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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의 역사와 종류
관현악 악보에 첼로 (cello)라고 표기된 것은 실은 악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 (cellist)을 약어로 표기한 것이다. 첼로의 정식 명칭은 비올론첼로 (violoncello)인데, 이는 작은 더블베이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비올로네 (violone)는 비올족 악기를 뜻하는 어간 (viol)에 크다는 뜻을 가진 어미 (-one)를 붙여서 만든 단어로 큰 비올라라는 뜻이 되고, 이는 결국 더블베이스가 되는데, 여기에 다시 첼로 (cello)라는 축소형 어미가 붙게 되므로 비올론 첼로는 결국 작은 더블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이 악기의 완전한 이름은 이태리어의 비올론 첼로로 발음되어야 하지만 보통 줄여서 첼로라고 부른다. 첼로는 비올족의 최저음 6현 악기인 비올로네에서 유래하였는데, 비올로네는 큰 비올라란 말이다. 비올로네는 16-17세기의 비올라 다 감바 (Viola da gamba)와 비올라 다 브라치오 (Viola da braccio)족의 합주에서 저음을 담당했던 악기이다. 바이올린족의 저음 악기인 첼로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바이올린 족의 발달사와 같다. 초기의 첼로 형태의 악기는 F, C, G음으로 조율되는 3줄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초에 B, F, C, G음으로 조율되는 4줄 짜리 첼로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이후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으로 전파된다. 이것이 1550년경 독일에서 처음으로 오늘날과 같은 C, G, D, A음으로 조율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이탈리아에서는 17세기초까지,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18세기초까지도 장 2도 낮은 과거의 조율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와서도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4줄 짜리 첼로가 사용되었고 저음을 보완하기 위하여 5줄 또는 6줄 짜리 악기도 사용하였다. 1700년대 이전의 악기들은 그 몸통 크기가 일정치 않아 73-80cm까지의 크고 작은 여러 형의 악기가 제작되었는데 1710년경 스트라디바리 (A. Stradivari)에 의해 비로소 몸통 길이가 75cm 정도로 고정되었다. 첼로는 주로 통주 저음 (basso continuo)의 악기로 사용되었었는데 18세기부터 점차 독주악기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1750년 이후 다성 음악시대에서 관현악 음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목과 지판이 길어지고 줄받침도 보다 높고 둥글게 개량되어 더욱 부드럽고 탄력 있는 음색을 얻게 된다. 1780년경에는 프랑스의 트르트 (F. Tourte)에 의해 활의 개량이 이루어져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되고 활의 길이도 일정 해지게 된다. 19세기말에는 세르바스 (A. F. Servais)가 도입한 받침못 (end pin)의 쇄신으로 첼로의 연주 기량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하여도 첼로는 무릎으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서 연주하는데 안정감을 얻을 수 없었다. 첼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함부르크에서 활동한 요한 마테존에 의해‘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의 하나’ 로 인정을 받게 되고, 바흐와 헨델의 관현악곡에 이르러서는 현악기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첼로의 기능은 더블베이스와 함께 저음 베이스 성부에 국한되었다. 바로크의 통주저음 양식이 쇠퇴하면서 첼로의 기능이 보다 다양해지게 되고, 그 일례로 바흐는 첼로를 위해 다섯 곡의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아직 첼로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기법과 테크닉이 작곡가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으므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에 이르러서도 첼로의 테크닉은 단조로운 선에 그치고 있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베토벤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첼로는 더블베이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낭만주의를 지나면서 바그너에 오면 첼로는 지금까지 해왔던 자기 역할을 찾는 여행을 청산하고 현대의 스타일로 정 착한다. 오늘날 첼로는 화음악기가 아니라 독주악기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첼로의 구성 일반적인 첼로의 전체 길이는 120cm로서 바이올린의 두 배쯤 된다. 몸통만의 길이는 73~76cm정도 된다. 활은 바이올린이나 비올 라의 그것보다 약간 더 짧고 (71cm) 더 굵으며 탄력성이 적은 편이다. 