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당뚜당’ 목수들이 서너달 땀을 흘리더니 은율관아 앞 개울 건너에 새 집이 들어섰다.
한 울타리 속에서 뒤에는 아담한 기와집이 가운데 중문을 두고,
앞에는 초가집이 들어서 사물패가 상모를 돌리고 꽹과리를 치더니
초가집은 주막이 되고 기와집은 요릿집이 되었다.
요릿집엔 사또와 은율 토호들이 출입하고 주막엔 은율관아의 육방관속과
관군, 포졸, 장돌뱅이 나부랭이들이 들락거렸다.
요릿집과 주막집 주인은 록지요,
자금 출처는 신랑 산적 두목이 주고 간 금덩어리 주머니였다.
록지가 어느 날 은율장터에 나갔다가 길가에서 좌판 산나물을 한보자기 사서
계산하다가 서로 깜짝 놀랐다.
어릴 적 이웃 친구 덕순이었다.
록지와 덕순이는 두손을 마주잡고 팔짝팔짝 뛰다가 록지 집으로 갔다.
살아온 얘기로 꼬박 밤을 새웠다.
덕순이 팔자도 파란만장했다.
은율관아의 관군으로 있던 신랑이 삼년 전 구월산 전투에서 전사해 딸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되었다.
기와집인 요릿집은 록지가 맡고, 초가집 주막은 덕순이가 맡아 주모가 되었다.
덕순이는 원래 음식 솜씨가 있었고 손도 훤칠한 데다
관군들이 모두 죽은 남편의 동료들이라 주막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릿집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큰 손님은 사또다.
사또는 이미 록지가 산적 두목과 혼례를 올린 사실을 알고 있었고,
록지는 사또가 산채에 세작(첩자)을 심어놓았단 사실을 알았다.
산채에서 혼례를 올린 날 밤 모두가 술에 취해 떨어져 있을 때
관군이 쳐들어왔다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봄비답지 않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주막 객방에 묵고 있던 장돌뱅이 하나가 덕순이를 통해 록지를 몰래 만나자고 했다.
용건을 물었더니 두목이 보냈다는 것이다.
이 남자를 따라 새 산채에 오라는 것이다.
“여봐라∼ 이 남자를 포박하여 광 속에 가뒀다가 내일 아침 날이 새거든 관아로 넘겨라.”
횃불을 든 하인들이 몰려와 그 장돌뱅이를 포박해 광에 넣었다.
록지는 사또가 자신을 시험해보려고 그 장돌뱅이를 보냈다는 걸 첫눈에 눈치챘다.
이튿날 아침, 하인들이 묶어 처박아 광 속에 넣어뒀던 그 장돌뱅이를 은율관아로 보냈더니
그날 밤 사또가 찾아왔다.
우아한 요릿집 주인 여자가 산적 두목에게 몸과 마음을 바친 색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날 밤 만취한 사또는 록지에게 이상한 청을 했다.
구월산 산적 두목을 생포하는 데 록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록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산적 두목이라도 혼례를 올린 신랑을 어떻게 제 손으로 잡아 관아에 넘길 수 있겠느냐며 울었다.
사또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적 두목과 사또 자신과의 기막힌 악연을 털어놓았다.
산적 두목 관동이와 은율 사또인 익주는 평양 통도리의 앞뒷집 불알친구였다.
함께 서당을 다니며 둘 다 평양 신동으로 훈장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관동이는 무관 쪽으로, 익주는 문관으로 길을 정했다.
둘 다 한번에 대과에 붙었다. 익
주는 당장 등용이 되었지만 서자인 관동이는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도 등용되지 않았다.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살던 관동이는 육년째 되던 해 구월산으로 들어가 산적 두목이 되었다.
오합지졸이던 산적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구월산 산적이라면 울던 아이도 뚝, 울음을 그쳤다.
조정에서는 구월산 산적들의 세력이 커지는 걸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가
익주를 불러올려 은율 사또에 앉혔다.
평양성 관군의 지원을 받아 몇번이나 쳐들어갔지만 관군들은 열에 아홉은 참담한 패배만 당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록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사또가 고개를 떨군 채 한참 있더니
“좋소”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록지와 사또는 술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이튿날 먼동이 트자 장옷을 깊게 눌러쓴 록지는 사또가 마련해준 당나귀에 올라탔다.
말잡이가 고삐를 잡고 구월산으로 향했다.
저녁 나절에 도착하니 불바다가 되었던 산채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집집마다 등불이 켜졌다.
록지가 팔짝 뛰어내려 두목의 품에 안겼다.
록지의 얘기를 귀담아듣던 두목이 산채 마당에 횃불을 올리고 산적들을 모두 모았다.
“이제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단 하룻밤이라도 다리를 뻗고 자봅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여기저기서 “흑 흑∼” 울음이 터졌다.
잠시 후 은율 사또가 육방관속을 대동하고 산채 마당에 들어서 두목과 포옹했다.
“오랜만이야.”
“진작 만날 걸.”
구월산이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졌다.
“여러분의 죄는 불문에 부치고 이곳에 들어오게 된 억울한 사연은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사또의 연설에 또다시 함성이 터졌다.
밤중에 돼지와 닭을 잡고 술을 걸렀다.
구월산 산채에서는 밤새도록 잔치판이 벌어졌다.
이튿날 창고 문을 열고 금붙이 은붙이 모두 꺼내 머릿수대로 나눠주자
부하들은 두목을 잡고 눈물을 훔쳤다.
두목은 함경도 부령도호부 부사로 임관되었다.
산적 셋은 두목 밑에서 군관이 되겠다고 함경도로 따라가고
록지도 주막과 요릿집을 덕순이에게 맡기고 신랑을 따라 함경도로 갔다.
첫댓글
지금도 큰 일에는 꼭 여자가 끼여야 일이 성사 됩니다
록지가 사또에게 어떤 조언 (멘토)을 했는지 아직 모르겠으나
산적 두목이 함경도 부령도호부 부사로 임관 되었으니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두목관동이와 사또 익주는 죽마고우인지라
두사람이 친구의 의리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록지의 활약에 잼나는 이야기가 3편에 언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록지는 정말로 현명한 여자네요
아무리 산적이라도 혼약을 한 사이 맞지요
사또의 간악한 계교에 안 넘어가고 광에다 가두라고 한것도
대단하고 사또와
밀약을 맺어서 친구사이도 허물지 않고
사또는 나라에
큰공을 세우게 만들었고 잊지못할 산적남편에게로
따라나선 록지는
의리있는 여자네요
그리고 친구에게
다 넘겨준걸 보면 금전에도
집착하지 않는
참되고 똑똑한 여자 맞네요
재미있게 2편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