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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귀자모상'과 경주 출토 신라 성모 마리아상
일본 불상에도 ‘피에타’ 있었네-'귀자모상(鬼子母像)' 피에타, 죽음 앞 비탄 표현.귀자모상은 아이 지키는 신. 시공간 넘어 통하는 '모성'
13세기에 제작된 일본 시가현(滋賀?) 온조우지(원성사園城寺)의 카리테이모 좌상(가라제모 좌상 訶梨帝母 座像) . 한 손엔 아기를 다른 한 손엔 다산을 뜻하는 길상과(吉祥果), 석류(?榴)를 들고 있다
'불교미술에도 피에타가 있었나요?' 전시는 일본의 '경주'라는 교토 근교의 큰 호수 비와호를 둘러싸고 있는 사찰들과 유적지에서 나온 7~14세기 헤이안·가마쿠라 시대의 불상과 불교 공예품들을 주로 소개한다. 그런데 전시장 불상들 사이에는 서양 미술의 피에타상이나 성모자상을 빼어 닮은 금박 불교조각상이 색다른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이 상의 이름은 '귀자모상'(鬼子母像). 귀신 아들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비와호 근처 온조사라는 고찰에 안치되어 민중의 숭배를 받았던 가마쿠라 시대(12~14세기)의 이 목조 불상은 피에타상의 자태를 빼어 닮았다. 후덕한 용모의 어머니상이 오른팔에 다산의 상징인 석류를 든 채 왼팔에 안은 아기를 바라보며 앉은 모습. 두툼한 양감과 섬세한 주름이 어우러진 옷자락, 온화하면서도 엄숙한 어머니상 얼굴의 절묘한 묘사가 조각 세공에 능했던 옛 일본 불교미술의 특질을 보여준다. 왜 700여년 전 변방 섬나라 불상에 피에타의 포즈가 들어간 걸까? 14세기 르네상스의 서막을 연 이탈리아 거장 조토와 독일의 장인들이 그림과 조각상으로 피에타를 표현한 이래 숱한 미술가들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피에타를 변주해왔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상실감과 비탄에 빠진 인간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소재였던 까닭이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를 필두로 티치아노, 조반니 벨리니 등 르네상스 대가들이 다채로운 면모의 피에타를 창작했고, 19세기의 들라크루아와 반 고흐는 격정적인 작가의 내면을 담아냈으며, 20세기 초 케테 콜비츠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가 깃든 피에타상을 빚어냈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는 이용백 작가가 자아의 죽음을 은유하는 사이보그 피에타상을 출품하기도 했다.
일본의 귀자모상 서양의 피에타상들
<법화경> 등의 불경을 보면, 귀자모는 아기를 양육, 보호하며 불법을 지키는 선녀신이다. 하지만 원래는 '하리티'라는 악신으로 부처가 설법한 인도의 왕사성을 돌아다니며 툭하면 아기를 납치해 잡아먹는 '사이코패스'였다. 비탄에 빠진 귀자모가 찾아오자 부처는 그에게 자식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깨우쳐주며 아들을 돌려주었고, 그 뒤로 회개한 귀자모는 아이들을 지키는 착한 신으로 거듭난다. 개과천선의 고사가 담긴 귀자모상은 중국과 일본 등지로 전래되어 사찰의 불상으로 만들어지면서, 안전한 출산과 자녀들의 복을 비는 민중들의 신앙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중국 민간에서 귀자모신은 아기를 점지해주는 여신으로 숭배를 받는다. 민병훈 박물관 아시아부장은 "귀자모상은 일반 민중의 삶을 위안했던 종교의 세속적 기능을 상징한다"며 "기복 신앙 영향으로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는 일본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상"이라고 설명한다.
***************************************************<한겨레/노형석 기자 2012.01.12>
이 불상을 보니 문득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보관 중인 "성모 마리아상"이 생각이 나서 사진과 관련글을 올려본다.
