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작가 이택민ㆍ강미화 부부의 그릇을 이루는 방, 이룸공방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도예공방 ‘이룸’. 하얀색 시멘트사이딩으로 곱게 옷을 입은 공방 안에는 그보다 훤씬 고결한 순백의 도자기들이 알알이 여물어 가고, 시간이 흐른 뒤 ‘백자’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누군가의 온기를 가득 머금은 채.
순백의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예가 이택민. 평범한 이름 석 자에 도예가란 업을 얹게 된 건, 단순한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그 또한 자신이 흙을 빚게 된 계기를 지극히 일상적인 제안에서 비롯된 일이라 회상했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진로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죠. 그때 도자기를 전공하셨던 막내 이모께서 미대에 진학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더군요. 그래서 고2때, 난생 처음 미술학원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학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노량진. 또래 친구들이 제법 규모도 있고 수강생들로 북적이는 학원을 찾아다니는 동안, 택민 씨는 1층에 작은 한약방을 둔 미술학원에 멈춰 섰다. 미술학원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학원에 닿기 전 거치는 1층 한약방.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한약 냄새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다. “천천히, 느리게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시작을 위해 필요했던 건, 체계적인 미술교육보다 학원가는 길에 맡는 은은한 한약 냄새가 제겐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 냄새를 맡으며 내가 가야할 길, 잘할 수 있는 것, 진짜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곤 했지요.” 여러 전공 중에 도예과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졸업 후 첫 실전무대는 지금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파주 프로방스 마을의 도자기 공방이었다. 프로방스 마을 형성의 초창기 멤버였던 그는 5년 간 그곳에서 도자기를 구워냈다. 하지만 어쩐지 시간이 흐를수록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곳곳에 자리한 지인들의 작업실 한 켠에 머물며 작업해 보기도 했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작고 남루해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업실과 신념을 담은 도자기를 만들어야 할 때임을 스스로 자각했던 시점이다.
도예가에게 치명적이던 3년의 시간
아내와 함께 이뤄낸 생애 첫 작업실
프로방스 공방에서 함께 일한 계기로 지금의 아내가 된 강미화 씨와 함께 1년간 작업실과 살림집을 함께 둘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이미 많은 도예가들이 상주해 있는 여주를 1순위로 꼽아오다 우연히 국도를 지나쳐오며 만난 경기도 양평의 한 마을을 보고선 생각이 바뀌었다. 조용하고 푸르른 산새도 일품이거니와 곳곳에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많이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선 마음을 굳혔다. 2007년 5월, 그렇게 1층에 공방, 2층에는 부부의 살림집 그리고 작은 텃밭을 둔 생애 첫 작업실이 완성되었다. ‘이루다’란 의미와 ‘이택민만의 방’을 뜻하는 ‘Room’을 더해 ‘이룸공방’이란 간판을 내걸고 잠시 멈추었던 작업을 다시 이어갔다. 그토록 염원했던 작업실을 가졌기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이러한데 몸이라고 가만히 둘 수 있었을까.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테이블과 의자, 수납장, 선반에 이르기까지 손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팔을 걷어 부쳤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싶었는데 마음이 너무 앞섰 던 걸까.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공방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던 중, 그만 톱날에 왼쪽 손이 심하게 베이고 말았던 것. 그 후 3년간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의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왔다고. “다시는 도자기를 빚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사고후유증 때문에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하지만, 묵묵히 제 옆을 지켜주는 아내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재활뿐만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아내를 통해 얻게 되었어요.” 이제 막 새살이 돋아난 그의 직업적 소명이 가장 먼저 다다른 곳 역시 흙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실 선반 가득 놓인 도자기들은 먼지 한 점 조차 닿지 않을 듯, 정갈한 선과 색을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만지게 된 흙은 그를 살게하는 원동력이다.
부부가 함께 완성해낸 공방 내부의 모습.
요리전문가의 단골 그릇들.
명품 조연을 꿈꾸는 남자의 그릇
그 남자의 그릇에 매료된 사람들
도자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한없이 편안하다 못해 한 치의 꾸밈이 없다. 작품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비움의 철학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분청사기ㆍ청자ㆍ백자 가운데 유독 백자에 애착을 보이는 것 또한 이 이유에 속할 것이다. “저는 제가 만드는 백자 그릇들이 신주단지라도 모셔야 할 듯 작품으로 비춰지길 원치 않아요. 도자기는 본래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릇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백자는 드라마 속 명품 조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쓰이느냐’에 집중하는 것, 이게 좋은 그릇의 조건이 아닐까요.” 이택민 도예가는 일명, ‘실용그릇’을 지향한다. 그래서인지 그릇 종류들이 커피잔부터 와인잔, 접시, 찬기, 볼, 백자항아리, 오브제ㆍ램프ㆍ풍경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들 일색이다. 어떤 와인 전문가는 투명한 와인글라스 대신 이작가의 백자 와인잔에 로제 와인을 담아 즐겨 마실 정도라고 하니, 이쯤 되면 기존의 상식마저 깨뜨리는 이색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겉멋은 내려두고 백자 고유의 색감만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빚어낸 그릇들은 요리전문가들이 먼저 찾는 단골 그릇으로 요리전문잡지와 여성지에 꾸준히 등장했다. 그릇보다는 음식에 먼저 눈이 가는, 그가 지향하는 명품 조연다운 그릇에서 묻어나는 겸손이 음식을 먹는 이들에게 혹은 음식을 만드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 아닐까.
가마에 그릇을 넣을 때 마다 그는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된다.
차곡차곡 도자기 익어가는 소리.
일일도자기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진 한 컷.
그들만의 손으로 완성되던 백자
누군가의 손으로 재탄생되는 그릇들
쓰임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신이 연출되는 순백의 그릇들. 100%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해 완성되는 그의 그릇들은 최근 그러한 겉옷마저 과감히 벗어던졌다. 양평에 정착한 후, 도예가의 아내는 남편이 손바닥으로 빚어낸 하얀 그릇 위에 자신의 손끝으로 살포시 수를 놓곤 했다. 인위적으로 대상을 그려넣기 보다는 마치 봉숭아물을 곱게 들인 어린 소녀의 손톱을 보는 듯한 느낌을 연상시키는 붓터치로 그릇의 여백을 채웠다. 그 시작을 계기로 부부 이전에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동료가 된 이택민ㆍ강미화 부부. 이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파트너쉽을 살려 ‘백자’라는 것이, ‘도자기’라는 것이 결코 감상품이 아닌, 누구든 만들어 보고 활용할 수 있는 것임을 차근차근 일반에게 알려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일일 도자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부부와 함께 흙을 만지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그릇을 만들고 돌아갔다. “특별하진 않아도 한결 같은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부부가 가야할 방향인 것 같아요. 오래두고 보아도 그 자리에 있는 듯, 여러 색의 음식을 담아내도 늘 맛깔스런 그릇으로, 그렇게 정감 있는 백자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 도예공방 ‘이룸’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봉상리 387-10번지에 위치. 부부 도예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그릇들이 한곳에 전시되어 주문 및 구입이 가능하다. 100% 예약제에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도자기 체험에는 초벌된 그릇에 그림을 그려 넣는 ‘핸드페이팅’, 직접 손으로 그릇을 만들어내는 ‘핀칭’, ‘물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031-775-8342 http://yiroomine.blog.me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
출처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Vol. 163-9 / 전원속의 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