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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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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사리舍利 외 / 유안진
동산 추천 0 조회 177 13.04.02 14: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리舍利 / 유안진 

 

 

가려주고
숨겨주던
이 살을 태우면


그 이름만 남을거야
온몸에 옹이 맺힌
그대 이름만


차마
소리쳐 못 불렀고
또 못 삭여낸


조개살에 깊이 박힌
흑진주처럼


아아 고승(高僧)의
사리(舍利)처럼 남을거야
내 죽은 다음에는.
  

  

 

 

가을 편지 / 유안진 

 

 

들꽃이 핀다
나 자신의 자유와
나 자신의 절대로서
사랑하다가 죽고 싶다고
풀벌레도 외친다.
내일 아침 된서리에 무너질 꽃처럼
이 밤에 울고 죽을 버러지처럼
거치른 들녘에다
깊은 밤 어둠에다
혈서를 쓰고 싶다.  
 

 

 

 

 

 

 

 

  

 

두루미를 보다가 / 유안진 



하늘에 사는 이가
잠깐 땅에 내려서는 것도
미안하게 여겨
외다리 맨발 한쪽만 딛고 서는
저 겸손과 염치 있음에
가슴 뜨끔해져 
있는가, 아직도 용서받을 여지가. 

 

 

 

 

 

 

 

 

 

겨울을 기다리며 / 유안진  

 

 

겨울이 오면
나는
바람이 될 거야


더는 못 참는 침묵에서
더는 못 감출 이름을
마음껏 소리쳐 불러보는 목소리가


밤낮 주야 가리지 않고
천지사방 거침없이
목놓아 외쳐대는 북풍의 목청이


부르고 싶은 이름 하나에
미쳐버린 겨울바람
그 목소리 될 거야, 되고 말 거야. 

 

 

 

 

 

 

 

 

 

꽃 지는 날에 / 유안진

 

 

열매 맺기 위해서
꽃은 떨어져야 한다


된서리를 맞아야
열매 또한 무르익음을


이 확실한
자연법칙을 믿으며


인간 세상
눈비 속을  
 

 

 

 

 

 

 

 

 

 

꿈 / 유안진 

 

 

차라리
내가 반쯤 죽어야
그대를 보는가


철따라
궂은 비 뿌리는 내 울안
벙어리 되어 흘려 보낸
어두운 세월의
어느 매듭에서


눈먼 혼을 불러
풋풋이 움 틔우며
일월을 거느려
그대 오는가


목숨과 맞바꾸는
엄청난 이 보배
차라리
내가
온채로 죽어야
그대를 보는가 
 

 

 

 

 


 

  

 

 

낙엽 쌓인 길에서 / 유안진 

 

 

한번 더
나를 헐어서
붉고 붉은 편지를 쓸까봐


차갑게
비웃는 바람이
내 팽개친들 또 어떠랴


눈부신 꿈 하나로
찬란하게
죽고만 싶어라 


 

 

 

 

 

  

  

 

 

눈물 / 유안진

 

 

그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뼈가 녹아 물이 되고
살이 녹아 물이 되고
살아가는 길
긴 여과의 과정에서


하늘이 쪼개지고
땅이 울부짖는
날이 날마다


사랑도
시도
그리고 학문도
배신을 일삼는
수치와 약점일 뿐


녹아도 녹아도
녹지 않는 뼈와 살
오직 그 하나
나의 참뜻은


마지막 그날에
생애를 걸러서
우러나는 한 방울


신이 정녕 계실진대
무심한 하나님
그로 하여 나는 
 

 

 

 

 

 

  

 


다보탑을 줍다 / 유안진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 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안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 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미소론 / 유안진 

 


국보 제78호
삼국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한장 사진만으로도
새 정토(淨土)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아름다운 극치
극치의 신비 신비로운 절대

이 미소 이상은 모두가 게거품질이고
이 미소 이하는 모두가 딸꾹질이다
안면근육경련이다. 
 

