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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울진평화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냉이
대추리 아이들, 그 꿋꿋함과 아픔. / 정리: 정승희
너무나 작았다. 대추리.
땅 위에 납작 엎드린 들꽃들처럼 아주 작았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주한미군 없는 평화로운 세상’.....
노란 깃발, 빨간 깃발, 파란 깃발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500여일이 넘도록 촛불집회(그곳 마을에서는 집회란 말을 쓰지 않고 행사라는 말을 썼다.)가 열리고, 그 무시무시한 수천 명의 경찰과 공권력을 막아낸 힘이 숨어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일요일이라 골목은 한산했다. 마치 폭풍전야 같았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보니 왼쪽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안에 꼭 골프장처럼 확 트인 잔디밭이 있었다. 철조망 안으로 망루가 보였다. 미군 기지였다. 바로 맞은편이 대추리였다. 그렇게 바로 코앞일 줄은 몰랐다.
밭에는 벌써 초록색 새순이 돋고 있었다. 황토색이 짙은 밭과 논은 이 곳이 옥토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길 가장자리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삐죽삐죽 많이 나와 있었다. 보랏빛 꽃망울들은 톡톡 봄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당에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매화가 수줍게 망울망울 매달려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한 여느 시골 동네 같았다.
단지 다른 것은 유명한 시인들의 이름과 그 밑에 주루룩 쓰여 있는 시들이 담벼락에 즐비했던 것과 건물 벽이나 담에 색색의 그림들이 그려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수 천 명의 경찰과 공권력의 힘을 가진 국방부가 이 작은 마을 대추리에 미군기지를 짓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땅과 함께 살아온 이곳 주민들은 옥토를 두고, 고향을 두고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싸움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이자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대추리 사람들은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공권력이 마을에서 떠나라는 방송을 하고, 위협을 하고, 경찰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를 잡아가고…….
하지만 그 안에도 아이들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함께 울고 웃는, 피맺힌 절규가 있는 그 투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아이들이 궁금했다.
어른들은 싸움의 목적이 있어 촛불을 켜고, 깃발을 들고 경찰들과 서로 몸싸움을 해가며 싸우고 있지만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그 힘든 싸움의 현장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우리는 대추리 아이들 10여명이 모여 있을 것이라는 놀이방에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전날 토요일이 재량 수업일이라서 아이들이 거의 대추리에 없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난감했다. 그런데 여자 아이 한 명이 보였다.
예진이.
처음에 우리는 몰랐었다. 선생님들이랑 얘기 좀 하자고 말 했을 때 예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유를.
여차하면 인터뷰조차 하지 못하고 가야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안되겠다 싶어, 막무가내예진이 옆에 앉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예진이는 어느 질문에도 말을 안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예진이가 몰라서라기보다는 대답하기 싫은 거라는 것을 알았다.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그 분위기를,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거였다.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예진이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추리가 고향인 아이였다. 예진이는 인터뷰를 하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몇 명 더 놀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알려준 것이다.
예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추 분교에 갔다. 그곳에는 남자 아이들 3명이 더 있었다. 그룹으로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 명씩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추리에서 일지를 쓰시고 계시며, 취재 길에 동행해주신 작가 김정희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먼저 예진이와 나눈 이야기를 싣는다. (예진이는 집에서 가까운 개성초등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니다가 2006년 3월 2일 군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였다.)
1.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알아요?
-미군기지
부모님들이 미군지기가 들어서는 걸 왜 반대하는 것 같아요?
-고향이니까.
맞아, 고향이니까……. 그리고 어른들은 언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임을 하셨던 것 같아요?
-모르겠는데…… 내가 4학년 때는 본정리에서 했는데…….
그때부터 생각나는가 보구나.
2. 지금 마을 아이들이 10명 정도인데 다 같은 학교 다니나요?
-아니요? 3월 2일에 전학 갔어요.
왜 전학을 갔는데요?
-개성초등학교 다니는 길을 경찰들이 막아서요.
몇 명이 전학 갔어요?
-나까지 6명이 갔어요.
정말 전학가기 싫었겠구나?
-네.
3. 예진이는 어른들이 싸우거나 촛불 행사하는 거 보면 무슨 생각이 나요?
