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려
서봉교
이발소 앞 중국집에서
아들은 짜장 난 짬뽕을 먹는데
에어컨 옆 늙은 고무나무
이파리가 다 말라가면서
물 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나무의 시선이 거슬려 면을 먹기가 거북하고
매끄럽지 못한 신경전이 계속되는데
벌써 아들은 한 그릇 다 비웠다
나도 대충 짬뽕을 마무리하고
반쯤 남은 물병을 들고 가
화분에 물을 주었다
괜히 주인 눈치 살피며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여주인의 한마디
아저씨 저 나무 물 자주 주면 죽어요.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 달아실 2023년
주천의 연밭에서
한창 젊었을 때
주천의 연밭에 갔을 때는
오직 연꽃만 보였다
마흔을 넘기고
쉰을 바라볼 때
비로소 연 이파리 아래가 보였다
온통 개구리밥으로 덮힌
또 다른 초록 세상
그 밥을 뒤집어쓰고
눈만 내민 청개구리가 말했다
너는
이제야 왔느냐고.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 달아실 2023년
엄마 흉내를 내면서
독감으로 주말 밤새 앓은 아내 대신
일요일 조반을 하는데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었던
콩나물밥이다
된장은 된장대로 끓이고
어머니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넣고 또 넣고
맛의 기본은 그게 아니지
밥 풀 때 비릿한 콩나물 냄새가
어머니처럼 났다
한 숟갈 뜨고 혓바닥의 시간 여행을 따라
촉수로 더듬어보지만
저만치 저만치 멀기만 하지
그래 어머니 흉내가 이것뿐이랴
자식들 낳는 것도 아들 하나에 딸 셋
이미 닮았는데
어머니의 흉내를 낸다는 것은
나도 그만큼 세월을 살았다는 이야기
이다음에 우리 아이들은
지 엄마 흉내를 낼까
안 낼까?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 달아실 2023년
서봉교 시인
2006년 『조선문학』 으로 등단.
시집 『계모 같은 마누라 』(2007), 『침을 허락하다 』(2019),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2023)
원주문학상 수상 (2009년)
원주문협 부지부장. 요선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