 

 

 

 

 

 

  

물고기 / 유안진

 

 

언젯적부터 신의 사제였을라요
쪽수도 깊이도 짚어낼 수 없는
신의 말씀책 속을 헤엄치는 저이들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것"이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순교 없는 시대를

순교적으살면서, 잘못을 지을까봐 손과 발을 돌려

드리고, 혓바닥과 목소리도 돌려 바치고, 입 하나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말씀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청빈의 저이들은

태어나 처음 입은 배내옷을
그 한벌을 평생 입고 살다가
그 옷 그대로를 수의로 입고 죽는
저 청빈의 사제들 청빈의 수도자들은. 
 

 

 

 

 

 

 

 

 

흰 소 / 유안진

 


캄캄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나도 별수없이 깊어깊어 갑니다
일만길 바다 깊이 겨울밤만큼 깊어진 밤에
마침내는 가아장 깊어져서
드디어는 새하얀 마음이 되어
잃어버려 못 찾는 흰 소를 그립니다
앙상한 관자놀이 높이 솟은 광대뼈
더 사랑한 죄값으로 이 경루 석달 내내 연기 없는 굴뚝집尋牛裝
영원한 외부로 활짝 열린 문밖에 선 한용운
흰 소 였습니다
혼을 지키느라 굶어죽은 얼어죽은
만해 선사였습니다 

 

 

 

 

 

 

 

  

자화상 / 유안진

 

                                               
한 생애를 살다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뒤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 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 수록 새우 젓깔 만나듯이
때 얼룩에 쩔을 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 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연연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 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만한 곳이며
흐르고 떠도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어라. 

 

 

 

 

 

 

  

눈사람 / 유안진 

 

 

사람이 그리운 날엔
눈사람을 만들자


꿈의 모습을
빚어보자


수묵화 한폭속에
호젓이 세워놓고


그윽이 바라보며
이 겨울을 견디리


꿈이여 언제나
꿈으로만 사라져도


못내 춥고 그리운 날엔
사람하나 지어 눈맞춤 하리라  
 

 

 

 

 

 

 

 

 

고향가기 / 유안진

 


눈내리는 밤에는
마냥 걷고 싶어라

걷고 걷다가 지칠 때쯤에
한 마을에 이르리

불빛 새는 창호문에
그림자도 어리는 집
어쩐지 낯이 익어
눈물 먼저 도는 집

눈 ?고 다시 보면
그래 필시 나의 옛집

하얀 얼굴 까망머리
잠이 없던 계집 아이 津이
주름살 깊은 나를
제 할민 듯 맞아주리. 

 

 

 

 

 

 

 

 

 

들국화 / 유안진

 

 

한얼산
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소슬히 웃고 선
막달라 마리아


멸시를 이기더니
통곡을 삼키더니
영원한 남성의
영원한 사랑을 획득하고 만
여자


어리석은 그 여자가
지혜롭게 곰삭인
잘못 살아온 세월의 빛깔
보랏빛 연보라
천상의 웃음 띄우고
마중나오신 성녀 
 

 

 

 

 

 

 

  

 

 

멀리 있기 / 유안진

 

 

멀리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갈 뿐입니다.


멀리서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짝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여요
죽어서도 나
빛나는 별이게 하여요.

 

 

 

 

 

 

 

  

 

서리꽃 / 유안진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작은 이 가슴마저
시려드는 밤이면
임자없는 한 줄의
시를 찾아 나서노니


사람아 사람아
등만 보이는 사람아


유월에도 녹지않는
이 마음을 어쩔래
육모 서리꽃
내 이름을 어쩔래 
 

 

 

 

 

 


 

 

 

 

아침 기도 / 유안진 

 

 

아침마다
눈썹 위에 서리 내린 이마를 낮춰
어제처럼 빕니다.


살아봐도 별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무책(無策)이 상책(上策)인 세상일지라도
아주 등 돌리지 않고
반만 등 돌려 군침도 삼켜가며
하늘로 머리 둔 이유도 잊지 않아가며


신도 천사도 아닌 사람으로
가장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라 울고 웃어가며
늘 용서 구할 꺼리를 가진
인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너무들 당당한 틈에 끼어 있어
늘 미안한 자격미달자로
송구스러워하며 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만 눈 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피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 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엄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 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春川이니까. 