-아무 생각 안 나요.
(처음에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무섭다, 걱정된다, 이상하다’라는 대답을 했다. 예진이도 아마 그런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진이는 아무 생각 안 난다는 식으로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무섭지는 않아?
-본정리에서는 촛불행사에 매일 다녔고, 대추리에서는 할머니가 갔어요. 본정리에서 할 때는 매일 갔어요.
본정리에서는 촛불행사 하는 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들었어?
-불장난 하는 거 같아요.(모두 웃음)
요즘에는 촛불행사 안 가면 뭐해? 할머니랑 아빠랑 다 싸우러 나가거나 촛불행사 가면 불편한 거 없어?
-없는데. 텔레비전 봐요, 만화.
컴퓨터 있지?
-오빠가 해요. 게임 중독자(모두 웃음).
컴퓨터로 뭐해?
-애들 하는 거 다 하는데. 인터넷에서 있는 거 하고. 다운 받아서 하고.
4. 마을 어른들은 왜 끝까지 여기를 안 떠나려고 하는 것 같아?
-지금 두 번째 빼앗기는 거니까. 처음에 부대 있는 데까지 대추리 땅이었는데, 또 빼앗기면 두 번째 빼앗기는 거니까.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5. 마을이 옛날하고 지금하고 달라진 거는 없어?
-없는데.
왜? 달라진 거 많던데? 벽화 그려놓고, 깃발 세워놓고, 외부에서 낯선 사람오고. 낯선 사람들 오는 거 어때?
-짜증 나는데.
왜?
-모르는 사람이니까? 아는 척 하고.
모르는 사람 오는 자체가 짜증나는 거야?
-네.
낯선 사람들이지만 엄마, 아빠 도와주러 오는데도 짜증나?
-그 국방부 사람들…….
아! 낯선 사람들이라는 게 국방부 사람들이라는 거였구나.
-네. 돼지같이 생겼어요.(모두 웃음)
그럼,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은 괜찮아?
-네. 막는 것도 도와주고, 싸울 때도 도와주고.
마을 사람들 말고 다른 데서 오신 분들 많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 여기 왜 오는 것 같아?
-어떨 때는 놀러오고 TV에서 보고 온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놀러오는 거 같아?
-대학생들.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오는 게 싫다고 예진이가 말하자 우리는 순간 긴장했다. 우리도 낯선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낯선 사람들이란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경찰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대학생들은 차림새를 보고 아마 놀러온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날도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으로 차를 대절해서 왔다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어떤 학생들은 밀고 다니는 여행용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대학생들은 놀러오는 것 같다고 느꼈나 보다.)
6. 친구들 중에서 떠난 친구들은 없어? 먼저 이사 나간 사람들 있잖아?
-친구는 아니고 언니.
그 언니는 네가 생각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아? 아니면 더 안 좋을 것 같아?
-모르겠어요.
예진이는 이사 가고 싶은 생각 안 들어?
-이사 가고 싶지 않은데…….
7. 요즘에 제일 화가 나는 건 뭐야?
-오빠가 때리는 거.(모두 웃음)
8. 할머니 할아버지 어른들이 싸우러 나가는 거 보면 무슨 생각 들어?
-불쌍한 생각 들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다치니까. 경찰들이 밀어서.
옛날보다 지금이 더 불안하지는 않니?
-(대답 없음)
(예진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많이 불안해 보였다. 우리가 살던 집이 언제 헐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말하는 아이들이 더 안쓰러워 보였다.)
9. 함께 전학 간 친구들 말고 군문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은 여기 마을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그럼 답답하지 않니? 여섯 명 전학 간 아이들 말고는 잘 모르잖아. 선생님들이 얘기 안 해 주시니?
-영어 선생님 여기 사는데……, 영어 선생님……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셨는데.
왜 바뀌셨는데?
-나쁜 얘기예요.
얘기해봐. 뭐가 나쁜데?
-그거, 뉴스에 나와서…….
뉴스에 뭐가 나왔는데?
-영어 선생님이 행사에 참여한 거 TV에 나왔는데 교장선생님이 보셔서, 선생님이 바뀌셨어요.
