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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아들을 찾는 다윗 9:1~5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 다윗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왕궁에서 지내는 므비보셋 9:6~13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가문을 제건한사람)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축복의통로를 만들어 가는 다윗
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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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다윗이 사울 집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시바를 시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데려오게 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든 밭을 돌려주고 시바에게 주인의 아들을 섬기라고 합니다. 또한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합니다. 므비보셋은 두 발을 다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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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아들을 찾는 다윗 9:1~5
정권이 안정된 후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권력을 잡으면 옛 약속을 잊기 쉬운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자식을 찾습니다. 이에 사울 왕가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 사울 가문의 남은 자에 대한 행방을 묻습니다. 다윗은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해 찾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남아 있다고 알립니다(3절; 4:4).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먼저 말한 것은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위험한 인물이 아님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요단 동편 마길의 집에 숨어 살던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의 다윗 궁으로 불려 옵니다. 이로써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킵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이 사울 가문의 남아 있는 사람을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아직까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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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에서 지내는 므비보셋 9:6~13
다윗을 만난 므비보셋은 엎드려 절하며 최고의 공경심을 표현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이여” 하고 이름을 부르자, 므비보셋은 자신을 ‘다윗의 종’이라고 하며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6절). 다윗은 조심스러워하는 므비보셋을 안심시킨 뒤,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 가문의 모든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또 자신의 식탁에서 식사하자고 합니다. 재산을 돌려주는 것은 사울이 누리던 부와 권세를 어느 정도 돌려준다는 의미고,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은 귀족의 명예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 뜻을 따라 다윗을 선택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생명은 구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생명을 건집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 뜻을 따랐던 요나단의 행동은 그의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내가 기도하며 하나님 뜻을 따라 선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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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나는 하나님 앞에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1990년대 후반에 나는 만나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 인력이나 자원이 풍족한 도시 교회에서 교사가 없어 교회학교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농촌 교회를 도우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다.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청년들과 함께 의료 선교, 교회학교 봉사, 농촌 봉사, 노방 전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휴일을 활용했는데, 점점 주일 사역의 필요성이 커져 갔고 주일에 청년들을 파송하려니 본 교회의 예배에 문제가 되었다. 오후에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강원도 영월까지 내려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내적인 갈등이 밀려왔다. 청년부의 양적 부흥이 먼저인지, 농촌 교회를 향한 약속이 먼저인지 계산기를 한참 두드리던 중 어느 순간 생각이 정리되었다.
“교회가 교인에게 평가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다.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역을 검증받아야 한다.” 해답을 찾자 가야 할 길이 분명해졌고, 청년들을 주일에 농촌 교회로 파송해 섬기는 이 사역이 계속 이어져 오늘날의 MMP(Manna Mission Plan) 사역이 되었다. 현재 이 사역은 약 10개 교회를 선발해 2년간 동반 성장을 위한 파트너 교회로 동행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하나님 앞에 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영혼을 섬기려 할 때, 하나님은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허락하신다.
치열한 도전 / 김병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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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9장 7절
성숙한 성도는 받은 은혜를 아낌없이 흘려보냅니다. 다윗은 주변 나라들을 정복한 후에, 자신을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과의 약속을 생각합니다(삼상 20:15~16). 그래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재산과 명예와 지위를 회복시켜 주고, 그에게 왕의 상에서 음식을 먹는 특권을 허락합니다. 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성도는 받은 은혜로 배부르기보다 흘려보낸 은혜로 배부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 집중하라. 이것이 성경적 영향력의 비결이다. - 카일 아이들먼
오늘의 기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힘들 때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며 타인을 위해 그 은혜를 흘려보내기 원합니다. 후손들이 기억할 만한 은혜로운 발자취를, 제가 주님 품에 안기기 전에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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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찾아와 주시고, 은혜와 사랑을 거저 베풀어 주시고,
당신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와 사랑이 또다시 흘러가도록 노력하자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고,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자
더 깊은 사랑의 교제로 나아가서,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하고,
더욱 더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그리스도인의 관용
1. 아끼는 마음(벧전1:22)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위치가 높을지라도 낮은 곳을 내려다 볼 줄 알아야 하며 모든 자를 아끼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2. 제자도의 실천(요일3:16)
높고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용서 받지 못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셨다. 따라서 우리들은 그를 본받아야 한다.
3. 축복의 간구 (롬8:35)
이해와 용서로 끝내 버릴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라도 복을 빌어 주어야 참된 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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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 다윗을 통해 므비보셋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로 인해 죽음의 고비와 광야의 생활을 겪었고
이방인으로 멸시를 받으며 그 무거운 짐들을 이겨내고
이제 그를 만나는 다른 이들에게
여호와의 은혜를 알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를 우리 대신 담당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자격 없고 므비보셋과 같은 우리에게 부어 주심으로
그 은혜의 보좌를 나아갈 수 있고
우리에게 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여 주신
그 사랑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는 오늘의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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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므비보셋이 경험하는 은혜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저주 속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영생의 복을 성도들이 함께 누리길 원하십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희가 매주 성만찬을 하면서 기억해야 하는 의미입니다.
