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1036년 폴란드 슈체파누프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주교가 된 그는 뛰어난 설교와 영성 지도로 많은 이를 하느님께 이끌었다. 그는 크라쿠프의 교구장으로 활동하면서 폴란드 국왕의 불의와 폭정을 꾸짖고 파문하였다. 이에 국왕은 그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우고, 1079년 4월 11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던 그를 성당에서 끌어내어 살해하였다. 1253년에 시성된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스타니슬라오 주교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박해자의 칼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저희도 죽기까지 믿음에 충실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선과 악의 싸움에 중립은 없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책 ‘삼체’(Three-Body)의 앞부분 줄거리입니다. 이야기는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였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 중에 시작됩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이 자본주의적 잔존 세력을 숙청하여 중국 공산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 정치적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수백만 명의 박해, 중국 교육 시스템의 혼란, 심각한 경제적, 문화적 피해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변을 가져왔습니다.
이때 예 원지에(Ye Wenjie)는 천재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처형되는 것을 봅니다. 미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입니다. 아버지를 신고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반동분자의 딸로서 수용소에서 지내던 그녀는 또한 마음을 주던 유일한 남자 과학자에게까지 배신당합니다. 최고의 과학자로서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일을 담당하게 된 원지에는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발전한 문명을 지닌 평화주의자 외계인으로부터 이상한 메시지를 수신하게 됩니다. 신호를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치가 발각되고 자신들의 문명이 그들을 파괴하러 갈 것인데, 자신들이 도착하면 문명의 차원이 다른 자신들의 종족이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에 환멸은 느끼던 예 원지예는 잘됐다 싶어 그들에게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태양이 세 개인 행성에 사는 그들이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세 태양이 합쳐질 때 문명이 파괴되고 마는데 태양이 하나뿐인 지구는 그들이 원하는 가장 완전한 행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구까지 오는 데는 400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지구가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 원지에와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을 규합하여 지구의 문명이 더는 발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전을 수행합니다. 지구는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과학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되고 매우 발전이 매우 느려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외계인들이 도착하게 될 무렵 그들을 무력화시킬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지구인들이 냉동인간으로 그때 깨어나게 만든 루오 지(Luo Ji)입니다. 루오 지는 트리솔라리안들이 자기들을 공격하면 그들의 좌표를 온 우주에 다시 날려 보낼 것이고 그러면 그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이 와서 또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으로 트리솔라리안들과 거래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합니다.
‘삼체’는 SF 소설이지만, 사실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를 위해 일합니다. 원지에는 자신도 지구인이지만, 지구인들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파괴해 줄 대상을 찾고 그들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지구인들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반면 루오 지는 지구인들 편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저지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기술로는 도저히 되지 않기에 깨달음을 통해 이 일을 이뤄냅니다. 정글 숲속에 병아리 한 마리가 있지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누군가 자기를 잡아먹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또 그놈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게 만들면 된다는 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원지에와 같은 일당인데,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안 되게 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들어주는 이들의 뜻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들이 은혜를 받는 이들에게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한량없는 은혜인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적들은 또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을 고마워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뜻을 따라줍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고 있고 은총과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주는 이의 말을 하고 뜻을 따라줍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빛과 어둠, 두 곳에서 옵니다. 지구를 침공하러 오는 이들이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또 지구를 지키려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중립일까요? 그 사람은 지구 파멸의 문제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외계인과 그 일당의 편입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중립일까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그냥 악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은총을 원하느냐에 따라 내가 따라주는 뜻이 결정됩니다. 은총과 뜻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지혜로운 현자가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습니다. 부딪힌 그 사람은 불같이 화를 내며 현자의 뺨을 가차 없이 때렸습니다. 그리고 큰 싸움을 벌일 험악한 기세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현자는 실랑이가 벌어지자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혀 싸움을 피했습니다. 때린 사람도 자신이 너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현자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현자는 사과를 받아들였을까요? 저는 사과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현자는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맞은 기억이 없소.”
현자는 맞은 기억이 없기에 사과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이로써 나쁜 기분을 안고 가는 것도 거부한 것입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 드는 힘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오히려 당장 패배를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대응하는 것이 정당해 보이지만, 대응한다고 해서 상대가 항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은 절대 손해 보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손해를 줄여주고 함께 사는 힘을 마련해 줍니다. 큰 이득을 얻을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패배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가능했고,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이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절대’라는 말에 걸려 넘어져서 커다란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권한 주셨지요.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을 외면하고 대신 주님께 집중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모욕당하고, 세상 안에서 단죄받는다고 해도 억울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들고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다산 정약용).
사진설명: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