활잡는 법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와 다 비슷하지만 주자 쪽으로 활털을 눕혀서 잡는다. 첼로의 4줄은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갈수록 현저하게 굵어져서 아래의 가장 낮은 선에서는 매우 풍부하고 부드러운 저음을 낼 수 있다. 조율체계는 비올라와 같은데, 음역은 한 옥타브 아래로 조율된다. 보통 높은 쪽의 두 줄 (A와 D)은 아무것도 감지 않은 거트현을 쓰고, 아래쪽의 두 줄 (G와C)은 은이나 구리 혹은 알루미늄으로 감아서 쓰기도 하나, 최근에는 4개의 현 전부를 금속으로 감겨져 있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첼로를 연주할 때는 악기를 두 무릎 사이에 거의 수직으로 세우고 받침못으로 바닥에 고정시킨다. 공명통 (몸체)의 뒤판이 연주 자를 향하게 되므로 바이올린에 비교할 때 높은 음과 낮은 음의 방향이 바뀌어 가장 낮은 현이 오른쪽에 오게 된다. 목의 길이도 바이올린에 비해 짧은 편이며, 지판은 더 넓고 길어 브리지까지 이른다. 이 점 때문에 운지에 필요할 경우 엄지손가락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악기 크기와 연주 자세가 달라서 각음이 지판 (finger board)에서 더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지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생기는 점을 제외하고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와 구조, 기능 등이 거의 같으므로 그 주법도 일반적으로 같다 첼로의 소리 첼로는 비올라보다 한 옥타브 아래인 C2, G2, D3, A3으로 조율되어 있으나 그 크기가 자기 음역보다 좀 작은 편이다. 따라서 제 일 낮은 음을 내는 C2현을 연주할 경우 기본음이 약한 특징을 갖는다. 바이올린 계열의 현악기에서는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첼로에서 잘 일어나는 현상이 울프 노트 (wolf note)이다. 이 현상은 앞판의 주된 공진 주파수 부근에서 판의 공진과 현의 진동이 결합하여 한 음을 연주하는 동안 음높이가 불안전하게 흔들리는 것을 말한다. 첼로는 바이올린 족의 현악기 중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강약의 넓은 폭을 갖고 있으며, 거의 4옥타브에 걸친 넓은 음역도 갖고 있다. 기본은 낮은음자리표를 주로 사용하며 높은음의 악구에서는 테너음자리표를 사용하여 덧줄을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피한다. 테너음자리표에서도 덧줄을 계속 사용해야 할 더 높은 음에는 높은음자리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습관이 되어 있는 테너 음자리표를 그대로 사용한다. 첼로는 비올족의 여러 악기 중에서 가장 다양한 음색을 낼 수 있다. 또한 첼로와 바이올린은 관현악에서 저음역과 중간 음역일 때 동질적인 음향을 내는 파트너이다. 그런 관계로 바이올린의 소리를‘아내의 소리'로, 첼로의 소리를 ‘남편의 소리’로 비유 하여 말하기도 하며 바이올린을‘여자 시인’에, 첼로를‘남자 시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바이올린과 첼로 두 악기는 오랜 세월 에 걸쳐 음향적으로 가장 높은 완전성의 경지에 접근해 왔다. 첼로의 음향은 저음역에서 숭고한 의식이나 비극적 장엄미를 표현해 내며, 고음역에서는 격렬한 정열을 나타내기도 하고 고요한 상태뿐 아니라 악마적인 광폭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첼로는 4개의 현 사이의 음색적 차이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작은 차이 마저도 포지션을 바꾸어 고음역을 사용함으로써 상쇄시킬 수 있다. 음역이 사람의 베이스 성부 내지는 바리톤 성부의 저음역과 비슷한 2줄의 저음현 음색은 힘차고 근엄하지만 고요한 분위기를 내는 데도 적합하다. 이 두 현은 얇은 동선으로 감겨져 있기 때 문에 고음의 두 현보다는 덜 탄력적이다. 따라서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는 고음보다 저음이 불리하다. 첼로는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율도 매우 민첩하게 연주할 수 있어서 오늘날 관현악과 실내악, 그리고 독주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겠다. 첼로박물관 아마티 아마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첼로로 1511년경에 태어난 안드레아 아마티의 작품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첼로를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세 대의 첼로는 전해져 온다. 여기의 첼로는 "The King"으로 불리우며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첼로이다. 이 악기는 1968년에 록펠러 대학의 '악기의 과학적인 고찰'이라는 회의에 전시되었다. 프랑스의 찰스 4세는 아마티에게 38대의 악기를 주문했었는데 여기에는 8대의 베이스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 악기는 그 중 하나도 추정된다. 이 악기는 눈에 띠게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훌륭하게 수리되어 지금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인 색깔은 호박색이다. 악기 소리는 주목할 만하다. 아름답고 풍부하며 협주곡에서 충분히 들릴정도로 활기찬 소리를 낸다. 