성도의 삶은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말미암아
주어진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값없이 주어진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참으로 아무 자격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새언약으로
하나님의 왕자 중 하나처럼 되었으니,
위의 것을 생각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통과하고,
땅에 있는 수치스러운 정욕과 탐심의 우상을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여호와의 남은 자로 거룩함과 경건함에 깨어 있기 원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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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모델 같은 한 예가 오늘의 말씀이다.
다윗의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살펴 주는 내용이다.
과거 다윗이 매우 어려울 때에 다윗과 요나단은 약속을 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 사울은 다윗을 죽일려고 몇번의 살해 시도로 창을 던지기도 하고
신하와 군사도 동원하지만 아들 요나단은 다윗의 신변을 보호해 주려고 노력했다.
절친한 친구인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헤어지기 이전에 중요한 약속을 했었다.
사무엘상 20장 12~16절의 내용이 바로 그 약속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후일에 자신이 요나단의 가족을 돌보겠다는 약속이였다.
오늘 그 약속을 이루는 내용이 본문의 말씀이다.
다윗이 참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 은혜를 잊지 않는 다는 것이다.
먼저 자기 생명의 은인인 요나단을 생각하고 그 아버지 사울의 집안에
은총을 베풀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먼저 기억해야 한다.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호의를 베푸는 것이 자기 자랑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받은 것을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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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과의 약속은 삼상 20:12-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라고 요나단이 부탁했던 것입니다.
여기 인자함도 역시 은총이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인간적인 동정이 아니라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달라는 말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우리의 몫입니다.
므비보셋을 찾아 반역의 씨앗을 제거하는 것도 다윗의 선택이고,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인애를 베푸는 것도 다윗의 선택입니다. 마길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므비보셋을 선대하는 것도 다윗의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저는 다윗이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대, 내외적으로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향해,
므비보셋을 향해 변함없는 모습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인애를 베푸는 모습에서 큰 도전을 받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인애를 베풀고 마음을 써야 할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가 인애를 베풀어야 할 므비보셋이 누구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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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발을 절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 왕의 원수였던 사울의 손자일 뿐 아니라 두 다리까지 저는 자였기에 왕의 상에
어울리지 않는 자의 모습입니다만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따라 므비보셋을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합니다
다윗을 통해 장차 기름 부음 받은 왕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푸실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예언적인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있는 자들은 세리와 죄인들,자신이 죄임임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왕의 식탁에 참여한 므비보셋이 자신은 죽은 개와 같은 자라고 하였듯
예수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하게 되어 주의 살과 피를 먹게 된
내가 하나님을 죽인 원수인 것아는 지혜가 열린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크리스천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처럼
다리를 저는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예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밥상에, 천국의 밥상에 초대된
영광을 입은 왕같은 제사장들임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자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먹고 사는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은혜입니다
죽은 개와 같은 내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영원한 생명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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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므비보셋을 다윗이 부릅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므비보셋을 부른 것은 은혜와 언약입니다.
은혜와 언약은 스스로 죽은 개라고 고백하는 한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줍니다.
잃었던 신분을 회복하고 왕의 식탁에서 마치 왕자와 같이 함께 자리합니다.
은혜와 언약이 가져다준 기적입니다.
이 놀라운 장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언약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죽은 개와 같은 자들입니다.
소망이라고는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저주 아래 사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은혜를 베푸셨고,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의 은혜는 우리를 저주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신 언약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임을, 그런 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떠나지 않습니다.
받을 수 없는 은혜와 주실 없는 약속을 받은 자에게
그 은혜와 언약을 베푸신 분으로 인하여 기뻐할 일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를 살아드리기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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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절 :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사울과 달리, 다윗은 두려움 속에 숨어 지내던 므비보셋을 찾아 은총(헤세드)을 베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갚으려는 발걸음이 있고, 은혜를 갚으려는 발걸음이 있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있고, 타인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애씀이 있습니다. 열심히 찾아내어 자리를 마련해 줄 이웃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3-6절 :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다리 저는 자'가 아니라 '므비보셋입니다. 시바는 다윗에게 '요나단의 아들 하나를 소개하며 '다리 저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에게 위험이 되거나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암시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앞에 엎드린 므비보셋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리 저는 자'가 그의 이름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사회에서 고유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도록 방치되거나 강요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고유성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은혜 받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입니다.
7-13절 :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다윗은 사울의 모든 소유지를 므비보셋에게 넘겨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항상 왕의 상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죽은 개와 같은 나'로
여기는 그를 '왕자 중 하나'로 대우했습니다.
공평과 정의라는 다윗의 통치 원리가 밥상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죄인들과 먹고 마신 예수님의 밥상은 진정한 왕의 식탁이었습니다.
성찬은 죄인이기에 못 오는 자리가 아니라,
죄인이기에 •초대받는 자리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잔칫상을 누리며 나누고 있습니까?
9-12절 :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시바를 여전히 '사울의 시종'이라 부르며 그의 모든 가족과 종들이 므비보셋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몰락한 왕가를 섬기게 되면 앞으로의 신분 상승은 꿈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바는 순종하다가 결국 므비보셋을 모함하기에 이릅니다(16:1-4).
