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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부터 연이은 새벽 경기 관람으로 피곤에 지친 채 사무실에 출근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다음 날 있을 경기에 설레며 잠들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모르겠다. 2014년 나의 여름을 채워주던 브라질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오늘 끝났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경기에서 유럽의 대표 독일과 남미의 대표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만났다. 개인적으론 아르헨티나를 응원했고(처음부터 응원한 건 아니지만 독일보단 아르헨티나가 이겨주길 바랐다.) 아르헨티나가 이길 가능성도 꽤 있다고 보았는데, 결국은 예상이 또 틀렸다. 2014년 월드컵은 독일이 품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월드컵 결승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준이 높은 경기
소문난 잔치에 먹잘게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경기도 113분까지 골이 터지지 않았으니, 우리 어머니처럼 경기 결과만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잔치도 먹을 게 별로 없었나보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경기 자체는 1골밖에 터지지 않았지만 경기 내내 매우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슛이 마구 터져 나오진 않았으니 푸짐한 잔치였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일단 준비된 음식의 질은 무척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클래스’ 있는 경기는 양 팀의 전술적 대결에서 나왔다. 익히 언급되는 대로 독일은 높은 위치에서 압박을 가해왔다. 수비 라인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상대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공격 시에는 기본적으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상대를 밀어붙였다. 아르헨티나도 이전 경기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했다. 메시, 아구에로, 이과인, 라베찌, 디마리아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공격진에 포진한 만큼 공격적인 색을 보일 것 같기도 했지만, 대회 내내 수비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경기에서도 수비에 중점을 두고 메시를 비롯한 공격진의 개인 기량과 속도를 믿고 역습을 펼치는 형세였다. 독일의 조직적인 공격과 수비는 이번 토너먼트 내내 힘을 발휘한 터라 독일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아르헨티나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지난 8강에서 프랑스가 보여주었듯 역습을 약속된 움직임으로 수행했다. 전반부터 메시, 이과인, 라베찌는 상대의 뒷공간을 파고들고 수비 라인에선 한번에 긴 패스로 공간에 공을 연결해주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마스체라노를 중심으로 한 수비 역시 튼튼하게 뒤를 지켜주면서 독일과 비등한 경기 양상을 보여주었다.
* 아르헨티나는 동일 선상 혹은 후방에서 미리 출발하여 압박하여 오는 독일의 뒷공간을 공략했다.(발캡쳐...)
독일은 주도적으로 공격을 이끌었으며 깊숙이 수비를 내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짧은 패스들을 빠르게 연결하면서 슛으로 연결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회베데스의 헤딩이 골대를 때린 장면은 특히 아쉬웠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빠른 역습으로 독일의 골문을 노렸으나 이과인의 마무리가 아쉬웠다. 특히 상대의 백패스 미스로 맞은 1:1 찬스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연장에선 팔라시오가 골문 앞에서 또다시 완벽한 찬스를 맞았으나 이마저 놓치면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축구란 스포츠는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어서 어느 한 팀이 줄곧 공격만 혹은 수비만 할 수는 없다. 흐름이 있을 때 공격에 성공하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르헨티나는 공격 흐름이 좋은 상황에서 완벽한 찬스를 맞고도 마무리 짓지 못한 점이 패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팀 모두가 이길 가능성은 있었다. 두 팀의 전술적인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서 서로 다른 두 전술이 경합을 펼쳤다. 양 팀의 감독들은 선수들이 가진 역량과 팀의 조합 측면을 세밀하게 고려한 듯 팀에 적합한 색을 펼쳤다.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보이는 독일은 짧은 패스와 조직적인 압박을, 빠르고 기술 좋은 공격수들을 다수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수비에 방점을 둔 채 소수의 공격수를 이용한 역습을 펼쳤다. 비록 난타전은 아니었지만 양 팀의 전술상의 경합은 흥미진진했다.
연장전 시간이 흐를수록 아르헨티나 수비진의 체력이 떨어진 듯 집중력이 저하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소 수비를 미루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에 비해 독일은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슈바인슈타이거의 부상 투혼이 팀에 막판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끝까지 자신들의 축구를 밀어붙인 독일은 괴체의 환상적인 마무리에 힘입어 네 번째 월드컵 우승에 다가설 수 있었다.