이 악기는 약간 작지만 현대의 첼로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크기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아마티는 오늘날의 첼로와 동일한 악기를 만들었고 200년동안 아마티와 그의 후손들은 아름다운 악기를 만들었다. 바락노먼 비스펠베이는 원전악기에서 현대 첼로까지 매우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무대에 등장하면 음악팬들은 연주와 함께 그가 사용하는 악기와 활 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비스펠베이가 초기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악기는 1710년에 런던에서 제작된 바락 노먼 첼로이다. 그에 의하면, 이 악기의 특징은 무엇보다 저음 현의 긴장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악기의 몸체가 매우 넓고 어두운 갈색을 띤다. 소리는 밝은 편이어서 특히 초기 낭만음악에 이상적인 악기. 요요 마가 암스테르담에서 하이든 첼로 협주곡을 녹음할 때 그에게 이 악기를 빌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할 때 이 악기를 사용할 예정이다. 비스펠베이는 이 바락 노먼 첼로를 사용해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연주 녹음했지만, 마지막 6번 곡만은 1770년산 피콜로 첼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피콜로 제작가에 대해 전해지는 바없지만, 비스펠베이는 그가악기 제작가인 동시에 매우 훌륭한 화가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도 그럴 것이 7/8 사이즈로, 핑거보드가 넓게 만들어진 이 악기는 매우 아름다운 디자인이 돋보인다. 모던 첼로로는 현재 1870년대 프랑스산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 오르페우스 4중주단 멤버가 소유한 그란치노 첼로에 관심이 더 많다. 그는 4중주단을 구성, 슈베르트 5중주곡을 연주할 때 이미 이 악기를 사용한 바 있는데, 이때 이 악기의 매력에 흠뻑 반했다고 한다. 원전연주에 대한 관심은 비스펠베이로 하여금 80년대 후반까지 거트 현을 가진 모던 첼로를 고집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변했다. 이제 더 이상 특정 현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즐겨 연주하는 주요 현대음악들, 즉 쇼스타코비치나 뒤티외 등의 곡들이 스틸 현을 위해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활은 부드럽고 표현력이 풍부한 프랑스산. 한동안 사르토리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더 울림이 좋은 바친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든과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는 도드를 쓴다. (윤진희 기자 - 객석) 테스토레 현재 테스토레 첼로는 뉴욕의 브렌슨 악기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이 악기는 다듬어지지 않았고 매우 커서 왼손의 근육이 힘이 들 수 있으나 어느 활이든지 가벼운 빠른 보잉으로 쉽게 연주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악기는 현재 비옹창이 쓰고 있는데 그는 테스토레 악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테스토레 첼로를 아주 좋아 합니다. 11살 때 부모님이 1/2사이즈의 테스토레를 주빈메타의 오디션 때 연주하라고 사 주셨는데 뉴욕필과 협연하는 오디션에 합격하였고 그일은 지금까지의 가장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도 줄리아드 예비학교 시절에도 학교소유의 테스토레를 수년간 빌렸습니다. 그 후, 지난 해에 내가 시카고에서 주빈메타와 함께 공연하게 될 것을 알았을 때도 브렌슨 악기사의 유리 브렌슨에게 첼로를 요구했고 그가 사용하게 해준 가장 좋은 악기도 이 테스토레 입니다." 테스토레의 역사를 살펴 보면, 니콜로 아마티에게서 배운 파올로 그란치노는 그의 아들 지암밥티스타와 프란체스코와 함께 밀라노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설립하였다. 대부분의 밀라노 바이올린들은 아마티의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검붉은 바니쉬(칠)은 네아폴리탄 갈리아노와 비슷하다. 카를로 쥬세페는 이탈리아의 노바라에서 1660년경에 태었나서 1717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악기는 후손들의 악기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겨지며 보기 드물다. 이는 그란치노로 팔렸기 때문일것이다. 그는 보기가 좋지않더라고 음질을 생각해서 나무를 선택했다. 바니쉬는 일반적으로 황갈색이다. 첼로 뒷판은 배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그는 또한 아주 뛰어난 베이스도 제작하였다. 올드 악기 제작자들은 라벨을 악기에 붙이기도 했고 때론 악기에 직접 새기기도 했다. 테스토레가는 바이올린의 뒷판에 머리 둘달린 독수리의 왕관 모양의 디자인을 새겼다. 그들의 작업장도 독수리의 문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양은 입구 위에 또한 걸려있었다. 카를로 쥬세페의 악기 스타일의 특성은 다른 제작자들의 둥근 스크롤과 달리 뒤가 평평한 스크롤이다. 그의 악기 특히 첼로는 좋은 특성으로 인해 아주 선호된다. 마르케비치 1709년 산 스트라디바리 첼로 '마르케비치' 이 근사한 첼로는 스트라디바리의 가장 왕성한 활동 기간중인 65세 때 제작되었다. 