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타진하니 '매의 탈' 쓴 한은…"경고 드려요" 7차례
이창용 총재, 기준금리 연속 동결 직후 매파 발언
시장 분위기는?…"어차피 연말 되면 경기가 골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조절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지금 단기금리인 90일 통안채 금리라든지 국채 1년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시장에서 좀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봅니다. 시장이 맞는지 당행이 맞는지, 경기라든지 물가의 흐름에 대해 누가 더 맞는지는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죠. 다만 이렇게 가는 것이 정상적인 건 아니라는 경고를 드릴 필요는 있잖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시장에 부푼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향해 보낸 '경고장'이다. 그는 이처럼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언급만 한 자리에서 최소 7번을 쏟아냈다.
이제는 기준금리 인상이 완전히 끝났다는 시각이 시장을 지배하자, 매파(긴축 선호) 발언을 통해 시장 내 균형감을 잡으려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전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연 3.50%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2월에 이은 2연속 기준금리 동결이다.
이 총재는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금리 인하 전망과 관련해 유독 매파적 태도를 견지했다.
◇"잘 판단하셔야 할 것"…계속된 '과한 기대' 경고
이 총재는 "금융시장 내 금리 인하 기대와 관련해 지금 금통위원 중 많은 분들이 시장의 기대가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계시다"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해외나 기타 상황 변화에 따라 물가 경로가 예상하는 바가 아닐 경우 다시 인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자는 분이 5명 이상인데 지금 시장에서는 마치 연내 금리 인하를 할 것 같은 기대가 많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아예 이번 상반기는 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할 만한 언급 자체를 안 하겠다는 의사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예상 물가 수준이 연말에도 3% 초반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물가가 충분히 그 이하로 떨어져 중단기 목표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진 금리 인하에 관한 논의는 안 하는 게 좋겠다"며 "특히 상반기는 물가 경로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는데 하반기는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에 하반기 끝까지 가기 전까지, 금리 인하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물리쳤다.
시장에 훨씬 구체적인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번 동결 이후 빠르게 부푼 인하 기대를 접으라는, 일종의 기싸움으로 읽힐 정도다.
이 총재는 "연말에는 경기 둔화 때문에 금리를 낮출 거라는 기대가 완전히 자리잡고 있으나 경기에 관해서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시장이 그렇게 얘기하고 나중에 맞으면 어떤 면에서는 한은보다 예측을 잘 하신 거겠지만 한은이 가진 데이터를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시장에서도 생각해 보셔야 되는 게, IT 경기가 (시장의 기대처럼) 조금 늦게 회복되더라도 다른 부문의 성장률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그게 과연 금리로 대응할 상황인가"라면서 "이런 것에 대한 판단을 잘 하셔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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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매파긴 했는데…연말 이슈는 경기 하강"
시장은 이 총재의 간담회가 매파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인하 논의 시기상조',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등의 내용은 지난 2월 금통위 때와 똑같지만, 톤이 한층 강경해졌다는 것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총재 기자회견은 매파적이었다"며 "예상대로 물가 2% 수렴 확인 전까지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2월 의견을 고수했다"고 평가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도 "이번 금통위는 표면적으론 좀 더 매파적이었다"고 해석했다.
한은이 의도적으로 이런 태도를 보인 이유는 기대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시장 기대 관리를 위해서다.
김 연구원은 "기대인플레 제어와 함께 연속 동결 결정으로 인해 시장이 과도하게 인하 전망으로 쏠릴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연구원도 "한은은 기대인플레 제어를 위해 동결기에도 추가 긴축 끈을 놓지 않겠단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이라며 "금통위원 대부분이 최종금리 3.75%까지 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인하 기대를 제어하겠단 의지가 강했던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경고장은 일단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 이후 이 총재가 콕 찝어 문제라고 언급한 91일물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은 전일 대비 0.1bp(1bp=0.01%포인트) 오른 3.229%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도 함께 내놨다.
이 총재가 언급한 다른 초단기물인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가 3bp 내린 3.480%를 기록한 데다, CD나 통안채 모두 기준금리인 연 3.50%를 여전히 밑돌았기 때문이었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표면적으로만 매파적이었던 금통위"라고 총평하면서 "이 총재 발언으로 초단기 금리가 상향 이동하겠으나, 전반적인 금리의 하향 안정 흐름을 거스르긴 어렵다"고 밝혔다.
허 연구원은 "펀더멘털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고, 금통위가 언급한 3.75%로의 추가 금리 인상과 차후 인하 가능성을 가늠했을 때 후자로 무게가 쏠린다"며 "현 시점에서의 추가 인상은 불필요한 리스크 요인을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지금은 한국 경제의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 분명해 금리 인상이 어불성설이라 인하에 베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다.
시장은 하반기 물가 둔화 속 경기 하강과 금융 불안 등으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한은도 결국은 이에 주목할 거라고 본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는 현 시점에서 금리 인하를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했지만 물가가 한은의 전망 경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경기 하방 리스크는 확대되는 상황에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