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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를 범한 다윗 11:1~4
1 그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불러옴 11:5~13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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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지만 다윗은 왕궁에 머뭅니다. 옥상을 거닐던 그는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보고 데려다 동침합니다.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은 그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들입니다.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려 하지만, 그는 전쟁 중인데 집에 가서 먹고 마시며 아내와 잘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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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를 범한 다윗 11:1~4
영적으로 방심하면 죄가 틈타기 쉽습니다. 다윗은 왕들이 출전하는 시기가 돌아왔지만 암몬과의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한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저녁때, 지붕 위를 거닐던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봅니다. 아름다운 밧세바를 보고 정욕이 일어난 다윗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그녀는 다윗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유부녀임을 알고 멈추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고 그녀를 불러들여 동침합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다윗은 절제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다윗 왕국에서 다윗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다윗은 어떤 죄를 죄었나요?
내가 죄에 대해 무감각해질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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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불러옴 11:5~13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은 그 간음죄가 만천하에 드러날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다윗은 죄를 덮기 위해 계략을 세웁니다.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해 태중의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로 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자기만 집에서 편히 아내와 잘 수 없다며 다윗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합니다. 우리아는 “언약궤…가 야영 중에 있고”(11절)라며 ‘언약궤’를 언급하는데, 이는 그가 정결을 지키는 이유와 연결됩니다. 설정은 부정을 유발하기에(레 15:18) 하나님이 참전하시는 전쟁 중에 있는 사람이 설정으로 거룩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신실한 우리아의 모습은 죄를 짓고 죄를 덮기에 급급한 다윗과 대조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의 명령에도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육신의 안락을 좇지 않고 하나님 앞에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사무엘하 11장 3절
위험 신호를 무시하면 큰 위기에 빠집니다. 다윗은 눈에 들어온 여인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임을 확인합니다. 밧세바는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이고, 그의 남편은 다윗의 충성스러운 종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의 보고를 듣고도 행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정욕은 '멈춤'으로 맞설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를 때 바른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 음성에 순종하라. 우리가 매 순간 듣고 순종하는 대상이 우리 삶에 대한 권위를 갖는다. - 톰 마셜
오늘의 기도
하나님! 외부의 적들과 싸워 승승장구했던 다윗이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정욕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제 안에 있는 정욕의 위험성을 마음에 새깁니다. 잘못을 덮으려고 더 큰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죄를 지었을 때 즉각 인정하며 회개하는 마음을 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268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할 수 없으며, 때로는 실수를 하고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럴 때 자신의 죄를 가리거나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나아와 자백하고 회개하여 용서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실수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삶이 하나님 백성의 참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수나 죄를 억지로 덮으려고 하지 말자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그에 합당한 처벌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자
회피하거나 덮으려고 할 때 우리의 죄가 더 확대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곧바로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자
‘언약궤’ 조차 장막에 있다는 우리아의 고백은
군사들을 사지에 보내어 놓고 낮잠을 자며 불륜을 일삼는
다윗을 향한 경고의 암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정기적인 정복 전쟁은 우리아와 같은 귀한 장수를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나의 거짓을 덮기 위해
9가지의 거짓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다윗의 죄는 더 큰 악들을 만들어 내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수천 가지의 악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목동 시절 골리앗 이라는 거인을 담대하게 무찌른
그가 연약해 보이는 한 여인 앞에 교만함으로
죄악 가운데 무참하게 패배하게 됩니다.
죄는 문등병처럼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조금이나 많으나 죄는 죄이지만...
얼른 돌이키면 좋을텐데 죄악의 끝까지 달리게 만드니
죄의 세력은 너무 너무 강력합니다
말씀에 찔림이 있기를, 지체들의 언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의 뜻에 붙들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침 받는 인생으로 깨닫고
거룩과 겸손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죄가 우리를 깊은 나락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영웅이 무너지는 것은 정말로 한순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영적 지도자들을
영웅처럼 믿고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고
심지어는 신앙을 떠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윗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스스로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밧세바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죄된 모습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할 때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을 인도하심을 따라 죄를 미워하며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암몬이 아람 도시국가들을 고용하여 전쟁했을 때에
아람은 굴복시켰지만,
당시는 겨울과 우기가 겹쳐 왕들 출전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암몬은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왕들 출전할 때가 되어 암몬을 치기 위해 다윗의 군대가 원정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에 무료함을 달래려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음욕이 불일듯 하여
불러다가 간음하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다윗은 간음한 것도 모자라 충신을 교활하게 속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세상에 의인은 없고 다윗도 죄악 가운데 출생한 한 인간일 뿐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시51:5)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깨어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
그러나 다윗은 자기 할 일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고,
게을리
눈을 어디에 두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윗은 눈을 음란한 데에 두었고,
눈이 이끄는대로 마음이 끌렸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몸이 이끌려 죄에 빠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눈이 먼저 이끌려 보암직함에 사로잡혔고,
눈이 이끄는대로 마음이 이끌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에 사로잡혔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몸이 이끌려 먹음직함에 사로잡혀 죄악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을 허탄한데 두지 않기 원합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119:37)
오직 눈을 여호와께 향하기 원합니다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123:1~2)
약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전11:6.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1) 이 정도는 괜찮겠지
목욕하는 여인을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그 이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야.
그러나 우리는 죄를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려 해야 합니다.
잠깐의 틈을 주었을 때, 내가 죄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죄가 나를 삼키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새 죄가 내 마음 가득하게 요동하게 하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죄를 억제하는 것도 있겠지만,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당당하지 않는 것에서 도망가는 결단입니다.
요셉처럼
맞서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더러운 것으로 보고 피하려는 마음 말입니다.