 

 

 

 

 

  

 

 

 

약속의 별 / 유안진

 

 

몹시 외롭고 쓸쓸해지는 때는
걸어온 옛길로나 돌아가게 되나봅니다
못내 초라하고 서글퍼지는 때에도
보물찾기하듯
그 길섶을 뒤적이게 되나봅니다


긴긴 겨울밤 얼어붙은 깜깜 하늘에는
왠지 낯익은 듯
눈물 머금은 별 하나
물끄러미 시선을 맞추다가
까맣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약속 하나, 언약 하나, 맹세 하나를

 

내 어려서 철없던 꼬맹이적에
심심해서 별이나 헤아리며
혼자 놀던 어느 밤에
문득 아름다운 별 하나에 넋이 빠져
단박에 나의 별로 점찍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별
이담에 나도 너처럼 빛날 거야」
턱을 괸 두 손 풀고 발딱 일어서며
나 혼자 중얼거려 약속했습니다
그 별도 기뻐서
더 크게 더 밝게 빛났습니다
그 이름은 놀림말로 개밥바라기라고 하지만
초저녁엔 금성이고 장경성(長慶星)이고 태백성(太百星)이며
새벽녘엔 샛별이고 명성(名星)이고 계명성(啓明星)이라 부르는 줄은
한참 뒤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만


애들한테 따돌림받고
슬퍼지는 외토릴 때


손등으로 눈물 닦다가도
고개 들면 웃어주는 별


「힘을 내!
하마 잊었니 우리의 약속을?」
그때 이레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밤중에 잠이 깨어도 문 열고 내다보며
눈맞춤도 눈흘김도 눈쌈도 하였고
신새벽 뒷간 가는
나를 불러 세워놓고
짓궂게 놀려대어도 나는 행복했습니다


꿈이 너무 많고
너무도 화려하여
눈물도 웃음도 변덕스럽던 여학생때는
단짝 친구랑 나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영원한 우정을
기막힌 야망을


여름밤 하늘의 별 하나를 정해놓고
손가락을 걸어서 우린 언약했습니다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아득한 훗날 그 어디에서라도
우리의 우정은 언약의 별같이
밝고도 찬란할 것이라고
언약의 별 같은 인물이 되자고
새끼손가락을 세 번 잡아당겼습니다


애인이라고는
차마 부르지 못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여
숫되고 서툴던 내 처녀적에
별 하나에 사랑을 맹세해 주던 이여
별 하나에 포부를 다짐해 뵈던 이여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몰라도
지금의 하늘에는


맹세의 그 별이
그날처럼 밝고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사는 일이 피곤할 때
더러더러 생각날까요
뜨거운 그 호소 그 맹세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까요


덧없고 부질없어라
우정과 사랑이면 더욱 그러하여라
세월이 지나간 휑하니 빈 자리에는
그 약속, 그 언약, 그 맹세 모두
어처구니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달픈 퇴근길에 헛발을 디디다가
잠 안 오는 밤중에 안경알을 닦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약속의 별 하나
아이적 내 별이여, 우정의 우리 별이여
영원을 맹세하던 첫사랑의 별이여


어느 한 가지의 약속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오늘은
그저 할말이 없습니다
오직 미안할 뿐입니다
아이처럼 다리 뻗쳐 마구 울고 싶습니다. 

 

 

 

 

 

  

 

 

 

작정 / 유안진 

 

 

모르며 살기로 했다.
시린 눈빛 하나로
흘러만 가는 가을 강처럼


사랑은 무엇이며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모를 줄도 알며 사는
어리석음이여
기막힌 평안함이여


가을하늘빛 같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무작정 살기로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각달 / 유안진

 

 

사랑이 떠난 후에
알게 모르게 허물어진 몸
허공에 떠도는 줄
혹시 알리 또 모르리만
이 길이 내 길이리라 여겨
홀로 기웃대었다


그대 뉘 지아비 되고
나 또한 지어미 되니
운명이 꾸미는 장난에
맹물 같은 웃음뿐
가벼이 반공중에서
사라지고 말아라


무궁한 세월이 흘러
저승길 더듬을 제
그 누가 문책하면
품안에서 꺼내 뵈리
네 가슴 노리던 비수

 

