범들에겐 더욱더 잔인했을 것이다.
실제로 소년재판에 오는 소년범들은 경제적어려움과 결손가정인 경우가 많다.
애초에 부모님이나 보호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면 그들이 피해를 변상하고 용서를 받는 단계에서 끝나 재판까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각 이상으로 소년재판에 온 소년범들이 처한 환경은 정말 열악하다.
그렇기에 우린 이제 그들을 그저 변하지 못할거라는 단정과 비난만 할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경을 개선에 노력하고 다시 법정에 서지않게 잡아주는 아빠와
어른,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품어주는 엄마 와같은 존재가 꼭 필요한 것 같다.
상준의 엄마가 되어주었던 센터장 부인과 같이 말이다.
“소년재판을 할때 한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분 정도였지요.
이처럼 너무 짧다보니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의 무게를 깨닫고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호통을 치기 시작한것 입니다"
그리고 여기 또 아버지의 마음으로 호통을 치는 판사님이 있다.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많은 ‘소년' 이기에
이 ‘호통'을 통해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라는 ‘호소'를 하며
정숙한 법정에서 판사는 오늘도 소년에게 ‘호통'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