정말 너무했다.
(영어 선생님은 그곳 대추리에 사시는 분이었다. 아마 집회현장에 계시다가 TV에 나왔던 모양이다. 집회에 참가했다고 선생님을 바꾸는 학교 당국의 대응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예진이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학교에 못 나오시는 영어 선생님 일을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심리에서 마을 사람들(엄마, 아빠, 할머니)은 나쁜 사람들도 아닌데, 경찰들이 와서 몰아내려고 하고, 선생님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쫓겨나고 하니까 가치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예진이는 잘 아는데, 선생님들은 여기 대추리에 대해서 잘 모르면 답답하지 않아?
-선생님들은 몰라요, 대추리가 어딘지도 몰라요. 원래 선생님들은 여기 안 사시니까 잘 모르는 거예요.
예진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유치원 선생님.
정말 예쁜 유치원 선생님이 될 거야.
우리는 놀이방에서 나와 예진이와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현재 대추분교는 어린이 도서실이 있고, 나머지 교실은 ‘평택두레풍물보존회’가 연습실로 임대해서 사용해오고 있다.
1층에는 자율 식당이 있어서 대추리에 오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밥을 먹고 설거지도 본인들이 해놓고 가는 상태였다. 기분이 묘했다. 돈을 주고 사먹지 않는 자율 식당. 공동체가 움직여지는 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식당에서는 절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게 보였다. 예진이가 가서 이야기 했는데도 그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오려고 하지 않았다. 인터뷰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과자와 음료수를 사왔다. 과자와 음료수를 보더니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로 갔다.
예진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했는데 다른 인터뷰와 달랐던 점이 모둠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 명씩 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생각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개인별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같은 질문에 대답한 내용을 함께 싣기로 한다.
<인터뷰한 아이들>
● 6학년 김선민(김예진 오빠)
◆ 5학년 백승환
★ 2학년 방지우
1.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다 알잖아요. 미군기지 확장반대요. 다시는 이 땅을 볼 수 없으니까.
◆미군기지 확장
★몰라.
2. 어른들이 언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임을 하셨던 것 같아요?
●4학년 때부터요.
◆3학년 때
★몰라.
(다른 아이들이)쟤, 유치원 때 이사 왔어요.
3. 어른들이 집회하거나 싸우는 것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서 우리나라를 빛내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우리나라를 빛낸다는 건 무슨 의미야?
미군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 같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우리나라를 힘 센 나라로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러고 싶어서요.
◆아이들이 신경 쓸 게 아닌 거 같은데요. 경찰들이랑 싸우면서 할머니들이 돌 던질 때 무서워요.
어른들이 왜 돌 던지는지 알아요?
지키려고.
★몰라. 싸우는 게 이상해요.
(선민이가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국제적인 관계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선민이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니까 커서 힘 센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4. 촛불집회는 나가 본 적이 있나요?(그 때 느낌이 어땠나요?)
●할머니, 아빠가 나가요.
◆아니요.
★소리가 엄청 컸어.
무슨 소리?
와! 하는 소리. 너무 시끄러웠어요.
(촛불행사는 아이들이 거의 나가지 않고 어른들이 나간다. 대추리에서 하기 전에 본정리에서 할 때는 아이들도 많이 참석했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자랑 위주로 행사를 진행하여 아이들도 참석했던 것 같다.)
5. 어른들이 싸우는 것 보면 무섭지 않나요?
●무서워요. 아마 컸으면 같이 싸웠을 거예요.
싸울 때 무슨 소리 들리니?
퍽!
그게 무슨 소리야?
맞는 소리.
퍽! 소리 들리면 걱정 많이 되겠다.
네. 궁금해요.
그럼 나가고 싶지 않아?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왜 못 나가?
경찰한테 맞을까봐서요. 무서워요.
◆엄마 걱정이요, 경찰들한테 맞을 수도 있어서 무서워요.
★경찰들이랑 싸울 때, 할머니들이 돌 던질 때, 욕할 때, 무서워요.
