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시(不可視)의 북한에서 2020-2023년 일어나던 일…김정은 정권의 정책 전환에 의한 재앙 20년 전부터 북한에 사는 '그·그녀들로부터' 국내 동향을 취재한 일본 기자의 '코로나 펜데믹 後 4년' 보고(1)/취재 파트너 10명중 4명과는 연락 두절. 이시마루 지로(아시아프레스)
수작업으로 압록강 제방 보수 작업을 하는 북한 주민들. 직장과 여성 동맹에서 동원된 사람들로 보인다. 2021년 중순 중국 측에서 평안북도를 촬영했다. (아시아프레스) <제1회 외부 목격자가 없어진 사각지대> ◆들어가며… 재앙 2020년 1월 코로나·팬데믹이 발생하고 3년 9개월 동안,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방역을 이유로 국경이 봉쇄됐을 당시 북한에 사는 취재 파트너들은 '전염병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다'라고, 재앙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전해 왔다.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이 돼 버렸다. 사망자는 먼저 의료 붕괴에서 발생했다. 무역이 정지돼 중국제 의약품이 바닥나고, 고령자와 유아를 중심으로 환자와 부상자가 치료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어 경제 정체로 도시 주민의 곤궁이 심화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날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각지에서 발생했다. 2022년 5월, 국내에서 코로나가 대유행했을 때도,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23년 봄부터 수개월간 지방 도시의 혼란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기근의 양상을 띠게 됐다. 혼란은 질서의 문란을 낳았다. 이를 다잡기 위해서인지, 김정은 정권은 8월 들어선 이후 공개 처형을 재개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사회 혼란기만큼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의 상황이 그에 버금가는 재앙인 것은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이 인도적 위기에 대해, 일본도 한국도 국제사회도 조용하다.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쇄국' 탓에 외부 세계에 목격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 친족을 가진 재일조선인, 일본 거주 탈북 귀국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4년 가까이 육친의 안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후술하지만, 나는 20년 전부터 북한에 사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국내 동향을 취재하고 있다. 그·그녀들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는 단편적이지만, 이를 쌓고 대조해,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 대책을 구실로 삼아 전례 없는 강력한 사회통제책을 실시한 것, 또한 '반시장'으로의 대정책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김정은 정권의 시책이야말로 재앙의 원인이었다. 본고에서는, 북한 국내 상황으로 좁혀 팬데믹 발생으로부터의 4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압록강 강변에서 보호복을 입고 작업을 하고 있다. 2020년 10월 중국 측에서 양강도 혜산시를 촬영 아시아프레스 ◆넓어진 사각(死角) 2020년 1월, 중국발 코로나・팬데믹이 시작되자 김정은 정권은 전격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과 물건의 출입을 차단했다.중국에 출국해 오거나 비합법으로 월경해 오는 사람, 그리고 탈북자는 거의 전무하다(후술). 언론의 북한국내 취재도 끊겼다.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던 교도통신, AP, AFP를 비롯한 대형 통신사, 미디어는 4년 동안 기자 한 명도 입국할 수 없었다. 재일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의 평양 특파원조차 2020년 3월에 철수한 뒤 2024년 1월까지 교대 요원이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통신사 이타르타스도 마찬가지다. (중국 신화통신은 우리에게 확인을 거부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철저히 하던 중국에는 갈 수가 없어, 북중 국경에서의 취재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우편까지 멈춰 버려 지금도 일본에 엽서 한 장 오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로 북한 국내에서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제껏 없었던 일이 아닐까. 절대비밀 지정 문건 '김정은동지께서 7월2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하신 말씀'의 표지. 김정은은 문서 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침습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사진 아시아프레스 상기 문서의 일부. '신형코로나비루스가 들어오는것을 끝내 차단하지 못한것으로…'라고 적혀 있다. 사진 아시아프레스 ◆ 북한 국내의 취재 파트너들 내가 북한 관련 취재를 시작한 시기는 1993년이다. 95년에 평양, 97·98년에 함경북도에 들어갔지만, 외부인에게는 아무리 노력하고 돈을 써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음을 실감했다. 2002년부터 북한 주민과 팀을 만들어 국내 정세를 취재하기로 했다. 중국을 다니며, 합법・비합법으로 출국해 온 북한 사람들과 계속 만나며 취재 파트너를 찾았다. 목표를 '시민 저널리스트' 육성에 두었다. 통신은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전파가 북한 내 수 km까지 닿는 것이다. 능력과 의욕은 각기 다르지만, 파트너는 총 10명. 그러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그중 4명과 연락이 끊어졌다. 평양과 평안남도 등에 살고 있는데, 중국으로의 출국은커녕 국경 지역으로 이동조차 할 수 없게 돼 연락 수단을 잃어버린것이다. 나머지 6명은 북부 양강도, 함경북도, 평안북도에 거주하며 통화나 메신저로 의사소통하고 있다. 현재 내외 미디어로서 북한 국내 정세를 독자적인 정보원으로부터 전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도쿄신문의 시로우치 야스노부 기자(城内康伸, 2023년 말 퇴직), 마이니치 신문의 요네무라 코이치 기자(米村耕一) 정도이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RFA(자유아시아방송) 소속 탈북자 출신 기자 몇 명이 독자 국내 루트로 정보를 전하고 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한국 미디어는 북한 국내에 대한 독자 취재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아시아프레스의 파트너들은 모두 서민이므로 고급 정보는 없다. 거주지 이외의 사정은 잘 모른다. 조사 방법은 단순하다. 북한의 모든 주민은 지역에서는 '인민반'에 속하며, 사회에서는 직장이나 '여성동맹' 등 사회단체로 조직돼 있다. 거기서 1~2주에 한 번 열리는 회의와 학습회에서 노동당이나 행정기관의 방침과 지시가 전달된다. 파트너들에게서, 이것을 정기적으로 전달받는다. 또한 시장과 국영상점에서 매주 물가를 조사하고, 인근 협동농장에 나가 농촌 사정도 조사하고 있다. 입수한 문서를 중국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소하고 조사는 한계투성이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하의 보고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 인민반이란 최말단 행정조직으로, 지구마다 20~30세대 정도로 구성된다. 인원은 약 60~100명. 상부의 지시를 전달하고, 주민 동향을 세부까지 파악하는 역할을 맡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