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족했던 스승의 길
오 영 환
오래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첫 스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부임지는 농촌의 면 소재지 학교로 다소 큰 학교이었다. 부임 첫날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니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새로웠다. 새 학년이 되자 초년교사로서 6학년을 담임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평소와 같이 학생 출석을 부르니 남학생 1명이 연이어 결석을 했다. 왜 결석을 했을까? 아파서일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하며 그 빈자리가 무척 궁금했다.
학생 좌석을 배치하는 날이다. 키순으로 작은 학생은 앞 좌석에, 키가 큰 학생은 뒷좌석에 앉도록 했다. 당시 책상과 의자는 2인용으로 두 사람이 함께 앉아야 했다. 이때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이 다가왔다. 결석을 자주 하는 그 학생과 함께 앉도록 배정을 받은 학생이 같이 앉기 싫다고 하며 운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입고 있는 옷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머리도 더부룩하고 감지 않아 보기도 싫고 친구들을 자주 괴롭힌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이 그렇게 생각을 했다. 다음 날, 결석을 했던 그 학생 곁으로 다가가니 옷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그 학생에게 “오늘 집에 가면 엄마에게 옷을 빨아달라고 하고 내일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세요”라고 했다. 다음 날, 확인을 해보니 냄새나는 그 옷이었다. 어쩌다 쉬는 시간에 교실을 잠시 비우면 그 학생은 어김없이 반 친구들을 괴롭히며 소란을 피웠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몇 번이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하루는 그 학생을 교실에 남도록 했다. 나와 서로 마주 보며 무릎을 꿇고 함께 벌을섰다. 지나가는 학생도 선생님도 의아해하는 눈치다. 1시간이 지날 무렵 그 학생은 눈물을 흘린다. 후회의 눈물이다. 다시는 옆의 친구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다. 이때 나는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학생은 흐느끼며 소리 내어 운다. 눈물이 교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이때 나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나와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고 아무도 모르게 옷깃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 의자에 걸려있던 수건을 가져와 그 학생의 눈물을 닦아주고 살며시 안아주었다.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말없이 흘렀다. 잠시 후, 그 학생은 환한 얼굴의 표정이 역력했다. 초년교사로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보람의 순간이다.
며칠 후 그 학생의 가정을 방문하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10리 길을 갔다.
집을 들어서니 그 학생은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아버지는 마루에서 술을 드시고계셨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못함을 직감했다. 마침 이웃집 어른도 와 계셔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아버지의 잦은 술과 가정 폭력, 그리고 경제적 무능을 이유로 어머니가 가출을 한 것이다.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오죽 했으면 가출을 하셨을까? 그 심정 이해가 간다. 하지만 소중한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까웠다. 심층 상담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 밖에는 가랑비가 조금씩 내린다. 가느다란 빗방울은 마치 집을 나가신 어머니가 멀리서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방문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 그 학생을 안아주면서 내일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다음날 나는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생각을 했다. 이제껏 나는 그 학생을 위해 무엇을 했나? 왜 그토록 미워했나? 초년교사라 경험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학생 사랑의 정이 부족해서일까? 반성도 하고 후회도 했다. 나는 오로지 지식만 전달하는 교사였지 그 학생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랑의 인성교육은 소홀히 한 것이다. 되돌아보니 스승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공부가 끝난 그 학생을 교실에 남도록 했다. 내가 입던 추리닝을 그 학생에게 입혀주고 웃옷과 바지를 벗도록 했다. 운동장 모서리에 있는 펌프식 샘에 가서 빨래 비누로 옷을 빨았다. 시커먼 땟물이 나오고 또 나왔다. 여러 번 헹구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의 양지바른 담장 밑에 가서 옷을 널었다. 옷이 마르는 동안 나는 그 학생과 마주 앉아 공부를 했다. 이해가 빨라 수업목표도 쉽게 도달했다. 진작 이렇게 공부할 걸 하고 자책도 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옷은 다 말라 그 학생에게 입혀주고 집으로 보냈다.