 

 

 

 

 

 

 

키 / 유안진 

 

 

부끄럽게도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 왔습니다


아직도
가장 아픈 속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니


얼마나 더 나이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삶이 아파 설운 날에도
나 외엔 볼 수 없는 눈
삶이 기뻐 웃는 때에도
내 웃음소리만 들리는 귀
내 마음 난장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봄비 한 주머니 / 유안진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 뽑아 줬다
모르는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
그의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헤돌아서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 바라면서

 

아냐 아냐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 탓에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
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올해도 4월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이 짓거리뿐이라서―.

 

 

 


 

 

 

 

황홀한 거짓말 / 유안진 

 

 

<사랑합니다>
너무도 때묻힌 이 한마디 밖에는
다른 말이 없는 가난에 웁니다.
처음보다 더 처음인 순정과 진실을
이 거짓말에 담을 수 밖에 없다니요.
겨울 한밤 귀뚜라미 거미줄 울음으로
여름밤 소쩍새 숨넘어가는 울음으로

 

<사랑합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새물이 되듯이
처음보다 더 앞선 서툴고 낯선 말

 

<사랑합니다>
목젖에 걸린 이 참말을
황홀한 거짓말로 불러내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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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강좌 / 유안진


쓰디쓴 인생살이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시인 유안진

"이제 교수직 떠나 오로지 시만 쓰고 싶습니다"

다작가로 일컬어지는 유안진 교수. 그가 변신을 꿈꾸고 있다.

시인, 수필가,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이제는 교수직도 털고

세계를 조망하는 투명하고 냉철한 시를 쓰는 일에 몰두중이다.


쓰디쓴 인생살이에서 건져 올렸던 수필을 많은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이를테면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언제나 고난의

보자기를 주십니다", "넓이뛰기를 할 때도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지 않으면 더 많이 뛸 수가 없다" 등등.

이런 글들이 심금을 울리면서도 한편에서는 상업적 글을

양산하고 정서적으로 이유없는 센티멘탈리즘에 빠지게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어느 책에서는 전문 여성이 아름답다고 하고, 어느 책에서는

주부가 보람있다고 한다며 나무라는 소리도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뭐가 나쁘냐는 그녀의 반문 뒤에는 말 못할

저간의 사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 가난 때문이었다고

쉽게 내뱉았다.

"청탁을 거절 못해 쓰다보면 한 입으로 상반된 얘길 할 때도

있지만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해서 쓴 적은 없어요.

상반된 내용에도 제각기 진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열 문장을 지우며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각인의 삶을 살았다는 유안진 시인.

유안진 시인을 만날 때마다 받은 느낌은 평안한 매무새,

작고 부드러운 웃음, 정갈한 인상이다.

어느 시인은 "단아한 내적 아름다움의 시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외양은 고운데, 시에는 칼날빛이 서려 있는 사람이

유안진 시인이다. 뜻 빛깔이 그리 간단치 않는 구석이 많다.

시어에는 투명하면서도 엄중한 시대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이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아우르는 시를 주로 쓰고 있다.

지역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심성을 주로 노래한다.

고교 백일장에서 만난 박목월 선생과 각별한 인연, 그이는

안동 무실유씨 양반집안의 후예이다.

그래서인지 자유로우면서 마음의 법도를 중시하는 경향이다.

증조부는 진사에 급제하여 진사댁으로 불렸는데 기미년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군 총에 맞아 돌아갔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절개가 깊게 깃들여 있는 곳이

그가1941년에 태어난 안동 임동면 용계마을이다.
25세에 남편상을 당하자 손수 삭발해 삼 년간 시묘를 마친

단식 끝에 자결했다는 어느 젊은 아내의 이야기 등....

