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08 05:30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 무슨 일 있었나
해묵은 공방이 최근 또 불거졌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 측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 측의 지난해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말한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지난달 31일 단일화 뒷얘기를 담은 비망록(備忘錄)을 출간하면서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홍 의원은 비망록에서 “안 후보 측이 후보직 사퇴 이후 공동 선거운동을 위한 조건으로 ‘미래 대통령 안철수’라는 표현과 ‘새로운 정당 설립의 전권’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작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안 의원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했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책 내용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양측 모두에게 별 득이 될게 없는 공방을 왜 아직도 계속할까. 대선이 끝난지 1년이 다 돼 간다. 양측 감정의 골이 그만큼 깊었을까. 1년전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자.
#2012년 11월23일, 안 후보의 극적 후보 사퇴
2012년 11월23일 저녁 8시20분 쯤 서울 공평동 캠프 기자실에 안 후보가 들어왔다. 상기된 표정이었다. 마이크 앞에 선 그는 준비해온 메모를 읽었다.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 달라.”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는 젖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참모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아름다운 단일화’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안 후보의 사퇴는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 룰을 두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이었다. 당시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그날 저녁 기자회견 30분쯤 전에 캠프 주요 관계자를 호출한 뒤 안 후보가 사퇴 사실을 알렸다. 저녁을 먹다 불려 들어갔었다. 그 자리에서 사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 후보는 이미 사퇴 결심을 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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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후보가 2012년 11월23일 서울 공평동 캠프에서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울음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감고 있다.
처음부터 삐걱됐던 단일화 룰 협상11월6일 문, 안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첫 회동을 가진 이후 13일 ‘3대3’으로 구성된 양측 협상팀이 처음 만났다. 하지만 협상팀이 처음 만난 이후 하루만인 14일 협상이 중단됐다. 협상팀 구성원에 대해 양측 모두 불만을 제기하는 등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게 주요 이유였다. 이후 5일을 허비한 후 19일에야 양측은 다시 마주 앉았다.
이때부터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양측은 여론조사니 공론조사(Deliverative poll)니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여론조사를 하기로 합의한 뒤에도 조사 방식, 조사 대상, 조사 문구까지 각자에게 유리한 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수많은 세부적 이견이 있었지만 문 후보 측은 ‘적합도 조사’ 방식(야권 단일 후보로 누가 적합하냐고 묻는 방식)의 조사를, 안 후보 측은 ‘가상대결’ 방식(박근혜 후보와 대결했을 때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 묻는 방식)의 조사를 주장한 것이 핵심적 차이였다. 문 후보는 적합도에서, 안 후보는 가상대결에서 유리한 것으로 평가됐다. 두 후보의 유불리를 뚜렷하게 따지기 어려운 ‘지지도 조사’방식(야권 단일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방식)도 논의 과정에서 거론됐다. 19일부터 시작해 20, 21일까지 지리한 줄다리기가 계속됐지만 협상팀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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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2012년 11월6일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단일화를 위한 첫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2일, 문재인 안철수의 그랜드 힐튼 호텔 담판협상팀이 합의 도출에 실패하자 공은 결국 문, 안 두 후보에게로 넘어갔다. 22일 오전 10시30분 두 사람은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만났다. 배석자 없이 단둘이 만난 담판이었다. 두 사람만이 대화 내용을 알겠지만 격렬한 대화가 오갔던 건 분명하다는 게 당시 양측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1시간 동안의 회동은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당시 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과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각각 브리핑을 통해 “두 분 회동에서 성과가 없었다. 한 걸음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때 상황에 대해 홍 의원은 비망록에서 “문 후보가 회동 후 차에 탄 뒤 ‘이제 나는 내 할 일 다했다. 할만큼 했으니 이제 당신들이 알아서 좀 하시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양보 요구”이날 두 사람의 담판 회동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후보 자리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안 후보 캠프 관계자의 얘기다. “안 후보는 내부 회의에서 ‘박근혜 후보와의 대결에서 나는 이기지만 문 후보는 진다. 당연히 내가 후보가 돼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담판에서 그런 논리로 문 후보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
홍 의원도 담판 회동에 대해 비망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안 후보는 그 자리에서 문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했다. 문 후보는 공당의 후보로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최소한의 합리적인 절차를 갖춰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보다 앞서는 지지율을 근거로 계속 ‘자신에게 양보해야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가 두 후보의 단독회동에 대해 제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다.”
당시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문 후보가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를 두고는 양측 얘기가 다르다. 문 후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23일의 마지막 이인영·박선숙 특사 회담후보간 담판이 실패한 다음날인 23일 아침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후보는 특사회담을 제안했고 문 후보는 즉각 수용했다.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과 문 후보 측 이인영 의원은 23일 정오쯤 만났다. 특사회담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이도 성과가 없었다.
