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묵자흑[ 近墨者黑 ]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의 한자성어.
近 : 가까울 근
墨 : 먹 묵
者 : 놈 자
黑 : 검을 흑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 고사성어이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문신·학자인 부현(傅玄)의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온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겉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된다.
또 틀을 잡아 주는 도지개가 있어 도지개에 따라 습관과 성질이 길러진다.
이런 까닭으로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故近朱者赤 近墨者黑).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이 맑고,
형태가 곧으면 그림자 역시 곧다."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마중지봉(麻中之蓬)·
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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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것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물든다는 말이죠.
그러니 백로는 결코 까마귀 무리에 끼어서는 안 되는데···.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자신도 나쁜 행동에 물들게 된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시기하니)
창파에 조히(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누가 지은 시조인지 아시나요?
유명한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부인께서 지으신 노래입니다.
아들이 혼탁한 조정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겨 지어 주신 것이죠.
그런데도 결국 정몽주는 까마귀 일당에 의해 죽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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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주자적 (近朱者赤)[1]도 이와 같은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비슷한 말로 순자의
"쑥대가 삼대밭 속에서 자라면 부축해 주지 않아도 곧으며,
흰 모래가 개흙 속에 있으면 함께 모두 검어진다"가 있다.
또한 "심연에 있는 괴물을 바라볼 때에는 그곳에 있는 괴물도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 역시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공자의 '지란지교'에 관한 내용 중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향기 그윽한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그와 함께 오래 지내면 비록 그 향기는 맡을 수 없게 되지만, 자연히 그에게 동화되어 착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악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치 악취가 풍기는 절인 어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간 것과도 같아서, 그와 함께 오래 지내면 비록 그 악취는 맡지 못하게 될지라도, 그에게 동화되어 악한 사람이 된다. |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향을 싼 종이'와 '생선을 꿰었던 노끈'의 이야기 등
여러 문화권에서 이 성어와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린도전서 15:33) |
비행청소년의 부모들은
주동범의 부모든 공범의 부모든 흔히 이 사자성어를 거론하며
'우리 아이가 심성은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만 저 모양이 됐어요'라고 하며
자기합리화와 책임전가에만 신경을 쓰는데,
이는 '근묵자흑'은 아니라 '유유상종'이 적절한 표현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 보면 근묵자흑의 '묵(먹)' 에 해당하는 자들은
다름아닌 그 부모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이러한 점은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야기와도 관련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