이런 마을 분위기가 양반체통을 지키면서 예향의 전통을

이어갔다. 조부가 훈장이어서 어릴 적부터 글짓기를

배웠다.
당시 어른들은 높은 마루에 올라 한시를 읊거나 사서를

읽었다. 아낙네들은 내방가사를 짓곤 했는데 마을 풍습

으로는 詩會(백일장)라는 것이 봄과 가을에 열렸다.

시상은 남자에게 통영갓을, 화전놀이로 부침이를 만들어

운을 나누곤 했던 아낙네들에게는 버선과 적삼으로 주었다.

그렇게 성장한 그이는 열 네 살 때 가슴 아픈 가족사로

인해 대전으로 이사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셋 있었으나

모두 죽었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낯선 외지로 나가 설움과

푸대접을 받는 액땜을 치르지 않으면 대가 끊길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주위로부터 새장가를 들어야 한다는

부추김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교회로 산사로

점쟁이집으로 돌며 자식을 점지해 달라 애원했다.

그런 사춘기에 겪기 힘든 낯선 세상에서 소녀 유안진은

홀로 독서를 하며 문학 열병에 빠졌다.

헌 책방에서 권당 2환씩 주고 빌린 김래성, 방인근, 정비석의

연애소설이나 흙, 무정 등에 중독되었다.

일기장에는 데미안에 나오는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띄우는

편지로 가득 채워졌다. 이녁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처음으로 글을 무기로 삼은 셈이다.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중학교 때이다.

시인 이외는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단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문예시간에 선생님이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를 보이자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구절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선생님, 왜 순서가 봄·여름·가을이 아니에요?".

당황한 선생님은 "야, 소월이 그렇게 쓰면 쓴 거지.

왠 말이 그리 많어?". 그 때부터 그이는 소심증에 빠졌다.

고등학교는 감리교단 소속 호수돈여고였다.

가난 탓에 긴 머리를 자기 손으로 자르고 미용비를 아끼고

소풍가지 않는 돈을 모아 책을 사 읽었다.

성경시간에 소월시를 베껴쓰다가 걸려 벌을 받기도 했다.

어째튼 이 때부터 움튼 기독교 사상은 교수 남편을 따라

카톨릭으로 바꿀 때까지 어언 40여 년 이상 신앙 생활을

온 셈이다. 특이한 점은 작품 세계는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다.

유안진 시인은 65년 서울대 졸업과 동시에 현대문학에

박목월 선생 추천으로 등단했다.

박목월 선생은 제자들을 쉽게 등단시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목월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 2학년 때 백일장 때이다.
목월이 문학소녀 유안진의 작품을 칭찬한 것이 인연이

되어 여대생이 되어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목월은 "한대로 놀러 오게"라는 엽서를 답장으로

보냈다. 1963년 봄날, 문학도 유안진이 한양대로 가는

길목에 유난히도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당시 선생님은 40대셨는데 순후하시고 어진 분이었어요.

한양대로 가는 길에 흰 찔레꽃에 야생벌이 잉잉거리는

모습에 참 기분 좋았어요.

마음속으로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쩌나,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며 가슴 조렸죠.

그만큼 제가 수줍었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시보다는

객지에서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물론 시작 노트는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제 스스로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스승 목월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왕십리에서 전차를

타고 화신 백화점 뒤 설렁탕 집으로 갔던 일도 잊을 수

없다. 설렁탕을 먹는데 소금 그릇이 목월 옆에 있어 그것을

가져올 용기가 나지 않자 그만 설렁탕을 맹탕으로 먹은 것.

목월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수필로 썼고 그녀에게

"그렇게 숙맥인 걸 보니 시는 제대로 쓰겠구나" 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이는 지순한 시인이 되었다.


등단 전에 이따금 원효로 삼정다방에서 목월 시인을

만났다. 목월은 늘 흰 고무신에 옷고름을 대충 매고 나와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시작품을 내밀 때마다 작품은 좋다고 하면서도 추천 이야기

하지 않아 서운했던 긴 긴 시간이 지났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제 작품을 보시고는 아 좋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시더니 유군. 나는

몇 편 좋다고 시인을 만들어 줄 순 없네라고 하셨어요.