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서서히 몸을 숨기고 학교 운동장에는 어두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속옷을 빨아 입히고 동네 이발소에 가서 머리도 깎아주었다. 두세 달 동안 반복해서 옷을 빨아 입히고 같이 마주 앉아 공부도 했다. 몇 달이 지나 그 학생은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많이 올라 교장 선생님께서 진보상 進步賞을 주시었다.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이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처음 받아보는 상이라며 무척 좋아했다. 몇 달이 지나자 그 학생은 옷차림도, 머리도 단정해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범학생으로 변하였다. 반 친구들도 가까이서 어울리고 좋아했다. 미워했던 서로의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친구 속의 친구가 되었다. 함께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곁에서 바라보니 이제야 스승의 길을 조금 아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몇 달 후, 학교 씨름부를 창단하면서 그 학생을 씨름부 선수로 발탁을 했다. 운동장의 씨름 훈련장에서 매일 훈련을 열심히 했다. 그 학생도 훈련을 열심히 잘 따라주었다. 몇 달 후, 그 학생은 소년 체육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학생을 등에 업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기뻐했다. 이때 갑자기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그 학생을 안아준다.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알고 보니. 학생의 어머니였다. 재회의 기쁨과 금메달의 감격에 북받쳐 우는 것이다. 낳아준 어머니로서 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것이다.
준비해온 새 옷을 아들에게 입혀주며 또 눈물을 흘린다. 나의 가슴도 저려왔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42년간의 정들었던 교단을 내려오고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르친 그 학생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학생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전화 음성은 완전히 어른이었다. 다가오는 일요일, 초등학교 총 동문체육대회가 열리는데 선생님을 초대한다고 한다. 그 학생이 총동문회장이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장이었다. 환갑을 넘었다고 하며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제자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잠시 후 개회식이 다가오자 나를 소개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시며 진보상과 금메달을 딴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수십 년 동안 보관했던 빛바랜 금메달을 나의 목에 걸어준다. 너무도 감격스런 순간이다. 운집했던 동문 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개회식장에서 그 학생 의장님을 힘껏 안아주었다. 평생 3번째의 눈물겨운 포옹이었다.
내 스승의 길은 42년이다.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 학생 의장님의 진보상進步賞과 금메달이다. 스승의 길은 왕도가 없드시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이 스승의 길인 것 같다. 이 길을 내가 또다시 걷는다면 후회 없는 길이 꼭 열릴 것 같다.
추신: 2022년 5월 15일 제41회 스승의 날을 맞아 저의 서툰 글 "늘 부족했던 스승의 길" 을
감히 올려보았습니다. 부족한 글 이지만 관심과 사랑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42년 스승의 길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해 내셨을 거 같아요.
저도 고3 담임 선생님하고 지금도 수시로 소통하면서 지내거든요.
선생님이 작가가 꿈이셨다면서 제가 작가가 된 것을 대리 만족 하시면서 늘 자랑스러워 하세요.
올 스승의 날에는 설렁탕을 선물해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세요,
저하고 꼭 20년 차이가 나시는 선생님이 오래 오래 사셔야 하는 마음-이거든요.
오영환 선생님도 오늘은 감회가 크셨겠어요.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 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저의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생각이 났거든요.
저도 오영환 선생님과 비슷한 상황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큰 은덕을 입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글 읽는 동안 내 눈에는 이슬이 맺혔네요.
까마득히 잊었던 담임선생님께 이번 스승의 날에도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네요.
한상림 선생님!
지금도 고3학생을 담임하고 계시다니 참 보람있습니다.
평상시 저와는 가끔 소통을 하면서 제가 많은것을 배웁니다
교육과 문학, 그리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한선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김한규 선생님 !
저의 졸필을 읽어주시고 칭찬의 말씀을 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직접 뵙는 기회있으면 정중히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