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시인의 사랑’
사랑이 아우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의 슬픈 영혼은 이제 지치고 피곤합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시간이 우리를 잊기 위해
수그린 당신 이마에 입맞춤의 논물을 남기고
어제는 낙엽 쌓인 교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서관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20세기 영국 시의 거장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시 ‘낙엽’을 떠올렸다. 사랑의 좌절과 이별, 식어가는 정열을 생명이 스러져가는 가을에 비유한 이 시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이츠의 조기시의 낭만성이 돋보이는 시다.
나는 가끔 재미 삼아 작가들의 전기를 읽는다. 남의 삶을 엿보는 것 같은 단순한 흥미 외에도 그들이 쓰는 위대한 작품들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호기심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는 내친김에 예이츠의 전기를 읽었다. 예이츠의 작가적 명성은 그의 연시와는 무관하지만 그의 전기를 읽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그의 사랑 이야기였다. ‘낙엽’은 그가 인생을 걸고 운명처럼 사랑 한 모드 곤을 처음으로 만난 1889년 가을에 쓰여진 시로서, 순조롭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을 예견하고 있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특출나게 아름답다’고 묘사한 모드 곤이 친구 소개로 예이츠를 방문하던 날, 예이츠는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미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짤막한 시 ‘화살’에서 그는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달콤한 고통을 묘사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 생각은 날카운 상념의 화살이 되어 내 뼈 깊숙이 박혔습니다.”
그러나 모드 곤에 대한 예이츠의 사랑은 처음부터 일방적인 것이었다. 금발 미녀에 열정적인 성격으 곤은 당시 유명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로서 늘 시위나 회의를 주도했고, 한 남자의 연인으로 남기에는 너무 야심많고 자유분방한 여자이었다. 1891년 예이츠는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 당한다. 그녀에 대한 예이츠의 집착은 거의 숭배에 가까웠고, 그래서 그의 사랑은 극심한 고뇌만 가져올 뿐이었다.
1903년 가을, 그는 곤이 독립운동의 동지인 존 맥브라이드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충격은 대단해서 예이츠는 그날을 詩에서 ‘번개와 함께 당신이 내게서 떠나던 날/내눈은 멀고 내 귀가 안 들리게 된 바로 그날’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모드 곤의 결혼은 곧 파경에 이르렀고 예이츠의 구애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사랑의 시에서는 어김없이 그녀에 대한 연정과 정열이 되살아나곤 한다.
내 청춘이 다 하도록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녀
날이 밝을 때마다
그녀를 위해 깨어나
나의 선과 악을 가늠해본다.
한마디로 그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희열의 고통이었다. 혼신을 다 바친 끈질긴 사랑이 결국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노년에 그는 모드 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자신이 느꼈던 지독한 상실감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그녀는 끝내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몰이해야말로 그의 시와 삶에 끊임없는 자극이 되었고, 만약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더라면 ‘가난한 언어같은 것은 버리고 그저 살아가는데만 만족했을지도 모른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드 곤은 한 남자의 청춘을 파괴한 대가로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킨 셈이다. 영국 시인 하우스만은 시를 쓰는 직업을 ‘상처받은 진주조개가 지독하고 고독한 고통 속에서 분비 작용을 하여 진주를 만드는 일’에 비유하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전기를 읽어 보면 극심한 내적 고통을 겪고 난 후 영혼의 깊은 상처를 승화하여 주옥같은 작품들을 쓰는 예가 허다하다.
ㄱ러나 영혼도 영혼 나름인지, 험한 세상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면서 내 영혼도 상처투성이지만 아름다운 진주같은 작품은커녕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는데 어젯밤 잠을 설쳤으니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한숨 지을 뿐이다.
*나는 예이츠의 시 ‘나 이제 이니스프리로 가련다./나무 엮어 진흙 발라 지은 작은 우두막.’으로 시작하는 시 ‘이니스피리 호수의 섬’을 무지하게도 외우려고 덤벼들었으나 결국은 한 줄도 못 외웠지만,(지금은 그 한 줄도 까먹었고)
그래서 장영희 교수가 쓴 예이츠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니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