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이야기
우선 자전거부터 보자., 자전거가 쌩쌩 달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도로이다. 걸어다니기가 주요 이동 수단이었을 때는 도로가 중요한 요소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위시하여 새로운 이동 수단이 계속하여 나타나자 도로는 이제 교통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도로가 정체되자 도로가 뚫리어 원활한 소통이 일어나도록 하느 것이 도시의 주요한 행정 정책이 되었다. 먼저 길을 닦았다,
1864년에 뉴욕시는 도로가 막히는 것을 뚫기 위해 센트럴 파크의 지하 터널을 3km를 뚫고, 서브웨이(subway)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서브웨이가 29년 동안 지하터널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1893년에 도시의 지하철도가 생기면서 서브웨이는 지하철도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새로운 교통 수단이 발명되기 전에는 말이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초창기의 도로는 말과 함께 사용하였다. 뉴욕의 통계를 보자.
1890년 대의 뉴욕에는 6만 마리의 말이 매일 1250톤의 배설말을 쏟아냈고, 오줌의 양은 22만 7124리터라는 통계가 있다. 1년에 거리에서 죽는 말도 뉴욕이 1만 5천 마리이고, 시카고는 1만 2천 마리였다. 죽은 말은 거리에서 그대로 썩어갔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뿐만 아니고 뉴욕에서 1년 동안 말 사고로 죽는 사람이 200명이었다. 오늘의 자동차 사고와 대비하면, 자도차 사고 사망자의 두 배에 해당하였다. 말로 인하여, 대도시의 위생은 엉망진창이었다.
도시의 길에서 말을 몰아낸 것은 새롭게 발명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거리에 나타난 순서대로 보면 케이블 카, 전자. 자동차의 순서였다. 케이블 카가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만 남아 있지만, 1873년에 처음 나왔을 때는 인기가 대단하였다. 케이블 카를 밀어낸 것은 전차였다. 최초의 전차는 베르린에서 나타났다. 1879년에 지멘스 사가 처음으로 운용하였다. 미국에서는 1885년에 볼티모어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전차는 수명이 길지 않고, 곧 자동차에게 밀려나게 된다. 한때는 거리에서 말, 케이블 카, 전차, 자동차가 공존하였지만, 패권은 자동차에게로 넘어갔다.
1890년 대부터 ‘교통혼잡시간’ ‘교통체증’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났다. 이 말이 나타날 때는 도시민들의 거주가 도시근교로 몰려가면서 도시근교 생활이라는 생활 패턴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