영문학,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살다가 자신이 어려우면

시를 포기하는데, 저처럼 교육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언제 시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유군이 시를 포기하면

내가 뭐가 되겠느냐는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목월 선생님

현대문학으로 추천한 시인은 10명 안팎밖에 안 될 거에요"

박목월 시인은 경북 경주출신으로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노래한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이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통해 어릴 적 추억을 회고하거나

이미지즘으로 자주 차용했는데, 유안진 시인은 이 대목에

주목했다. 이런 사투리의 묘미를 살려낸 유안진 시인의

작품이 사투리라는 시이다.


가끔씩은 사투리로
귀도 씻어줄 일이다

기적도 애잔하게 메나리조로 우는
중앙선도 타 볼일이다
태백 소백 첩첩산중 고개고개를 넘어가며
바람도 산바람뿐인 메나리조의 고개바람소리
심심산골 얼음썩는 산여울도 메나리로 울어
경상도는 사투리 메나리조 아리랑

진양조로 휘즐어진 호남선을 타고가면
산등성이도 강줄기도
밀쳐낼 듯 끼고도는 진양조 느린 가락
호남들녘 논두렁길 밭두렁길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바람소리도
한이 삭아 흥이 된 진양조의 호남사투리

가끔씩 가끔씩은
우리가락 사투리로
귀를 후벼줄 일이다.

(사투리 전문)



* 돈 없어 월부로 낳은 아들과 지란지교를 꿈꾸며

그런 스승 목월 시인이 눈 내리는 어느 초겨울에 유안진

시인이 근무하던 호수돈 여고에 나타났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목월 선생을 위해 교장 선생께 부탁해

전교생을 강당으로 모아놓고 강연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저녁 그녀는 스승에게 처음으로 맥주를 따라 올렸는데,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라 얼굴이 홍당무가 될 정도 여전히

수줍은 처녀 시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목월은 산책 후 고혈압으로 64세에 세상을 떴다.

그녀의 가슴이 아프게 저미었다.

그렇게 이녁도 긴 연륜에 접어든 유안진 시인 .

그녀 역시 남편이 항암 치료를 받았고 이녁도 19세 때부터

앓아온 만성신장염으로 여태 고생중이다.

얼마 전에는 종기를 떼어내는 수술도 받았다. 고통은 왜 이리

질기고 긴 터널을 걷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37세 때 가슴에서 진통중인 막내아들을 낳기 위해 무작정

순천향병원에 입원했던 유안진 시인.

아들을 낳고 보니 돈이 없어 월부로 갚기로 했단다.

그래서 막내아들을 월부로 낳았다고 말하곤 한다.



이 긴긴 겨울을 어디에다 쓰랴
아아 나는 아껴 죽고만 싶네

절망을 탐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눈속을 걸어가는 늙은 짐승
죽을자리 향하여
걸음마다 핏자죽을 찍으며 가는
나이 먹은 짐승이고 싶네 나는

음습한 밀림 속을 동행하는
괴기스런 바람소리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탄주하는
겨울 밀림의 겨울 깊은 밤을
밤의 계절 겨울을

죽기 위해 걸어가며
아껴 아껴 쓰고 싶네

(밤의 계절 전문)



참 직설적이고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작품이다.

암울했던 상황들이 행마다 절절하게 포효한다. 험하게

걸어온 길, 다시 가는 이 길도 모두 멀고 험한 길이기에

죽음 무릅쓰고 걷는 짐승 같은 길이다.

산다는 것은 때로 괴기스런 바람소리,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탄주하며 가는 길이다.

살아있는 자체가 비극인 시절에 그 길, 걸어가는 길마다

죽기 위해 가는 것만 같았을 터.

또한 실제 상황이 그랬다. 그래서 열정도 시간도 돈도 모두

아껴 쓰고만 싶었을까.

참 질긴 가난은 유년기 그리고 대학시절과 귀국 후까지 이어졌다.

가정교사를 하며 대학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 150불만 달랑 들고

국비유학을 떠났다.

도서관 한 켠에서 이국의 생활을 지탱해 나갔다.

