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디어 포스터의 변신 3000년의 지루함을 깨다
약간의 재치만으로 올드·아날로그 한계 극복
광고(廣告)라는 말을 ‘세상에 널리 알림,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인류 최초 광고주는 누구였을까. 인류 첫 광고주는 기원전 1000년께 고대 이집트 수도 테베에 살던 방직공 하푸(Hapu)라는 사람이다. 하푸가 파피루스에 적어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 메시지는 이렇다. “남자 노예 샘이 그의 선량한 주인인 방직공 하푸로부터 달아났습니다. 테베의 선량한 시민 여러분, 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는 히타이트 사람으로 신장은 5피트 2인치, 얼굴빛은 붉으며 갈색 눈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거처를 알려 주시는 분께는 금화 반 개를 드립니다. 또 그를 찾아 여러분이 갈망하는 최상의 옷감만을 생산하는 방직공 하푸의 상점으로 데려오시는 분께는 금화 한 개를 드립니다.”
노예 수배 광고인지 상점 홍보 광고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헷갈리는 이 파피루스는 인류 최초 광고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스터로 추정되며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 광고미디어이자, 대표적인 올드미디어인 포스터가 최근 지난 3000년간의 지루함을 깨고 새롭게 진화 중이다. 약간의 기술과 재치 있는 발상을 접목함으로써 경험을 증폭시키고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등 ‘공감 능력’을 가진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적어도 국민의 5%는 주기적으로 헌혈을 해야 한다고 권장하지만, 브라질 헌혈인구는 1.8%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브라질 헌혈협회는 포스터를 통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혈액 충전 포스터’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람들에게 혈액 기부를 종용하기 전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늘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먼저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이 포스터의 시작. 혈액 기부자의 팔과 연결된 의료용 튜브를 통해 혈액이 충전되듯이, 혈액기부자의 팔과 연결된 빨간 케이블을 통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게 한 이 포스터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위해 항상 여기 있겠습니다. 당신 또한 보답의 의미로 돌려주시는 건 어떨지요? 우리는 혈액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엔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그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언젠간,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크게 기부할 수 있을 때가 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제3세계의 기아와 빈곤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독일의 구호단체 미제레오어는 사람들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언젠가는’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다. 그들이 주목한 점은 2013년에 유럽에서 일어난 소비활동의 40% 이상이 카드결제를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카드를 긁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그 자리에서 2유로라는 소액을 바로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함부르크 소재 광고대행사 콜레 레베와 함께 제작한 소셜 스와이프라는 이름의 인터랙티브 기부 포스터는 ‘그들에게 양식을!(Feed Them!)’이라는 포스터에 신용카드를 넣고 긁으면 카드를 긁는 행동에 따라 빵이 잘리고, ‘그들에게 자유를!(Free Them!)’이라는 포스터에 신용카드를 넣고 긁으면 카드를 긁는 행동에 따라 아이들의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이 끊어지는 등의 인터랙티브 영상 효과가 난다.
같은 공간이라도 이케아와 함께라면 더 효과적으로,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스웨덴 가구브랜드 이케아가 오랜 세월 주장해 온 브랜드의 약속이다. 이케아는 광고 지면도 이케아라면 3배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포스터를 통해 증명해냈다. 독일에 설치된 ‘이케아 RGB 빌보드’는 그 어떤 디지털적 요소 없이 하나의 포스터 공간에 3개의 다른 헤드라인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전달했다. 조명 변화만으로도 하나의 포스터 공간에서 3개의 각기 다른 헤드라인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고, 9㎡의 광고지면을 3배 더 넓은 27㎡로 활용하는 효과를 얻었다.
뉴미디어라는 말이 더 이상 ‘뉴’하지 않고, 디지털 미디어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닌 일상의 보편으로 자리 잡은 지금, 광고미디어를 올드와 뉴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약간의 기술과 재치 있는 발상만으로도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 구분 지어 놓은 올드와 아날로그의 한계는 사라지고,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공감 능력’을 가진 새로운 미디어로 거듭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