기독교박물관의 성모 마리아상 앞면 기독교박물관의 성모 마리아상 뒷면
이 모자상은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매산 김양선(金良善·1907~1970) 선생이 1950년대 경주에서 수습한 것으로 알려진 '성모(聖母) 마리아상(瑪利亞像)'이다
현재, 높이 7.2㎝인 이 소상(塑像·찰흙으로 만든 형상)은, 상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 해석에 의하면, 얼핏 관세음보살상처럼 보이는 이 소상은 배(舟) 모양의 광배(光背·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몸 뒤에 표현한 장식) 같은 형상이 불상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불상이 아니며 화관(花冠)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이 손을 입에 물고 있는 어린아이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형상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서기 8~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소개하고 있는 ‘마리아상’. 박물관 도록에는‘경교(景敎)와 불교의 교류 및 경교의 한반도 유입을 보여주는 중요 유물’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2004년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재개관하면서 이 유물들의 존재가 알려지자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성모마리아상이 아니며 불상의 일종이라는 견해를 밝혔으며, 많은 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은 '기독교 유물'이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아래 글은 <조선블로그/오두의 꿈꾸는 풍경>에 필명 오두방정님이 이 불상에 대해서 피력한 글을 부분 발췌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정확한 발굴기록이 없는 유물로 신라 때 것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견해들 속에, 이 불상이 마리아상이 아니고 불상이라는 이유에 대해 오두방정(필명)님은
1) 연화대가 있다
먼저 위의 모자불상(母子佛像)의 사진을 자세히 보라. 앞서 올린 숭실대측이 조명을 어둡게 하여 퍼트리는 사진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모상 기단 아래에 연화대(蓮花臺)가 보일 것이다. 숭실대 전시 '성모상'의 기단부의 연화대가 기독교의 것이겠는가? 연화까지 기독교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모르겠으나, 기독교 성모상에는 연화대가 없다. 있다면 그 증거 유물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2) '성모상'의 전신광배인 오레올라(aureola)의 문양이 불교적이다.
기독교 성모상에는 전신광배가 톱니바퀴 모양이 기본이고 작은 여러 개의 불상 모양들을 두른 전신광배를 하지 않는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전신광배 오레올라(aureola) 주변에 '염견(焰肩) 불상'의 작은 불상 얼굴들을 새겨넣고 있다. 위 사진의 '성모상'의 꼭대기 부분 또한 또 하나의 작은 불상이다. 이러한 중앙 불상 주변에 여러 작은 불상을 새겨 넣는 불상을 댜니 불상(Dhyani Buddha)에서 볼 수 있다.
관음보살 계열에서 바다(또는 물)와 관련하여 불보다 물인 파도를 전신 광배에 두른 '수견(水肩)불상들'도 있다. 그러한 둥근 파도 문양이 전신광배로 둘러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양은 때로 '수견(水肩)불상'이 불상의 얼굴이 아닌 파도 이미지인 둥근 무늬로 대신하기도 한다. 문제의 숭실대 '신라 성모상'과 비교해 보라. 중앙 불상 주변에 작고 둥근 문양을 넣는 것은 기독교 성모상이 아니라 불상 전통에서 중요한 계통의 하나이다.
3) 불교에서도 모자불상이 있다
모자불상으로서 관음보살상 중에 송자관음(送子觀音) 또는 자모관음(慈母?音)의 모자불상이 있다.
칠채회목조 송자관음보살상(漆彩?木雕 送子?音菩?像) (사진출처/오두의 꿈꾸는 풍경)
숭실대의 '신라 성모상'이란 것이 모자불상이겠지만 만에 하나 전통적인 신라의 태양숭배의 전통 성모상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의 성모상은 전혀 아니다. 자세히 보면 전신광배 주위의 '얼굴들'이 기독교에서는 없는 것이다. 불교적인 형태에서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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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숭실대학의 기독교박물관에는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매산 김양선(金良善·1907~1970) 선생이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밑에서 발견하였다는 돌십자가(또는 불국사 우물 속에서 발견했다는 설도 있음)와 철십자가등 관련 유물이 4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유물들은 신라시대에 경교가 들어왔다는 근거가 된다고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박물관에 전시중인 불국사 출토 돌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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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함산 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