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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금식하는 다윗 12:16~25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랍바를 점령한 다윗 12:26~31
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27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28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그곳을 쳐서 점령하고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져오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읍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31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철도끼질과 벽돌 구이를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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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아이를 치시니 다윗이 앓는 아이를 위해 금식하고 밤새 엎드립니다. 아이가 죽자, 다윗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습니다. 밧세바가 다시 다윗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솔로몬으로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십니다.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쳐서 점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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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금식하는 다윗 12:16~25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합니다. 하나님이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심한 병에 걸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고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병든 지 7일 만에 죽습니다. 아이가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 뜻이 실현된 것입니다(12:14). 그만큼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심각하게 보시고 그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으십니다. 아들이 죽자 그제야 다윗은 기도와 금식을 멈추고 하나님 뜻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심판자시지만,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가 다윗에게 여전히 있음을 보여 주시는 징표로 새로운 아들 ‘솔로몬’을 주십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의 금식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이 때때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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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바를 점령한 다윗 12:26~31
랍바 점령을 코앞에 둔 요압이 다윗을 전쟁터로 부릅니다. 이 전쟁은 암몬과의 2차 전쟁으로, 시간상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이가 죽기 이전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의 공적을 왕에게 돌리는 것이 관례인데, 왕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공적이 돌아가면 왕의 체면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이에 요압은 다윗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그를 전쟁터로 부르고, 다윗은 랍바를 점령해 많은 노획물을 얻습니다. 다윗이 암몬 왕의 왕관을 썼다는 것은 그가 암몬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암몬이 다윗 왕국의 속국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참전할 전쟁에 처음부터 나갔더라면 다윗의 미래는 달랐을 것입니다. 부르신 자리를 지키지 않은 불성실이 죄의 원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요압이 랍바성을 점령하고 다윗을 전쟁터로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성실히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며, 나는 지금 그곳에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고통스러운 상실일지라도 그것이 제가 짊어져야 할 일이라면 믿음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제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또한 작은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건한 자세로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54 내 주의 보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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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간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신 후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로운 승리를 안겨 주실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간구에 대해서 당신의 뜻과 계획 안에서
단호하게 대처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일깨우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가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새로운 기대와 소망을 품게 해 주심에 감사하면서
그 뜻과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때에 항상 주의하고 경계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고, 자족하고,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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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상반된 두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한 점도 헛되이 돌아오게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의 말에 치우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공의로우신 뜻대로 시행하십니다.
그 하나님에 의해 죄인 된 우리는 이미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진실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은 완전하여 조금의 틈도 없이 베풀어집니다.
그 하나님에 의해 우리는 다시 완벽하게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 공의와 사랑의 중심에 우리 주가 되신 그리스도가 계신 것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진리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한 공의를 다 감당하신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을 깨닫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결코, 흔하지 않을 삶을 살아갈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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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즉시로 회개하여 목숨은 살렸지만
그 죄에 대한 댓가는 지불해야 한다.
낳은 어린 아이가 대신 죽어야 하는 비극이다.
그러나 24절에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가 아들을 낳은 솔로몬은 다윗의 아내입니다.
이 차이가 아이의 죽음과 연결된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다윗의 범죄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범죄가 아니라고
보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신정 왕정 국가의 왕으로 이런 범죄를 범함으로
신정 왕정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시는 대신 당신의 공의를 이루며 영광을 회복하시기 위해
다윗의 죄의 열매인 아이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아이가 1주일 만에 죽었기 때문에 다윗도 1주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죽자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돌아와 음식을 먹습니다.
이 신앙은 또 얼마나 위대합니까?
22절입니다.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려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 고백도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한 번 죽은 아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자신이 죽어 아이에게 갈 수 있다는 이 분명한 신앙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신 후에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살다보면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 용기가 바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표징입니다.
다윗은 아이가 죽은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을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진실한 회개에 대해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깨끗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을 하나님은
‘여디디야’라는 특별한 호칭을 붙여주십니다.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26절 이하에는 다윗이 나태한 생활을 청산하고 원래 거룩한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죄는 이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병들게 하는 주범입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새 출발한 다윗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받는 다윗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하게 암몬 족속을 정복하고 승리함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존귀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귀한 성도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여정에
아무런 범죄를 하지 않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그런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누구나 넘어지고 범죄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윗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를 하나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여디디야는 바로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여디디야라는 아버지의 용서를 기억하시면서 돌이키는 용기도
큰 믿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는 신앙생활이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의 범죄 이야기는 여디디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선물로 주신 복된 날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빛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루를 열어 봅니다.