(폭력은 아무리 정당성을 갖고 있더라도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오는 느낌은 두려움이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 두려움을 바깥으로 표현하고 표출하는데,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경찰도 무섭지만 맞서 싸우는 할머니들도 무섭다고 말한 것은 굉장히 솔직한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두렵다’라는 속마음과 겉으로는 싸워야 한다는 이중성 때문에 내면적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런 혼란스러움을 다독여줄 어른들이 없었다.
어른들은 경찰들의 폭력과 침입에 맞서 싸우는 생존권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10여명 되는 아이들의 구멍 난 마음까지 돌아다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 것이 가장 마음 아팠다. 상처 난 아이들의 마음을 누군가 다독이고 치유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어른들이 집회할 때나 싸우실 때 불편한 게 뭐예요?
●못 놀아요.
◆시끄러워요. 그리고 엄마 생각해요.
★작은 고모가 옆에 있어서 TV를 못 봐.
(지우는 엄마와 아빠랑 따로 떨어져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물음에도 자기 속마음을 쉽게 내놓지 않고 모른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
7. 마을 어른들은 왜 끝까지 여기를 안 떠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다 알잖아요.
◆우리 땅을 지키려고.
★…….
8. 마을이 예전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예요?
마을에 그림이랑 시랑 써있어서 선생님은 좋았는데 너희들은 어땠어? 마을이 예전하고 달라진 점이 뭐예요?
●성격. 어른들이 화를 많이 내요. 경찰들한테 화내고 욕하고.
왜 그러는 것 같아?
미군기지 반대하기 때문에. 한 번 땅을 빼앗겨서.
너희들한테도 화를 많이 내셔?
아니요.
엄마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하셔요?
아빠, 늦게 들어오셔서 스트레스 받고. 엄마가 아빠를 걱정하셔서 화병 날 것 같아요.
벽화 같은 거 보면 어때?
멋있어요.
너희들이 직접 그린 것도 있지?
네. 소그림. 밑그림이요. 회관집 앞 그림하고, 영호네 집 담에다 그린 것 우리가 그렸어요.
그릴 때 어땠어요? 재미있지 않았어?
재미있지 않았어요.
왜?
그린 이유가 있어서 재미있지 않았어요. 미군기지 반대하고 있어서…….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다는 말이구나.
◆…….
★이사 가서 사람들이 없으니까 썰렁해요.
9. 마을 사람들 말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가요? (그 분들은 왜 와 있는 것 같아요?)
●싸우려고. 침입을 못 하게 하려고.
◆네. 우리 땅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미군 반대하려고, 우리 땅 지키려고.
10. 먼저 마을을 떠난 친구들이 있나요? (있다면 그 친구들이 더 좋을 것 같나요? 그 이유는요? )
●이사 간 애들이 불안할 것 같아요.
왜 불안해 보이지요?
미군기지 찬성하는 쪽으로 갔으니 사람들이 욕할 거예요.
◆…….
★일곱 살 때 떠났는데, 지금은 일곱 살인 동성이. 이사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깨끗한 집에서 사니까.
(선민이 같은 경우는 남아서 싸우는 것이 올바른 일이고-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어른들에게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겠지만- 정당하다는 가치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오히려 불안해할 거라는 대답을 한 것이다. 놀라웠다. 실제로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났다가, 자식들에게 돈을 다 빼앗기고 오갈 곳 없이 다시 마을로 들어온 할머니도 계셨다. 그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11.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나요?(나가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이사 안가요.
◆아니요.
★대전이요. 양지 마을. 아빠가 거기 살아요.
12. 제일 화가 나는 것은 뭐예요?
●미군기지 안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미운 거지? 그럼 화가 나는 건 뭐지?
미군헬기. 공부할 때 시끄러워서 방해가 되요.
너희들 전학 간 데서는 헬기 소리 안 나?
네.
헬기 소리는 옛날부터 많이 났었니?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행사 때 경찰들 때문에. 폭력을 쓰니까. 막 때리고, 욕 하고.
★동생이 리모콘 빼앗을 때. 도깨비 그림. 불그림.
그림 보면 왜 화가 나?
무서워요.
(지우는 화가 나고 무서운 것 중 하나가 그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벽화나 벽시가 주는 미적인 부분에, 공감이 가는 내용에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도 하지만 지우는 그 그림들이 무섭기도 했던 것이다.
