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왕 앞에 머리를 들다 (시2-24)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찬양 : 문들아 머릴 들어라
본문 : 시24:1-10절
☞ https://youtu.be/XPr5zTTrL-s?si=3kHyb_BaA3CMVfSp
금주간 월요일은 선교회를 청소하고, 어제는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사역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 이런 섬길 수 있는 자리와 건강과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찍 퇴근하여 기도회를 하고, 밤늦게까지 목회사관학교에서 가르칠 묵상 교재를 새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사역자의 경건 생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아니 나부터 새로워지려는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 12년의 경험과 실패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재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주님, 지혜로 인도하소서.
이제 내일 목회사관학교 11기생 졸업예배가 진행된다. 모든 순서에 위로부터 기름부어 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시편 24편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이것이다.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이 고백은 시편 15편에 나오는 <누가 여호와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가?>하는 즉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라는 동일한 질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차이는 시편 15편이 성소에 들어갈 자격 즉, 기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시편 24편은 자격을 뛰어넘어 영광의 왕을 향한 시선으로 눈을 집중시킨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주목되는 것이 있다. 왕으로서 다윗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2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였도다’
인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노력과 고생, 경험, 능력이 오늘의 자기를 있게 했다고 안다.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위대한 일을 감당한다. 그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 자신의 선한 마음과 의지와 노력과 경험으로 준비했다.
이 사실을 다윗은 훗날 이렇게 회개하며 자백했다. 대상 15:13절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은 이제 왕이 되었으니 얼마든지 자신이 결정해도 될 줄 알았다. 나쁜 마음이 아니고 선한 마음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법궤 운반 책임자 웃사의 죽음으로 자신의 명예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온 땅과 거기에 사는 모든 것은 다윗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것이었다. 그리고 성소 곧 법궤도 인간이 분명 만든 것이었고 인간이 들수 있는 것이지만,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경험과 깨달음 속에서, 다윗은 영광의 왕 앞에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를 이렇게 노래한다. 7-8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여기 주목해야 할 단어는 <머리를 들라>는 것이다. 문은 여는 곳인데 다윗은 머리를 들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문보다 크시는 분이시고, 그분이 문에 맞추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에게 맞추어 머리를 들어야 한다는 위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인생은 모든 상황이 존재하기에 하나님을 상황에 맞추려고 한다. 아니 상황을 핑계삼아 하나님을 꿰어 맞추려고 한다.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께 통하지 않음을 분명히 발견한 것이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자신이 주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는 수동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소의 문을 열고, 닫는 영광의 왕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분명하게 한다. 10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묵상하면서 지난 내 삶이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다윗은 몇 번의 실수를 통해 이런 위대한 변화를 만들고 찬양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나는 많은 실수와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광의 왕이 내가 되어 버린 자리들이 왜 그리 많은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다. 오늘도 어쩌면 성소의 문을 내가 열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두려움을 잊은 채 이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님, 이 어리석은 죄인을 어찌하오리까? 진실로 온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함에도 나의 기준에 맞추려 했던 죄악들을 회개합니다. 이젠 정말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로 서고 싶습니다.
한줄 묵상 :
<하나님을 문에 맞추려 했던 삶에서, 하나님께 내 삶을 맞추는 자로 살리라.>
적용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영광의 왕’이 아니라 내 필요의 문에 맞추지 않는가?
2. 최근의 결정에서 여호와께 묻고 있는가, 나의 선한 의지를 따르는가?
3. 오늘 내 삶에서 ‘머리를 들어야 할 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