홍 의원 비망록에 따르면 당시 박 본부장은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행 세칙과 설문안 등이 담긴 5장짜리 문건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23, 24일 4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지도와 가상대결을 5대5로 반영하는 방식이었다. 문 후보 측이 주장했던 적합도 조사는 빠진 것이다. 유선전화와 휴대전화의 비율은 3대7이었다. 문 후보 측은 이를 수용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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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왼쪽)과 문 후보 측 이인영 의원. 두 사람은 2012년 11월23일 양측의 마지막 특사 회담을 가졌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민주당 내부 단일화 여론조사 문 후보 앞서” VS “정반대, 안 후보가 앞서”문 후보 측은 박 본부장이 제안한 방식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해 본 결과 문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안 후보가 후보직을 전격 사퇴한 게 아니냐는 추론을 했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 측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정반대다. 저희는 당시 민주당 내부 조사때 문 후보가 지는 것으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찌 됐건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안 후보는 이날 마지막 특사회담이 결렬된 지 약 세 시간 쯤 뒤에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안 후보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사퇴 배경을 추론할 수 있는 언급을 했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 정치에 어긋나고 국민에게 더 많은 상처를 드릴 뿐이다.” 단일화 룰을 놓고 문 후보와 합의가 안되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안 후보 측은 이날의 안 후보 사퇴를 ‘양보’라고 생각한다. 안 후보 측 금태섭 변호사는 홍 의원 비망록이 나온 이후 트위터에 “아예 출마를 포기하고 양보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원망하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라고 일갈했다. 이에 반해 문 후보 측은 안 후보의 사퇴가 당초 기대했던 ‘아름다운 단일화’를 무산시켜 버렸다는 생각인듯 하다. 홍 의원은 비망록에서 “지루한 공방과 결렬 등의 돌발변수로 얼룩졌던 단일화 협상은 결국 안 후보의 사퇴라는 가장 큰 돌발 변수를 만나 ‘반쪽 단일화’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했다. 안 후보의 사퇴를 보는 양측의 입장이 이렇게 달랐으니 이후 공동 선거운동도 쉽게 이뤄질 수가 없었다.
#12월2일, ‘미래 대통령 안철수’ 요구 공방의 진실은?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논란을 벌이고 있는 대목이 바로 ‘미래 대통령’ 요구 관련이다. 문 후보 측은 안 후보 사퇴 후 안 후보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반면 안 후보는 사퇴 후 지방에 내려가 있는 등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할 생각이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대통령’ 논란이 불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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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15일 문재인 후보의 광화문 유세장에 안철수 후보가 참여해 문 후보에게 노란 목도리를 매어주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처음으로 문 후보와 함께 유세차에 올랐다.
문 후보 측 주장은 이렇다. “12월 2일경 한 접촉 채널에서 안 후보와의 공동 선거운동을 위한 제안을 담은 문건을 받았다. 그 문건에 ‘미래 대통령 안철수’와 ‘안철수가 새로운 정치 정당 쇄신의 전권을 갖는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이런 제안을 접한 우리 캠프는 발칵 뒤집혔다. 그런 표현과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후 12월 14일 다른 채널을 통해 ‘미래 대통령’ 언급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그려 나간다’는 수준으로 정리됐다.”(홍 의원 비망록) 안 후보는 12월7일 부산에서 처음으로 문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하지만 문 후보와 함께 유세차에 오르지는 않다가 12월15일 광화문 유세에서 처음으로 문 후보와 함께 유세차에 올랐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 본인은 “실익도 없는 그런 바보 같은 요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안 후보 측 송호창 의원도 “어처구니가 없고, 어이가 없는 얘기”라고 했다. 송 의원은 “어떤 근거 자료나 문서를 주고받고 한 적도 없었다. (홍 의원이) 협상안인가 하는 문서도 있다고 하는데, 제가 (안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을 하면서 모든 활동들을 확인했는데 그런 문서는 없다”고 했다.
“법륜 스님이 ‘접촉 채널’에 관여했다면 안 후보도 몰랐을 수 있을 것”일각에서는 문 후보 측에 문서를 전달한 안 후보 측 ‘채널’이 안 후보의 멘토인 법륜 스님 혹은 안 후보와 가까운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은 ‘그런 채널은 없었다’는 게 분명한 입장이다.
다만 안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해줬다. “만약 법륜 스님이 접촉 채널로 움직였다면 캠프 관계자들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본 법륜 스님은 나름 자신의 큰 그림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전략가로 느껴졌다. 법륜 스님이 관여했다면 안 후보도 모르게 움직였을 개연성도 있다.”
양측 얘기가 너무 달라 뭐가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문 후보 측에서는 안 후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것을 야속해 하고, 안 후보 측은 후보 자리까지 양보했는데 책임을 떠 넘기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입장이다. 단일화 과정을 보는 양측의 인식이 다른 것이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제 아무에게도 실익이 없는 소모적 논란은 그만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안 후보 측 한 인사는 “양측 모두에게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은 반추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이다. 자꾸 들춰낼 이유가 없다. 이제 미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