벽화 중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미군기지 확장 반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낸 그림들은 아름다움보다는 투쟁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에 그랬던 것이다. 그림을 보고 무섭다고 말한 지우는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이른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13. 마을 문제가 어떻게 풀렸으면 좋겠어요?
●미군기지 확장이 반대되고, 미군기지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미군기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야?
일하는 사람들. 미군들
미군 많이 봤어?
인사도 많이 해요. 철조망에서요.
무슨 말 해?
마이네임 이즈 선민. 나이스 투 미츄, 그래요.
누구랑 말해? 얼굴 아는 사람도 있어?
밥하고 폴. 폴리. 폴리는 폴 아들이에요.
무슨 말 해봤어?
다음에 또 만나자고. 요즘 잘 있냐고.
또 무슨 말 해봤어?
그냥 한국말로요, 너희들 미군기지 반대하냐고.
그러니까 뭐래?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요.
그 사람들은 왜 그냥 가는 것 같아?
그 사람들은 미군기지 찬성하니까.
◆경찰이 물러갔으면.
★미군 다 죽고, 우리가 살았으면.
(선민이의 대답에 사실 대안이 다 들어있는 듯 했다.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밥, 폴은 미군이지만 선민이게는 오며 가며 보고 인사하는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미군지기가 확장되는 것은 반대하고 빨리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선민이의 일관성 있는 대답들에 참으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꿋꿋했지만, 꿋꿋해야만 하는 분위기 안에서 속내를 꼭꼭 밟아두고 있었다.
아이들은 밝고 명랑했으나 오히려 그것이 더 안쓰러웠다. 아이들과 인터뷰가 끝나고 착잡한 마음으로 운동장에 나왔다. 아이들이 아직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가 잡지 나오면 전해줄게. 주소 좀 알려줘 하고 말을 붙였다.
선민이는 주소를 모르는 저학년 아이 것까지 자기한테 보내주면 자기가 다 주겠다는 믿음직스러운 말을 한다.
마을 나오기 전에 조직부장님께 인사를 건네는데 핏발 선 눈에 물기가 맺혀있는 걸 얼핏 보았다. 마을에 들어올 때는 밝고 듬직한 모습이었는데…….
“꼭 지킴이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네.”
아, 힘없는 대답.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많이 힘드시구나, 하루하루 버티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내내 한숨이 나왔다. 울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반나절만 있어도 울화가 치미는데, 거기 사시는 분들은 울화병 나서 돌아가셨던 분이 있다는 말이 맞나보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 사진 출처 - 평화바람 http://peacenomad.net/bbs/zboard.php?id=peace_photo&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5
첫댓글 월간 <어린이와 문학>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5월 4일 군부대 투입 강제집행이 있은 뒤 아이들 마음에는 더 커다란 상처가 패였겠지요. / 내일이면 광주민중항쟁 스물여섯 돌이 되는 날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평택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될 것 같아요.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혹은 아이들이 쓴 글들
도 촛불시위를 이어가고, 마음을 모아가는 데 힘이 된다 합니다. 까페로 올려주세요
그 영어선생님은 집회에 참가했다가 쫓겨난 게 아니구요, 3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김훈태 선생님입니다. 입영일이었던 이날 경기도교육청은 선생님을 직권휴직시켰고, 학교는 선생님이 있는 어학실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글구, 개성이 아니라 계성초등학교에요^^
아멜 몸은 괜찮은가? 과일, 우유 약속은 유효하니까 언제든지 연락해. 음 오늘 광화문에서 만날까? 갈건데...
잡지 편집부 쪽으로 알려드릴게요. 아멜, 몸 잘 돌보면서 있어.
내용 스크랩 좀 해갈께요. 아이들 가슴에도 희망이 싹틀 그 날이 곧 오기를 믿으며....
한 시대의 고통과 아픔은 어른, 아이 모두가 가슴 속속까지 처절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 참 슬프다
고마리님, 너무 감사해요. 그 날 과일과 우유가 어찌나 아쉽던지...ㅋㅋ
언제 만나서 과일,우유를 맘껏 먹어야지 않을까? 언제든지 전화해^^ 몸이 성하니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