죄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를 보고 죄를 정하셨습니다.
유혹이 오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죄의 유혹은 내 의지로 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늘상 보이고 듣게 합니다.
우리는 온갖 죄의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죄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 것을 보고 마음이 어려움이 순간 찾아오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의지로 붙들기 시작하는 순간 죄가 됩니다.
그 죄를 내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만드는 것이지요.
죄의 종류
가장 우리가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죄의 종류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죄와 작은 죄로 나누고 작은 죄에 대하여서는 쉽게 용납하는 듯 합니다. 문화적인 것들은 쉽게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웹툰이 죄가 됩니다. 웹툰 자체가 죄가 아니라,
웹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게으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쉼과 휴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허비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유튜브도 그럴 수 있고, 지나친 취미생활도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방향을 구하며 접하지 않게 되면,
그 안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의 기준들이 늘 들어오게 됩니다.
이 유투브와의 전쟁이 있습니다. 아무리 컨텐츠가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유투브를 보면, 자신이 졸린지도 모르고,
못보게 하면 금단증상들을 나타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항상 질문합니다.
유투브를 보고나니 더 행복해졌는지,
아니면 짜증이 많아졌는지,
건강하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지, 유투브만 더 보고 싶은지,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유투브를 보고나서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깨우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순간 기분좋게 하는 이 세상의 문화들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비난받지 않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그로 인한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하여는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서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죄는 남들의 비난에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의 가책이 모든 죄를 거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죄가 되는지 늘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민감하며,
죄를 분별할 수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하나님께 물어보며 결정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뻔한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죄가 되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은 고상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착각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죄를 범한 그 이후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창피하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창피한 죄를 지었다면 그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죄 때문에 우리 공동체 전체가 위험게 되고,
가족 전체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죄를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그 죄를 그늘에서 햇볕으로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죄는 그늘에 있으면 어두움을 먹고 더욱 커지게 되고,
햇볕에 나오면 부끄러움 때문에 쪼그라듭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 그 죄를 꺼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길 소망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길 원합니다.
바라 보는 것이 참 문제이다.
하와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보지 않았는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탄은 늘 그렇게 가장 연약한 부분을 틈타게 됩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이미 아내가 여섯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밧세바에게 넘어져 다윗의 인생에 가장 부끄러운 역사를 쓰고 말았습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탄은 늘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틈타게 마련입니다.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다윗은 회개보다는
인간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죄가 장성해가는 순간입니다
아마 오늘 본문의 핵심은 11절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야의 이런 충성에 다윗은 정신 차려야 했습니다.
우리야는 끝내 아내와의 동침보다 전장의 동료들에
대한 충정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 충정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밧세바는 오늘 우리에게 천의 얼굴을 차고 찾아옵니다.
우리의 밧세바는 돈이나 권력일 수 있습니다.
전혀 궤적을 달리하는 타락일 수 있습니다.
술이나 다른 쾌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은 항상 우리가 느슨해져 있을 때 찾아옵니다.
다윗의 일탈과 방종을 욕하기 전에 다시 우리 삶을 돌아봅시다.
너무 분주하게 살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그때 밧세바의 유혹은 찾아옵니다.
저는 성경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다윗의 모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묵상해 봅니다.
다윗에게 본받을 만한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런 다윗이 정욕의 문제 앞에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다윗이 하는 행동은 세상 사람보다도 악 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이런 이야기를 조금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까?
저는 이 이야기가 누구도 예외는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윗을 비난하거나 욕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영적 나태함, 권력에 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너는 다윗보다 나으냐고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면 하물며
너는 어떻겠느냐고 말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밧세바도 우리 주변에 잠복 중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 깨어 우리의 밧세바를 잘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한 자로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 우리의 시간들을 쏟아붓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고침과 나음을 받는 역사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는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를 범한 자와 피해를 본 자 모두를 심하게 왜곡시킴을 봅니다.
그 누구도 죄의 치명적인 독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나이다.
죄의 저주로부터 구하시려 주 예수께서 십자기를 지셨으니
그 거룩하신 성호에 영광과 존귀를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사
새 생명을 주심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무한 영광이요
그 은혜에 감사 찬송을 드리옵나이다.
뿐만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유한한 육체에 거하시는
크신 은총을 내려 주셔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의 뜻대로
인도 보호하심을 보증하시니 무한 감사를 드리옵니다.
죄의 종이었던 옛 사람의 습관과 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한
육체의 소욕에 항상 마음을 뺏기고 부지 불식간에 죄를 짓는 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서도 항상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성령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엎드려 있사오니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구별된 삶을 살도록 교훈하시고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단에게 훼방거리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말씀으로 강권하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과
행동으로 인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된 회개를 하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죄의 책임까지 면제 받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기 원하옵니다.
선조의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죄들이 자녀된 우리에게 뿌리 내리고
자녀들도 더럽고 추한 죄악 중에 거하게 되었던 우리 부모 시대의
불순종의 죄와 우상숭배의 악들이 우리 세대에도 있었나이다.
이제는 주의 은혜의 시대에 살게 하심을 무한 감사드리옵니다.
주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집안에 내려 오던
불신앙의 죄에서 돌이켜 죄사함을 받았으니 감사 찬양을 날마다 주께 드리옵니다.
성도 자신이 선한 삶을 살 수 없는 육체에 치명적 결점이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지 못했던 지난 날이 부끄럽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지 못한 날들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업신여겨 그저 읽고 깊이 묵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인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육에 속한 욕정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침이 한 두 번이 아니었나이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판단을 말씀보다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새기지도 아니하고 그저 입에만 달고 있는
삶의 모습들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사 나를 신뢰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열매 맺은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