1907년에서 1726년 사이의 패턴인 'Forma B' 모델로 이루어진 초기 작품으로 장인의 기술적인 면과 악기 재료 선택에 있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업퍼 바우트와 로우어 바우트의 궁형은 대담하게 큰 원을 그리며 C-바우트 의 곡선부로 아름답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려하게 마감질 된 엣지와 우아한 퍼플링은 앞판의 그레인과 함께 외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하고 있다. 알프레드 힐이 이 첼로를 알게 된 것은 유명한 러시아 클렉터인 바론 크누프를 통해서이다. 1899년 러시아를 여행하게 된 이들은 악기 소유자인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마르케비치를 만난다. 차르 통치하의 의원이었던 안드레이 마르케비치는 열렬한 아마추어 첼리스트로 이 악기에 관해서는 전 소유자가 가운트 델피토였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이 악기를 내 놓았었는데 파리의 카레사의 손을 거쳐 다시 몽셰 레떼오에게 팔린다. 다시 카레사에게로 돌아온 이 악기는 미국인 그레이스 브로드벤터에게, 다시 1938년 뉴욕의 부를리처에게 팔린다. 흥미롭게도 이 첼로는 1962년에 마르케비치 가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작곡가 이고르 마르케비치의 동생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첼리스트 드미트리가 이것을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이 악기는 런던의 콜렉터를 통해 Fridart 재단에 팔려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되고 있다. 1705년산 마테오 고프리에 첼로 폭발하는 개성 야노스 슈타커가 사용하고 있는 균형감이 풍부한 1705년산 마테오 고프리에 첼로를 소개한다. 마테오 고프리에(1659~1742)는 첼로 제작과 관련된 대부분의 베니스 현악기 제작 학파의 실제적인 창시자이다. 고프리에 문하에서 도제 생활을 지낸 몬타냐의 유명한 첼로 제작 자들은 고프리에의 패턴과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야노스슈타커가연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바로 이 마테오 고프리에의 장대 한 1705년산 첼로이다. 고프리에는 80cm에 이르는 처어치 베이스 (Church Bass)에서 71cm의 작은 모델 ( 이 작은 모델은 크레모나가아닌 브레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악기들을만들었다. 매우 큰 악기는 전체적인 힘이나 C현의 울림이 아주 뛰어나므로 솔로이스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육중하게 만들어진 베니스악기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외곽선은 고프리에의 다른 첼로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단순한 둥근 형태이다. 업퍼 바우트와 로우어 바우트는 끝 부분에서 우아한 아치 모양을 그리고 있다. 반면 미들 바우트는 특히 넓은데 이는 간혹 연주자들이 바깥쪽으로 보잉하는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고프리에는 첼로 제작에 있어 크기의 비율만 달리한 채 이 패턴을 고집한 것 같다. 반면 그의 바이올린들은 크레모나 제작자들의 여러 다양한 스타일들을 모방했음을 보여주듯 다양하다. 이것은 고프리에가 크레모나 바이올린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었던 반면 베니스에서 다르게 전개되어 온 자신의 첼로 디자인에 대해서만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디바리 조차도 특별히 이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했는지 각각 '보통첼로' (Violoncello ordinari) 와 '베니스의 첼로' (Violoncello di Venetia ) 라는 글자가 새겨진 두 개의 첼로 넥 템플리트 를 소유하고 있었다. 고프리에의 작품 스타일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분좋은 관대함이 느껴진다. 이 사랑스런 첼로는 넓은 팩 박스를 덮고 있는 다소 작은 볼루트, 전체적으로 평평하고 약간 네모난 아칭 (이 때문에 이 부분이 높에 이루어진 몬타냐 스타일보다 덜 육감적이다.) 아름다운 붉은 바니쉬 등에서 고프리에만의 또 다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베니스의 후배 제작자 들에게 악기 제작에 있어서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생생한 색감을 위해 나무나 딥 골든 엘로우 (deep golden-yellow) 그라운드에 가까운 색이 엷게 사용되었다. 여러곳에서 제작 도구의 마감질 흔적과 불균형 등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악기 전반에 녹아 있는 솜씨 좋고 재능있는 장인의 숨결에는 놀라울 정도로 새롭고 완변한 개성이 함께 하고 있다. 풍부하게 깍이고 아름다운 균형을 지닌 사운드홀, 우아한 코너, 섬세하고 미묘한 퍼플링은 이 위대한악기의 진실을 덮는 가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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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구와탄노이 원문보기 글쓴이: 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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