국비 유학이었음으로 귀국 후 의무적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지금의 남편과 함께 2년을 근무한 후 단국대에서 첫 대학강의를

했다. 이곳에서 서울대로 온 것은 당시 교육심리학 전공 여교수가

필요했던 서울대의 제의 탓.

그렇게 이 분야 서울대 첫 여교수가 되었다.

귀국 시점인 78년부터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연탄재를 깔고 오르내리던 고샅길. 서울 봉천동

꼭대기 17평에서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 8명이 함께 살았다.

집 장만을 위해 월급이 이자로 다 들어갔다.

그래서 손댄 수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

했다. 그러다 보니 해적판도 판쳤고 인세도 많이 뜯겼다.
당시 그이의 글은 재수생, 신입생, 직장인, 가정주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고 폭 넓은 독자군단을 이끌었다.

독재정권 아래서 따뜻한 정서와 용기를 주는 글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것. 산문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80년대 학교,

입시학원, 회사 등에서 묵상의 시간이나 각종 모임에서

암송됐던 글로 널려 알려져 있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라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산문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가 마흔 넘을 무렵 쓴 이 산문은

문학사상에 글을 쓰기로한 어떤 분이 원고를 펑크내자

그이에게 급하게 청탁해와 하루 밤을 새며 썼던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되자 장안의 화제가 되며 유명세가 치솟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며 각종 모임에서 이 글이 낭송

되었다. 고등학생들이 외우고 다니면서 입소문이 이어졌고

이 글을 베낀 공책이나 책갈피 책받침이 참 인기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청소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글은

단골 멘트로 흘러나왔고 노인과 주부들은 이 글을 친필로

써 달라며 그이를 혼쭐나게 했다.

어느 날 교생실습 나온 사람들이 전교생에게 이 글을 주고

떠나갔는데 유안진시인의 아들이 이 글을 받아 귀가한

일도 있었다. 이래저래 국민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리던

지란지교였다.



*어려웠던 시절만큼의 삶과 시의 열정, 이제는 모두의

누이로 돌아온 유안진

그런 것이다. 빛깔 좋은 글은 체험 위에서 성숙돼 피어난

꽃인 것이다. 삶도 사랑도 죄다 아픔이었던 시절에 가슴 깊은

곳에서 빚어낸 구절이다.

그런 한편에서 시는 그 아픔이 그대로 아픈 채로 베여 나왔다.

 

"내일 아침 된서리에 무너질 꽃처럼/이 밤에 울고 죽을 버러지

처럼/거치른 들녘에다/깊은 밤 어둠에다/혈서를 쓰고 싶다"

처럼. 뜨거운 사랑, 진솔한 사랑을 목놓아 불렀던 시이다.

세상은 차디차고 아픔은 깊고 뼈저리는 시간들, 그런 삶의

편린 속에서 그녀는 고통에 찬 몸부림을 피하기보다는

이를 헤치며 왔다.

그런 유안진 시인은 여전히 미국에 거주하는 동생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심장병 돕기와 불우이웃들을 위해

일정 기부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사후 장기 기증을 약속하고 이 증서를 손가방에 넣고 다닌다.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를 뽑아주면서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내가 할 수 있는 짓은 이 짓거리뿐...."

라고 노래한 시인.

까무라치지 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싶다고 노래한 시인. 이제는 그렇게 아프고 슬픈, 연약한

이들에게 사랑 주는 누이가 되어 돌아온 유안진 시인.



누가 들어도 하품할 이 나이에는
반나절은 눈이 쉬고 반나절은 귀가 쉬는
겨울 산하가 되고 싶다
세상의 누이가 되고 싶을따름이다

빵빠르를 울리며 출현해서는
젊음을 요절내듯 결단내듯
치닫는 신세대도
어리광 받아주듯 손뼉쳐주고 싶다.


(누이중에서)



97년에 나온 그녀의 열 한 번째 시집 누이에 실려 있는 시이다.

한 지식인이 사회를 겨누는 예리한 눈빛이 살아있다.