독일 선수단의 깊이
독일 선수단의 깊이가 대단했다. 결국 양 팀이 결승전에서 차이를 보인 것은 후보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아르헨티나는 토너먼트 중간 디마리아를 잃고 말았다. 디마리아는 활동량이 많고 드리블이 폭발적인 공수 겸장의 미드필더이다. 지난 시즌에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하면서 보이지 않는 살림꾼 역할을 했다. 화려한 드리블과 속도로 탈압박에도 능한 선수였으므로, 부상만 아니었다면 독일을 상대로도 괜찮을 활약을 펼쳤을 것으로 예상한다. 디마리아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페레스를 투입하여 빈자리를 채웠지만, 디마리아의 존재는 대체 불가능했다.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선수가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독일 역시 부상으로 많은 선수들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케디라가 경기 전 워밍업 중에 부상을 입어 선발 명단에서 빠졌고 그 대체자로 들어온 크라머 역시 뇌진탕 증세로 자리를 비워야 했다. 이에 뢰브 감독은 크루스와 슈바인슈타이거로 중원 조합을 맞추고 그 앞에 측면에 위치했던 외질을 배치하고 외질이 있던 측면에는 쉬얼레를 위치시키면서 그 공백을 최소화했다. 비록 외질이 수비력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그 위치에 익숙한 선수이니만큼 케디라나 크라머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누가 들어와도 제 몫을 해내는 독일 대표팀의 선수 면면의 훌륭함에 더해, 장기간 뢰브 감독의 전술이 팀에 녹아들면서 선수들은 위치 이동에도 큰 무리 없이 제 역할을 다했다. 후반전 말미에 투입된 괴체와 이로 인해 최전방으로 움직여 간 뮐러의 위치변화에도 팀 전술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인한 명단의 변화와 교체 출전, 그로 인한 위치변화 등 많은 변화 속에서도 일관된 움직임으로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준 독일의 강함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월드컵 실패로 역풍을 맞고 있는 한국 축구이다. 실패 자체도 문제지만 그 과정도 좋지 못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물론 팬들의 비난 정도가 너무 거센 것 같긴 하다.) 독일과 아르헨티나 경기를 보면서 우리가 배울 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우리도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팀의 강점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 세계적 트렌드에 우리의 색을 입혀야 한다.
우선 전술적인 문제이다. 감독마다 지향하는 축구가 다를 수 있다. 뢰브 감독의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그의 전술이 최고의 전술인 것은 아니다. 이번 경기에서처럼 아르헨티나에게 일격을 맞을 위기를 노출할 수도 한다. 티키타카 역시 한계를 맞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성공한 팀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최신의 전술을 자신들의 몸에 맞도록 변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축구를 유지하려고 했던 팀들은 대체로 실패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극단적으로 짧은 패스를 이어가는 축구, 이에 맞선 극단적 수비 축구는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높은 위치에서 조직적인 압박을 펼치거나 조직적이고 빠른 역습을 펼치거나 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채택하는 경우 좋은 결과를 냈다.
가장 큰 문제는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시절의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주영이 이번 대회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인 것은 그의 폼 문제도 있지만 전술 상 그에게 부여된 역할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인다. 결승전의 이과인의 움직임을 보면 수비진에서 롱킥으로 연결이 가능할 시에 미리 공간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효과적으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고 공을 연결받는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박주영의 경우 대부분 상대 골문을 등진 채로 공을 뒤로 연결하는 데 치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 포지션에서 압박의 정도가 높아진 축구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받을 시에는 뒤에 넓게 열린 공간을 이용함으로써 상대 수비라인의 전진에 부담을 가함으로써 오히려 압박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두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역량과 강점에 맞는 전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광래 감독이 만들려고 했던 팀은 전술적인 수준이 높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실패를 마주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영표’의 은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마땅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고 조광래 감독은 패싱력이 우수한 중앙수비나 미드필더들 중 수비력이 있는 선수들을 측면 수비에 기용했다. 개인적으론 나쁘지 않은 실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아시안컵으로 대표팀의 수준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이후 계속 하락세를 겪어야 했던 이유는 선수들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는 전술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리의 강점을 살린 전술이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수비력 자체가 전통적으로 강한 편이 아니며 골키퍼 정성룡까지도 난조를 보였다.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 박주영을 이용한 연계 플레이도 주공격 수단이 되기엔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공격보단 수비 위주의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공격 방법은 박주영의 발밑을 이용하여 연계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대회 우리나라의 강점은 중앙수비 듀오의 킥력과 패싱력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성용, 그리고 손흥민, 이청용으로 구성된 빠른 측면 공격수에 있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라면 빠른 역습이 전술의 핵심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패스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늘 발 앞으로 이어지는 패스가 많았으며, 공을 받는 선수들의 움직임 자체도 공을 받아놓고 움직이려는 모습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와 같이 후방에서 연결되는 패스를 좌우 측면의 빠른 측면 공격수들이 공격으로 이어갔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술 자체의 진화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진 강점들을 살리는 축구를 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떠한 전술도 완벽하지는 않다.