진정한 순종은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골 골짝이라도 '네' 하며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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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의 집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습니다.
이유는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은총을 베풀려는 마음>때문입니다.(1절)
다윗은 왕위에 오르고, 적으로 간주 될 수 있는 사울의 집안을 더욱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이 은총과 자비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나도 왕이 되면 베풀겠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소유하게 되면 나눠주고 싶기보다는 더욱 움켜쥐고 싶습니다.
지금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무엇인가를 추구하려 합니다.
왕위에 올랐으면 더욱 강력한 왕권, 더 큰 영토, 더 많은 세금,
그 다음에는 자기 자녀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 등 끊임없이
그 다음에 가지고자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많은 재정을 가지시고 베푸시는 분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집에 가보면, 얼마나 아끼면서 사는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물건 하나 쉽게 사지 않으시고, 사용하는 물건도 매우 아껴쓰시고 관리하는 것을 봅니다.
사는 모양만 본다면 절대 잘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남는 것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최소한으로 아끼시고
깍아내서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
섬김은 남을 때, 여유 있을 때, 넉넉할 때 시작한다는 고
정관념을 깨어지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많이 가지신 분들이 나누실 때,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요.
나눔은 많이 가진것에 따라 그 마음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가진 것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재산을 다시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고,
사울의 시종 시바에게 이 재산을 관리하도록 합니다.
다윗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 취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다윗은 오히려 돌려줄 뿐만 아니라, 잘 보전되도록 도와줍니다.
2. 다리 저는 자, 므비보셋
이에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알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마길의 집에 숨어있었습니다.
아마 마길이라는 사람은 사울집안을 지지하는 자이거나,
사울의 집안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을 숨겨주었던 마길의 집은 이후에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나서 마하나님에 이르렀을 때
다윗을 도운 사람들의 이름 중에 마길이 나옵니다.
(삼하17:27) 이 마길은 오늘 본문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혜의 결과, 므비보셋을 돌보아왔던 마길을 통해
다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베푼 은혜가 자신의 위기에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3. 묵상
언제 내 손을 넓게 펼 수 있을까?
어떤 조건이면 내 손을 넓게 펼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
이는 산술적인 수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미래의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의 문제이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하여 빚진마음으로 살아가는 선한 마음, 양심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넓게 드러내고자 하는 소망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누군가 불쌍하게 여기는 <내>마음에 기대면 절대 나눌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더 불쌍하게 여길뿐이니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되돌아 가는 나눔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그 크신 사랑에 영광과 존귀를 영원토록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부여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평생 날마다 먹으니...
이 크고 놀라운 일이 내게 임한 은총을 인하여 ...
귀한 말씀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마음에 깨닫게 됨으로 감사가 넘치나이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므로 매정하게 몰살 당하는 왕정시대에 전 왕의 직계로 숨어 살며 절뚝발이로 비참한 인생을 이어가던 므비보셋의 신분의 발각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는지요
자신의 생명을 주관하는 왕 앞에서 스스로 도망할 수도 없는 비참한 생을 이어가던 인생이 무슨 소망이 있었겠는지요
므비보셋의 심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 나의 인생이었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을 살다 가는 인생이 생명을 볼모 잡은 자 앞에서 얼마나 불안하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세상을 주관하는 영에 속해 고달픈 인생 길을 가는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찾아 불러 주시옵소서
공의와 사랑으로 신실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힙입는 은총을 그들에게도 내려 주시옵소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16:31).' 하신 약속을 내가 믿나이다
주의 공의와 사랑은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그 불의에서도 깨끗하게 하시오니 죄 가운데서 사망의 종 노릇 하는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은혜의 부르심에 숨지 않고 나아올 수 있는 은총을 내리사 기뻐함으로 주께 나아올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고달픈 인생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의 왕궁에서 주의 공급하시는 음식을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복을 주시옵소서
육체의 소욕의 종 노릇하던 생활 습관이 체질이 되어 버린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되었으니 그 은혜를 항상 감사 찬송을 드리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지극히 선한 것을 배우고 알면서도, 확신하는 일에서 번번히 자신의 육체의 욕구를 거절 못하고 날마다 후회는 하지만 진정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에서는 언제나 낙제생이옵니다.
오늘도 죄와 허물이 있었던 심령을 용서하사 사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간구하오니 내 안에서 충만하시옵소서
내게 있는 주의 말씀이 훼방받을 때에라도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 상함을 받지 않고, 도리어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심령으로 더욱 강하게 하옵소서
마길의 후원이 돋보입니다.
부자이면서도 지극히 생명이 위험한 정치적 사건에서 열세인 자 므비보셋을 돌보는 그의 심성과 삶의 철학이 돋보입니다.
그는 멸문지화 당한 가문의 므비보셋을 돌보았고 훗날 다윗의 피난 길에서 또 다윗을 숨겨주는 담대한 성품으로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행함이 있는 사랑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러한 차별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항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셔서 내 심령을 주관하시옵소서
나의 삶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는 관용으로 성령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