그러나 만약 실수하여 넘어졌다면 진심 어린 회개 외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없어 보입니다.
다윗에게는 바로 그런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회개와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게 여디디야로 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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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시니 아이가 앓습니다
신하들의수군거림을 보고 다윗이 아이가 죽었는지 묻고 그렇다고 하자
다윗은 씻고 기름 바르고 여호와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음식을 차리게 하여 먹습니다
다윗은 나단을 통해 이 아이가 죽을 것 예언 받았지만
아이가 앓자 금식하며 주님 앞에 겸허히 엎드립니다
기도란 내 뜻을 아뢰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드리는
시간들과의 싸움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즐거움과 내 생각이 자유로 흘러가는 것들을 금식하며 제어하며
오직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주시라
주님만 바라보는,내 죄 때문에 고통 당하는 아이를 놓고 차라리
내가 죽으면 좋겠는 절절한 심령,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순간의 시간이 흐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게 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 동안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인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이기까지 완전 수 일곱,이레의
시간이 차기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이의 죽음을 오히려 평강의 소식으로 받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우리아와 이 아이가 죽임당한,
다윗 대신 죽은 자가 있기에 다윗은 평안을 누립니다
이 깊은 하나님의 오묘하고 놀라운 말씀의 깊이를 알아듣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되어 죽으시지 않았으면 나는 평강을 누릴 수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게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이라는
의미인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멈추지 않고 부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솔로몬을 낳자 여디디야 라는 이름을 친히 지어주신 것과
다윗이 암몬의 랍바를 공격해 이긴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다윗이 용서 받았음을 다시 한번 똑똑히 보여주십니다
여호와의 택함을 입고 용서 받는 자의 모습이 어떤 지 다윗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과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시고
이 언약의 신실함을 다윗에게 시행하시는 것이
다윗을 신실하게 징계 하시는 것,
다윗이 죄를 지었어도 버림 받지 않은 증거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입니다
다윗은 이 일들로 자신이 어느 정도 죄인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만이
그가 살길임을 알게 됩니다
택함 받은 자에게 임하는 이 복을 누가 스스로 받으려고 하겠습니까마는~
하나님께서 이 복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기에
내 죄가 말씀 앞에서 다 드러나게 하시고 사람 막대기
인생 채찍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던
다윗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나단을 통해, 당신이 바로 그 죽어 마땅한 자라는 책망 앞에
자신이 의인을 죽인 자임을 알고 애통하는 심령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상한 심령임을 알았습니다
이 은혜를 알도록 말씀은 나를 양육하시며
내 죄를 알고 용서하심의 은혜를 알 수록 더욱 더 주님만 바라는
애통한 심령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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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2:16 - 12:31엄중한 심판 후에도 여전한 하나님 은혜
하나님이 밧세바가 낳은 다윗의 아들을 치시니 심히 앓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삼하12:14)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혹시 자비를 베푸실까 하여 칠일 동안 금식하며 울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칠일 만에 죽었고 신하들은 알리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심하기는커녕 오히려 땅에서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여호와 앞에 예배하고 돌아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의아하여 물었고 다윗은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2~23)
다윗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분별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은 게을리하고 안하면서도,
할 수 없는 일은 왜 안 되냐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꾸로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칠일이나 땅에 엎드려 울며 금식하며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즉시 단념하고
오직 여호와 앞에 나아가 감사드리며 예배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할 수 있는 일에 충성 했습니다
아이는 살릴 수 없었지만 아내를 위로하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니 하나님이 아들 솔로몬을 주셨고
"하나님의 사랑"이란 뜻을 가진 "여디디야"라는 이름도 친히 지어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충성되이 감당해서
암몬을 쳐서 멸하고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로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염려할 것이 아닙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6:27)
오직 할 수 있는 일에 충성하기 원합니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행할 수 있는 말씀에 충성하기 원합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4)
주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충성하기 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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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었던 여자를 통하여 다른 아이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다윗은 이 아이(솔로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암몬의 수도 랍바를 점령하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다윗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와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다윗의 왕국이 견고케 하시는 이유는 그의 혈통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영원한 왕국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것처럼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개함으로
용서의 기쁨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서
증거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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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절 :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자기가 할수 없는 일 앞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신앙이 회복되고 영성이 밝아집니다.
