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마르12,28-34)
사랑이 살아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7). 오늘 이 시간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랑이 살아있는 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많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랑은 남을 돕는 손을 가졌으며, 가난한 자와 곤궁한 자에게 재빨리 달려가는 발을 가졌으며, 비극에 처한 자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며, 사람들의 한숨과 슬픔을 경청하는 귀를 가졌습니다.”“사랑에는 수고로움이 없습니다. 만일 수고를 느낀다면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기고 손발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랑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마라스머스’ 라는 병을 아십니까? 이 병은 외롭게 자란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입니다. 증상은 신체 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 시름시름 앓는 증세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영양결핍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결핍’이 원인입니다. 사랑을 한창 공급받아야 할 아이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때 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이병에 대한 의사의 처방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무엇일까요? 예, “매일 사랑을 고백하세요!”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좋은 약이랍니다. 사실 매일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부간, 부자간에 고부간에는 물론 이웃간에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서로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질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당신이 저를 사랑하듯“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도 “여보 사랑해!”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길 바랍니다. 남자들은 대개 ‘그냥 눈빛만 봐도 알지, 그것을 꼭 표현 해야 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꼭, 그리고 자주 듣고 싶어합니다. 사실 남자들도 “사랑한다”는 말에 무덤덤해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기뻐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자녀와 듣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사랑한다”는 표현을 듣게 될 때 모든 피곤이 풀립니다.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줄 때 삶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길 권합니다. “사랑은 이유를 묻지 않으며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존재에 있습니다. 존재 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성 베르나르도).
사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행위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테레사 효과를 아시지요?
미국 하버드 의대생들을 봉사 활동에 참여시킨 후 체내 면역 기능을 측정해 보았더니 면역 기능이 크게 증강되었답니다. 또한 마더 테레사의 전기를 읽게 한 다음 인체 변화를 조사했더니 그것만으로도 생명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인체에 도움이 되는 항체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거나 봉사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면역 기능이 높아지는 것을 두고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고 사랑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신 주님을 차지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복음은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선언하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의 눈이 맑아져 하느님을 뵈올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13장34절 이하에서 주님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사랑의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나의 벗이 된다”(요한15,13)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마태5,46) 하시며 끼리끼리의 사랑을 경계하셨습니다.
1요한 3,14에 보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하고 있고 1요한4장20절에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적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8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지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사랑은 손발에서 열매 맺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랑에 대해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루카12,34) 하고 이르셨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골인한 것과 골을 넣을 뻔한 것은 분명 다릅니다. 홈런과 파울은 같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있는 사랑을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가슴에 담긴 사랑을 마침내 손발로 행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지식의 앎이 아니라 사랑의 구체적 삶이 살아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천국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아들아, 사랑한다!”“딸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는 이 한마디가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어려움 안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으로 여전히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주님을 향한 희망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에덴 동산에 사는 하와가 아담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아담에게 “자기 나 사랑해!” 하고 물었지요. 그러자 아담이 “그럼”하고 대답했어요. 하와가 다시 “정말 나를 제일 사랑하는 거지?” 물으니, 아담이 “그렇다니까?”하고 대답했어요. “내가 제일 이뻐?”하와가 묻자 “야! 여기 너 밖에 다른 사람이 더 있니?” 아담이 대답했답니다.
거듭거듭 확인하려는 하와나 그렇게 멋없이 대답하는 아담이나…
천생연분이야! ##
첫댓글 조반니 란프란코의 <엘리야와 사렙타의 과부>, 1624년경, 캔버스에 유채, 203.2x243.8cm, 폴 게티 박물관, 캘리포니아, 미국
엘리야는 웃통을 벗은 채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다. 그는 고난을 상징하는 맨발로 사렙타 과부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빵을 구워 반을 잘라 자기에게 달라고 손짓으로 말하고 있다. 사렙타 과부와 그 아들은 굶어 죽기 직전이다. 여자의 눈은 퀭하고 이마에는 수심이 가득하며 얼굴은 그늘로 덥혔고 굶주림에 지쳐있다. 하지만 사렙타 과부는 구운 빵의 반을 잘라 엘리야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녀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힘없이 건네고 있는 빵은 자신과 아들이 먹을 마지막 양식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빈 바구니는 그녀의 가난한 삶을 말해준다. 과부의 아들은 나머지 빵을 손에 들고 어머니의 빈 바구니를 잡으며 관람자들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
아멘. 감사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주님을 향한 희망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멘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고 사랑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