한편으로 누이처럼 따뜻한 큰 강물같은 사랑이 흐르고 있다.

 

이 시집을 일러 어느 시인은 자아정체성의 서정적 탐구의

매력을 지녔다고 호평했다.

아무의 어리광이나 다 받아주고 싶은 우리의 누이 모습이다.

이제는 흘러온 강물의 뒤안길에서 유유히 흘러오고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보며 나즈막하게 세상을 보듬고 있는 어머니

모습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가자며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강물처럼 철썩이며 하고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그만 가슴이

멎어버린 듯, 최근에 펴낸 봄비 한 주머니라는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한결같이 짧고 투명 명료하다.

호흡이 긴 글에서 보아온 독자들에게는 화두가 짧다는

사실만으로 도발적이라고까지 생각케 한다.

강물을 뒤척이며 온 그 길에서 배인 시인의 내면은

주전자 뚜껑처럼 끓어오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심적 반란을 숙성된 삶으로 발효시킨다.

눈물겨운 시간들이 50대의 끝자락에 당도하면서 용해되고

화해된다. 역설적으로 뼈저리게 체험하고 인식한 것들이

자아의 타협으로 누구도 쉽게 찍지 못할 마침표를 찍어

버린다. 그렇다고 잘못된 양태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지만 여성 분열적 정체성에는 반기를 든다.

물길을 틀어 보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살다보니 그러더라가 아니라 살아보니 이러하더라는

깨달음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살고싶어 눈물나고,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自害

行動, 칼에 베인 듯 흐르는, 그저 동맥이나 썩둑 잘라

녹날 빗속 헤매는 도깨비 불티 번쩍일 겨울밤 빗소리 같은

현실 앞에서 유안진 시인은 알아버려 서글프다면서

너무 착해서 고통스럽지 않게, 잘못한 벌로 액땜으로,

더불어 껴안고 목메이고 말자 말자 한다.

그렇게 가슴 시린 세월들이 지혜의 새길을 여는 시어들로

칼날처럼 반짝이며 일어선다.

그런 시어들은 어찌보면 한 시대의 어른이 던져준 나무람

같기도 하고, 큰누이가 들려주는 마음의 손길 같기도 하다.

"시를 쓰는 축복에 감사하고 위대한 작품 하나 만들고

싶다" 유안진 시인은 90년대 탁 트인 시어들로 문단에서

각광 받았다. 그이는 새로운 시집을 낼 때마다 늘 다른

빛깔을 보여주고 싶단다.

시 한 편 한 편이 독립국가라고 말한다.

시인은 모국어의 창조자임으로 시어까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삶도 시도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변화하려하지

않으면 변화는 너무 느리거나 변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인이야말로 끊임없이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시 작업에 몰두하고 싶단다.

"문학은 해볼만 한 것이죠.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니까

사실의 기록이고 문학은 실패한 자의 기록이죠.

그래서 진실이거든요. 실패한 자가 큰 시, 위대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문학뿐입니다. 정말로

시다운 시, 제가 바라는 만큼의 좋은 시를 한번 써보고

싶어요. 소원이 있다면 그것뿐이에요"

이러한 새로운 길 위에서 논문이다 BK21에다 해서

행정적 업무 등 가중된 교수직을 가능한 빨리 벗으려 결심

했다. 글을 써서 집도 사고 그런 대로 괜찮은 생활터이지만

그이는 아직도 23년 동안 타고 다닌 중고 엘렌트라 몰고

방배성당 성마리아 상 앞으로 가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시 쓰는 축복을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시에 복무하는

시인이 되게 해달면서....



유안진 시인은 ……

194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65년 서울대 사대 및 동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75년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달하, 물로 바람으로, 달빛에 젖은 가락, 영원한

느낌표, 월령가 쑥대머리,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누이, 봄비 한 주머니,

시선집으로 꿈꾸는 손금, 풍각쟁이춤, 빈 가슴 채울 한마디

등이 있다.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축복을 웃도는 것 등 다수,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땡삐 등이 있다.

한국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 아동학과 교수로 재직중이고
시전문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주간, 섬문화연구소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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