- 축구는 '멘탈'싸움이다.
이번 대회 내내 정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정신적 측면의 중요성은 아무리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투지와 투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번 대회 내내 대한민국 대표팀이 비난에 시달린 이유 중 하나는 투지와 투혼이 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모두가 악바리 같은 근성을 반드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력 없이 투혼만 보이는 것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할 뿐이다. 투혼이란 말이 갖는 양면성을 잘 알고 있다. 무모하게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것을 보고 투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을 갖추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해냈을 때라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투혼을 발휘한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열세인 항공 전력을 뒤집기 위해서 방어력을 낮춘 채 공격력과 항속력에 집중한 항공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투혼을 불사른 것이 아닌 투혼을 가장하여 애꿎은 목숨들만 희생시켰다.
팬들이 우리나라 선수들의 투혼을 지켜보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던 손흥민을 지켜보았고 씁쓸한 모습으로 돌아서던 선수들의 모습도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서 우리가 생각했던 투혼을 못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최선의 모습을 다한 채 싸운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우리에겐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대표팀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쏟아지는 비난 여론처럼 선수들의 투혼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력을 다할 수 있게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실력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팀으로서 완벽히 준비되지 못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어설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감독의 급격한 교체 후 혼란이 많았을 것이라고도 생각이 들고, 감독 입장에서도 쉬운 싸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의 사퇴는 예견된 일이었고, 당연히 이에 준비할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완성된’ 대한민국 팀을 보지 못한 우리의 분노가 현재 이렇게 거칠게 표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력을 갖춘 이가 보여주는 투혼은 늘 멋지다. 이번 대회 결승전에서 가장 가슴을 뛰게 만든 장면은 슈바인슈타이거의 부상 장면이었다. 2008년 당시 인터뷰 도중 스페인 선수들이 나타나 기차놀이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뜨거운 열정을 지녔으나 다혈질인 선수는 아니다. 이른바 부처 ‘멘탈’이라기에 적합한 선수이다. 거친 플레이나 상대와의 신경전으로 팀에 힘을 불어넣는 선수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묵묵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그가 부상을 입자 얼굴을 그 즉시 꿰매고 들어와 경기를 끝까지 마쳤다. 그런 고참급 핵심 선수의 행동에 후배 선수들은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까. 마땅한 구심점 없이 제각기 움직이다 끝난 것 같은 우리 대표팀을 돌아보자니 실력과 투지 모두를 갖춘 슈바인슈타이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리더란 묵직해야한다는 말처럼 누군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묵직한 리더가 되어주어야 한다. 슈바인슈타이거의 투혼은 경기 막판에도 거세게 상대를 압박하던 독일의 공격에 무형의 정신력을 더한 것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 축구의 투혼은 우리 선수들 자체가 상대와 ‘정면승부’에 임할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상대보다 우세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막전부터 오심 논란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했던 브라질 월드컵도 막을 내렸다. 그 우승자인 독일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독일의 우승을 바라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축구를 너무도 흡사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 같이 뛰면서 공격과 수비 모두를 해내는 팀. 게다가 후보들마저도 자신의 역할을 완수해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뢰브 감독이 2006년 월드컵 이후부터 팀을 맡아 줄곧 좋은 성적을 내면서도 또다시 팀을 한 단계 발전시킨 점도 대단했다. 이번 토너먼트 내내 독일은 우승할 만한 자격을 지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우리나라에게도 오히려 실패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았던 대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월드컵처럼 어설픈 준비로는 본선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부터 기억하고 있다면, 다음 월드컵은 더 착실하게 준비하는 축구대표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지난 1달 정도 늘 피곤에 절어 살아야 했지만 행복했다. 이 1달은 추억으로 남겨두지만 우리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K리그도 해외축구도 아시안컵도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제 월드컵은 잊고 새로운 미래로 가자. Into th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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