나단의 예고대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심하게 앓으며 죽어가자,
다윗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최고 권력자가 아닌 무기력한 아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긍휼만 바랐습니다. 연약한 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서면서 이전에 간음을 저지르고 살인을 교사할 때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고난과 아픔은 너무 괴롭지만, 어두워진 영혼을 밝히고 둔해진 신앙 감각을 일깨웁니다.
18-23절 :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와 현실을 수용할 때, 눈물을 흘려야 할 때와 눈물을 거둘 때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아이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 신하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픔이야 가시지 않았겠지만, 하나님의 최종 결정임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상황을 바꿀 여지가 있을 땐 간절히 기도할 수 있지만, 돌이킬 수 없을 땐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24,25절 :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회개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새로운 아이를 주시고, 그 아이를 사랑하셔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라는 뜻의 '여디디야'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과 다윗과 맺은 언약(7:12,13)
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 주는 징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를 물리치시지 않습니다.
징벌 중에도 은총을 거두시지 않습니다.
26-31절 :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회개하는 이를 용서하시고, 다시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십니다.
다윗은 요압의 요청에 따라 랍바성 함락을 마무리한 후, 암몬 왕의 왕관과 성읍 전리품을 취하고 암몬 사람들에게 노역을 시키며 그들을 복속시켰습니다.
다윗이 왕궁에서 죄를 저지르는 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전쟁이
그의 회개 후에 드디어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회복시키십니다.
회개는 ~ 은혜이며, 회복이며, 특권이며, 형통의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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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나쁘고 엄청난 손해가 되는 장사입니다.
최소한 신앙인인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죗값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용서함을 받아도 그 죄 때문에 얻는 이익보다 잃을 것이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죄가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추하고 악하고 모든 면에 있어 손해가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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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이 복잡한 상황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암몬과의 전쟁은 요압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고 그 수도를 함락하였는데
요압은 다윗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마지막 마무리는
다윗이 하도록 심부름꾼을 보냅니다.
다윗은 모든 군대를 이끌고 그 랍바로 들어가 그 성을 함락시키고
남은 지역의 모든 성들을 점령하여 많은 전리품들과 포로들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고
사람들을 보내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 그의 영적 상태는
쇠퇴하여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반복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릅니다. 영적 전투 가운데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깃발을 높이 들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승리를 이끌어내고 경험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사야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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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깨어 죄로 말미암아 더럽힘 당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나라와 그 뜻을 기억하여
그 복된 소식 증거하는
종과 증인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그 크신 성호에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그의 이름을 믿고 영접한 자에게 죄사함과 새 생명을 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감사 찬양을 드리옵니다.
죄의 올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다윗이 처절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여디디야(솔로몬)을 얻는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밧세바를 이혼하라 하시지도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을 특별히 사랑하시어 그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잔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똑같이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들 가운데
다윗이 상대적으로 구속사의 획을 긋는 신앙의 위인이며
신앙 영웅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간음 죄와 살인 죄를 범한 일에 대한 진실한 참회의 고백과
겸손한 돌이킴과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음을
오늘 이 아침에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사함의 은총을 받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입으로는 날마다 고백하면서
삶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육체를 사랑하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을 고백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진실된 참회가 내 인생에 있었는지요?
세상이 하나님에 대하여 방자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와 악에 알게 모르게
마음과 영이 물들었으면서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만 있고
기도를 쉬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고백하고
참회하는 진실된 기도의 시간이 내게 있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성령의 내적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여 죄와 악에 대하여 승리하기를 간구합니다.
나를 주관하려는 옛 사람이 육에 속하여
마음으로 변명하며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새 생명의 주인되시는 거룩한 영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영적으로 깨어 죄로 말미암아 더럽힘 당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나라와 그 뜻을 기억하여
그 복된 소식 증거하는 종과 증인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살피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옵소서
범사에 기도할 때와 겸손히 수용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로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선하신 뜻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자연재해와 기근 가운데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거룩하게 구별되고
그 주신 기쁨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